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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작가의 페넬로피아드 리뷰입니다. 주변에서 재밌다고 추천해줘서 읽어봤는데,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와 그녀가 아끼던 열두 명의 시녀를 화자로 다시 쓴 신화입니다. 열두 시녀들의 이야기가 너무 마음 아프고 불편한 감정이 들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쓰였어요. 남성의 서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썼다는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책 자체도 너무 재미있고 잘 읽혔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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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신들은 참 인간적이다. 아니 인간보다 더하다. 인간이라면 하지 않았을 짓들도 신이란 이름으로 저지르는게 수없이 많다.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그런 신들의 총애를 받은 인간은 영웅이 된다. 오디세우스는 얼마나 많은 총애를 받았기에 그토록 많은 모험을 잘 이겨낸 영웅으로 남게 된것일까. 도대체 헬레네는 어떤 미모를 지녔기에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의 고통으로 밀어넣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헬레네는 핑계고 수컷들의 서열 다툼이 아니었을까? 신화에서의 오디세우스는 지혜롭고 똑똑해서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를 호시탐탐 노리던 구혼자들을 일거에 죽여버린 영웅으로 묘사된다. 거기에는 오로지 오디세우스만의 목소리만 있다. 애트우드는 뒷전에 가려진 페넬로페와 시녀들의 목소리를 불러와 노래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그 자리를 노리는 염치없는 구혼자들의 구애를 지혜롭게 거절해 가며 살아야 했던 페넬로페.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들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눈치채서도 안되는 처세들을 자신이 키우고 곁에 둔 어린 열 두 시녀들만이 함께 한다. 그러나 연기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일까. 돌아온 오디세우스에 의해 그 열 두 시녀들은 모두 목이 매달려 죽는다.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웠기에 그 억울함을 페넬로페는 풀어주지 못한다. 시녀들은 여기저기서 겁탈당하고 끌려 다니고 주인과 손님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그저 하나의 소모품이다. 목소리를 낸다는 건 기껏해야 뒷방에서 즈들끼리 찧고 까불때 뿐이다. 어느 시대나 그런 신분을 가진 존재는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나 아픔은 묻혀 버렸다. 가장 취약한 존재들. 오디세우스는 정말 영웅일까. 그저 역마살이 가득한 한 남자의 자격지심과 자존심이 빚어낸 결말이 아닐까. 쓸데없는 살육과 잘난척은 참아 주기 힘들다. 타인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다. 자신이 결정권자다. 현대극으로 풀어보자면 영웅병에 걸린 역마살 가득한 교활한 소시오패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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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와 <증언들>을 먼저 읽고 나서 접한 책이기 때문에, 그의 <페넬로피아드>는 어떤 기발함으로 신화를 뒤집었을지 너무나 기대되었다. 결론적으로는 살짝 실망했다. 이야기 자체의 분량이 짧은 탓도 있지만, 내게는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에서 등장한 약초 학자로서의 페넬로페가 <페넬로피아드>에서 묘사된 오디세우스의 부인 페넬로페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전자가 '누군가의 아내'라는 타이틀을 시원하게 벗어던졌다면, 후자는 여전히 아내란 타이틀 속에 갇혀 발버둥 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키르케>가 닫힌 결말에 갇혀있음에도 그 내부의 이야깃거리를 자유롭게 뻗어 반항스러운 해석을 그려냈다면, <페넬로피아드>는 어딘가 위축된, 소심한 몸짓을 그려낸다. 페넬로페의 첫 등장에서 그는 심지가 곧고 영리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러한 특징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숨겨지거나, 가부장제 사회가 허용한 경계 내의 방식으로 표출된다.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남자들보다 헬레나에 대한 원망이 크다는 것 또한 현상의 이면을 보지 못한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부분은 역사를 새로 쓰는 작가들에게 큰 딜레마이다. 현대에 와서야 겨우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문제들을 옛 시대의 인물이 날카롭게 지적하게 되면, 그것은 신화의 틀을 벗어난 아류 판타지로 취급받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옛이야기를 그대로 구전되게 두느냐 하면,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페넬로피아드>, 즉 '페넬로페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을 읽고 기대했던 시원한 반전이나 비밀은 등장하지 않지만, 으레 알고 있던 주인공의 위치가 뒤바뀌어 서술된다는 점만큼은 매우 마음에 든다. 가부장제 신화에서는 영웅들의 볼품없는 업적이나 방탕한 놀이를 엄청나게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곤 했는데, 그런 껍질뿐인 소문을 낱낱이 까발리는 것은 원본의 한계나 시대적 한계 - 책이 출간된 연도가 무려 2005년이다 - 를 감안했을 때 충분히 유쾌하다. 누군가가 입을 열었을 때 허물어질 영웅의 이미지란 얼마나 부질없고 허무한가. 또 우리 사회는 그런 종잇조각 같은 이미지에 얼마나 많은 무력감을 학습시켰고 사람들을 좌절시켰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