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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성장, 경쟁력 강화하는 것이 아직도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학교로부터 발전이라는 것이 인류의 진보요, 미래의 희망을 여는 길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최소한 12년의 교육과정을 통해 뇌 속 깊숙히 각인된 근거없는 믿음들은 하나의 도그마가 되어 우리의 가치판단을 지배하고 있다.
그 때문인가. 얼마전 여론조사의 결과에서도 여전히 한국인들은 경제적 성장이 가장 중요하며, 현 정권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보다는 경제살리기에 집중하여 줄 것을 바란다는 것이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누가 우리로 하여금 신앙에 가까운 맹목적 믿음을 갖게 하였는가. 도대체 무엇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 사고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하고 오로지 천편일류적인 이데올로기에 따르도록 하고 있는가.
아마도 이반 일리히의 물음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이반 일리히는 산업자본주의의 임노동 체계가 역사적 진보임에 반론을 제기한다. 오히려 산업자본주의는 인간생활의 자립과 자존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기계적 시스템에 강제편입시겼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바로 그림자 노동이 탄생한다. 임금노동을 체계를 유지시켜주는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림자 노동의 가장 일반적 형태 중 하나가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가사노동이다. 일리히는 가사를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특수성에 적합한 것이라고 정당화하는 일체의 논리에 반대하여, 이것이 산업사회의 특수한 양식이라고 말한다. 또한 남녀의 성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라고 주장한다. 전통사회에서 남녀는 생활의 자립과 자존을 지켜나가는 훌륭한 파트너였다. 그들은 함께 생활을 꾸려나갔고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역할 나눔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산업사회는 남성들을 임금노동자로 고용하고, 여성을 그들의 안정적인 노동을 뒷받침하는 존재로 전락시켰으며, 그저 남편의 수익을 가지고 소비하는 존재로, 존엄성을 상실한 노예적 존재로 만들었다. 이반 일리히는 좌파진영 조차도 이러한 비자본적 지불되지 않는 노동을 그저 재생산 노동 정도로 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페미니스트들도 그림자 노동을 임금노동으로 전환시키는 측면에만 집중하였고, 생활의 자립과 자존을 지키는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노동의 창조에는 주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왜인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것이지만 그림자 노동을 임금노동의 체계로 끌어들이는 순간 새로운 그림자 노동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의 주인이던 여성이 산업사회에서 주부라는 관습적 틀에 속박되고, 다시 임금노동으로 전환하는 사이에 그 빈공간은 새로운 그림자 노동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맞벌이 부부의 육아를 부모들이 책임지고 있는 오늘날의 일상적 생활패턴도 그 한 예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들이 진보이며 발전이라는 믿음과 환상이 왜 유지되고 있는가. 바로 그 지점에서 이반 일리히는 학교를 비판한다. 학교는 불필요한 오만가지까지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사회적 차별과 계급화에 기여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산업사회의 쳬계로 부터 일탈하는 것에 대한 내면적 공포를 형성시킨다. 그러고보면 학생들 또한 체제 순응적 임금노동자가 되기를 준비하는 그림자 노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리히가 말하는 생활의 자립과 자존을 지키는 그러한 삶을 창조할 수 있을까.... 그것은 유토피아인가. 아니다. 오히려 일리히는 유토피아를 반대한다. 탁월하다는 한두사람의 노력으로 그려진 유토피아의 상을 맹목적으로 따라가서는 스스로의 존엄을 회복하는 삶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나온 희망에 따라 새로운 탈주를 시작하자고 말한다. 산업사회의 격리체계의 희생자들-여성, 흑인, 무학자, 저개발국 사람들, 장애인, 중독자, 패배자들- 바로 산업사회의 어두은 그늘에 놓여 있는 이들이 오히려 우리에 의식적 저항의 길을 열어 줄 것이라고 , 새로운 빛을 주리라고 그는 믿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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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이반 일리치 책을 이따위로 번역하고도 출판할 용기를 가진 역자와 출판사가 있을 수 있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80년대 헤겔철학 번역서 이후로 이런 초딩 번역체로 일관된 수준미달의 책은 거의 처음 본다. 도저히 초등학교 문법 수준에도 미달하는 책을 읽어갈 인내심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학부1학년 생들이 나눠서 번역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설사 그렇다쳐도 박홍규씨가 제대로 감수만 했어도 이렇게 나올 수는 없다. 또 설사 감수까지 한게 그 모양이라도 출판사가 제대로 편집했다면 이렇게 나올 수는 없다. 역자와 출판사는 자신의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양심에 따라 책을 수거한 다음 책에 대한 애정과 역량을 가진 다른 역자를 물색하여 다시 재출간하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다. 읽기를 포기하고 동네 도서관에 기증하려고 했다가 도서관에 미안해서 포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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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산업생산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1970년대 초반 <학교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Energy and Equity>, <병원이 병을 만든다 Limits to Medicine, Medical Nemisis, and The Expropriation of Health >, <성장을 멈춰라 Tools for Conviviality>를 연속으로 발간했다. 그는 저작들을 발간하면서부 근대사회의 상품화, 산업화, 서비스화, 제도화, 근원적 독점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학습의 제도화에 대한 한계, 건강의 의료화에 대한 한계, 이동의 에너지화/수송화에 대한 한계, 위험의 보험제도화에 대한 한계, 노출된다 매체의 집중화에 대한 한계, 전문가의 손에 의한 사회사업이나 관리의 제도화를 용인하는 것에 대한 한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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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차이가 너무 나긴 하지만 일단 내용만 보자면 워낙에 옛날? 논문 5개의 엮음이라서 잘 알려진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그림자 노동'은 다 아는 이야기 '고유한 가치'는 국가공용언어의 발달에 대한 논문이고 그외의 논문도 옛날? 이야기입니다.
일리히의 글을 읽기 위해 꼭 이책을 읽어야 하는가의 문제에서는
"꼭... 그럴 필요까지는..."이라는 느낌입니다.
일리히의 다른 글을 읽고난 후 이 글을 읽으면 괜찮겠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