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책이 좋아서 검색하여 샀다 브루노를 위한 책 ,여왕 기젤라 모두 재밌고 그림과 글 상상력의 조화가 좋았기에 샀는데 잘 산 것 같아 읽은 책들에 비해 밝은 톤은 아니지만 어마어마한 반전이 있었기에 나름 더 많은 상상과 이야기꺼리가 생긴다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뭇꾼이 떠오르기도 하고...아이와 상상을 펼칠수있어서 즐겁고 재미있다. 그림도 역시 상상력이 풍부하다. 믿고볼수있는 작가~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그분의 다른 책을 못 봤다면 꼭 보길 권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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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이는 바다로 떠날 것이다
난생처음 듣는 먼 타국의 이야기인데 익숙해서 놀랄 때가 있다. 물론 배경이나 등장인물은 다르지만, 예측대로 이야기가 흘러가거나 끝나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런 익숙한 이야기의 단골 소재 중 하나가 인간과 요정의 혼인담이다.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의 2011년작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에는 가죽을 벗으면 인간이 되는 바다표범 요정 ‘셀키’와, 셀키의 가죽을 숨겨 결혼한 뱃사람이 나온다. <선녀와 나무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책의 주인공은 뱃사람도 바다표범 요정도 아닌, 바로 그들의 아이이다. 인간과 요정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을 어느 쪽으로 여길까? 이 아이는 엄마의 세계와 아빠의 세계 중 어디에서 키워야 할까? 아이를 위해 엄마나 아빠는 자신을 희생하고 영원히 타지에서 살아야 할까?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는 이런 물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바닷가 외딴집에 사는 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종일 자맥질을 해도 전혀 지치지 않을 만큼 수영 실력을 타고났다. 아이의 아빠는 뱃사람이고, 엄마는 가정주부다. 표정이 없고 외모가 약간 독특한 엄마는 늘 신비로운 바닷속 이야기를 해 준다. 어느 날 밤, 아빠가 엄마 몰래 반짝이는 꾸러미를 집 안 어딘가에 숨긴다. 아이는 구석구석 뒤진 끝에 소파 아래서 그 물건을 찾아낸다. 바다표범 가죽이었다. 아빠가 셀키라고 짐작한 아이는 엄마에게 가죽이 숨겨진 장소를 알려 준다. 이쯤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음 날 엄마는 사라진다. 아이는 생각한다. ‘난 크면 뱃사람이 될 거야. 아니면 바다표범이 되거나.’ 셀키 엄마는 아이를 데려가지 않았다. 인간과 요정의 피가 섞인 아이가 빨리 홀로서기를 바랬을까? 하나의 인격체인 아이에게 정체성을 선택할 권리를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셀키 엄마의 선택에는 자녀의 자율성을 중시하여 일찍 독립시키는 서양의 양육 문화가 녹아 있다. 따라서 한국 독자는 엄마의 정체보다, 엄마가 아이를 두고 떠났다는 점을 더욱 반전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놀라운 부분은 또 있다. 너무도 의연한 아이의 모습이다. 슬퍼하긴 하지만, 생이별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짐작건대 곧 시련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셀키 엄마와 아이가 헤어지는 모습은 실제 바다표범의 생태와 닮았다. 바다표범 어미가 새끼를 돌보는 기간은 생후 2주에 불과하다. 2주가 지나면, 어미는 가차없이 새끼를 떠나고 새끼는 독립한다. 바다표범 기준으로 봤을 때, 아이는 이미 2주가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의 그림은 담담하다. 그림책치고는 다소 어두운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일수록 화려한 장면이 주는 효과는 강렬하다. 엄마의 바닷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파노라마 그림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인어 아가씨, 구눈박이 장어, 죽음의 해파리, 뽀뽀 뱀장어, 궁궐 두꺼비, 이불 문어,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래 등 스무 가지의 신비로운 상상 속 생명체가 무려 여섯 페이지에 걸쳐 마법처럼 펼쳐진다. 그림을 하나하나 짚으며 이름을 읊고 싶어지는 장면이다. 부록 일러스트에 번호를 붙여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편집했다면 더욱더 좋았겠다. ‘셀키’를 ‘바다표범’으로 번역한 부분도 아쉽다. 표제지에는 “난 육지에서는 인간이지만, 바다에서는 바다표범이다.” - 데이비드 톰슨, <바다표범의 노래>라고 쓰여 있다. 작가가 톰슨의 작품을 읽고 영감을 얻은 듯하다. 독일 원서 표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An Land bin ich ein Mensch, im Meer bin ich ein selchie.” 맨 끝의 selchie는 ‘셀키’이다. 원문은 “난 육지에서는 인간이지만, 바다에서는 셀키이다.”임을 알 수 있다. 셀키라는 단어를 본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설명해 버리면 책의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지만, 독자의 알 권리는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마음이 뭉클해지는 독자는 아무래도 자녀를 둔 엄마일 것이다. 셀키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제삼자의 눈으로 봐도 남겨진 아이는 안쓰럽기 짝이 없다. 하물며 낳고 기른 자식을 두고 떠난 엄마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이따금 고등어 두 마리를 바위 위에 놓아두는 정도로 사랑을 전해야 한다니 참 안타깝다. 가죽을 찾은 셀키 엄마가 떠나지 않고 남아서 아이를 길렀다면 해피 엔딩일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이 작품의 결말이 슬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아이의 미래가 열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셀키 엄마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진정으로 아이와 엄마를 위하는 길이란 어떤 것인지 곱씹게 만드는 멋진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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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커서 소방관이 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후에는 요리사와 음식비평가 등 아이의 희망 직업이 바뀌더니, 고3이 된 지금은 분명히 드러내지는 않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했을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바다로 둘러싸인 외딴 집에서 사는 아이는 늘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아버지는 고기를 잡으로 며칠 동안 집을 비우는 날이 반복되고, 아빠를 기다리며 엄마는 아이에게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때문에 아이는 바다에 가지 않아도 그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연히 집안에서 발견한 바다표범 가죽.
엄마를 통해 들었던 바다표범이 가죽을 벗고 사람이 된다는 전설을 떠올리며, 이제 아이는 자신도 바다표범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는 바다 속에서 온갖 동물들과 헤엄치며 노는 모습을 상상하고, 작자는 그것을 그림으로 아름답게 펼쳐놓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아이의 어릴 적 상상력의 세계에 귀를 기울였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오래 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건성으로 대답을 했을 것이다.
이제 상상력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 다시한번 음미해 보게 되었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