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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을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으나, 읽는 동안 그의 날카로운 지적들에 너무 뒤늦게 그를 알게 되었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의 다른 저작들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이라는 책의 부제 그대로 하워드 진은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믿고 있었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이 얼마나 거짓된 것이었고 수많은 투쟁을 통해서 얻어낸 것인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그는 그러한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례들과 관련 공문 및 인터뷰를 인용하고 있고, 그의 의견에 동의를 하든 아니든 간에 그의 주장이 날조되었다거나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하게 말해서는 그의 전반적인 논의는 마키아벨리로 대표되는 현실주의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져있고, 세부적으로는 인간의 폭력성과 회의주의에 대한 반박과 2차 세계 대전 및 그 외의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회적 분위기나 정치적인 심판을 내리는 법에 대한 문제제기와 시민불복종에 대한 옹호, 미국 사회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계급문제와 미디어와 언론의 자유, 인종문제 까지 미국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은폐되고 있는 문제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지적이 학문적으로만 다가가지 않게(즉 읽는 사람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게) 최대한 명료한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 철학적이고 모호한 느낌이 묻어나는 글들을 자주 읽었기 때문에 하워드 진이나 촘스키와 같이 보다 직접적이며 명확한 문장들을 읽으니까 그동안 너무 뜬구름을 잡으려는 글들만 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만한 제국’을 읽는 동안 그가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기 위해 쓴 글이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얼마나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지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지적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현재 한국에서도 유효한 것 같고 그가 그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렵고 힘들겠지만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투쟁하고 맞서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듯이 누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할 것 같다. 물론... 항상 그렇듯이 마음만 앞설 뿐이다. 그의 신념에 차있고 명료한 문장을 닮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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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민주공화국도 아니고 그냥 완벽한 하나의 제국주의 국가일 뿐이다. 말하자면 양두구육 윤석열과 국민의 힘을 생각하면 된다. 입으론 자유, 평화와 정의, 인권을 위해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것처럼 떠들지만 그냥 입으로 하는 것이고 진짜 그들이 그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과 나치 독일, 일본 제국주의는 제국주의 국가라는 본질을 통해보면 다를 바가 전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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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진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는 것 같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의 최강대국 미국,미국의 현 모습과 진로예측?은 그의 연작들을 통해 구체화 되었고 결론을 정확하게 예측하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써 자신들의 나라에 따끔한 경고를 날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실천하는 지성인의 나아갈 길을 본 것 같다. 5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았고 우리 젊은 세대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하워드 진의 메세지가 허공의 울림만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도 공화주의도 아닌 마키아벨리즘으로 본 그의 통찰력은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에 미국의 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안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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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미국에 대한 환상에 젖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느 사람이 많다. 어릴 때 먹어보았던 달콤한 미제 초콜렛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아이가 어디 있겠으며 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미국을 동경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 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경우 우리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자기 불만의 정당성의 뿌리를 미국과 미국인과 미국의 제도와 미국의 사회에 두고자 노력하고 실제로 톡톡히 효과를 보기도 한다.
이 책은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깨주기도 하지만 막연했던 반미감정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찾게 해준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작가의 목적은 미국비판이 아니다. 작가는 미국의 힘을 폭력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인류의 복지와 평화를 위해 써야한다고 강조한다. 자국의 이익과 정권 유지를 위해 약소국을 핍박하고 불법부당한 독재의 개를 키우는 일을 중단해야 하며 더 잘 싸우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쓸게 아니라 소외민족과 계층의 지위향상과 복지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근거지며 가장 발달한 민주정치 국가인 미국에서도 여전히 부자들은 불법과 부정부패, 비리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들의 부를 이루고 있는 것은 가난한 이들의 피와 살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흔히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미국기업인들을 표본으로 삼는다. 우스꽝 스러운 일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작가의 반전, 반자본주의, 비폭력 등의 사상을 뒷받침할만한 적당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가 이데올로기와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당연한 요구는 과연 실현가능한 일인가. 작가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인상깊은구절] 부의 평등분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마르크스 주의의 견해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 사회의 부를 분배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가족이 있는가 하면 핵가족이 있고 병든 사람과 건강한 사람 어린이와 노인 등 각자의 삶에 필요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일이 사회주의 초기단계에서는 가능하다고 보지 않았다. 생산력의 발전정도가 모두에게 고루 돌아갈 만큼 충분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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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민주주의를 심어주고 무자비한 공산괴뢰로부터 자유를 지켜준 나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땅...... 어릴적 내 기억속에 뿌리깊게 주입되어온 미국의 모습은 항상 믿음직하게 기댈수 있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부터는 아니 적어도 이 책을 소화해낼수 있는 지적능력의 소유자라면 우리가 그동안 위와 같은 미사어구 그늘뒤에 가려진 미국의 실체를 보고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미국)이 항상 세계의 모범내지 표준이라고 자랑하는 것들.. 인권,자유,평등 정의등.. 이 모든 것들은 미국 그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미국이란 나라는 겉으로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여 국민의 인권,자유,행복추구를 위한 공화정체제이지만 사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마키아벨리적 사관에 따른 "군주제" 다름아니없다.
그들(미국: 엄밀히 권려과 부를 가진 일부 소수)은 겸손함 대신 "짐이 곧 국가"라는 오만한 속에 외교정책을 전개해 나갔다. 항상 힘의 논리가 상호존중과 호혜평등을 압도했고 몇몇 권력자 자신들의 권력유지와 안정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자국민의 이익과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전쟁"은 세계지배에 대한 야욕과 경제적이권을 위해 몇몇 권력자와 CIA의 은밀한 조작극이었음을 밝혀졌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한국전을 통해 우리는 이를 여러 번 확인하였다. 대신 그들은 그 자기모순적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민중의 입을 주먹으로 막기에만 급급하였을 뿐이었다.
국내적으로 눈을 돌리자면, 타국의 인권상황까지 간여할 정도로 인권에 대해 민감한 그들.. 살짝 비켜서 보면 부정과 부패의 악취로 코를 들 수가 없다. 사회 각 부문에서 흑인을 포함한 소수인종,여성이 소외되었고 차별당해왔으며 가난한 자가 핍박받아왔다. 그리고 불평등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경제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했다. 언론의 자유 역시 사치스런 문구, 지켜지지 않는 문구 그 자체에 불과했다. 반면 소수권력가와 가진자만을 위한 "정의와 평등"만 있었을 뿐 그 어느곳에서도 "진정한 정의와 평등"은 실현되지 못했다. 고로 그들은 투쟁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인권과 자유, 평등, 행복추구를 위해 피를 흘리며 투쟁하였다. 그리고 그 투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 역사의 기술은 민중들의 자취를 따라가야한다. 권력자와 자본가의 후원에 힘입어 그들의 대변인격을 하는, 오직 힘의 역학관계를 토대로만 역사를 평가하려는 편견과 단견으로 일그러진 역사학자는 물러나야한다. 왜냐하면 인류역사가 말해주듯 인류의 번영과 풍요로움은 일부 힘있는 자가 아닌 대대수 민중들이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이 한마디는 꼭 할 것이다.
"미국을 다시 보자 그리고 허울을 벗겨내어 다시는 오만함의 광기에 대해 휘둘리지 않도록 저항하자." [인상깊은구절] 역대 대통령과 대법원의 결정을 아는 것을 주된 강조점으로 삼는 역사는 배울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자신들의 영향권 안으로 세계와 우리의 정신을 묶어넣으려고 드는 정부의 광기에 새로운 세대가 저항하도록 고무시키는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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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종반에 다다를 때까지 하워드 진이라는 지성인이 과연 아나키스트인지 휴머니스트인지를 구분하기가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아나키스트인가 휴머니스트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현재 미국의 양심적인 지성을 대표하는 하워드 진은 이 책 '오만한 제국'에서 그동안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되어 온 나라들과 그들 자신의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실상을 알려주는 진정한 파수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이 크나 큰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초강대국으로서 세계 질서를 재편한다는 중책(?)을 떠맡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쩌면 이제껏 쌓아 온 이미지에 먹칠을 가하게 될지도 모를 이 책은 현재의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기 까지의 추악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들추어 내어 여과없이 들려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세계의 경찰국가임을 자처하며 세계의 곳곳에서 때때로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적극적인 개입을 하게 만드는 이유에 대해 로버트 카플란은 오로지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에 입각한 세계질서의 재편을 부르짖고 나서서, 현 부시 행정부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들만을 골라 언급했다면, 하워드 진은 미국에 의해 유포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냉철한 사고방식으로 미국의 오만을 직시할 것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미국의 외교정책에 어떠한 당위성을 제공할지도 모를 마키아벨리적 접근에 대해서는 마키아벨리즘이 소수의 마키아벨리스트들을 위한 사상적 접근임을 부각시키며 마키아벨리즘에 있어서 숨겨진 의미를 찾기보다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직시할 것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폭력 사용에 그 정당성을 실어줄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하워드 진은 되풀이 되어온 전쟁의 역사에서 해답을 찾는 방법에 있어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어떠한 학문들 - 유전학, 동물학,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등 - 에서도 그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단언하고 있다. 만일 폭력을 향한 유전적 잠재력이 있다면 동시에 평화를 위한 잠재력도 갖추고 있기에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실험적 사례와 학문적 고찰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미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마키아벨리즘과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폭력의 사용이라는 정당성을 백지화시켰다면, 그 다음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행해졌거나 행해지고 있는 일련의 불합리한 현실을 직시할 순서를 제공한다. 역사가가 어떤 가치나 목적에 의해 역사를 부정직하게 서술하거나 왜곡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객관성을 가장하여 자신과 독자들을 기만함으로써 냉철한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또한 소수에 의해 지배권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세뇌의 수단으로 전락한 미국의 매스미디어 체제에도 인식의 오류를 범할 위험성을 경고하며 예리한 해부의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파시즘에 맞선 정당한 전쟁이라는 미명아래 저질러 온 전쟁들이 과연 정당한 전쟁이었을까? 그것을 저자는 역사의 예측 불가능성에 입각하여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전쟁의 결과들에 의해 그 누구도 주장할 수 없는 근거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히려 전쟁이라는 후광뒤에 정부의 동기가 개입되어 국가의 세력 확대와 부유한 엘리트들만의 이익 만족을 위한 어떤 불순한 목적이 개입되어 있음을 마키아벨리적 사상에 근거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현재 미국의 경제정의는 누구의 편에 서 있으며, 과연 언론의 진정한 자유는 보장되어 있는가, 그리고 과거 흑인들의 인종차별주의정책에 항거하여 벌여 온 수많은 인권운동에 미국정부가 올바르게 대처했는가를 두고 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매카시즘을 앞세운 반공주의는 정부가 소수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들을 볼모로 한 정치적 게임은 아니었을까? 저자는 이제 더 이상 불확실한 목적을 위해 용납할 수 없는 수단을 사용하지 말기를 촉구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서 시민이 주체가 된 소집단들에 의해 운영되는 네트워크를 통하여 적극적인 합의를 도출해 낼 것을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정당한 시민 불복종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질서의 재편을 추구하게 된 배경과 그 근원이 과연 누구에 의해 비롯된 것이며 그로 말미암은 인본주의의 말살은 그 책임이 진정 누구에게 있는지 가감없이 알려주는 확실한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미국은 종종 노동계급의 높은 생활수준을 자랑삼아 얘기하곤 한다. (중략) 이 모든 것들, 8시간 노동제, 썩 괜찮은 수준의 임금, 유급휴가 등은 시장원리의 자연적 작동에 의해 실현된 것이 아니다. 정부의 호의 때문에 실현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노동쟁의라는 노동자들 스스로의 직접행동에 의해서, 혹은 노동자들의 투쟁성에 위협을 느낀 주정부들과 연방정부가 반응을 보임으로써 얻어진 것들이다. 항공기 승객들을 인질로 잡는 행위를 말할 수 없이 악독한 짓이라 여기고 테러리즘이라 부른다면, 전체 인류를 인질로 잡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대체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인가? 군비경쟁은 국제적인 분쟁을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의 대결로 바라보면서 핵전쟁으로 수억의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광적인 정당성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
| 하워드 진. 그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책을 직접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구나 반전, 반미에 대한 담론이 활발한 사회적 상황에서 비판적인 미국 지식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워드 진은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 이 책에서 나는 중립적이고 주장하지 않을 거이며, 중립적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세상에는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책에 대한 입장일 뿐 아니라 역사와 그의 사회적인 활동에 대한 그의 입장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 싶습니다. 우습게도 사학도로서 역사는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 그리고 역사가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자신의 역사해석이야 말로 가장 객관적이며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며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역사학이 가장 모던한 학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적어도 한국 사학계에서는 아직 모더니티의 계획을 완성하고자는 열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인지 하워드 진의 책의 서문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한 그의 역사에 대한 입장에서 저는 아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은 한마디로 미국의 어두움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요즘 미국의 이라크 전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고, 미국의 이념과 그들의 가치를 되묻는 자들이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1차,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파시즘에 대항하여 싸웠고, '우리 나라'를 비롯한 많은 식민지들을 제국주의에서 해방시켰으며, 한국전쟁의 혈맹으로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라는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미국 역사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이 책에서 '과연?'이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시작'에서도 그러하듯이 미국은 그 탄생에서부터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헌법은 가장 민주적이며 이상적이고 평가되어지기도 하지만 그 헌법의 이중성은 그것의 제헌자들이 수많은 노예들을 가진 대토지 소유자들이었으며, 자유와 평등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이었다기 보다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들이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많은 미국인들 그리고 외국인들이 가진 '미국'과 그들의 '민주주의' 또는 '자유주의적 가치', '평화 애호적 성향' 등에 대한 환상입니다. 바로 하워드 진의 노력은 이 환상을 깨뜨리려는 것이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평화, 평등을 위해 '투쟁'해왔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데올로기나 헌법에 의해 저절로 얻어진 것도 아니며, 삼권분립과 같은 민주적으로 '보이는' 정체(政體)에 의해 얻어진 것도 아니며, 지도자들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성향에 의해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바로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이 책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많은 투쟁의 역사들을 소개합니다. 하워드 진은 책에서 개인적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보다는 아나키즘이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평화를 주장하며, 사해동포주의를 말하고 있네요. 그의 사상과 그의 활동을 보면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분별하기 힘든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를 위해 싸우는 좋은 모델이 되어주는 진정한 지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가 품은 객관성에 대한 포기 때문에 그의 견해와 활동, 그리고 투쟁들도 결국은 절대적인 지표가 되어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가치들이 보편적인 가치들이 될 수 없다는 것... |
| 나는 미국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들어 왔던 사실들에 의해 미국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주위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경로를 통해서 미국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미국의 껍데기였다. 미국의 속성을 간과한 생각이었다. 미국을 나쁜 나라라고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미국도 세상이 움직이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 것 뿐이다. 그리고 우리도 세상이 움직이는 법칙에 따라 걸러진 정보를 받고 있다. 그리고 만족하고 있다. 이상적인 국제관계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생각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적인 국제 관계를 비슷하게 형성해주는 것이 그린피스 같은 단체라고 생각했다. 다시말하자면 이상적인 국제관계를 부정하면서도 이상적인 국제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세상이 실리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실리 위주의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흑인들의 인권, 그리고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 그리고 공정하다는 미국의 법. 모두가 이상적인 것은 없었다. 일종의 양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양보도 지능적 양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양보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미국의 내면을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단순히 미국을 나쁜 나라라고만 치부한다면, 책의 가치를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큰 교훈은 국제 관계에서 이상주의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예측하기가 쉽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 북한의 문제에 직면해있다. 국제 관계의 수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
|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너무나도 피상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인 교육만을 강요받아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미국이란 나라를 떠나 우리가 지금 이순간 받고 있는 역사교육과 체제에 대한 관념등등에 대해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엿볼수 있는 좋은 기회를 이 책을 통해 가질수 있었다. 역사책에서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의 우월성과 민주주의란 허울뒤에 감춰진 추악한 모습등을 제시하며 이 책의 저자인 하워드 진은 미국의 껍질을 샅샅이 벗기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교육을 뒤집어 보고 미디어를 통해 살포되는 온갖 정보를 걸러내고 종합해 낼수 있는 눈을 가질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
| 한두 해 전에 개봉했던 미국영화 '굿 윌 헌팅'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정신과 교수 Sean(로빈 윌리암스)과 삐뚤어진 천재 Will(맷 데이먼)과의 첫 만남에서 Sean의 책장을 보던 Will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미합중국 역사 제1권, 맙소사! 제대로 된 역사책을 읽으려면 하워드 진의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를 읽으세요. 그걸 보면 눈이 번쩍 뜨일 걸요" 그에 대한 Sean의 대답 역시 주목할 만하다. "촘스키의 'Manufacturing Consent'보다 낫나? 그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 Sean은 물론 Will의 편협한 사고를 지적하기 위해 촘스키를 언급한 것이었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보이듯 하워드 진과 촘스키는 미국의 저항적 지식인 그룹 가운데에서도 상징적 존재이다. 그러한 하워드 진의 최근 저서 '오만한 제국'은 부제 -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 - 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민주주의의 성지로 추앙받았던 미국에 대한 비판을 가득 담고 있다. 하워드 진은 미국의 이데올로기가 표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이지만, 기실 그 운용에 있어서는 마키아벨리즘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마키아벨리즘의 철학적 기반인 인간본성의 성악설까지 파헤쳐 그것을 철학적이 아닌 사회과학적으로 논파해낸다. 또한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의 근거가 될 만큼 방대한 역사학적 지식을 미국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오용하여 권력의 부도덕성을 정당하게 포장하는 지를 날카롭게 집어내고 있다. 하워드 진은 전쟁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혐오를 기반으로 글을 쓰고 있다. 과연 정당한 전쟁이란 무엇인가라는 그의 질문에서부터 시작되는 전쟁사에 대한 그의 고찰은 민주주의 혹은 민족자결을 위한다는 명목상의 목적이 결국은 지배권력의 잇속 채우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그에게 있어 정당한 전쟁이란 오히려 그러한 부도덕한 지배권력, 국가권력에 맞서 싸우는 개인들, 즉 민중들의 전쟁이다. 공정함을 기본으로 삼아야 할 법과 헌법으로 보장된 언론자유 등도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착실한 지배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버렸다. 시장경제는 부의 분배를 심각하게 왜곡시켜가면서 지배권력의 착실한 물질적 기반이 되고, 계급적 갈등을 부추기는 도구에 불과하다. 노력한 만큼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개념만으로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경쟁은 불공정한 선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하워드 진의 논의는 맑시즘의 자본주의 분석과 그에 따른 대안으로서의 공산주의 추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는 맑스처럼 19세기의 유럽만을 보고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고, 이상향으로서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20세기 미국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동안 미국의 역사에서 은폐되었던 미국 민중들의 역사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맑스처럼 노동자 혁명에 의해 새로운 사회가 개척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며, 단지 민중들의 부당한 권력과의 투쟁이 옳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종주의나 국가안보와 같은 그릇된, 혹은 추상화된 명분 때문에 원천봉쇄당했던 역사가 부당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하워드 진의 미국에 대한,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을 읽고 그것이 너무나도 미국을 닮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적인 신화를 바탕으로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 자세를 유지했던 우리들의 모습,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이땅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굳건히 믿다가 국가보안법의 서슬 아래 전과자가 되어야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 군사기밀 유출 방지라는 미명하에 군대에서 의문사한 자식의 사인조차 제대로 밝혀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것이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은 촘스키의 다른 저작들처럼 어쩌면 반미교과서의 선봉에 우뚝 서게 될 지도 모른다. 더욱이 책이 원론적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표출하고 있기에 비전공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책이다. 그러나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단순히 그 자신의 조국이기도 한 미국의 비도덕성을 질타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그는 미국과 미국사회의 비판을 통해 자유와 인간적 권리가 훼손당해서는 안되는 지고의 가치임을 설파하고 있으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미국 민중들의 단결과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역시 지고의 가치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현대세계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들에 대해 위대한 사상가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참조하면서 시민들 자신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소생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오만한 제국 - p.2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