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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켜가는 사랑이 아내들의 가슴을 울립니다’라는 신문 광고의 카피가 자못 관심을 끌어 책을 사게 되었습니다. 읽다보니 몇 년 전 보았던 ‘세상에 이런 일이’ 기적의 출산 편에 나와 세상을 울렸던 태복이 아빠 최종길 씨의 사연을 기록한 책이더군요.
임신 7개월, 뇌수술을 네 번이나 받은 의식불명의 임산부가 아이를 낳은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었지요. 그때 출산한 812그램의 생명, 태복이가 지금은 건강하고 밝은 아이로 자라 있더군요. 이름은 ‘태복’에서 ‘태웅’이라 바뀌었어요.
태웅이를 낳은 아내 혜영 씨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식물인간 상태이더군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기던 저는 최종길 씨 가족이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 암담한 슬픔보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얼마나 힘든 나날일까요. 그럼에도 그들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사랑이 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게 새희망을 가슴 가득 품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최종길 씨는 힘들 때 어머니에게 기대고, 어머니는 힘들 때 아들에게 기대고, 두 사람 모두 힘들 땐 무럭무러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새 힘을 얻는 가족. 그러면서 병상의 아내에게 “지금 이대로라도 평생 사랑한다”고 말하는 최종길 씨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돼 와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병상의 혜영 씨는 평소의 꿈이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었더군요. 그 생각을 하며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나는 ‘좋은 엄마’일까? 우리 남편에게 과연 나는 ‘좋은 아내’일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을 했구요. 정말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재야, 승헌아, 영재 아빠 사랑해, 아주 많이!”
[인상깊은구절] 헤영이는 어릴 적 꿈을 묻는 나를 향해 망설이지도 않고 이런 대답을 내놨다. “좋은 엄마요.” 그 말에 나는 좀 과장되게 웃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의 꿈이 고작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니! “부모님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아빠의 사랑이 뭔지 잘 모르거든요. 내가 아빠가 될 수는 없으니까, 좋은 엄마가 되는 수밖에 없잖아요.” 혜영이는 슬픈 얘기를 퍽도 덤덤하게 했다. |
| 그동안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을 보고 많이 감탄했었다. 멋지다...저런 남자 어디 없나... 그런 감동(!)이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를, 이 책의 주인공 최종길 씨를 보고 새삼 깨달았다. 사진의 그는 그냥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직업을 가졌다. 그러나 그 평범한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벌여왔던 사투에 가까운 고뇌와 노력이 가슴을 울렸다. 백마 탄 왕자가 멋지기야 하지만, 정말 좋은 사회를 만드는 건 선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런 보통 사람이 아닐까... 끝끝내 용기 잃지 마시길... 김혜영씨는 꼭 일어나실 거예요!!! |
| 평소에는 너무도 사랑해 마지않는(겉으로 보기에는) 가족들이라 할지라도 돈 앞에서는 엉망진창으로 허물어 지는 꼴을 우리는 텔레비전 속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피를 나누어 마신 가족의 불화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가진 재산이 많건 적건간에 크게 상관없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오늘 내일 골골 거리며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가 도저히 저세상으로 짊어지고 갈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라고 한다면...병상 주변에는 조금이라도 어필하여 유산을 물려받고자 하는 가족들의 물결이 넘실거린다...이 정도가 되면 직계가족의 눈초리 역시 매서워지기 시작하는데...평소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돈의 팔촌뻘되는 인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반강제로 눈알을 후벼파 시뻘건 눈물을 쏟아내려는 노력을 보일 때는 잘 보여서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는 다분히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로 치부...특별 경계령을 스스로 내리고 요주의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그렇다면 x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이가 병상에 드러누워 있을 때는 어떨까...차이점이라면 부자의 경우 유산을 조금이라도 더 물려받기 위해 수없이 어필한다고 말한다면...가난뱅이의 경우에는 장기간의 치료와 입원 때문에 사후에 가족들이 부담하게 될 적지 않은 병원비를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으로 날밤을 까게 된다는 것이다...오오...돈의 위대함이여... 특히 확실하게 완쾌된다는 보장도 없이...치료를 통한 상태의 호전도 없는 채...그저 단순히 살아있는 기간만을 연장하게 되는 것이라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오랜 병에 효자가 없다는 옛말처럼 눈치를 살살 보면서 자신의 몫으로 떨어지게 될 각종 치료비와 병원비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느라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와져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게 돌아가는 꼴이 감지되면 가족이고 형제고 개고 나발이고 할 것 없이 당장 멱살잡이 한판 일보직전까지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쓰린 마음에 쏘주 한잔 까지 목구멍으로 넘어가게 되면 대취하여 할 말 못할 말 쏟아내는 통에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되기도 하는데...죽은(을) 사람은 죽은(을) 사람이고...산(살)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악의 받힌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이 말 터지는 순간 분위기는 상당히 살벌해지면서 그런 말을 하고도 니가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따지는 가족들의 원성이 높아지게 되나 대놓고 이 멘트를 날린 이를 비난할 수 없는 사정은 괜히 성인군자 또는 하늘이 내린 효자인양 언성을 높여 화를 내게 된다면...올커니...그래 너 잘났다...그렇게 잘난 네가 그럼 병원비 좀 다 내봐라...는 말이 튀어나올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이유다... 그래서 기왕이면 오랫동안 입원하지 않고(한 마디로 돈 들이지 않고-_-) 돌아가시는 것이 자식들에게 마지막까지 효도받으면서 떠날 수 있는 비결이 되는 비극적이며 비인간적인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이 책의 저자는 내세울 것 없는 백그라운드 하나 없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소시민이다...성실하고 정직하게 한 평생을 살아왔지만 어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가...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많지 않은 덕에 열심히 벌어 하루하루 먹고사는 보람찬 인생을 살아가는 저자에게 왜 신은 이토록 가혹한 형벌을 내렸는가...저자는 어려서 부모를 여읜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 착한 아가씨와 가정을 이루게 되고 이들 부부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갖게 된다...풍족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아왔던 부부에게 첫 번째 불행이 닥치니 아내의 혈압이 260까지 치솟으며 8개월도 채 안된 1.1kg의 미숙아로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된 것이다...출산예정일보다 2달이나 먼저 나오게 된 첫째 아이...걱정은 했지만 인큐베이터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어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즈음...다시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임신도중 가끔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안심했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의식을 잃고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야 만 것이다...왜 불행은 항상 몰려 다니는 것인가...이들 부부에게 마음속에서 신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아이를 뱃속에 가진 채로 뇌출혈로 쓰러지게 된 아내는 안타깝게 수 차례의 뇌수술에도 결국 완쾌되지 못하고...심장박동은 뛰고 있으나 자신의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게 된다...식물인간...병수발을 하느라고 돈벌이도 하나 갖지 못하는 형편에서 지불해야 할 병원비는 눈덩이러처럼 불어나 가족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불행중 다행일까...수술을 받는 동안 아내의 몸으로 적지않게 투여된 독하디 독한 약물 덕분에 둘째 아이의 생명조차 위협받게 되는데...기적처럼 식물인간인 아내에게서 채 7개월도 되지 미숙아가 스스로 엄마 몸을 열고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이다...둘 째가 태어난 것은 축하해 주어야 마땅하나...812g의 미숙아로 다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아내의 치료비에다 아이의 병원비까지 부담해야하는 덕분에 저자는 이중고를 겪게 되고...암담한 상황에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다...어떤가...듣기만 해도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지는 이야기 아닌가...대체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비전과 희망을 만날 수 있을텐가...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죽이고 싶도록 밉고...현실을 도피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그렇지만 저자는 이런 상황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뜻이 있으면 길이 생기듯...가족들과 주위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 덕분에 어렵사리 병원비는 처리하게 되었으나 젊은 나이에 식물인간이 되어 평생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아내와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저자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웠을텐가...하지만 저자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상황일지라도 행복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몸소 일깨워준 눈물없이는 절대로 읽을 수 없는 이 책은 오방에게도 적지 않은 반성의 기회를 제공했다...건강한 아내와 부유하지는 않지만 피똥싸게 일한다면 그래도 근근히 먹고는 살만한 재산...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가진 오방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아니었던가...흐르는 눈물을 통해 스스로 뜨겁게 반성할 수 있었던 책...저자가 던진 희망의 불화살이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오르길 기원하고...또 기원하노라.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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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오니 딸 아이와 아내가 책 한권을 읽으라고 권했다. 뭔 책이냐고 했더니 무조건 읽어보란다. 몇 장을 훑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내용에 빠져들었다. 이 책을 지은 최종길 씨가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참 보기 드물게 올곧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딸까지 부추겨가며 이 책을 왜 읽으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이 분처럼 아내를 사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아내가 김혜영 씨 같은 처지라면 최종길 씨처럼 잘할 자신은 없다.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러나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며 나도 이 가정을 지키는 중심축으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책을 읽고 가정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지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한 최종길 씨에게 감사드린다.
[인상깊은구절] 그러고 보면 희망이란 손톱 같은 것이다. 잘라내도 잘라내도 어느 틈엔가 다시 자라 삐죽 고개를 내민다.중략. 혜영이를 향한 내 희망도 손톱과 같아서, 짧게 잘라봐야 결국은 다시 자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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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심리학에 관한 머리 아픈 책을 읽고 있어서... 머리나 식힐 겸 고등학교 때 읽었던 기억을 더듬거리며 읽었던 책이다. 내용은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갑자기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돌보는 남편과 그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TV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는 가족들이다. 이런 가족사의 이야기가 모두 그러하듯이 슬프고 감동적이다. 그냥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고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사랑에서 우러나는 기적의 힘을 보여주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그런 쪽의 그저 그런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새해 들어서 처음 읽은 우리나라의 에세이라서 그런 걸까... 어느 책보다 글이 너무 아름다웠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감동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수첩이 빼곡해지도록 글씨를 써내려갔다. 새삼 한글의 미학을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2009년들어 읽은 책 중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가슴에 남는 책을 읽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소장가치 500%. 평생 곁에 두고 읽어야 할 그런 책이다.
# 결핍으로 울어본 사람은 원하던 것을 가지게 됐을 때,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 수 있다.
# 추억할 게 많지 않으면 아플 일도 별로 없다.
# 그토록 넓은 품을 가졌으면서도, 어머니의 어깨는 너무 좁아 내 두 팔이 쓸데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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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이제 2달이 조금 넘어간다.
몸조리며 아기 돌보는 일에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제 겨우 숨 좀 돌리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
식물인간이 된 아내의 병상을 지키는 남자의 절절한 이야기.
아기를 낳기 전이었다면 그 남편의 고된 사랑이야기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처한 입장이 변했기에, 그 사랑이야기보다는 아들 태웅이의 이야기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몸을 열고 혼자 힘으로 세상에 나온 씩씩한 아이 태웅이.
하지만 7개월밖에 안 된 작은 아이가 세상에 맞서기엔 너무 버거웠던 것일까.
태웅이의 몸무게는 곧 줄기 시작한다.
몸무게가 너무 줄면 자신의 폐로 숨을 쉬기가 힘들다고 한다.
엄마 품에 온전히 안겨보지도 못하고, 엄마의 '사랑한다'는 음성도 한 번 들어보지 못 하고 그 작고 연약한 생명이 스러져버릴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다행히 이 강한 아이는 이 고비를 또 혼자 힘으로 이겨낸다.
태웅이가 살아줘서 참 잘됐다 생각하면서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또 가슴이 아팠다.
아이가 응석받이로 자랄까봐 걱정하면서도 아이의 바람막이가 되어 힘든 일은 대신해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던 혜영씨, 나중에 깨어났을 때 태웅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눈물을 쏟을까.
물리 치료를 하면서 자꾸 운다는 혜영씨가 몸이 아파우는 게 아니라, 태웅이 태란이 생각에 가슴이 아파 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내 자신이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이렇게 깨서 잠든 윤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칭얼댈때 안아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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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
[미니 느낀점] 한 사람의 위대한 사랑이 만들어 낸 기적같은 사랑이야기 눈물이 절로 흘러 바다를 만드는 이야기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 생명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 평범한 나의 삶이 행복임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
책을 통해 한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게 되었다. 한 여자에게 버림받고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어느날 아내 혜영씨를 만나게 된다. 사실 마음에도 없는 소개팅이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와의 사랑은 불이라면 혜영씨와의 만남은 물이었다. 순식간에 타올랐던 불같은 사랑은 재로 변해 조건좋은 남자에게 시집가 버렸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사랑인줄 몰랐다. 사랑의 실패로 인해 대인기피증까지 생길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한여자가 서서히 그녀의 마음속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처음과 끝이 항상 같은 여자 스펀지처럼 그의 마음속을 젖기 시작한다. 그 사랑의 결과로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상처뿐인 그녀를 약한 그녀를 자신의 동반자인 그녀를 평생 지켜주겠다 그는 약속한다. 처음 그들 부부에게 하늘의 축복의 선물로 태란이를 낳게 된다. 9달도 채우지 못한채 미숙아로 태어나지만 다행히 건강한 아이였다. 그리고 또 다시 한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서 그들 부부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임신 6개월이 접어든 어느날 갑작스레 두통을 소호하며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녀의 병명은 한국 사망 원인 1위인 뇌출혈이었다. 그뒤로 4차례의 고통스런 수술의 과정을 거쳤지만 그녀에게 회복은 점점 희망없는 등불처럼 보였다. 뱃속에 생명을 남겨둔채로 그녀는 식물인간이 되고만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그녀, 사랑하는 딸에게 사랑하는 뱃속 아이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단 한마디 사랑한다 말 조차 할 수 없는 그녀, 차라리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녀의 남편은 답답하기만 하다. 오로지 희망은 하나 그녀를 반드시 살려야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아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생 함께하겠다 약속한 것이 결혼이기 때문에 그는 그 어떤 부정적인 생각도 하지 않으려 다짐한다. 그가 신혼여행때 했던 작은 고백이 생각났다. 등불까지는 못되어 주더라도 그녀의 촛불이 되어주겠다는 남편. 어둔곳에 그녀의 빛이 되어주고 싶은 그였기에 미칠듯 가슴이 아팠다.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 다짐한다. 시간이 점점 흐르지만 남는 건 늘어가는 병원비와 빚뿐이었다. 한달에 병원비만 해서 천만원이 넘게 들기 때문이다. 처음에 천만원, 이천만원, 삼천만원...오천만원이 넘는 병원비와 수술비를 감당해야하는 그로써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내의 병수발로 인해 생계가 끊긴지 오래였고 있는 전세집마저 팔아 병원비로 납부하였고 형제들에게도 손 벌릴만큼 다 벌려봤지만 턱없이 병원비는 항상 부족했다. 하루는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는 아내를 놓고 병원비가 밀려 수술을 해줄수 없다는 병원측에 통보를 받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원망과 눈물뿐이었다. 가진것이 없는 그로써는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사람들앞에 죄인이 되는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이길래 한 남자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드는 걸까? 자식을 위해 쏟는 무조건 적인 어머니의 사랑,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사랑, 죽어가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몸부림 치는 남편의 사랑... 이 모두가 위대한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그 특별하고 위대한 사랑의 기적이 식물인간 상태에서 태웅이를 자연분만하는 사건을 만들어 낸다. 의학계에서도 보고된적이 없는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아주 작은 꺼질듯 말듯한 불씨로 태어난 태웅이지만 엄마의 몸속을 제 스스로 열고 이 세상을 나온 강한 아이임이 틀림없다. 그 태웅이를 살리기 위해 혜영씨가 선택한 희생임이 틀림없다 생각했다. 분명 그녀는 잠자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살리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유일하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눈물이었다. 태웅이를 보자 울었고, 남편의 한탄을 듣고 울었고, 딸의 외면을 보고 울었다. 외치고 싶어도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음에 답답함이 눈을 통해 눈물로 쏟아내는듯 했다. 그래도 그는 그 눈물조차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살아있기에 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에게 감사했다. 고통도 아픔도 우리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삶의 조각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는 욕심이 자꾸 생긴다. 처음에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 감사했지만 말없이 누워만 있는 그녀를 하염없이 보고있으면 희망이 사라진듯 답답하기만 하다. 한번만이라도 그녀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다면 한번만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갈 수 있다면 한번만이라도 그녀가 웃으며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욕심아닌 욕심을 자꾸 부려본다. 그가 가장 가슴 아픈일은 그녀에게 사랑하면서도 한번도 사랑한다 말을 해준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한마디가 뭐 그리 대단한 말이라고 참 많이도 아꼈던것 같다. '사랑한다' 말 한마디 하기 부끄러워 못하고 살날이 더 많아 언제든 말할 수 있다 생각했던 지난날이 후회가 되었다. 사랑은 그러고보면 현재형인것 같다. 미래를 꿈꿀수도 있고 과거를 회상할 수도 있지만 현재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것 같다.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그녀이지만 분명 그의 사랑이 있기에 난 분명 기적을 만들어 낼꺼라 믿는다. 그리고 지금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낌없이 사랑한다 고백하고 해줄수 있는한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해주고 싶다. 후회없는 사랑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일이기 때문이다.
[책속의 말] 지난 세월을 보상받지 못하게 됐다며 한탄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사랑을 한 것이고, 사랑하는 동안은 무엇도 손해 볼것이 없다. 사랑 자체가 보상이기 때문이다.
본 만큼 믿게 되고, 믿은 만큼 이루어진다. 그것이 희망이다.
"이상형의 남자가 누구예요?"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를 닮으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요. 보통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은 제발 아버지는 닮지 말라고 말하곤 했잖아요." (부인 혜영과 나눈 대화)
"등불까지는 못 되더라도 내가 촛불은 돼줄게. 어두운 데 너 혼자 놔두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눈앞에 캄캄하도록 힘든 일이 닥치면 혼자 헤매지 말고 나를 봐. 내가 촛불이 돼서 깜박깜박 불을 밝혀줄테니까." (신혼여행때 부인에게 고백한 내용)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나는 내 자신까지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절반쯤은 성공한 삶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행복한 순간에는 모르고 지내다가 불행해지고서야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삶이었다.
눈보라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머리를 수그리고 그저 걸어야 하는 것이다. 속도는 조금 더디더라도 정신만 놓지 않으면 눈보라 속에서도 얼마든지 살아 남을 수 있다. 어쨌든 손을 놓지 않는 한 우리에겐 서로의 온기가 있지 않은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난로는 가족이란 이름의 36.5도 짜리 체온이니까.
눈물은 안과 밖의 온도 차이 때문에 생긴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 속은 더운데 세상은 차가울 때 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히듯 눈물이 맺히는 것이다. 눈물이 하필 눈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의 몸에서 유리창과 가장 닮은 부위이기 때문일 터였다.
포르투칼 어로 사랑은 카리우오입니다. 그런데 이때의 사랑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쏟는 것과 같은 사랑을 가리킨다고 하네요. 영어의 케어와 러브가 결합된 말이죠. 진정한 사랑에는 이처럼 보살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사랑, 카리우오의 의미를 다음 한 번 음미하면서 오늘은 포르투갈이 파두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부릅니다. 검은 돛배....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던 부부가 있었어요. 어느날 남편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죠. 부인은 날마다 선창가로 나가서 남편을 기다려요.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드디어 남편이 타고 나갔던 배가 돌아오지만 그 배에는 검은 돛이 달려 있었어요. 그걸 본 부인은 미쳐버리고 말아요. 검은돛을 달고 올 바에야 차라리 그 배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게 나았을 걸...그랬다면 그 부인은 죽을 때까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었을 거예요. 기다린다는 게 희망 없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기다리는 동안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거죠.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려면 나머지는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고 있던 참이었다.
추억은 추억대로 간직하되 잃어버린 것은 잊어야만 한다. 잃어버린 것에 붙들려 있는 한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할 테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아프면 울게 된단다. 그러니까 우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인거야." "태란아. 엄마가 우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란다. 그러니까 엄마가 울때 우리는 웃어야 하는거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믿어왔는데, 가족이란 그저 존재 한다는 것만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그러고보면 희망이란 손톱같은 것이다. 잘라내도 잘라내도 어느 틈엔가 다시 자라 삐죽 고개를 내민다. 너무 짧으면 제 구실을 못하지만 너무 길면 부러지기 십상이다.
어쨌든 끝까지 가보는거야. 끝까지 가봐야 거기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있잖아. 가보지도 않고서 거기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야. 비겁한 짓이야.
결혼을 하는 순간 사랑은 일생을 같이한 다고 약속이 되는 것이고, 일생을 같이한다는 건 진 날과 마른 날을 가라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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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 (사람이, 사랑이 기적을 만듭니다!)
지은이 : 최종길 출판사 : 밝은 세상
<느낀점> 최종길은 충남아산 에서 태어났으며 아내 김혜영, 딸 태란이와 더불어 작은 행복을 가꾸며 살아온 우리의 이웃이다. 주위의 부러움을 살만큼 사랑이 넘쳐나던 그의 가정에 청천벽력같은 시련이 찾아들었다.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하지만 아내는 두개골 감압수술을 포함해 네번의 수술을 받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아내 혜영은 딸 태란이 외에 또 하나의 생명을 뱃속에 잉태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녀. 그 옆에 가슴졸이며 있던 남편 종길..그리고 종길의 어머니. 혜영은 고아였다. 부모님이 모두다 돌아가셨다. 그런 가정에서 혼자 자란 그녀는 외로웠고, 가족의 품을 너무도 그리워했으며 자신이 꾸린 가정을 사랑했다. 혼자였던 탓에 아이욕심을 유난히 부리던 그녀. 그녀는 둘째를 낳고 싶었다. 너무도 사랑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임신중 쓰러진 그녀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 몇번의 수술후 의사는 아이를 포기하는 각서를 쓰고 수술에 들어가기로 한다. 그 수술에서 혜영은 산통도 징조도 없이 아이를 출산한다. 자신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쓴 것 때문에 아이가 살기 위해 나온 것일까? 아니면 평소 좋은 엄마를 꿈꾸며 둘째를 너무도 사랑했던 혜영의 무의식이 아이를 세상밖으로 빼내 버린 것일까?. 7개월만에 태어난 아이은 너무도 작았다. 하나의 작은 불씨. 작은 희망이었다. 너무도 약한 아이 또한 병원 신세를 지며 네가족 아니 다섯가족은 병원에 둥지를 틀었다. 너무도 힘겨운 싸움...하지만 그는 아니 그들은 이겨내고 있었다. 아내의 병상을 지켜온 지 어언 3년 주변에서는 단념을 이야기하지만 그는 아내가 병상을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그의 간절한 바램과 아내를 향한 지극한 사랑..과연 요즘 시대에 이런 사람이, 아니 이런 사랑이 얼마나 될까?..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너무도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아내 혜영은 아직도 식물인간상태다. 종길은 자신의 친구중 한명이 뇌사라는 단어를 입에 올려서 싸우기도 했었다. 뇌사와 식물인간은 다르다. 아주 많이. 혜영은 식물인간이다. 하지만 간혹 둘째 태웅이를 보면서 눈의 촛점이 맞기도 하다. 반사적인 작용이기는 하지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나하나의 작은 기적을 만드는 이 사람들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 본다. 의학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 세상엔 기적이라는 것이있다. 기적.. 이들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사랑은 기적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들의 사랑이 기적의 바람을 몰고 오리라 확신한다.
<책속의 말> 지난 세월을 보상받지 못하게 됐다며 한탄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사랑을 한 것이고, 사랑하는 동안은 무엇도 손해 볼 것이 없다. 사랑 자체가 보상이기 때문이다.
검은 부분이 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하얀 부분이 피라고 했다. 삶은 온통 짐작과는 다른 것 투성이였다.
가족이란 마치 도미노 게임의 칩과도 같아서, 하나만 빠져도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겠다.
"병이 있어요." "심각한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병을 앓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불치병인가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대요." "그러면 마음을 좋게 먹으면 되잖아요." "마음 고쳐먹기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지 않나요?" "마음이 중요하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제일 어려운 게 당연하죠." "......그렇군요. 젤 중요한 게 젤 어려운 거군요." (종길과 혜영의 서너번의 만남 후의 대화)
어머니 말고도 세상에서 나를 가장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근사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자꾸 더 멋지게 보일 궁리를 하게 만들어 사람을 긴장시킨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매일매일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등불까지는 못되더라도 내가 촛불은 돼줄게. 어두운 데 너 혼자 놔두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눈앞이 캄캄하도록 히든 일이 닥치면 혼자 헤매지 말고 나를 봐. 내가 촛불이 돼서 깜박깜박 불을 밝혀줄테니까."
일단 한 번 고맙다는 말에 익숙해지자 삶이란 온통 감사할 것 천지였다. 둥쳐두는 것도 없이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몸도 마음도 다 가벼워졌다. 내 속에서 참으로 오래 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말끔하게 게워낸 느낌이었다.
죽고 싶을 만큼 절망해 본 적 없는 사람은 모른다. 작은 일에도 얼마나 행복해 질 수 있는지.
자꾸 그래프 따위에만 의존하니까 점점 더 사무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살아 있는 걸 확인하려면 심장을 만져봐야만 한다. 심장을 만져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죽었다고 말해선 안되고, 심장이 뛰고 있는 한 누구도 그 삶이 의미 없다고 말해선 안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을 만져보면, 단 한 번만이라도 절절하게 만져보기만 하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뛰는 심장 자체가 삶이고, 숨쉬고 있는 것 자체가 의미라는 것을. 그 번연한 사실을 의사들만 모르고 있다. 그들은 늘 모니터 속의 그래프만 보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혜영이의 가슴에 귀를 대고 엎드렸다.
"그럼 무엇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죠?" "김혜영씨가 식물인간 상태에서 아기를 낳은 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저는 사람이 기적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사랑이 기적을 만드는 겁니다."
포타딘으로 얼룩져있던 주름진 입매가 떠오르자 다시 또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나는 눈물을 닦고 정신을 수습했다. 눈보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을때는 머리를 수그리고 그저 걸어야 하는 것이다. 속도는 조금 더디더라도, 정신만 놓지 않으면 눈보라 속에서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 어쨌든 손을 놓지 않는 한, 우리에겐 서로의 온기가 있지 않은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난로는 가족이란 이름의 36.5도 짜리 체온이니까.
눈물은 안과 밖의 온도 차이 때문에 생긴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 속은 더운데 세상은 차가울 때, 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히든 눈물이 맺히는 것이다. 눈물이 하필 눈에서 나오는 것도 사람의 몸에서 유리창과 가장 닮은 부위이기 때문일 터였다.
"그래서 이렇게 멜로디가 슬프군요." "검은 돛을 달고 올바에야 차라리 그 배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게 나았을 걸...... 그랬다면 그 부인은 죽을 때까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었을거에요. 기다린다는 게 희망없인 불가능한 일이니까, 기다리는 동안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러나 짐은 가능한 적게 져야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을 수 있을터였다. 그 무렵의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려면 나머지는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고 있던 참이었다.
어차피 보통 사람들은 천억개 가운데 20억개도 채 쓰지 못하고 죽는다고 했다. 게다가 어른이 된 후에는 평균 일초에 하나꼴로 뇌세포가 사라진다고 한다. 별다른 외상을 입지 않아도 사라질 놈은 결국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아프면 울게 된단다. 그리니까 우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인 거야."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원망스럽다가도, 나한테 하필 이런 시련을 극복할 만한 힘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마음을 고쳐 먹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세상이 그리 불공평할 것도 없었다. 내가 이만큼 건강한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을 충분히 살펴주고 끝까지 책임지라는 조물주의 섭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길고 길었던 한겨울의 혹한도 결국은 봄이 온다는 신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질긴 희망하나. 그것이 설령 미련이라 할지라도 저절로 사라져 소멸될 때까지는 끌어안고 살아가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희망이란 손톱같은 것이다. 잘라내도 잘라내도 어느틈엔가 다시 자라 삐죽 고개를 내민다. 너무 짧으면 제 구실을 못하지만, 너무 길면 부러지기 십상이다. 혜영이를 향한 내 희망도 손톱과 같아서, 짧게 잘라봐야 결국은 다시 자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아프게 한다는 말은 맞는 얘기였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플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혜영이 때문에 내가, 나 때문에 어머니가,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와 형제들이 참 많이 아플 수 밖에 없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아이들이란 다 울면서 자라나기 마련이었다. 아이에게는 모든 결핍이 다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잇었지만, 이만큼 살고보니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결핍으로 울어본 사람은 원하던 것을 가지게 됐을 때,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 수 있다.
정해진 길은 없다. 다만 어떤 길을 택하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급류를 건너기 직전에는 항상 돌멩이를 주워 던진다는 아프리카 부족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저 콩알만한 돌멩이 하나 던져놓고,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급류를 건너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날 수도 잇는 위험은 이미 그 돌멩이로 전해졌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 걱정없이 급류속을 헤치며 걷는다고 했다. 나도 한 번 그렇게 해볼 생각이었다.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험한 일을 돌멩이에 실어 날리며 일체의 걱정과 불안과 회의도 함께 버릴 작정이었다. 물론 태란이, 태웅이도 함께 할 것이다.
추천 ★★★★★ |
| 달콤한 사랑은 세상의 시기를 받기 마련인 것일까? 누구보다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것 같은 한 부부에게 불행이 다가왔다. 복중에 아이를 품은 채 아내가 쓰러진 것이다. 산모와 아이 모두 생사가 불투명하다는 소리에 하루하루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겨우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태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스스로의 힘으로 엄마 품을 박차고 나왔고, 거짓말과도 같았던 그 일을 최종길 씨는 기적이라 믿으며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KBS <인간극장>을 통해 최종길 씨의 사연을 만난 지도 어언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의학적인 치료로는 회생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식물인간 상태의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조금은 무디어졌을까? 그의 어깨에 놓인 현실은 ‘포기’라는 단어를 수백 번 혹은 그 이상 내뱉어도 비난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만 보였다. 책의 가장 첫 페이지에 적힌 2006년 1월이라는 초판 15쇄 인쇄일을 바라보는 나의 입술에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게 시간이다. 그 시간이 모이고 모여 그의 한숨이 되는 건 아닐지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더 이상 아무런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건 지옥과도 같이 느껴질 것이다. 매일 반응 없는 아내를 향해 말을 건네고, 지쳐가는 자신을 보듬는 그 잔잔함 역시 전쟁 같지 않을까 한다. 3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그는 어쩌면 그런 치열함에 단련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누워있는 이에겐 단절된 듯한 게 시간이겠지만, 인큐베이터에서 삶과 죽음을 오갔던 아이를 제 힘으로 아무렇지 않게 걷게끔 만든 것도 3년의 시간이니 말이다. 특히나 아이들은 시간을 무한히 머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리고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외면하면 할수록 그의 마음은 아마 착잡하기만 할 것이다. 건강했더라면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역할을 거뜬히 수행하고도 남았을 아내, 하지만 그녀의 자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공허함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 빈자리는 어느 누구로도 대신 채울 수 없으며, 희망을 포기치 못하는 자신의 모습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함이라는 사실을… 누구를 원망한다고 하여 나아지는 게 현실은 아니며, 꾸준히 베풀 수 있는 사랑만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임을… 그 힘을 믿기에 그도 그리고 그의 끈질긴 미련을 안타까워하는 그의 어머니도 혜영 씨를 결코 포기치 못함을… 사랑하는 이가 건강치 못하다는 것이 주는 괴로움이 어떤 것일까? 안구 기증을 해서라도 병원비를 마련해 아내를 일으킬 수만 있다면 좋을 거 같단 생각을 품은 한 남자의 마음은 얼마나 쓰라렸을까?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더욱 그를 힘들게 하는 문제는 따로 있는 듯했다. 수천 만원을 육박하는 병원비를 언급하며 치료를 중단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는 원무과 직원의 목소리는 너무도 차가웠다. 물론 현대 사회는 돈이 없으면 모든 게 불가능한 자본주의 사회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진정 인정하고프지 않은 것이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두고 치료 여부를 결정짓는 현실을 읽으며 전광용 님의 소설 <꺼삐딴리>의 이인국 박사의 모습을 떠올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리라. 엄연히 숨을 쉬며 36.5도라는 인간의 체온을 유지하고 있는 아내를 죽은 사람 취급하는 세상 역시 그를 지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한다. 식물인간과 뇌사를 구분치 못하는 친구를 향해 “뇌사 아니라니까!”라며 울부짖는 그의 모습은 울분 그 자체가 아니었을지 싶다. 아무리 아플지라도, 그래도 사랑하는 게 더욱 낫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사랑이 가시가 되어 가슴을 후빌 지라도, 그 아픔으로 인해 자신의 사랑을 조금 더 키울 수 있다면… 다만, 최종길 씨 부부에겐 사랑을 확인키 위한 고통이 그쳐 줬으면 싶다.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떠오르는 무지개처럼 언젠가는 달콤한 날이 이 부부에게도 오길 바라지만, 그 언젠가가 너무도 먼 훗날은 아니었으면 한다. 기다림이 너무 길어져 사랑이 최종길 씨마저도 지치게 하지 않았으면…꺼삐딴리>인간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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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최종길씨의 사연과 책에 대해 접하게 됐다.
신문에 난 책 소개를 통해 가슴 뭉클함을 느끼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였다. 기억력이 거의 제로인 내가 당시 펜도 메모지도 없어서 머리속으로 되뇌이며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책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다 읽게 만든 흡입력은 이 책이 픽션이 아닌 사실이기 때문 일 것이다. 아마도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혜영씨가 왜 그토록 목숨을 담보로 아이를 가지려고 했는지 이해를 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식물인간인 상태에서 둘째 태웅이를 낳을때에도 지금처럼 감동받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최종길씨가 이 책을 쓴지 1 년이란 시간이 더 지난 지금 800g 남짓으로 태어난 태웅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아직 혜영씨는 최종길씨 옆에 있는지...
혼자 남겨지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던 태란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
최종길씨는 그 많은 빚들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지 등등이 걱정이 되었다.
사랑하는 아들, 남편, 아버지를 내게 주심을 감사 또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불안'', ''초조''가 배부른 투정이였음을 반성했다. [인상깊은구절] 그렇게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저절로 아이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 중략... "아이구, 혜영아....... 니가 이럴라고.... 이럴라고 죽지도 못하고 두 눈 브릅뜨고 살아 있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