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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첫 장편소설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빨리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바늘부터 이 책 <잘 가라,="" 서커스="">까지 한 편도 빠짐없이 작가의 소설을 읽어온 것은 내가 부지런해서도 아니고, 누가 등을 떠밀어서도, 과제나 발제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문예지나 단행본에서 작가의 작품이 뜸해지면 궁금했고, 새 작품이 나오면 반가웠다. 예쁜 여자가 나오지 않는 소설, 발군의 취재력과 탄탄한 문장력의 힘이 독자들의 관심과 지지를 자연스레 이끄는 듯하다. 장편소설에서도 작가의 재능과 노력이 빛난다.
‘나’의 형은 동생에게 묘기를 보여 주다가 사고로 목을 다치고 목소리를 잃는다. 소리와 말을 내보낼 수 있지만 듣기 싫은 쇳소리가 섞여 있어 타인과의 대화는 그리 원활하지 못한 상태이다. 목소리가 나빠진 형을 결혼시키려고 중국까지 간 나는 그 곳에서 여자, 해화를 만난다. 한국으로 여자를 데려오고 어머니까지 함께 네 사람은 평화로운 날들을 보낸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느새 나의 마음에 형수, 해화는 사랑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이들의 일상은 균형을 잃고, 가족 구조 또한 흔들리게 된다. 따이공이 되어 떠도는 나, 아내에게 집착하고 괴롭히게 되는 형, 어머니의 죽음……. 해화는 집을 나가 신산하게 헤매이게 된다. 외줄 하나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버텨야 하는 곡예처럼 외롭고 슬픈 운명이 짠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모든 상처 받은 이들은 사랑할 자격이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운명과 사랑이 손사레 치며 떨쳐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징그럽지만은 않다. 팔자 사나운 등장 인물들의 슬픈 운명과 사랑을 참 섬세하고 탄탄하게 그려 냈다. 나와 해화의 시점을 교차하며 보여 준 이야기 구성 또한 소설에 긴장감을 더한다. [인상깊은구절] 여자였다. 여자는 한구석에 앉아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여자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울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여자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여자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가느다랗게 들썩이던 어깨가, 내 손을 잡아끌었을 뿐이었다.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길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가 허공을 날았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애절함이 여자의 촉촉한 눈가에 묻어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여자를 일으켰다. 그리고 조용히 여자를 감싸안았다. 여자는 힘없이 무너졌다. 내 품에 안긴 여자는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여린 새 같았다. 나는 어린 새를 보호하는 어미 새처럼 여자의 등을 쓰다듬었다. 보드라운 깃털을 쓰다듬듯 조심스럽게. "어째 이제 옴까?" 현기증이 일었다. 절벽에 선 것처럼 아찔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깊고 어두운 강물이었다. 나는 여자를 안고 절벽에서 강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물 속 깊이 내려갔다. 커다란 돌덩이라도 안은 듯 끝이 없이 가라앉았다. 영원히 머물고 싶었다. 그곳이 죽음처럼 어둡고 차가운 곳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 추락할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여자의 울음이 멈춘다 싶더니 이내 내게서 몸을 떼었다. 나는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면 위에는 채찍처럼 강한 햇볕이 따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눈물을 훔친 여자는 냉정을 되찾았다. 어쩔 수 없이 여자의 어깨에 대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여자의 얼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해져 있었다. 눈썹에 맺힌 눈물방울만이 그녀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가까스로 기억하게 할 뿐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눈물방울조차 여자는 소맷부리로 단숨에 지워버렸다.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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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은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전해져왔다. 소스라치게 놀라 옆에 않은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입을 벌린 채 서커스에 열중하고 있었다. 내 눈은 형 목에 그어진 흉터로 향했다.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서커스, 그것이 진짜 서커스다.’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 첫만남의 느낌이 좋다. 동생의 앞에서 재주넘기를 잘하던 형, 그 형은 동생의 박수에 더 멋진 재주를 보여주려다 전선줄에 목이 걸리면서 목소리도 잃었고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지 못한 형을 데리고 중국신부를 맞기 위하여 여행을 갔던 그들은 서커스 구경을 한다. 위험하면서도 솟아 오르고 그런가 하면 어느새 땅 가까이 내려오는 서커스를 보며 어쩌면 그들의 위험한 인생을 보듯 곡절많은 서커스에 취한 형의 목에 선명한 흉터, 형을 책임지던 윤호는 그곳에서 그와 형의 맘에 맞는 신부감을 만나게 된다. |
| 천운영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어본다. 향토적인 느낌을 주는 묘사를 잘 하기도 하고, 소설의 배경과 설정이 일반적이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무리없다 못해 절박하게 그네들의 삶이 전해졌다. 소설은 결국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소통이라고 한다(해화에게도 한국에서의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시어머니와 함께할 때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통하기를 좇는다. 하지만 돈, 힘이 사람보다 먼저인 세상에서는 더 많은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덧없는 가식과 장식을 추구하고, 서로를 소외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건 절박한 서커스를 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말하고 싶다. 잘 가라, 서커스! |
| 어떤 작가들은 무척 쉽게 쓰지만 또 다른 작가들은 그렇지 못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넣은 얼렁뚱땅 파전 같은 글들도 맛이 있으면 좋아하지만, 천운영처럼 개량을 하고 재료를 엄선한 다음 맛과 모양까지 고려한 화전 같은 글들은 맛도 있지만 품위까지 있어 더욱 좋다. 작가가 단어의 선택에 문장의 선택에 은글슬쩍 거론하는 옛이야기 하나의 선택에까지 공을 들이면 그것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이 된다. 소설은 어린 시절 동생의 부추김을 받으며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을 스스로도 즐기다 사고를 당해 제 목소리에 흠집을 당한 형과 그 동생이 형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함께한 중국 여행에서 구경하는 서커스로부터 시작된다. “... 서커스 단원의 실수는 완벽한 묘기보다 더 흥이 난다. 서커스를 보는 사람들은 실수를 염두에 두는 법이다. 서커스를 보는 것도 환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실수를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난이도가 높을수록 관중들이 열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린 시절 당한 사고로 이 하나뿐인 형은 목소리를 잃은 대신 쉽게 가질 수 없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의 형이 시도한 높은 난이도의 서커스는 실패로 끝났고, 관중이었던 동생은 이제 그런 형의 실수를 업보처럼 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동생 윤호는 형이 한 눈에 반해버린 신부감에게도 쉽사리 마음을 풀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내장 속까지를 샅샅이 훑듯이 살펴보아야 한다. “... 여자가 아니었다면 형은 삶의 의욕을 모두 잃은 채 죽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형은 여자만 쫓아다녔다.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새처럼, 눈 뜨자마자 본 여자를 제 어미라고 믿어버린 새끼 새처럼, 여자를 향해 입을 벌리고 살을 부볐다. 어미를 잃은 형은 새로운 어미를 찾았다.” 하지만 윤호는 형의 아내에게서 여자를 보고, 착하기만 한 며느리를 보았다며 세상을 다 얻은 듯하던 형의 엄마는 그만 숨을 놓아버린다. 나는 형과 형의 아내를 떠나고, 엄마는 이들 모두를 뒤에 남겨 놓고 떠난다. 그러니 이제 형에게 남은 것은 아내뿐이다. 그러나 어미를 잃은 대신 자신의 아내를 그 자리에 앉히고 싶어 하는 형의 변화를 조선족 여인 림해화는 쉬이 견디지 못한다. 그렇게 내가 형을 밀어내듯이 형수는 형을 밀어낸다. “그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형의 얼굴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형은 저 속에서 여자를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저 멀리 뗏목을 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아주 먼 바다로 항해를 떠나고 있는 중이리라. 나는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잘 가라, 어디든지. 잘 가라.”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죽거나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행적인 분명한 이들의 현재가 긋는 궤적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이들 모두는 조금씩 모자라고 그 모자람을 서로를 통해 채워나가는 자들이다. 그래서 어느 한 쪽이 움푹 패이는 순간 도미노처럼 고스란히 다음 사람이 그리고 또 다음 사람이 삶의 균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균열의 와중에도 잘 가라고 말해주는 것, 그것이 남은 자들의 몫으로 혹은 부채로 남겨질 따름이다. 우리나라로 들어온 조선족 여인을 장편 소설의 주인공으로 끌어온 것도 볼만하거니와 국내에 있는 조선족과 삶을 위해 조선족의 고향을 넘나드는 내국인을 은근히 교차시키는 작업까지도 작가는 잘 해내고 있다. 이러한 자신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서커스를 들먹이는 데도 발해의 정효공주 무덤을 아련한 모티브로 삼는 데도 어지간히 공을 들이고 있다. 대략 만족스럽다. |
| "아들아, 너는 스킬자수를 하거라. 나는 책을 읽겠다." 월요일까지 해 가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아들 녀석의 스킬자수 숙제를 두고 일요일 외출은 엄두도 못냈다. 게다가 딸은 특기적성 보충이라며 제 키만큼 큰 화구를 챙겨들고 나가며 작품이 다 끝나야 올 수 있단다. 4절 화면에 그림의 윤곽만 겨우 잡고 채색은 거의 하지 않았으니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고개를 숙이고 한 땀씩 뜨다 허리를 두드리는 아들에게 이번엔 "아들아, 너는 책을 읽거라. 나는 스킬자수를 하겠다." 모자가 번갈아 가며 스킬자수를 하고 책을 읽는다. 한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천운영이라는 작가를 만났다. <잘가라, 서커스> 집에 있는 일요일이 그렇듯 점심을 겸한 아침을 먹고 간식을 챙기고, 과일 깎아내고 게다가 스킬자수까지 하는 동안 휴일 심심풀이로 읽는 책.술술 넘어가는 책장, 잘 읽히는 책이다. 그런데 가끔씩 마주치는 낯선 단어들. 그렇다고 새삼 사전을 찾기는 번거로워서 그냥 넘어간다. 가볍게 넘긴 책장과는 다르게 만만히 읽을 책이 아니다. 한편에 묵직한 무게로 천운영이 남는다. 천운영의 초기작 모두 카트에 담기.. ( 줄거리 담김) 어릴 적 사고로 목숨을 건지는 대신 목소리를 잃은 형, 형의 목소리를 대신해주는 나(윤호). 형은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서울 인근(부천) 야산 머리에서 오리, 닭 백숙 따위를 파는 식당을 한다. 다리가 아파 발목을 잘라버린 채 아들에게 식당을 넘겨 준 노모는 병치레로 버거워 하면서도 목소리를 잃은 아들이 장가들기를, 철철이 꽃구경을 하고 싶어한다. 나는 노모가 세상에 대한 미련을 움켜쥔 채 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형을 위해, 어머니를 위해 형과 함께 중국와서 결혼소개소의 주선으로 여자들을 만나고 패키지로 묶인 서커스를 관람한다. 서커스를 관람하는 나는 생각한다. "내 눈은 형 목에 그어진 흉터로 향했다.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서커스 , 그게 진짜 서커스다." 결혼증과 한국행 티켓만이 필요할 뿐일거라며 '나'가 끝없이 여자들을 의심하는 동안 형은 의심하지 말라 , 어차피 잃을 것 없다고 말하는 한 여자를 택해 결혼을 한다. "형이 착하지 않으면 좋겠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생각도 하지 말고, 바보처럼 당하지도 말고, 속 썩이지도 말고, 내가 언제나 형을 보살필 수는 없어. 그래, 정말 선녀 같잖아. 날개옷 같은 건 태워버려. 도망가지 못하게. " 지금은 유행이 지나 쓰지 않는 꽃밥통(법랑그릇)을 들고 시집온 조선족 형수 림해화는 알아서 어머니와 친해지고 이젠 형에게서 놓여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나'는 내 마음의 한자락을 형수에게 붙들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좋아하던 배롱나무 꽃그늘에 묻히자 나는 멀리 떠날 생각을 하고 따이공이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형이 결혼을 하고도 나는 원했던 자유를 얻지 못한다. 마음 속에 간직한 그가 있는 속초와 가까운 한국으로 오기 위해 또 다른 서술자 '나' (림해화)는 부모를 떠나 직장에 사표를 내고 40시간 차를 타고 와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선뜻 결혼한다. 심성 고운 나그네와 그의 어머니의 사랑에 나는 양손을 붙들린 채 살아간다. 시동생은 가끔 날카로운 눈빛으로 또는 무심하게 들여다 볼 뿐이다. 가족의 소풍 길에서 '나'는 발해 공주의 무덤을 본다. 어린 시절 그와 함께 드나들던 무덤 속 정효 공주의 무덤, 잃어버린 꿈의 흔적이 이곳에 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릴 듯한데 어느 곳에도 그는 없다. 나(윤호)는 형처럼 하는 것이, 목숨을 위협할 만큼 하는 것이 진짜 서커스라고 생각한다. '나'가 거짓 자유를 찾아 떠나고 조바심을 느끼며 서커스를 지켜보는 동안 형과 형수는 목숨을 위협하는 진짜 서커스를 하고 따이공인 친구는 점점 위태로운 품목을, 밀수량을 늘려나간다.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관중은 열광한다. "서커스를 보는 사람은 실수를 염두에 두는 법이다. 환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실수를 염두 법이다." 윤호와 해??엇갈려서술자로 내세운 11장의 소설은 그들의 외면과 내면을 훑어내려간다. '나'(윤호)가 중국에 도착해서 결혼소개소에서 제공한 서커스 공연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 소설은 흥행에 실패하고 동춘호에 승선한 러시아 서커스단이 재주부리는데 실패한 말을 바다 한가운데 던져버리는, 그리고 두 팔을 벌린 채 새처럼 날아 안개 속으로 바다 속으로 몸을 감추는 형을 목격하는 것으로 끝난다. 나는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 잘가라, 어디든지. 잘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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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천운영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었다. 강의에서 그녀의 단편 '바늘'이 커리큘럼이었고 그녀의 단편에 흥미를 느낀 나는 단편집을 통째로 다 읽었다. 그 때 그녀의 유일한 단편집 한권이 나를 독특한 세계와 만나게 했던 것 같다. 그녀의 다른 단편집 '명랑'이 나오고 처음으로 장편 '잘가라, 서커스'가 나왔다. 단편집 '명랑'을 읽으면서 그녀가 많이 달라졌구나. 신인 때의 패기 속에 묻혀 있던 치열함과 강렬함이 아니라 잔잔해지면서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장편 '잘가라, 서커스'도 내가 반했던 단편집 '바늘' 때와는 첨예하게 달랐다. 그녀는 '바늘'이란 단편집을 쓸 때 소를 도축하는 것도 배울 만큼 치열하게 자료를 수집했다는 데 이번에도 소설을 위해 많은 것들을 했다는 것을 소설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아픔과 상처를 마음에 묻고 있는 주인공들 속에서 그녀의 상처가 투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삶의 무게를 던지듯이 혹은 사랑하는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희망으로 쇳소리를 내는 나그네에게 자신의 인생을 맡기기로 결정한 해화가 나그네를 떠난 건 밤마다 자행되는 강간같은 부부관계도 그녀를 돌돌말아 묶고 자던 전선줄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의 깊은 상처가 문득 고개를 쳐들고 그녀에게 떠나라고 속삭였을 것이다. 잠시 눈가리고 아웅하려 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상처를 두고두고 생각하며 터미널에 앉아 마약 같은 졸음이 몰아칠 때 마다 약 한알을 씹으며 속초로 떠난 그를 중국으로 떠나버린 시동생을 그리워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묘기를 부리다 늘어진 전선줄에 봉변을 당해 목소리마저 잃어버린 나그네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죽고 동생마저 떠난다 했을 때 중국에서 데려온 색시마저 떠날까봐 문득문득 난폭해지고 하루를 불안하게 살았던 나그네. 잠에서 깨어나 색시가 떠나버린 걸 깨달은 후 돌아오지 않을 그녀를 찾다 찾다 체념해 버리고 끈을 정말로 놓아야 했다. 그 때 나그네의 뱃머리에서 자살은 어쩌면 이미 결정되었는지도 모른다. 상처로 얼룩진 나그네의 몸과 마음은 결국 아무도 위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윤호는 형을 데리고 맞선을 보러 중국으로 가 형과 결혼할 여자 후보들과 대면하면서 자신이 밀어내고 싶은 건 형과 엄마를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호는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과 많은 상실감을 맛봐야 했다. 형수에게 불온한 감정을 갖으며 그녀를 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정작 자신에게 필요했던 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형과 엄마가 다 떠나버리고 형수마저 마음으로 죽인 후 그에게 남은 건 사랑하는 방식이 달랐던 가족들에 대한 회한이었을까. 지워지지 않을 상처속에 홀로 남은 윤호가 하고 있었던 것들은 서커스였다. 형이 하던 서커스. 현실 속에서 서커스는 윤호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형, 윤호, 해화의 비교적 행복했던 시간들은 사라지고 고통과 상처만이 수면위를 맴돈다. 꽃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엄마가 사라진 후 폐허가 되어버린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혼자만의 상처를 보듬느라 허덕이다가 결국 육체의 죽음, 영혼의 죽음으로 산산히 흩어져 버린다. 즐거움을 주기 위해 한 서커스 안에는 수많은 고통과 상처가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 했지만 진실은 숨겨지지 않고 그들의 상처는 있는 그대로 들어난다. 모든 상처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잊는 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닐 일. 어쩌면 우리 모두 상처를 감추기 위해 현실 속에서는 서커스를 벌이고 가슴 속에는 타다 타다 재가 되어버린 마음만 간직하고 살지도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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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 이주 여성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자료 조사를 충실히 해서 조선족 여성의 대화문이 어색함이 없다. 인물 설정도 좋았다. 동생 앞에서 재주를 부리다가 반벙어리가 된 형. 당뇨병으로 다리를 잘라낸 어머니,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짐처럼 어깨에 짊어진 시동생. 천운영이라고 하는 작가 이름을 듣고 무심결에 자운영을 생각했는데 그 연상에 무색하지 않게 문장이 참 향긋했다. 그러나 스토리가 약했다. 시동생과 이주 여성 형수 사이에서 미묘한 연정이 솟았을 때 치열한 갈등을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선정적인 내용으로 흘러가는 것을 작가가 염려했던 것인지, 갈등은 무르익지도 않고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봄에 길가에 피어난 꽃나무들을 보고 만개를 기다렸으나 된바람에 와수수 떨어진 격이랄까? 읽는 동안에는 꽃보라로 즐거웠지만 책장을 덮은 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아쉬워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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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런듯. 사람들은 서커스를 통해 현란한 몸놀림과 기교에 흥분하지만 기실 그 잘 훈련된 사람들의 실수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쓸쓸하고 허랑한 모습을 말이다. 사랑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은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통한 웃음과 기쁨에 환호하지만, 동시에 그 양면의 아픔과 슬픔을 보기를 기대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하루끼는 젊은 나이의 풋풋한 사랑의 경험은 평생의 삶을 윤기나게, 훈훈하게 지펴주는 좋은 땔감이 되어준다고. 맞는 말이야 공감의 박수 나 역시 날렸지만. 때때로 젖은 눈을 맞추고 그 눈물을 닦아줄 위안과 따뜻함을 기대하는 사랑은 용납받지 못함에 일순 무너짐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
혜화의 사랑도. 발해를 향한 그의 동경도. 목소리와 손이 되어주길 바라는 형의 소원함도. 꽃을 향한 엄마의 삶에 대한 희망도. 뭍멀미를 삼키는 나의 어쩌지 못하는 갈망도.
정작 상대방에게 위안받지 못해 자신을 부수어뜨리고 결국 생에 짓밟히게는 하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무작정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지 말아야 하리라. 따스함은 언제나 잠순간일 뿐이다. 갈 곳 없는 그 사랑의 잔재들이 쌓여 상대를 질식시키고, 허락받지 못함이 분노로 터져나와 결국 자신의 무덤이 되어버리고 말 것임에.
반짝반짝함에 눈이 부시던 스무살에는 기쁨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라 믿었다. 그래서 그 마음 손 내저었던가. 그저 즐거움만 주세요 나에게는. 내가 주지 않은 상처까지 나에게 와 흐느끼지 말아요. 나는 그 눈물의 뜻을 모릅니다.
그 빛이 바래져가는 지금 나는 그 슬픔들을 끌어안아 녹일 수 없음에 사랑이 아니라 믿는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1. 사랑은 위안이다. 사랑은 설레임도 매혹도 열정도 아니다. 위안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등을 쓰다듬고 머리를 쓸어올려주고 젖은 눈을 들여다보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므로 모든 상처받은 자들은 사랑할 자격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은 위안이고 치유다.
- 작가의 말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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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이란"을 보며 느꼈던 아픔과 안타까움 때문에 소주라도 한 잔 하고 싶었다.
아슬한 서커스를 바라보며, 숨막혀 하는 윤호의 첫 장면에서부터, 첫 연인의 기억 때문인지, 무엇 때문이진 잘 모르겠는 림해화의 '결혼'에 대한 선택에서, 그리고 형수에 대한 연정을 품게된 영호의 어쩔 수 없음에서,
그리고 엄마와 동생을 보내고 해화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윤호의 형인 '나그네'의 무력함 앞에서, 그리고 나그네를 떠난 후 겪는-실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동생인 영호의 연정이 걷잡을 수 없어진 이후 부터이겠지만-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의 天刑"을 견디는 듯한 림해화의 안타까운 시간 앞에서 애절하고, 쓸쓸한 마음은 사그라 들수 없었다.
책의 뒤에 실린 류보선의 평론을 읽기 전까지, 형의 아우인 윤호와 형의 부인인 림해화의 안타까운 로망이 이뤄질까 궁금해도 하고, 발해를 쫓아서인지 현재의 실존을 쫓아서 인지 불현듯 떠나 속초에 머물고 있는 발해를, 역사를 공부했던 점순의 오라버니와 나그네를 벗어난 림해화가 다시 만나게 될까 궁금했다. 그리고 해화의 친구인 영옥과 윤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삶은 그렇게 이야기의 앞뒤가 이어지는 듯,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가도 결국 각자의 입장과 생각과 선호의 차이를 보이며 고독하고, 아련한 시간의 흐름뿐인지도 모르겠다.
작가 천운영의 취재력과 구성력에 박수를 보낸다. 연변의 조선족의 어투를 글로 담아낸 것도 큰 성과물이라 생각된다.
"사랑은 위안이다. 사랑은 설레임도 매혹도 열정도 아니다. 위안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등을 쓰다듬고 머리를 쓸어올려주고 젖은 눈을 들여다보는 것이 사랑이다."(p. 277, 작가의 말 중에서)
림해화가 다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공유하고, 꿈과 희망을 나눌 수 있는 연인과 함께 할 수 있게되기를 바래본다. 영호가 버려지고, 버림받은 듯한 환멸과 고독에서 벗어서 나 아닌 누군가의 등을 쓰다듬고, 머리를 쓸어올려주고, 젖은 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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