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비견될 만한 단편 소설<우상의 눈물>을 중심으로 묶은 단편 소설집, 우상의 눈물은, 200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즘 전교조 문제등으로 시끄러운 교육문제에 대해 여러 생각해 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사건의 중심 인물들간의 관계. 그리고 그 배후에 숨겨진 의도 등등이 주된 내용으로 소설의 배경은 유하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여진 때를 그려보면 되겠다. <우상의 눈물>은 군대에 있을 때 읽어보게 되었는데 당시 받은 감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길지 않은 소설임에도 잘 짜여진 구성, 그리고 인물의 심리변화에 대한 묘사 등등... 어느 것하나 부족함이 없는 소설이다. 당시, 나는 군용 관물대에 이 소설에 나온 구절들을 적어가며 기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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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오늘의 작가 총서로 나온 전상국의 단편 모음집이다. 총 12편의 단편이 실려있고, 어느 것 하나 대충 쓴 글이 없다. 우와, 깊이가 다르다. 오랜만에 만나는 제대로 된 문학작품이어서 몹시 반갑고 기쁘다.
각각의 단편이 그 전에 나온 것들도 있지만 1980년에 모아서 출간한 책인데, 21세기인 오늘 읽어도 그리 큰 거리감을 못 느끼겠다. 뭐라고 해야하나, 세월감? 격세유감? 문장도 아주 세련됐다. 그 시대의 느낌은 시대적 배경에서 묻어날 뿐, 문장은 지금 읽어도 자연스럽다.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 감각, 철학에 몸이 부르르 떨릴 지경이다. 거 참 솔찮하시. 우리 마음 밑바닥에 있는, 끄집어 내기 싫은 부끄러운 감정을 솔직히, 냉철하게 파헤친다.
제목이기도 한 『우상의 눈물』은 이문열,「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비슷한 느낌이 있지만 이 작품이 더 내면을 파고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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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현재 창작되는 단편을 읽으며 그런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너무 작위적인 사연의 창조에만 매달리는 것 아닌가?" 책이란 만들어서 당대의 소비자에게 일단 팔리기나 해야 사후의 평가가 일말의 변화라도 보일 수 있으려니 기대를 품을 수 있다. 그런 시장의 요구, 혹은 출판사의 압력이 있었기에 창작자들도 반응을 보이는 것이며, 사실 시장의 공급자 이상 그 무엇의 평판 인정을 바라는 그들조차도 이런 근원적인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독자의 비판과 호응이 없으면 두 발을 디디고 버틸 땅이 마련될 길이 없다. 물이 있어야 물고기가 살 것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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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국교수의 단편집은 <우상의 눈물>,<돼지새끼들의 울음>,<침묵의 눈>,<우리들의 날개>,<전야>,<달평씨의 두 번째 죽음>,<밀정>,<맥>,<수렁 속의 불꽃>,<고려장>,<겨울의 출구> 그리고 <잃어버린 잠> 등 12편의 단편을 담고 있습니다. 두산백과사전에는 “6·25전쟁으로 인한 실향의식과 삶의 뿌리찾기의식 등 체험을 토대로 한 깊이 있는 주제를 작품화함으로써 엄숙주의적 경향을 띤 작가로 평가 받는 소설가이다.”라고 작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1940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성장기에 광복후 혼란했던 사회상과 6·25전쟁의 상처 그리고 사회개편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던 시기에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작품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전상국의 소설은 예사롭지 않은 힘을 지니고 있다. 그 힘은 끈기 있게 문장과 사건을 끌고 가는 힘이면서 동시에 삶의 고통과 악을 소설 속에서 요리하는 힘이다. 그의 소설은 흔히 결말 부분에서 다시 한번 악의 끈질김을 강조하여 독자들의 예상을 뒤집어놓는데 이는 삶 속에 잠재해 있는 악의 모습을 그만큼 정직하게 투시하는 데서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문학평론가 이남호교수의 평가에 수긍이 가는 대목입니다. 사실 단편들을 읽어가면서 한기와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면 지나칠까 싶습니다. 눈초 역시 전후세대인지라 6.25사변 전후의 사회상황에는 밝지 못한 까닭에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경험하지 못한 사회상이었기 때문에 공감이 갈까 싶기도 합니다. 열편의 단편 가운데 표제가 되는 <우상의 눈물>와 <고려장>에 관심이 더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우상의 눈물>의 경우는 비슷한 주제를 다루었던 이문열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대한 기억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시대를 막론하고 교실에는 다양한 부류의 학생들이 같이 생활하기 마련입니다. 학교의 방침에 순응하면서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 공부와는 거리가 있지만 동급생들을 주도하는 소위 ‘짱’이라는 학생 등등. 눈초의 경우는 어중간한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조금하는 축이었지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보다는 잘 노는 아이들과 어울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 해도 짱이라고 하는 친구들은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는 대립하기 보다는 따로 놀거나 오히려 보호해주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거나 다른 반보다는 우리 반이라는 생각, 즉 팔이 안으로 굽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든 작가가 보여준 우상은 작가시절보다는 오히려 요즘의 교실풍경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가는 <우상의 눈물>을 통하여 “겉으로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은 아니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가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려 하는 것 같습니다. 착하고 말 잘 듣는 학생들도 보이지 않는데서는 일탈하는 경우도 있고, 말썽장이의 본심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선입견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작은 아이도 입시를 앞두고서 주의의 기대가 부담이 되었던 탓인지 PC방으로 나돌아 아내의 애를 태웠던 생각이 나면서, 눈초 역시 공부한다고 책은 붙잡고 있으면서 생각은 먼 나라를 떠돌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고려장>을 읽으면서 치매환자를 대하는 가족들의 새로운 시각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현세의 모친이 앓고 있는 실성했다는 정신병 증세는 전형적인 치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단편집 <우상의 눈물>이 1980년에 발간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면 이해가 됩니다만, 그때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치매’라는 질환의 본질은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노망이라던가 실성이라던가 하는 단어로 막연하게 표시할 뿐이었고 나이든 노인들 가운데 일부가 그런 증세를 보여 가족들을 힘들게 한는데, 어쩔 수가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었습니다. 작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다 지쳐서 병원에 유기하는 현세의 어려운 결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만, 치매에 걸린 환자를 유기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작품이 발표된 1980년대보다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입니다. 과거에는 가족들이 대부분 가까이서 살았기 때문에 가족 안에 치매환자가 발생하더라도 가족들이 나누어 간병을 했기 때문에 가족 밖으로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습니다만, 가족이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면서 환자를 전담해서 돌볼 수없게 된데다가 사회적인 안전망이 충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치매환자들의 고통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든 <고려장>은 치매환자 간병의 어려움을 시대에 앞서서 예견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