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는 한낱 변덕스런 거품이다’는 낡은 레토릭이 연예계에서만 통용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19세기를 전후로 ‘영웅’에서 돌연 ‘동네북’으로 추락한 ‘실험철학의 아버지’, 프란시스 베이컨. 그도 한창 전성기 때는 프랑스 계몽 철학자들 사이에서 ''위대한 뉴턴’의 스승이자 ‘사고 혁명’의 선구자로까지 추앙받았지만, 19세기로 접어들면서 그의 방법론적 취약점은 쉽사리 비판의 단골 메뉴로 떠오른다. 기껏해야 그를 가설과 이론의 역할에 무지한 ‘아마추어 과학자’로 박제화시켜 버렸던 것이다. 급기야 과학적 ‘방법’에 있어서 선조의 자격을 박탈당한 베이컨이 역설적으론 근대 과학의 악행을 사주한 배후 조종자 취급을 당하는 사태까지 이른다.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는『계몽의 변증법』에서 베이컨을 지목하여, 진리를 도외시하고 ''조작'', 즉 효율적 처리방식에만 골몰했다는 혐의로 그를 근대적 야만의 원흉으로 평가하였던 것. 어찌됐든, 베이컨이 ‘제 2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적인 지독히 인간중심적인 ''야심가''라는 것만은 자명하다. “인간의 지식이 곧 인간의 힘”이라는 믿음으로, 지식의 진보로써 자연을 정복하고 사회를 완성하려 했던 실천 방안인『위대한 부흥』의 집필에 쏟은 그의 열정만 놓고 봐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테다. 당대에는 비록 그의 제안들이 국가 정책으로 수용되진 못 했지만, 이후 300여년 가까이 유지됐던 진보에 대한 지배적 관념은 다름 아닌 베이컨이 뿌린 씨앗서 발아한 셈이었다. 우선 “자연의 품에는....유추조차 불가능한 기상천외한 보물들이 인간에게 실용될 날을 기다리며 수없이 묻혀 있”고 "학문은 마치 선박처럼 시간이라는 광대한 바다를 가로질러, 동떨어진 시대들이 서로 지혜며 지적 재능이며 발명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자와 컴퍼스’와도 같은 도구이다. 지식의 사명은 즉, "기술이 자연과 경주를 해서 어떻게 승리를 얻을 것인가”라는 저돌적 전투 의지와도 다르지 않았다. 베이컨 자신의 비유를 원용하자면, 그는 세계의 이정표를 짊어진 두뇌들을 ‘거대한 벌집’처럼 구성하고 싶어 하였다. 개미처럼 단지 우연의 조각을 모아 전시하는 ‘경험론자’나 거미처럼 자기 속을 풀어 폐쇄적인 언어의 집을 짓는 ‘독단론자’는 그가 개척하고픈 길 위에 놓인 반면교사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테면, 소수의 실험에서 곧바로 일반적 명제와 원칙을 도출하는 연금술사들은 소위 ‘개미족’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자연철학을 온통 망쳐 놓은 주범으로 ‘왕거미’에 해당하는 족속들이라 할 수 있겠다. 베이컨의『노붐 오르가논』은 바로 ‘새 술 담을 새 부대’를 자임하고 나선 사상계의 선전포고였다. 진정 참된 철학의 임무는 그 사이에서 “중용을 취해 뜰이나 들에 핀 꽃에서 재료를 구해다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켜 소화”시키는 부지런한 꿀벌과도 같은 것. 이들 뿐 아니라 베이컨이 쳐부술 적들은 사방에 널리고 널렸다. 그 중 미신과 신학적인 것이 뒤섞이는 바람에 나온 ‘돌연변이’가 피타고라스 및 플라톤과 그의 잔당들이다. 구체적으론 소크라테스 이후 윤리학의 부흥과 플라톤의 본질주의 그리고 중세 기독교 철학, 이 모두는 벡터상의 소략한 차이를 소거하면 여지없이 ''깊이에 깊숙이 매몰된 채 공전空轉''을 거듭했던 오류의 여정이었다. 바야흐로 지식 본래의 사명을 되찾기 위해선 ‘깊이’에서 새로이 지식에 ‘길이’와 ‘너비’라는 차원의 확장이 절실하다는 진단이다. “어떤 지식이 다른 지식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너비가 필요하고, 실천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길이가 필요"하다는 것. 물론, ‘깊이의 탐구자’들처럼 베이컨에게도 감각은 미덥지 못한 인식의 재료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감각자체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감각이 전달하는 내용을 수집하여 결론을 내리는 ‘방식’”에 주목함으로써 훨씬 실용적인 노선을 걷게 된다. 베이컨의 『노붐 오르가논』의 표지에는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 사이로 거친 파도를 꿰뚫고 진격하는 범선이 그려져 있다. 두 기둥은 지브롤터 해협으로 당시 용례로 지식의 한계를, 당연히 범선은 학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는 성직자들의 오해를 풀어 주고자 베이컨은 ‘문제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의 질이다’고 역설한다. 비유컨대, 범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배의 성능과 뱃길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문명에게 영양분들을 제공한 지식의 부산물은 전방위적으로 모든 생명과 존재를 파괴와 억압 속으로 구겨 넣고 있다. 계몽의 뒤안길에는 "지식이 더할 수록 파괴는 다하리라"는 음울한 묵시默示의 그림자만이 섬뜩하게 짙고 짙다. 어쩌면 베이컨의 유일한 잘못은 너무나도 ''지독히 인간만을 오직 인간만을'' 사랑한 죄 밖에 없을지도, 다정多情이 진정 병病인가 하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