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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황금 같은 시간-당신은 우정을 무엇이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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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루이스와 J.R.R 톨킨이 서로 나누었던 삶의 이야기.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저작들에 대한 폭넓고 세밀한 이야기들.   그래서 루이스와 톨킨의 저작, 최소한 루이스의 '나니아 나라 이야기(총7권)'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읽은 후에 읽어야 내용의 이해가 될 책이다.   책은 루이스와 톨킨의 이야기를 시간적으로 교차해 가면서 펼쳐나간다.   도입은 그들의 출생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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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루이스와 J.R.R 톨킨이 서로 나누었던 삶의 이야기.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저작들에 대한 폭넓고 세밀한 이야기들.

 

그래서 루이스와 톨킨의 저작, 최소한 루이스의 '나니아 나라 이야기(총7권)'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읽은 후에 읽어야 내용의 이해가 될 책이다.

 

책은 루이스와 톨킨의 이야기를 시간적으로 교차해 가면서 펼쳐나간다.

 

도입은 그들의 출생과 가족,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들의 만남, 그들의 모임(특히 잉클링즈)에서 주고 받은 영향, 서로의 저작에 주고 받은 영향, 삶의 마감에 이르기까지 펼쳐진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이 있다.

 

첫째, 책은 루이스와 톨킨 마저도 내 친구가 되도록 나와 그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는 것.(루이스와 톨킨도 엄청난 독서광이었으며 그토록 방대한 세계-루이스의 나니아 역사, 톨킨의 중간계 창조-를 만들어낸 밑거름 역시 책이었다.)

 

둘째,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또는 친구 그룹(그들의 '잉클링즈' 처럼)을 만들어 격려와 비평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우정을 무엇이라 하는가?

루이스는 종일 도보여행을 마친 후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우정을 황금의 시간으로 묘사하고 있다.(아래 인상깊은 구절 참조)

 

셋째, 개인적으로 멋진 클럽(꼭 문학클럽이 아니더라도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모임)의 모임 장소-잉클링즈의 모임이 열렸던 'The Eagle & Child'와 같은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

 

[인상깊은 구절]

 

1905년 루이스 가족은 벨파스트의 외곽에 새로 지은 집 '리틀리'로 이주했다.

'그 집은 내 어린 시절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그 새 집은 이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집의 긴 복도와 햇빛 가득한 빈 방들, 위층의 고요한 실내, 혼자 탐험하던 다락방들, 멀리서 들려오던 물탱크와 수도관의 물소리, 지붕 밑 바람 소리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한 없이 많은 책들...... 서재에도 응접실에도 화장실에도 책이 있었고, 층계참에 있던 엄청난 크기의 책장에도 책이 가득했으며(한 칸에 두 겹씩), 침실에도 책이 있었고 지붕 위 옥탑방에도 내 어깨 높이만큼 책이 쌓여 있었다. 그 집에는 부모님의 관심사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보여주는 온갖 종류의 책, 읽을 만한 책, 읽을 만하지 못한 책, 아이에게 읽힐 만한 책, 절대로 읽히면 안 되는 책들이 있었다....들판에 나간 사람이 어김없이 새로운 풀잎을 찾아내듯 나는 언제나 새로운 책을 찾아냈다.' -26-27p

 

 

톨킨이 친구 루이스에게 그렇듯 큰 영향을 끼쳤다면, 톨킨에게 루이스는 어떤 의미였을까? 톨킨은 루이스가 죽은 지 2년 후에 쓴 편지에서 이 질문에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갚을 길 없는 큰 빚을 졌습니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영향'이 아니라 '아낌없는 격려'였습니다. 오랫동안 그는 나의 유일한 청중이엇지요. 내 '글'이 개인적 취미 이상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오로지 루이스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끊임없는 관심과 다음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재촉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반지의 제왕>을 끝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275p

 

 

루이스는 우정을 이렇게 칭송했다. "모든 사랑 중에서 우정만이 우리를 신들이나 천사의 수준까지 높여 주는 것 같다."

다음은 루이스가 종일 도보 여행을 하고 친구들과 모인 자리를 생각하며 쓴 글이다. 톨킨도 틀림없이 그 친구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건 황금의 시간이다.

......실내화를 신고 난롯불 앞으로 발을 쭉 뻗는다.

바로 곁에는 마실 것이 놓여 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면 온 세계가,

그리고 세계 너머의 무언가가 우리 마음에 모습을 드러낸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어떤 요구나 의무도 없으며,

마치 한 시간 전에 처음 만난 것처럼 모두가 자유롭고 동등하다.

그러면서도 세월에 무르익은 애정이 우리를 감싼다.

삶-자연적인 삶-은 이보다 좋은 선물을 줄 수 없다.

누구에게나 과분한 선물이 아니겠는가?

 

-291-292p

k*****i 2007.02.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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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톨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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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을 읽은 사람이라면 중간계를 알 것이다 중간계는 진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오딘의 세상에도 인간 세계와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중국에도 신선은 따로 살고 우리 나라 옛이야기에도 천부인을 주신 환인으 세상이 따로 있으니 말이다 우엣든   루이스와 톨킨에 대한 이야기를 그냥 읽었다 그리고 접었다 재미가 적네 그냥 루이스와 톨킨이라는 이름에 혹해서 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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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을 읽은 사람이라면

중간계를 알 것이다

중간계는 진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오딘의 세상에도 인간 세계와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중국에도 신선은 따로 살고

우리 나라 옛이야기에도 천부인을 주신 환인으 세상이 따로 있으니 말이다

우엣든

 

루이스와 톨킨에 대한 이야기를 그냥 읽었다

그리고

접었다

재미가 적네

그냥 루이스와 톨킨이라는 이름에 혹해서 샀구나

또 자기 만족을 위해서 샀네 쩝

 

YES마니아 : 플래티넘 h*****j 2015.11.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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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문학의 두 거장이 일생동안 나눈 우정에 관한 이야기
"판타지 문학의 두 거장이 일생동안 나눈 우정에 관한 이야기" 내용보기
1. 요약 。。。。。。。 ​     판타지 문학의 두 대가인 J. R. R. 톨킨과 C. S. 루이스의 삶을 비교, 대조하는 책. 1892년 태어난 톨킨과 1898년 태어난 루이스는 거의 동년배였지만, 태생적인 차이가 있었다. 아일랜드의 개신교 중산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루이스와는 달리, 톨킨은 일자리를 위해 남아프리카로 갔던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면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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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판타지 문학의 두 대가인 J. R. R. 톨킨과 C. S. 루이스의 삶을 비교, 대조하는 책. 1892년 태어난 톨킨과 1898년 태어난 루이스는 거의 동년배였지만, 태생적인 차이가 있었다. 아일랜드의 개신교 중산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루이스와는 달리, 톨킨은 일자리를 위해 남아프리카로 갔던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면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두 사람은 모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고, 이후 1926년 루이스가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되면서 처음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약간 낯을 가리는 감이 있었지만, 둘은 곧 공통의 관심사(영원한 진리를 담아내는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쓰는 일)를 고리로 친해졌고, 루이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소모임 잉클링즈의 핵심 멤버로 십 수 년 동안 활동한다. 둘은 서로의 재능과 능력을 알아보고 끊임없이 격려를 해주었고, 이 우정을 바탕으로 반지의 제왕나니아 연대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성격도(톨킨은 꽤나 내성적이었던 모양이고, 루이스는 호인이었다), 종교도(톨킨은 가톨릭, 루이스는 성공회신자), 외모도(톨킨은 전반적으로 마른 체형이었고, 루이스는 체형이 제법 컸다) 달랐지만, 서로의 빛나는 부분을 알아볼 수 있는 참된 우정을 나눈 두 위대한 작가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병렬 배열한 책.

 

 

2. 감상평 。。。。。。。

     우선 책 자체가 두 사람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배열하는 데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감동적인 일화를 강조(혹은 과장)하거나 하는 부분은 볼 수 없다. 비유하자면 드라마보다는 다큐 쪽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덕분에 재미는 좀 떨어져서, 나 같은 경우야 C. S. 루이스에 대한 팬심으로 이 책을 골라들었지만, 또 다른 동기로 이런 책을 볼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20세기 판타지 문학의 두 대가가 친분이 있고, 아니 그것을 넘어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였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지 않은가. 그렇다고 두 사람이 비슷한 길을 걸으며, 비슷한 작품을 쓴 것도 아니고(만약 그랬다면 옥스퍼드파 소설같은 게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다른 관점과 시야를 가진 소설들을 써 낸 것을 보면 둘 다 자존심은 꽤나 셌다. 이쪽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져볼 만도 한 책.

 

 

      개인적으로 루이스의 소설들에 대한 톨킨의 비판(지나치게 알레고리적이라는)에는 꽤 공감이 간다. “나니아 연대기그 가공할 힘같은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좀 세다 싶은 장면들이 있으니까. 같은 것을 말하려 하지만, 좀 더 은밀하게 위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톨킨으로서는 좀 불만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건 두 사람의 글쓰는 목적의 차이에서도 일부 기인하는 문제가 아닌가도 싶다. 톨킨의 경우 거의 평생 반지의 제왕이라는 한 작품에 매달리면서, 단순히 아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성인을 위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의식으로 썼지만, 루이스는 좀 더 실용적인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경향이 강했고, 덕분에 훨씬 더 많은 글을 남길 수 있었다. “나니아 연대기는 정말로 아이들을 위해 쓴 글이니까.(물론 성인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책을 보며 비단 두 사람을 넘어, 그 둘이 함께 참여했던 잉클링즈같은 모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멋지지 않은가.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친밀한 모임. 매주 모여 자신이 써 온 작품을 낭독하고, 서로 애정 어린 비평을 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동료들. 이런 이들이 있었기에 반지의 제왕같은 대작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다. (슬슬 뭔가를 써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나에게도 이런 모임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위대한 문학적 영감은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불리는 애정보다는, 사랑의 또 다른 종류로서의 우정으로부터 더 크게 얻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루이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사랑은 서로에 집중하며 탐닉하기에 바쁘지만, 우정은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거니까. 하루아침에 끝내버릴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라면, 친구란 그 일을 제대로 마치는 데 너무나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단순히 두 사람에 관한 일화를 배열하기만 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신중하게 연구해 일종의 해석들도 덧붙이는데, 루이스나 톨킨이라는 인물연구를 위해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p*********n 2016.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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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톨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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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톨킨, 두 사람의 저작에 대한 풍성한 자료가 좋았습니다. 톨킨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독자를 배려한 줄거리 요약도 괜찮았고, 다른 책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루이스의 저작에 대한 자료들 -<그 가공할 힘>이나 <순례자의 귀향>p.152, ~p.159,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p.256, p.286, p.301에 관한-을 접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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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톨킨, 두 사람의 저작에 대한 풍성한 자료가 좋았습니다.

톨킨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독자를 배려한 줄거리 요약도 괜찮았고,

다른 책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루이스의 저작에 대한 자료들

-<그 가공할 힘>이나 <순례자의 귀향>p.152, ~p.159,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p.256, p.286, p.301에 관한-을

접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작품해설이나 작품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나 추측에 대해 상당히 수긍이 가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페렐란드라>가 밀턴의 <실낙원>을 각색한 작품이라는 것,

(루이스가 밀턴에 관한 한 권위자라더니 이렇게 작품에 반영이 되었던거군요.)

공상과학 소설 시리즈(우주 3부작 : <침묵의 행성밖에서>, <페렐란드라>, <그 가공할 힘>)의 주인공인 언어학자 랜섬이

톨킨의 캐릭을 본따온 것이고,
랜섬ransom은 몸값, 즉 그리스도의 속죄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단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여러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다각적으로 고려한 콜린 듀리에즈의 신중한 시각도 믿을만 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편지나 자료를 근거한 상황의 극적 재구성이 실감나고 재미있었어요.

예를들면 ebs의 "지식채널 e"에서도 방영 되었던, 두 사람의 '공간과 시간에 관한 소설을 나눠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된 에피소드와

 

[공간과 시간 이야기들은 '회복'과 '탈출'을 제공해 주지.?..

...영계靈界?를 창조하는 이야기들이야말로 삶에 실제로 보탬이 되는 것 아니겠나?

그런 이야기들은  가끔 찾아오는? 어떤 꿈과 같아. 완전히 새로운 감동을 주지. 인간 경험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 자체를

넓혀 준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세나, 톨러스. 앞면이 나오면 자네가 시간 여행에 대해 쓰고 뒷면이 나오면 공간 여행에 대해 쓰게나.

난 그 반대로 하지."p.162~p.163]

 

루이스?의 죽음을 맞는 톨킨의 모습에 대한 장면의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톨킨은 신체의 통증마냥 생생한 슬픔을 느낀다.

이제 그도 일흔이 넘은 노인이고 조문객들 주위에 있는 늦가을 나무들의 잎처럼 그의 잎도 하나씩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의 죽음은 뿌리가 도끼에 찍힌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육중한 도끼날의 충격에 그의 전신이 흔들렸다.

그와 루이스가 지난 10년간 소원해졌다고는 하나 상처는 여전히 아팠다.

나무잎을 잃는 것과 달리 그 상처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인내해야 한다."와니는 그 말을 인용했었다.

톨킨은 몇 주 전 아들 존과 함께 루이스를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픈 몸이었지만 루이스는 톨킨 부자와 함께 15세기의 <아서왕의 죽음>과 과연 나무가 죽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실에는 피에르 쇼데를로 그 라끌로가 쓴 혁명 이전의 퇴폐적인 유혹에 관한 소설 <위험한 관계>가 놓여 있었다.

루이스는 그 책을 젊은이처럼 재미있게 읽고 있었다.

아직도 금욕주의와는 거리가 멀군, 톨킨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는 변함없는 친구의 왕성한 잡식성 독서력이 감탄스러웠다. ( 사람의 성향과 성격이 비교되는 부분이지요.)

톨킨은 루이스가 양아들로 삼아 보살펴 온 젊은이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이제 더글러스에게 애도를 표하고 있다.

더글러스를 바라보던 톨킨은 루이스가 지난 성탄절에 적어 보낸 글을 기억해 낸다.

그 후로 그는 여러 번? 그 글을 생각했던 터였다.

"내 인생철학은 '그동안 한 일들이 허사는 아니었다.'는, 자네가 쓴 한 문장에 압축되어 있네."

그 문장은 오래전에 루이스에게 읽어 준 것으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것이다.

"슬픔도 있었고 어둠은 짙어 갔지만, 위대한 용기와 위업들이 허사는 아니었다."

톨킨은 친구가 생의 ?말년에 자신의 글에서 위로를 얻었다는 사실에 왠지 마음이 훈훈해졌다. p.261]

 

아, 그리고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C. S. LEWIS>에서는 루이스가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없어보인다고 했지만

?1939년 5월 8일에 쓴 편지에서 루이스는 "지난 전쟁에 대한 기억이 몇 년 동안 꿈에 계속 나타났다."고 썼다는 걸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군요.?

 [제 1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살아남은 작가들의 주요 관심사였던 현대전쟁이 그에게는 선과 악 사이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우주적 전쟁으로 다가왔다. p.155]는 저자의 해석에 한 표~!

 

 톨킨과 루이스의 사이가 나중에 소원해진 건 알았는데 그 이유를 명확히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납득이 되게 정황설명을 잘 해 놓았네요.p.245~p.246

 

솔직한 성격의 조이에 관한 워렌의 기록도 참신했고,

 

[워렌은 얼마 후 모들린 칼리지에서 있었던 두 번째 만남에서 동석했고 두 형제 모두 그녀에게 빠져 버렸다.

워렌은 그녀의 거침없는 뉴욕식 태도를 특히 좋아했다.

조이는 서너 명의 남자가 있는 자리에서 워렌에게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이 수도원 같은? 건물 어딘가에 숙녀가 용변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워렌은 이 일을 일기장에 남겼다. p.249]

 

 그녀에 대한 루이스의 묘사도 멋집니다.

 

[그녀의 정신은 마치 표범처럼 유연하고 활달하며 강건했다.

열정이나 온유한, 혹은 고통때문에 그녀의 정신이 흐트러지는 일은 없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진부하고 피상적인 사람인양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미처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기도 전에 튀어올라 상대를 때려눕혔다. p.250?]

 

 <고통의 문제>에서 '동물의 고통'에 대한 독자의 반론을 소개한 부분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고통의 문제>에서 루이스는 동물을 길들이는 일에 가치를 부여했다.

이블린 언더힐은 1941년에 루이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체로 그 작품을 높이 평가했는데 그 주장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했다.

 

제가 교수님께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동물에 대한 장입니다.

"가장 심오한 의미로 ?볼 때 길들여진 동물이야말로 유일하게 자연적인 동물이다......

짐승은 인간과 짐승의 관계, 그리고 인간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이해되어야 한다."

솔직히 이것은 참을 수 없는 주장이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소름끼치게 과장한 듯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가 우유를 짜는 기계로 만들어 버린 젖소나, 달걀 낳는 기계로 바꿔 버린? 암탉들이 정말 그들의 야생 선조들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더 가깝습니까......?

정글과 심해에서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이 주는 야성적 아름다움에 비할 때 교수님이 제시하신 좋은 농가에 있는 좋은 주인, 좋은 아내, 그리고 좋은 개의 예가 다소 독선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는지요?......

저희집 고양이가 볼일을 보러 나갈 때면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확신이 들지만, 응접실 난롯불 앞 제일 좋은 의자 위에 앉아 있는 그놈의 신학적 위치에 대해선 그만큼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야성의 기운이 약간만 더해진다면 교수님이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개념이 훨씬 나아질 거라는 겁니다. 그러나 저의 버릇없는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동물들의 야성에 대한 이블린 언더힐의 글이 계기가 되어 루이스가 자신의 생각을 재고하고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초고에 아슬란과 나니아의 말하는 동물들을 끼워 넣었을 수도 있다.

아슬란은 루이스의 신학에 야성의 기운을 더해 준 듯하다.p.219]

(이 부분은 독자의 지적이 매우 예리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공감이 가네요.

하지만 '고통의 문제에서 제시되는 동물의 이야기'와

'나니아의 말하는 동물들'과 -특히 아슬란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그 가공할 힘>에 등장하는 곰, 벌티튜드 씨가 루이스가 <고통의 문제>에서 설명하는 동물에 대해 잘 나타내 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톨킨의 분량이 더 많은 것이 좀 아쉽긴 했지만 루이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에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루이스의 분량이 더 많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이건 아마도 개인적인 욕심때문에 분량이 더 적게 느껴진 건가봐요.)?

 

톨킨의 눈으로 바라본 루이스를 읽으면서는

루이스를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톨킨의 완벽주의적 성향과 가톨릭 신앙에 뿌리박은 관점도 감안해야겠더군요.?

 

톨킨은 루이스에게 문학적, 신앙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톨킨 스스로는 루이스에게 영향을 받기보다는 격려를 받았다고 하네요.?

 

["나는 그에게 갚을 길 없는 큰 빚을 졌습니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영향'이 아니라 '아낌없는 격려'였습니다. 오랫동안 그는 나의 유일한 청중이었지요. 내 '글'이 개인적 취미 이상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오로지 루이스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끊임없는 관심과 다음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재촉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반지의 제왕>을 끝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p.275]

 

 톨킨은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나 기독교 변증가로서의 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겼대요. 

톨킨이 보기에 너무 빨리 이야기를 써내는 게 경박한 처사라고 느껴졌을 거라고 하네요.

<말콤에게 보내는 편지>-홍성사에서 <개인기도>라는 제목으로 출간-는

톨킨이 개인적으로 주석을 달아 볼 만큼 텍스트가 딴지를 걸어왔다고 합니다.^^

나니아 연대기에 산타가 등장하는 것도 못마땅해 했대요.

하지만 개인적으론 치밀한 톨킨 스타일보단 때론 장난처럼 가벼운 형식으로 춤추 듯 써내려간 루이스식 스타일이 더 맘에 들어요. (산타뿐 아니라 <마지막 전투>에 사자탈을 뒤집어 쓴 당나귀를 등장시키는 위트, <그 가공할 힘>에서 세상의 종말이 온 듯

뒤집어지는 에지스토에서 피난가라는 '말을 하는 나귀'를 등장시키는 장난기라니...)

톨킨은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너무 알레고리적이고, 개념적으로나 구성에서나 기독교적 신념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싫어했지만

톨킨의 작품은 (너무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나머지) 의도한 영적의미를 파악하지도 못한채 마냥 열광하는 독자들이 많아 톨킨 스스로도 의아해 했다고도 하니까요. (이 내용은 <톨킨 전기>에서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어쨌든 두 사람은 탁월한 지성과 이성에 상상력까지 동원해 서로 윈윈하며 소명을 훌륭하게 잘 감당함과 동시에

후대에 이렇게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군요.

 

마지막으로 루이스의 말을 첨부하며 서평을 맺습니다.

루이스와 톨킨의 훌륭한 작품들을 읽는 독자가 꼭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인 것 같네요.?

 

 [루이스에 따르면, "그럴듯하고 감동적인 '다른 세계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진짜 '다른 세계', 즉 영(靈)의 세계에 의존해야 한다." 상상의 세계들은 "영의 영역"인 것이다. p.279

문학작품을 저자가 메시지를 전하는 매체가 아니라 단순히 저자의 표현 정도로만 본다면, 그 문학 작품은 의미를 잃게 된다.?

사물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그것들이 다른 실재들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보면 거기서 많은 것을 얻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p.278]

s******7 2014.04.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