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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타인이 될 수 있을까" 내용보기
소설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산업화 시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흔히 전후 한국의 발전이 '유례없다'라거나 '기적'이라고 표현되는데, 이 표현은 피상적이고 상투적이기보다 굉장한 역동성을 담고 있다. 그 양면을 떠나 세계에서 다신 없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압축성장의 의미는 시간적 의미도 있지만,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되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산업화 시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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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산업화 시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흔히 전후 한국의 발전이 '유례없다'라거나 '기적'이라고 표현되는데, 이 표현은 피상적이고 상투적이기보다 굉장한 역동성을 담고 있다. 그 양면을 떠나 세계에서 다신 없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압축성장의 의미는 시간적 의미도 있지만,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되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산업화 시기엔 지도자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근대화와 발전에 미쳐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방>에 나오는 고아나 해외입양아 같은 모습은 하나의 문제로 조명 받지 못했다. 매우 압축적인 성장이었기에 그 후유증도 매우 강하게 나타났다. 우린 이 시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단순히 한면만을 택해서 무엇인가를 비난할 수 있을까? 산업화는 인간의 욕망과 더불어 추악함을 너무나도 잘 보여줬다. 그런데, 잘 살고 싶은 게 잘못된 것인가? 인간은 어디까지나 양면적이고, 상황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그 욕망으로 추동된 시대는 많은 것을 쏟아냈다.


격동의 산업화 이후 먹고살만해진 시대에 등장한 의제는 민주화였다. 더이상 카리스마적 정치권력과 국가통제 방식의 발전은 시민적 동의를 얻지 못했고, 속속 들어오는 양서와 자유주의적 사상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민주화라는 목표를 성취하도록 부추겼다. 시대의 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흔히 유식한 말로 헤겔의 절대정신이라는, 인간이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한국 역사를 돌아보면 압축성장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꽤 다층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최인호의 소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열망의 시기에 걸쳐있다. 소설을 대표하며 관통하는, '타인의 방'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물질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소설 타인의 방에서는 사이가 멀어진 이웃과 멀어진 부부 사이가 나타난다.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여 결국 하나의 잡동사니로 변해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저자는 사회 전반적으로 과거에 친했던 이웃이 먼 타인이 되고, 물질만을 추구하는 인간이 되었음을, 즉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세상이 멀어졌음을 중심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화'라는 국가의, 시대의 정신 아래서 우리는 무엇을 못 본 척했고, 잊어버렸고, 잃어버렸을까.


<술꾼>을 보자. 고아원에 사는 아이가 술집을 돌아다니며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다. 아이는 술집을 돌아다니며 어머니가 피 토하는 걸 보고 아버지를 찾으러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술집 사람들은 다른 곳을 찾아가보라고 할 뿐이다. 그러다 술 한 잔씩을 건네고, 아이는 받아먹는다. 최인호 소설의 특징이라면 표현적 특징에서 분위기 형성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겨울과 바람도 낄낄거림으로써 냉담한 세상과 현실을 표현하고, 과한 표현 없이도 아이의 관점에서 덤덤하게 서술하여 오히려 가슴아픔이 배가 된다. 울 수 있는 나이에, 혹은 울어야 하는 나이에 '울지 않는 아이'라며 자신을 아버지와 구분하는 아이의 말은 그저 울고만 있을 수 없었던 현실을 보여주며, 후반부에 나오는 술을 내어주는 아주머니의 아이의 울음소리는 각자의 '먹고삶'의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울지 않는 아이와 더욱 대비되어 무거움과 찝찝함을 남긴다. 껄껄거림은 그저 껄껄거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못내 어쩔 수 없어서, 우리네 인생의 고통을 바라보기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웃어 넘겨보려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사내들이 건네는 술잔의 의미는 그냥 현실을 취해라가 아니다. 나도 너의 고통을 안다는 의미다. 아이가 말한 취해서 꿈도 없이 잘 자고 싶은 마음은 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 공간의 정신이었으리라.


문둥병자의 자식을 학교에서 쫓아내자는 학부모들에 맞서는 교사의 이야기인 <미개인>에서는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놓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주인공과 친하게 지낸 교사는 주인공에게 이 동네를 떠나라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말한다. 이는 최인호가 근대화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둔병자에 대한 차별을 외피로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이 끝없이 퍼져나가는 것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는 마을 전체가 홀린 하나의 종교와도 같은 물신숭배였다. 존재들을 비가시화 하며 모두가 침묵하는 그 숭배. 작중 계속해서 들려오는 불도저 소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무의식적 욕망, 즉 '개발하라', '돈을 벌어라'하는 욕망의 파동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감히 부술 수 있음을, 또 그 부수는 과정에서 인간의 '파괴를 통한 쾌감'이 솔직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은 마을을 떠나라는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개장수의 집에 들르게 되는데, 맞고 길들여진 개를 보게 된다. 여기서 개는 야만의 상징으로 작용한고 볼 수 있다. 육체적, 원초적 욕망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모습은 동물과 다름이 없으며 단순히 내려치면서 훈련받은 것처럼 물질을 쫓아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일부를 잃은 주인공은 그런 원초적 욕망이 일부 제거된 또 하나의 상징이 된다. 그 욕망을 잘라내고서야 세상과 맞설 수 있는 것일까. 주인공은 목발이 날아가도 남아있는 두 손으로 싸운다. "뒤죽박죽의 개백정 문화 속"에 맞서기 위해.


이 거리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무섭지 않소. (...) 점점 우리 성격들이 잔인해져 가는 것 같소이다. (...) 우리는 점점 식인종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에요. 지금까지만 해두 우리의 적이란 것은 일본 놈이라든가 하는 뚜렷한 대상이 있는 상태였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잠식하고 있는 것 같거든. (...) 이 거리에 존재하는 것들뿐이란 맹목적인 파괴자나 나 같은 맹목적인 방관자에 불과하오. 

94-95p


<무서운 복수>는 영문과인 주인공 최준호에게 오만준이 학생운동을 위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준호는 학생운동에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방관하는 인물로 볼 수 있는데, 이 모습은 학생 대다수가 집회에 나가는데 철학 수업을 듣고자 하는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수업에서 말하는 이데아는 그저 말로만 하는 이데아였다. 교수는 학생과 경찰 둘 다 모두 소중해 돌을 던지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솔직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방관자적 입장인 것이기도 하다. 반면 오만준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를 느낀다고 말한다. 경찰 혹은 '그들'에 대한 천적과 같은 느낌. 데모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 느낌. 최준호와 오만준은 계속해서 '진정한 의미의 용기'를 묻는다. 사람이 진정으로 속에서 무엇인가 끓어올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서 내 손으로 돌을 쥐어보려는 것.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용기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준호의 입장은 생각보다 현실적이며 다양한 의제들을 던진다. 작가는 무엇이 완전히 옳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학생의 신분으로 투쟁을 선택할 것인가,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서 성공할 것인가. 준희만 공부를 해서 성공했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투쟁하는 환경을 이용해 개인적 이득을 얻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소설 초반에 김오진이 돈을 쉽게 버는 방법을 알려준다면서 술자리에서 도망간 재치는 회피해 버리는 것, 피하는 것, 무임승차를 암시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준호의 말을 통해 당시 민주화 시대의 흐름에서 아니라고 말하거나 갈등했던 몇몇 인물들에게도 나름의 발언권을 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학생회 간부들이 구속될 때 학교에서 숨죽여 지켜봤던 준희는 작금의 현실을 보고 웃음이 나버린다. 세상의 이치란 이토록 우습고 터무니없는 것일까. 


그러나 벌써 우리들은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알 수는 있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로 우리들은 모두 교활해서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슬쩍 지나치기만 해도 저 곁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부, 간통과 방화 이런 것들을 한눈에 알아보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우리들은 너무나 약게 생겨 처먹은 것이다.

249p


오만준은 학생운동에 참여한 결과로 제적되어 강제로 군대에 가게 된다. 소설 말미에 최준희는 오만준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며 잠깐의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같아 보이지만 사뭇 달라 보이는 둘의 말, "군대가 새로운 것을 줄 것"이라는 말은 만준은 군대에 가서 무엇을 얻고 돌아올 것인지에 대해 궁금함을 남긴다. 만준은 준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규율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올까? 혹은 폭력에 대해 숙고하며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것일까.

모범 군인이 되어볼 테예요. 최형, 오히려 지금의 나는 마음이 편해요. 군대에서 눈 부릅뜨고 보초를 설 테야요. 우리의 적은 과연 안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밖에 있는 것일까 볼 테예요.

312p


소설집 <타인의 방>은 복잡 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다. 인간이란 단 하나의 감정과 이유로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지만, 때론 단 하나의 감정과 이유를 밀고 나간다. 시대와 개인, 그리고 시대와 인간은 타협할 수 있는가? 또한 우리는 타인이 될 수 있을까. 타인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저 선 그어진 타인이 될까. 최인호의 소설은 잔향을 진하게 남긴다. 그의 소설엔 시대의 고통과 개인의 삶의 고통이 엿들어있다. 그 시대, 우리네 역사에는 수많은 술꾼과 오만준이, 그리고 최준호가 있었을 것이다. 때론 현실이 더 소설 같다고 하지 않나. 우리네 삶이 과하게 꾸며낼 필요가 없는 것은, 그 자체로 각자의 소재요, 무대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우리는 타인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첫 순서로 배치된 소설<영가>를 이야기하고 싶다. 우린 아무한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나만의 영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소중히 했던 어떤 가치이자 환영이자 안락한 공간일 것이다. 일생에 놓쳐버린, 또 어쩔 수 없이 놓쳐버린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그 잊어버린 것들을 기억하며, 때론 눈물 흘리며 기도한다. 우린 그들과 재회할 수 있을까? 그저 춤을 추며 그 감정과 마주할 뿐일까? 그러나 그것은 때때로 우리에게 생명력을 준다. 춤을 추며 매화꽃이 피고 봄바람이 분다. 그러나 그것이 끝날 때면 또다시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 속에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그것.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만의 대화다. 우린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기도를 드리나.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인간의 것을 느낄 수밖에 없고, 서로의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불교적 색채를 띄는 최인호의 소설을 잘 나타내는 <방생>의 다음 구절을 마지막으로 그 시대의 영혼들에게 기도를 드려본다.


도대체 어머니는 무엇을 빌고 계시는 것일까. 어머니가 언젠가 묵주신공할 때 보았던 구절처럼 천주님께 병들고 죄 많은 영혼을 편안하게 거둬주시기를 비는 것일까. 아아, 어머니 말씀대로 나날의 삶은 얼마나 고통스러우며, 저 밝은 세상으로 가는 것은 이토록 힘이 드는 것일까. 우리도 언젠가는 얼어붙었던 강이 풀려 저 바다로 흘러가듯 늙고 병들어 죽음의 바다로 흘러간다.

59p


YES마니아 : 로얄 d********9 2025.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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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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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작가의 초기 소설들이 수록된 책입니다.  좋은 소설은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나 감동과 영감을 줍니다.  죽을때까지 젊었던 작가를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한강 작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녀도 존경하는 선배였다고 합니다.  늘 그리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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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작가의 초기 소설들이 수록된 책입니다.  좋은 소설은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나 감동과 영감을 줍니다.  죽을때까지 젊었던 작가를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한강 작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녀도 존경하는 선배였다고 합니다.  늘 그리울겁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1 2024.10.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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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 - 오늘의 작가 총서 9
"타인의 방 - 오늘의 작가 총서 9" 내용보기
최인호 작가의 타인의 방 - 오늘의 작가 총서 9는 1973년 데뷔한 중견작가인 최인호 작가의 초기문학부터 중기문학까지의 소설들을 10편정도 묶어 놓은 묶음집이다. 그전에는 이름만 들어봣던 최인호작가에대해서 이번기회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되었고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을 매우 흥미롭게 읽게되어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타인의 방 - 오늘의 작가 총서 9" 내용보기

최인호 작가의 타인의 방 - 오늘의 작가 총서 9는 1973년 데뷔한 중견작가인 최인호 작가의 초기문학부터 중기문학까지의 소설들을 10편정도 묶어 놓은 묶음집이다. 그전에는 이름만 들어봣던 최인호작가에대해서 이번기회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되었고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을 매우 흥미롭게 읽게되어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g****0 2019.12.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