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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 가는 길. 하일지 (1990)
"이 책에 쓰인 이야기는 현실세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작가가 순전히 상상에 의하여 꾸며낸 것임을 밝혀둔다. 따라서 독자 중에 혹시 누군가가 자신이 이 소설의 이야기와 유사한 어떤 사건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하여 어떤 특수한 심리적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작가가 책임질 일이 못 된다. 근본적으로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행위는, 그리고 그 작품을 읽고 어떤 반응을 일으켜야 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자유에 해당하는 문제이고, 따라서 독자는 자신의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다해야 할 일이지 작가에게 그것을 전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명기해 둘 사실은 이 소설의 이야기가 1989년 서울에서 실제로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이거나 혹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명석한 독자는 이 글에 묘사된 모든 것들이 비록 작가의 상상에 의해 이루어졌다고는 할지라도, 엄격히 사실에 의존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말하는 이야기 중 실화가 아닌 것이 없던데 아니나 다를까, 경주 출신으로 본명이 임종주인 하일지는 대륜고등학교를 나와 중앙대 문창과를 다니다가 입대 7일 만에 정신분열증으로 의가사 제대하고 (군에 입소했다 정신이상자로 귀향조치 당한 K의 이야기 『경마장을 위하여』) 우연히 프랑스어를 독학, 졸업 후 프랑스 유학 (83~89년. 소설 속 R도 5년 반을 유학했다.)에서 석사, 박사를 했단다. 유학 중 J와 동거를 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서울이야말로 송두리째 하나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나는 흡사 내가 허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허구의 세계에서 기획되어 있는 행동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나, R이라는 존재는 어느 소설가에 의해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이따금 내가 날마다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기록해 두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하나의 소설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걸 있는 그대로 기록해 두면 대단히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해. 물론 그런 유형의 소설이 나오면 무식한 독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 어느 시대든지 참된 소설의 독자는 언제나 무식하게 마련이지." (252~253쪽) 작가는 소설에 묘사된 현실이 실제 보다 훨씬 단순하며 오히려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가 더 허구적일 수 있고 소설적일 수 있다고 주장이다. 흔히들 말하는 "현실이 더 소설 같다." 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소설은 R과 J라는 이니셜로 불리는 남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지리멸렬, 찌질한 이별기 이외에 딱 부러진 사건·이야기·인물 등은 없고 지겹게 반복되는 묘사·대화밖에 없다. 여관, 다방, 담배, 육개장, 변소……. 지나치게 세세하고, 같은 내용이 계속 반복된다. (지겨운 「반복」기법으로 삶 묘사 -중앙일보)
등장인물들도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순자, 영이 등 R의 가족 몇의 이름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인물은 R, J A, Q, H, L, N등 이니셜로 불리거나 R의 아내, R의 아버지, R의 누나 등 이미 언급된 이니셜에 의존, 또는 뚱뚱한 사나이, 가죽 잠바의 남자, 알랭 들롱을 닮은 남자와 같이 외모의 특징으로 지칭된다. 이는 소설 속 인물이 어떤 필연적 존재가 아닌 누구든 될 수 있는 개연적 존재임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소설 마지막에 R이 쓰기 시작하는 소설 <경마장 가는 길>에서 주인공은 이 소설 초입과 문장이 같은데 주인공은 R이 아닌 K다.
5년 반의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R (하일지의 프랑스 성은 Ra)을 J가 마중 나온다. 서른세 살의 J는 불문학 박사로 프랑스 유학 중 R과 3년 반 동안 같이 살았다. 같이 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R이 J의 석, 박사 논문과 문학평론가로 데뷔할 글까지 써준 관계이다. 논문을 쓸 능력이 안 되는 J를 위해 논문을 대신 써 주느라 정작 자신의 논문 작업이 미뤄지고 R의 공부는 1년 더 늦어졌다. 박사에다가 문학평론가라는 간판에도 불구하고 J는 취직을 하지 못한 백수임에도 J는 자가용을 타고 R을 만나러 나온 것이다. 하지만 R을 대하는 J의 태도는 예전 같지 않다. 가난한 R은 호텔 대신 허름한 여관에 들어가고 J는 R과의 관계를 거부한다.
R은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대구 출신으로, 이미 결혼해서 두 아이를 가진 유부남이다. 대구로 내려간 R의 집에는 병든 아버지와 채소 행상을 하는 어머니, 그리고 공장에 다니는 두 여동생에다가 R의 아내와 두 아들까지 두 칸 방에서 생활한다. 좁아터진 방에는 버리지 못한 온갖 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R의 고향집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묘사한다.). 귀국한 R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논문을 바치고 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에 온갖 짐을 내다 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 논문을 문맹의 철학자 나의 아버지 R.Y.씨에게 헌정한다.63
R의 아내가 결혼하며 혼수로 가져온 경대랑 보르네오 옷장 등은 아내의 반대로 버리지 못하고 급기야 R은 자신의 책을 내다 버린다. “이번에 집에 가셔서 뭘 하셨어요?” "응, 우선 책을 버렸지." “무슨 책을 버려요?” “아무거나 대거 무더기로 처분했지. 어머니가 머리에 여다가 고물상에 갖다 주고 천오백 원을 받아왔더군.” “책은 왜 갖다 버렸어요?” “응, 방이 너무 비좁고, 물건은 너무 많아서 책을 갖다 버릴 수밖에 별도리가 없더군.” R은 이번에 대구에 내려가서 본 두 개의 방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박사가 되어 돌아와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책을 갖다 버리는 것이었다고 다소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했다. J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두 번 듣고 있기가 괴로운 듯이 이맛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92
R은 J와 결혼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내와 이혼할 생각이고, 이 사실을 귀국 전 편지로 몇 차례나 요구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혼해줄 생각이 전혀 없고, 이혼하지 않는 R에게 J는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거듭되는 R의 섹스 요구에도 J는 완강하게 거부한다.
J는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어떻하긴 어떻해? 당장 서울에서 가장 더러운 여관으로 가 섹스를 해야지! 259 안하면 안돼요? 꼭 해야만 돼요? 왜 꼭 해야만 하지요? 너의 그러한 태도의 이데올로기는 뭐냐?
시간 강사 자리를 얻어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하는 R은 서울에 갈 때마다 J와 만나지만 둘은 갈 데가 없어 거리를 떠돈다. R은, R과 J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다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다방에서 다방으로 돌아다니며 담배를 피우고, 신문을 읽고, 밥을 먹고 변소에 가고 여관에 간다.
"아이, 지겨워! 죽으나 사나 그놈의 다방……."522
"언제나 이 여관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526
섹스를 요구하는 R, 완강하게 거부하는 J. 사실 J에게는 얘 셋 딸린 부유한 교수가 결혼을 요구하고, R은 그 남자에게 프랑스에서 동거 사실을 알리게 하고, 남자는 J를 떠난다.
J는 이혼을 요구하고, R의 아내는 이혼을 거부하고, R을 대하는 J의 태도는 R이 생각하기에 기껏 박사에 문학평론가로 만들어 놓았더니 '배신'한다고 할 정도다. 프랑스에 살 때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이 둘 사이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거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인간 개개인의 구체적인 존재보다도 더 중요하다는데 있지. 234
그런데 뭘 말하려고 하는 영화 (안나 카레리나)예요? 인간의 인습적 관계라는 것이 개인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250
급기야 R의 강요로 인해 여관방에 들어오긴 했지만 J는 옷 벗기를 거부하고, 실랑이 끝에 R은 J의 팬티와 팬티스타킹을 찢고야 만다. 옷을 벗었지만 다리 벌리기를 거부하고, 벗은 몸을 보이지 않으려고 두꺼운 이불을 덮어쓰고 R을 몸 달게 만든다. 급기야 섹스를 하긴 하지만 예전 같지 않다. 프랑스에서 같이 살 때 가장 시원찮았던 섹스보다 더 못하다. 절망한 R이 외친다.
메흐드! 메허드! (merde! merde!)
지리멸렬하고 찌질하게 반복되는 R과 J의 만남과 다툼 끝에 둘은 조금씩 관계를 회복해 나가고 다시 뜨거운 섹스도 돌아왔다. (둘의 정사 장면에 대한 묘사는 소설 초반 R의 가난한 집에 대한 묘사만큼 지독하게 치밀하다.)
우리가 어떤 오해 때문에 우리의 오랜 삶을 한순간에 파괴해 버린다면 그것은 슬픈 일일 뿐만 아니라 죄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때로는 무지로 인하여 때로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와 남 사이에 큰 슬픔을 남기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물론 사람이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오해를 낳고 끝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렇기는 하지만 최대한의 노력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풀어보려고 하는 것은 도덕적일 수 있다. 내가 만약 아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면 그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313
나는 자네에 대한 하나의 타성이 있는 것 같애. 섹스의 타성이지. 내가 자네를 사랑하느냐고?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자네와 섹스 하는 것을 주기적으로 좋아한다는 거야.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자네의 유방을 주무르기를 좋아하고, 자네의 터럭들을 어루만지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자네의 자궁 속에다 사정하기를 좋아하지. 물론 다른 여자들도 틀림없이 유방과 자궁과 터럭을 가지고는 있을 거야. 그러나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그다지 많은 여자들과 섹스해 보지는 않았어. 그래서 난 다른 여자들이 어떤지 잘 모르고 따라서 다른 여자들에게서 그다지 주기적으로 심한 욕정을 갖지는 않아. 그러다 보니 나는 자네의 자궁 속에 사정하기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애. 게다가 나는 자네와 섹스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매번 생각해 왔지. 304
모순 덩어리 한국 땅에서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던 R은 다시 프랑스로 가려하며 J에게 같이 갈 것을 제의한다. 같이 가겠다던 J는 두 주 만에 또 마음을 바꿔먹고 화가 난 R은 J를 폭행하고, 그간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그리고 J의 부모를 만나 그간의 일들을 모두 알리고, J의 부모는 돈을 마련해서 R을 찾아 대구로 오지만 마음이 변한 R은 돈 받기를 거부한다. R은 프랑스로 가는 대신, 글을 쓸 만한 곳을 찾아 여기 저기 절을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자신의 일을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경마장 가는 길
소설 『경마장 가는 길 』 속에서 R은 『경마장 .... 』 소설을 쓴다. R은 J와의 섹스가 거절당할 때 혼자 여관에 남겨져 '경마장'을 모티브로한 토막글을 쓰고 잠에 빠져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경마장'시리즈는 『경마장 가는 길』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을 위하여』 실제 작품으로 다시 탄생한다.) “저는 안 올라갈래요. 그냥 올라가세요, 선생님." 여관 앞에 차를 세우고 나서 J는 R을 돌아보며 말했다. "알았다." R이 든 여관은 일층과 이층이 공중목욕탕이었다. 그래서 그는 삼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몹시 피곤한 기색으로 침대 위에 벌렁 몸을 던졌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거의 삼십 분이나 그렇게 천장을 쳐다보고 누웠던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수첩과 만년필을 꺼냈다. 수첩에서 그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페이지를 열어 거기다가 이렇게 썼다. 경마장에서 생긴 일 이것은 그가 쓰고자 하는 어떤 글의 제목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것을 그가 펼쳐 든 수첩의 상단 중앙에다 썼기 때문이다. 133
그런데 소설을 끝까지 읽어도 왜 제목이 『경마장 가는 길 』인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아직 한 번도 경마장에 가본 적이 없다. 따라서 나는 경마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오래전에 언젠가 한번은 누가 나에게 경마장에 대하여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다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누구였던지 지금 알 수 없다. 그가 말한 경마장은 어쩌면 이 도시에 있는 경마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에 있는 경마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람 부는 오후에 하늘 아득히 떠가고 있는 신문지처럼 경마장은 지금 공중에 아득히 흐르고 있다. (649~650쪽)
『경마장 가는 길 』은 1991년, 강수연, 문성근 주연, 장선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소설을 읽기 전에 강수연, 문성근의 이미지가 J와 R에 겹쳐져서 소설 읽는데 다소 방해가 된 듯했으나 나쁘지 않은 캐스팅이라 생각된다. 특히 어눌한 문어체를 구사하는 R의 역할에 문성근은 적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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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났다.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의 R, 그 사람이 풍기는, 한심하다 싶을 정도로 대책 없는 쓸쓸함 또는 막막함.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1992년 그땐 문학 창작기법으로서 '경마장'이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영화적 기법이니, 하이퍼텍스트니 그런 개념들이 구현된 첫 한국문학작품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뜻밖에도, 나는 어느 대책 없는 구직자로서의 R, 사랑하여 언약했던 어린 여자에게 배신당하여 어쩔 줄 몰라하던 남자인 R이 떠오른다. 한 나약한 지식인의 황폐한 일상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으로서 이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이, 문득 생각난다. 소설 자체도 참 황량한데, 문성근/강수연이 주연한 영화까지 있어서 보았으니 그 이미지가 잘도 떠오르는 것이다.
글쎄 요즘 내가 힘든 것일까? 그냥 이 나이엔 그런 것인가? 잘 모르겠다. 소설 속의 R이 사는 모습은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다른데, 어째서 가끔 그가 생각나는 것인지... 궁리해보면, 사실 나는 오히려, R 내지는 90년대 먹물들의 생활인으로서의 행태를 인생의 반면교사로 삼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든다. 무대책, 가난 속의 자부심, 그런 한편 타인에 대한 희생 강요 등등. 먹물들에 대한 내 인상은 그런 것이었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지 말자... 꽤 유치한 각오이지만, 나름대로는 퍽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했던 덕분인지,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문득문득 R이 떠오르다니.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다. 흠.
아무려나, 그때 그토록 탐독했던 <경마장 가는 길>의 후속작들, 이른바 '경마장 시리즈'들은 몽땅 절판됐는지, YES24에서 검색도 잘 안된다.(YES24는 아마존처럼 롱테일 마케팅 안 하는 건가? 이런데도 불구하고 YES24 주가는 마냥 올라가고 있으니 그 또한 무슨 조화인지 ㅋ) 아무려나, 언제라도 다시 경마장 시리즈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으련만.
경마장 가는 길 경마장에서 생긴 일 경마장의 오리나무 (이건 두산동아 전집에 묶였다)
그리고 또 나머지 두 개는... 흑, 제목도 가물가물하다니, 참,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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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걸작선에 들어가는 책인데 난 여지껏 읽어보지 못했다. 나이들고 어느땐가부터 아예 책이랑 담을 쌓았던바 얼마나 좋은 책들을 모르고 지내고 있는것일까?
요 며칠 하일지님의 [경마장가는길]에 푹 빠져 살다가 어제밤부로 끝냈다. 머릿속이 멍하니 과연 난 누구를 만나고 왔는가? 어느 세계속에 빠졌다 나왔는가 싶다.
책 페이지가 엄청 많은 두꺼운 책인데 한 3일을 짬짬이 읽는다는게 절로 깊이 빠져서 맛난 사탕 살살녹여 먹듯이 그렇게 아까우면서 안달하면서 넘 황홀한 시간을 간만에 보낸거 같다.
사실 책 속에 내용은 주인공 R의 단 몇달간의 만남과 대화들이 주 장면일 뿐인데 하나하나 소소한 행동거지, 자잘한 수다, 그리고 대화들뿐인것 같은데 그토록 책속에 흠뻑 빠지게 만든 저력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책장을 덮으며 이렇게 사람의 이성을, 호기심을, 흥미를 만족시키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주인공 R의 이미지는 무척 나른한듯 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지적 자존심이 쌔어서 거만한듯 하지만 인간적 순수한 면이 많은 사람이다. 결혼하고 고교 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맞지않는 상대와의 결혼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도피처럼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거머쥐고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반겨 맞는 J와의 대면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 난 같은 박사학위자로, 대학강사로 일을 하는 지적인 여자 J가 왜 그렇게 R에게 무조건적 하대의 자리에서 공손하기만 할까 의아해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무조건적으로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는 R에게서 무슨 대단한 사람이기에 저리 큰소리를 치는 관계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글을 읽어 내려 갈수록 두 사람간의, 그간의 그렇게 된 사연이 밝혀지는데 책을 읽을수록 거만하기만 하던 R의 대단한 지적 능력과 책의 거의 8할에 해당하는 R의 논리적인 언어들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고, 당연히 J는 그런관계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물론 R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저자 하일지님의 머릿속에 있는 논리력이겠는데 끝도 한도 없을듯 이어지는 대화가, 또 상대를 대화속에서 꼼짝못하게 설득시켜버리는 여유가, 읽는 독자까지도 결코 지루하지 않게 즐기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R이니 J니 또는 뚱뚱한 남자니, 아니면 가죽옷 입은 남자니 등등 사람을 칭할때 호칭이 참 특이하다. 먼데서 인간 군상을 바라보고 흥미있게 관조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인생을 보고자 함일까?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것일까? 박사학위를 남이 대신 해줘서 껍데기만의 학위도 있다는걸 고발하고 위선적인 지식 사회속에 경종을 울리고자 함일듯도 하겠지만 내가 보는 이 소설의 맛은 전혀 사랑과는 어울릴것 같지 않은 나른하고 청춘에서는 한물간 듯 싶고, 또 애절한 열정속에는 도저히 있을것 같지않은, 중년의 나이게 가까워 오는 한 사나이의, 오랜 관계속에 늘어졌지만 한결같이 한 여인에게 머물고자 하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처음엔 대학 강사씩이나 하는 유학파의 지적인 여자가 한 남자에게 무조건적 굽신거림이 낯설었지만 나중엔 R처럼 대단히 멋진 남자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기엔 너무 하찮기만하고 변덕스럽고 지조없는 J가 황당스러워 졌다. 마지막 같은 만남 에서 차갑게 식은 말라 푸석푸석거리는 허망함만을 거칠게 내쏘아 버리고 끝을 내지만 혼자 고속버스에 오르며 그렁그렁 눈가에 눈물이 맺혀 그걸 삭이는 R의 모습에서 사랑의 가벼움에, 책임질수 없는 인간관계 속의 어긋남에 순간 격한 허무감이 밀려들고 숙연해진다. 나도 또한 R과 같은 진한 상실감이 느껴졌다.
책을 덮고 뒷부분의 평론은 읽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흘러나오는 감동을 나만의 느낌대로 제대로 적어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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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대 후반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변화의 시기였지만 개인적으로도 잊혀지지 않는 시기였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게 아직도 귀에 선한 소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들리던 학교 앞 대학교에서 울려퍼지던 구호와 노래 소리, 그리고 뒤이어 터지는 최루탄 소리였다. TV를 보면 가끔 연예인들이 군대내 화생방 훈련장에서 눈물 콧물 쏟아내는 장면을 볼 때가 있는데, 난 그걸 중학생 때부터 해왔다. 최루가스가 스며든 교실 안에서 울며 짜며 수업을 받다가 결국에는 그 날 수업을 마치지 못하고 또다시 최루가스 범벅인 채로 집에 돌아와야 했던 경험은 이제 그 시대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이 되었다.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화염병과 최루탄의 가투(街鬪)가 상징하듯이 최소한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 사회는 대립하는 두 집단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불’의 시대였고, 날카로운 예각의 시대였다. 그래서 이 시기는 ‘집단’의 시기였고, ‘조직’의 시기였다. 정권은 정권대로 ‘사회질서’와 ‘총화단결’을 모토로 사회불순분자들에 대응하려고 안간힘을 썼다면, 그 반대편은 조직의 힘, 단결의 힘, 대오의 힘으로 거기에 맞서려고 안간힘을 썼다. 두 집단이 지향하는 바는 달랐을지 모르지만, 수단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조직화와 집단 속에서 하나의 힘으로 뭉치는 것을 강조했고, 그 속에서 개인적 삶과 가치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집단이 강조되려면, 집단의 가치를 절대화하고 거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작동된다. 모든 것이 이데올로기로 환원되던 시기였다. 사회변동도, 전세계적인 혁명도, 그리고 심지어 개인의 사생활 하나하나까지도 변화를 추동하던 동력을 이데올로기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길이라고 여겼던 시대였다. 2.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은 묘하게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시대가 가면 그와 더불어 그 시대의 지배적 가치 역시 종언을 고한다는 사실이 경험으로 다가왔다. [경마장 가는 길]은 5년 반 동안의 프랑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R이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귀국 후 R은 프랑스 유학 도중 3년동안 동거하던 J와 해후한다. 반갑게 맞아 줄 것이라 생각했던 R과 달리 J는 둘 사이에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때론 낙담하고 때론 화내면서 한국생활에 회의감이 드는 R. 여기에 R의 가족생활이 겹쳐진다. 그의 부모와 여동생은 질병과 가난 가운데도 유학비를 보태 주었고(이런 행동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다), 그의 아내는 이혼하자는 R의 제안을 거부한다. [경마장 가는 길]이 놀라운 점은 철저하게 객관적인 묘사를 통해 R과 주위 인물들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심리묘사 따위는 없다. 특별히 독자들의 눈을 확 잡아 끌만한 임팩트 있는 사건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R의 일상은 먹고 잠자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친구를 만나고 다방에 들어가고 여관이나 집에서 잠자다가 가끔 대학에서 강의해 주는 것이 전부이다. 이런 일상을 마치 작가가 R의 그림자가 된 것처럼, 현미경을 들이댄 것처럼 끈질기고 세세하게 하나하나 묘사한다. 무엇보다 그 철저하게 객관적인 ‘묘사’에 기가 질린다. 그래서 R과 J의 삶에서 사회 변혁이라든가 가난한 민중의 삶과 같은 거대담론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문학을 전공하였지만 어떠한 문학이론도 이들의 일상을 설명하는 데에 이용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들의 삶, 오직 그들의 일상, 오직 그들의 존재 뿐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일상만을 메마르게 묘사한 [경마장 가는 길]이 사회의 변화를 아주 예리하게 지적해 낸 작품이 되었다. R과 J의 일상양식 자체가 그 이전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종언한 새로운 형태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3. 나한테 1992년과 1993년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고 말하겠다. 소위 X세대는 이전 부모 세대와 질적으로 달랐다. 공동체의 가치 대신에 개인의 가치를 우선에 두었고, 합리적인 이성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길보다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감성과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해체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경마장 가는 길]에서 가장 웃긴 장면은 잠자리 요구를 거부하는 J에게 R이 내뱉는 말이다. “네가 그렇게 (나와의 잠자리를) 거절하는 이데올로기가 뭐니?” 처음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웃음이 터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세상에 어떤 남자가 잠자리를 거부하는 여자에게 저렇게 말한단 말인가. 그럼 매일 같이 화장실에 가는 이데올로기는 뭐고, 오늘 점심에 된장찌개 백반을 먹은 이데올로기는 뭐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불과 20년 전만 해도 저렇게 모든 것을 이데올로기로 환원시키고, 그 속에서 정당성을 찾아온 것이 현실이었다. 믿기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렇게 가치가 충돌하고, 과거와 현재가 짬뽕된 시기에는 부조화와 괴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겨난다. [경마장 가는 길]의 주인공 R이 바로 그랬다. 그의 5년은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보낸 시기였다. 그가 귀국하여 다시 경험한 한국문단, 한국학계의 현실은 학벌과 인맥이 지배하고 대필과 표절이 난무하며 이름값으로 자리를 결정하는 곳이었다. 어렵게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찢어지게 가난한 그의 가정생활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인과의 갈등만 깊어질 따름이다. ‘별 것 아니던’ 동료들이 모두 교수가 되었으나, 정작 그는 겨우 시간강사 자리나 알아보고 다녀야 하는 사람이 되어 겉돈다. 이러한 부조화와 배회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수단이 J와의 잠자리였다. 따라서 R의 일상에서 가장 비중이 높고 중요한 일이 J와의 만남이었고, 그의 현실과의 괴리감을 조금이라도 좁혀줄 수 있는 행동이 J와의 잠자리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건 그의 마음의 안정뿐만 아니라 일종의 보상심리, 또는 자존심 회복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경마장 가는 길]을 읽으면서 나는 이게 바로 1990년대 초반을 헤쳐온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심리가 아닌가 한다. 386세대는 사회의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능숙했다. 그리고 하나의 정치세력을 이루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이제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의 ‘스펙’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학연수니, 배낭여행이니 하는 것이 대학생들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버린 세대들, 변화의 접점에 놓인 세대들이었는데, 그들은 정치세력화할 준비도,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스펙을 갖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서 폭탄처럼 맞은 1998년의 IMF 외환위기. 이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안정과 보상의 기제가 필요했다. J의 몸에 집착하는 R처럼. 4. 생각해 보니, 이들은 이제 30대 후반이다. 대학을 나올 때 IMF를 겪었고, 결혼하고 안정을 찾아야 할 시기에 금융위기를 겪었다. 앞당겨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떨어야 하며, 비정규직‧계약직의 차별 속에 살아가는 이들도 꽤 된다. 변화의 시기, 그 접점에 서 있던 이들이 찾아내야 할 가치가 무엇일까. R이 찾아 헤매던, 그러나 한 번도 가 본 경험이 없고 어떻게 가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경마장’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아직 한번도 경마장에 가 본 적이 없다. 따라서 나는 경마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오래 전에 언젠가 한번은 누가 나에게 경마장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다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누구였는지 지금 알 수 없다. 그가 말한 경마장은 어쩌면 이 도시에 있는 경마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에 있는 경마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람 부는 오후에 하늘 아득히 떠가고 있는 신문지처럼 경마장은 지금 공중에 아득히 흐르고 있다. (p5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