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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지식채널에서 소개된 마크 트웨인의 동영상이 있다. 그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일생을 4분여의 동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 상당히 요약한 부분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내를 비롯한 가족을 질병으로 잃은 후에 염세적이 되었다는 부분은, 일정 부분 옳지만 그가 살았던 시기를 고려하면 그의 생각은 혁명적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나 제국주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거쳐 그는, 이 책에서 인간 자체를 폄하하고 있다. 그것도 눈에 보이는 사실을 기초로 폄하하니 뭐라 반박하기가 만만치 않다. 마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인간마저도 유전자에 의해 살아가는 생명체로 폄하한 것과 비슷한 사고 방식이다. 폄하라는 단어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하였다. 진정한 내 생각은 폄하보다는 진실이라고 표현해야 하지만, 일반 인간 대중이 가지는 상식에 기초하여 글을 써야 하는 현실이, 어쩔 수 없이 폄하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한 것 뿐이다.
대니얼 데닛이 『마음의 진화』에서 정의한 마음이란 언어로 구체화 되어 있는 인간만의 특징이다. 어쩌면, 이런 정의는 동물들에게도 마음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일반 상식에 비추어 보면 협의의 정의라 할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은 상식적인 정의로서의 마음을 인간의 주인으로 보고 이에 의해 완벽하게 조정되는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이유에서 인간이 이룩해 놓은 모든 업적은 외부 환경의 영향과 교육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일정 부분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지만, 인간이 이룩해 낸 과학적 업적마저도, 개미 사회의 일사불란한 시스템과 동일한 대접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수긍이 가지 않는다. 원시 사회에서의 태초의 인간이 동물 수준의 사고를 하고 있었고, 그 이후 인간의 역사에서 많은 외부적 영향과 교육을 통해 현재의 모든 것이 이루어 졌다는 생각은 옳게 보이지만, 그런 이유로만으로 인간의 발전을 폄하(진정한 의미의 폄하이다)하는 것은 그리 옳은 생각같지는 않다.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가 셍물학적 본능과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을 통해 서서히 학습해 나가고 인간도 동일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발전 속도나 발전의 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100 여년전에 이루어진 그의 혁명적 생각은, 문화적 영향으로 지구 생명체의 최고 접점에 스스로 위치해 있는 인간이라는 種 에 대한 다원적 사고가 가능하게 하였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이 책에서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지구의 우점종인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현대 과학의 결론을 예시하는 듯한 그의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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