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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삼십세까지의 일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친구가 읽어보라는 책에 앞서 읽어보면 좋다는 얘기에 얼마전에 빌려두었다. 그러다 어제 읽게되었는데, 내리 세 권을 다 읽어버렸다. 읽는 내내 한 친구가 생각나고, 또 한 친구가 생각나고, 또 어떤 분이 생각나고, 결국은 내 자신이 생각났다. 어쩌면 많은 여성들이 아니 모든 여성들이 이러한 마음을 한 번쯤은 가지고 살지 않았을까. 어쩌면 많은 인간들이 이런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드문드문 보이는 시간들이 자꾸만 내 앞을 막막하게 보이게 했다. 이유없이 눈물이 흐르고, 그에 동참하는 듯 분노하고, 나도 이렇게 해 볼까 동조하는 자세...... 이 작가는 그러한 매력을 지니는 것 같다. 문장이 특별나게 멋지다든가, 표현력이 뛰어나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을 보듬어 주는 말로 읽는 내내 포근한 이불처럼 곁에서 머물러 있었다. 난 거기서 한 친구를 생각해 낸다. 읽는 순간 곧잘 친구가 떠올랐다. 겉으론 늘 웃는 내 친구, 속으로 아파서 곪아가는데도 웃는 친구, 여전히 책에서 뭔가를 찾아내려는 듯 책을 파고드는 친구, 암자에서 아무 생각없이 앉았다오는 친구...... 이 소설 속의 그 여자는 그 친구와 아주 흡사하다.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 친구의 이야기일까. 물론 아니지만...... 서른살이 되니 지혜와 용기가 생기고, 자신이라는 존재가 비로소 갖춰지기 시작하고, 삶이 조금씩 구체적인 형상을 띤다고 그여자는 말했다. 그리고는 불필요한 기억들... 있으면 힘들고 아프기만 한 기억들은 잊게 된다고.....그러면서 예민한 감수성도 뭉툭해져버렸다고. 아직 삼십세가 되려면 작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난 과연 얼마만큼 열심히 살았고, 얼마만큼 생각을 했으며, 얼마만큼 내 삶에 대해서 곱씹어 보았는가. 난 서른살이 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인가. 정말 모르겠다. 다만 내가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된 것은 현실에서 부딪히면서 익히는 세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번 책에서 그여자가 노동자들이 땀흘려 일하는 것이 제일 값진 일이라고 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책 속 세상에서 무언갈 더 배우려고 파고드는 난 아직 어른이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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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이에 이르기 전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어느 나이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가 있는 법이다. 어느 나이에 이르기 전에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사유의 깊이가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세월이다. 시간이 퇴적층처럼 쌓여 정신을 기름지게 하고 사고를 풍요롭게 하는, 바로 그 세월이다. 그러므로, 세월 앞에서는 겸허해야 한다. 누구도, 그 사람만큼 살지 않고는 어떤 사람에 대해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누구든, 그 사람과 같은 세월을 살아보지 않고서는.
- 본문 중에서
세 권이나 되는 책의 분량 앞에서
독서량이 현저히 줄어버린 나는,
''이걸 어떻게 다 읽어?''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김형경이라는 작가의 유년시절부터 학창시절, 초기 사회생활까지 담아낸 내용을 모두 읽고 나서는 세 권이라는 분량이 결코 많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자서전을 쓴다해도 그만큼은 나오고 남을 것임을 알기에.
이혼하신 부모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던 유년 시절,
동성 단짝친구에게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걸 느껴본 청소녀 시절,
폭력적으로 다가와 자신의 청춘에 수많은 자욱을 남긴 ''그 남자''와의 7년,
애틋한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끝내 친구로 남은 ''잿빛바바리''와의 추억,
꿈인 문학을 위해 밥벌이를 했던 대중음악지 기자 시절,
마음 속 피흘리는 상처를 부둥켜안고 모든 것을 쏟아내며 글을 쓰던 시절.
그게 바로 세월이었다.
그녀를, 김형경을 키워낸 세월.
모든 사람이 품고있는 ''마음 속 아이''를 품어주는 책 <사람, 풍경="">을 친구에게 권했을 때, 김형경의 작품 중 이 책만을 읽은 친구는 ''우울한 얘기 쓰는 사람 아냐?''라고 내게 물었더랬다. ''꽤나 도발적인 글을 써왔던 김형경이 우울한 얘기를?''이라고 그 땐 되물었지만 이제 그 의미를 알겠다. 이 책은 ''마음 속 아이''를 어루만지기 이전, 그러니까 상처투성이인 ''마음 속 아이''를 만나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쓴 것임이 느껴지기에. [인상깊은구절] 그 여자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골목이 꺾이는 곳은 기대와 상실의 지점이라고. 뒤에 남겨져, 골목의 에움길을 돌아 사라지는 아버지를 배웅하거나, 떠난 어머니가 길모퉁이를 돌아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은 사람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거라고. 그 말 속에 담긴 참된 상실감을 알지 못할 거라고.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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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솔질 담백한 성장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11년전에 읽은 책인데 읽으면서 같이 아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치 책을 읽으며 나의 아픔,나의 치부를 들춰낸 듯한 느낌... 아마도 그 느낌때문에 아프기도 했지만 몹시 불편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작가는 이 책을 써냄으로써 자신의 아팠던 과거를 떠나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김형경씨는 과거의 그 모든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책장에 꽂혀 누렇게 바래가는 이 책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의문을 해보게 된다.
2006/0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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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가슴에 남아지워지지 않는 책... 세월 김형경 작가를 처음 알게 된것은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에서였다. 그 책에서 느꼈던 서늘함과 속울음을 기억하며 <세월>을 펼쳐 들었을 때의 무게감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게 했다.자전소설임에도 한번도 '나'라는 표현이 없다. 작가는 3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속엔 '나'가 너무나 잘 나타나고 있었다. 섬세한 필체,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감...그 속에 녹아져버리는 나는 그여자가 되고 만다. 부모님의 갈등, 학교 생활에서의 괴리감, 성폭행...(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다), 모든걸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읽는다면 또 한동안 이 우울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감히 다시 읽지 못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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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한 친구에게 수필을 써보라고 권해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라면 담백하면서도 조용조용하게 글을 써내려 갈 듯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친구의 삶은 많이 굴곡져 있어 밝은 성품으로 그 굴곡을 잘 펼쳐 단면화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수필을 쓰면 좋지 않을까 싶어 권했었다. 소설이 일기가 아니기에 그녀의 삶은 소설로 적당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성품은 수필을 적기에 안성맞춤인 것 처럼만 보였다. 보통 수필가라고 하면 언뜻 어떤 사람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약간 싱거운 듯한 느낌으로만 알고 있는 수필은 사실은 누군가의 삶의 에피소드로 채워진 재미난 것들이다. 수필은 고백과 다르다. 평생을 통틀어 학창시절에 수필을 가장 많이 접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중학교 1학년땐가 교과서에 실렸던 수필 한 편은 잊혀지질 않는다. 포마이카 책상이 좋아 계속 닦고 닦아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포마이카 책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랐던 탓에 두꺼운 국어사전까지 뒤적이며 찾아볼만큼 수필은 재미있었다. 그리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소설도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필을 소설만큼이나 좋아했었고 찾아 읽기까지 했었는데, 언제부터 수필에게서 멀어져버린 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까마득하다. 저자 김수현의 수필 [세월] 속에는 징용문제로 인해 성씨를 바꾸어버려 큰 아버지는 김씨로 아버지는 이씨로 평생을 살아온 집안의 사연이 쓰여져 있었다. 이상하게 호적이 꼬인채 살다가 다시 성씨를 되찾은 날 흘린 아버지의 눈물. 그것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감동이 아닐까 싶다. 수필의 즐거움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도 만들지만 주변을 관찰하게도 만든다는 사실이다. 신변잡기적이라는 특성처럼 관찰을 통해 수필의 아름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그렇다보니 잔잔하면서도 읽고나면 누군가의 사연을 라디오를 통해 들은 듯 머릿 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세월]이라는 이 제목의 수필 역시 여러 에피소드를 담고 있었지만 나는 성씨를 바꾼 그날의 사연을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 [세월] / 김수현 작 이었지만 검색시 찾지 못해 타작가의 작품으로 검색해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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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던 김형경의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2004/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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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처음 나온 95년에, 나는 고등학생. 무엇이 그리도 힘겨웠었는지, 주인공(자전적 소설이므로 아마도 작가)의 처지가 꼭 나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며.. 내내 목이 메어 질질 짜면서도 단번에 읽어내려 갔던 기억이 난다. 겪었던 고통으로 죽고 싶었던 적 많았지만 그래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살아남아서 책을 쓰는 멋진 작가가 되었잖아, 이런 사람도 있는데, 나라고 훌륭하게 되지 말라는 법 없지. 생각하면서..
정확하게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1,2권까지는 공감+동정으로 주인공에게 완전 몰입돼 있었는데, 3권에서는 이러니 저러니 펼쳐놓는 그녀의 여러가지 변명과 자기 합리화가 꽤나 거슬려서 겨우겨우 끝마칠 수 있었다. 왠지 그런 넋두리가 구차해 보였는데, 아마도 내가 너무 어렸던 듯..
10년도 더 지난 후에 김형경의 <사람풍경>을 접해 보니, 누구도, 그 사람만큼 살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에 대해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누구든, 그 사람과 같은 세월을 살아보지 않고서는. 이 말의 의미가 가슴 깊이 도달되는 나이에 이르렀음을 문득 알아챘다. 나도 이만큼 성장했고, 되짚어 보는 것조차 싫은 아픈 기억들 있었지만 그럭저럭 세월에 맡겨둔 채 잊어가며 살고 있고, 김형경도 자신의 상처가 계기가 되어 심리치료까지 공부해 가며 극복과정 속에 더 좋은 작품들을 꾸준히 쓰고 있는 것. 그런 게 세월의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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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김형경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녀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냥 김형경이 좋다. 내가 김형경의 책을 처음 읽은 건 심리/여행 에세이 ''사람풍경''이다. 그 책을 읽고 그동안 김형경에 가졌던 선입견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누군가의 악평으로 김형경의 소설을 멀리 했던 것을 조금 아쉬워하기도 했다. ''사람풍경''은 김형경이 2년간의 정신분석을 받고, 살던 집을 팔아 유럽으로 ''자기치유여행''을 다녀온 후 쓴 에세이집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형경은 정신분석 및 자기치유에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데, 사실 ''세월''이라는 소설이 바로 그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세월은 3권 분량의 꽤 긴 소설이고,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된 이후까지의 성장기가 담겨있다. 자전적 소설인 만큼 지루한 부분도 없지 않고, 동어반복도 많다. 그래도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이 소설을 쓴 그녀의 ''용기'' 때문이었다. ''세월''이라는 소설 속 김형경은 상당히 나약하고 무기력하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향한 폭력에 스스로를 방치할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심리학에세이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유년시절 겪는 상실감, 특히 부모로부터의 상실감은 이후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니, 소설 속의 이야기도 아주 이해못할 것도 아니다. 하기사, 어느 누가 누군가가 살아온 세월을 다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아픔이나 슬픔 따위는 상대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느끼는 것이어서, 타인이 이해할 수 있다 없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인정했지만, 이 소설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하지만 김형경의 ''세월''에는 그 시기다운 미숙함까지 아우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읽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좀 더 솔직히 들여다 볼 수 있고, 읽은 후에는 여운이 남는다. 김형경의 다른 책,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과 ''사람풍경''도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