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은 계획도시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가지에 근대적인 시설물이 덧붙여진 역사도시인 것이다. 파리가 그랬고 런던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계획되어야 한다. 왜일까? 이 책은 일종의 서구의 도시계획사다. 따라서 우리의 상황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맞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이 책에서 나오는 각종 이론들 자체가 우리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념비적인 저작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언급된 내용들은 대부분 보다 나은 도시를 만들기위한 계획가들의 투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도시에는 이러한 투쟁의 흔적이 너무 약하다. 왜냐하면 가진지 못한 자는 싸워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들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도시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쫓겨난 터전에는 지금 고층 아파트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목동, 일산 등이 그런 경우이다. 이제 도시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새로운 투쟁이 필요하다. 자본이나 권력, 전문가 등의 일부 소수만이 아닌 도시안에서 평범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시민들이 중시되는 그런 도시기 되기 위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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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피터 홀이 'Cites of Tomorrow'를 번역한 글이다. 'Cites of Tomorrow(내일의 도시)' 처음 이 책의 제목만 보고 나는 "아, 미래의 도시에 대한 예상을 설명한 글이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결과는 '헛다리' 었다.
전공이 도시계획이기 때문에 피터 홀의 글을 원어로 읽었다. 원어로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는데 친절하게도 이렇게 번역서가 나오다니 정말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번역서가 그러하듯 한국말이 아닌 번역체의 글이 눈에 띄일때가 있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닌듯하다.
그렇지만 영어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쉽게 좋은 내용을 접하게 해준 이 번역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19세기와 20세기의 도시계획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왜 이 책의 제목은 '내일의 도시'일까?
아마 이는 서양 도시계획의 근저에 숨어있는 '유토피아'라는 이상도시를 나타내는 제목일 것이다.
서양이나 동양도 마찬가지로 인류는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추구해왔다. 하지만 어떠한 형태의 '유토피아'도 현실의 한계를 넘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토피아'는 영원한 '내일의 도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은 19세기와 20세기 도시계획의 여러가지 흐름을 이해하는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구성면에서도 각 장이 독립적으로 이루워져있기 때문에 자신이 관심있는 도시계획의 흐름을 골라 볼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튼 이 책은 도시계획도라면 한 번을 읽어볼만한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이 책에는 이상하며 혼란스러운 대칭이 존재한다. 어떻게 도시를 계획할 것인가에 대한 100년 동안의 논쟁 끝에, 그리고 이상을 현실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반복된 시도 끝에 우리는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왔음을 발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