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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살아 남으라는 사회, 한국..
"알아서 살아 남으라는 사회, 한국.." 내용보기
운전을 하다 보면 간혹 '비보호좌회전' 표시를 보게 된다. 차량통행이 한적한 곳이라면 신호등을 켜놓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 의해 갑자기 차량통행이 분주해진다거나, 날씨가 고르지 못할 때는 난감한 경우가 많다. 분명 알아서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무작정 들이 밀자니 '비보호'라는 말이 걸리고, 기다리자니 좀처럼 뜸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좌회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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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하다 보면 간혹 '비보호좌회전' 표시를 보게 된다. 차량통행이 한적한 곳이라면 신호등을 켜놓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 의해 갑자기 차량통행이 분주해진다거나, 날씨가 고르지 못할 때는 난감한 경우가 많다. 분명 알아서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무작정 들이 밀자니 '비보호'라는 말이 걸리고, 기다리자니 좀처럼 뜸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좌회전을 하기 위해 직진하는 차들이 뜸해지기를 기다리면서 '비보호'라는 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비보호'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에 섬뜩했다는 기억이다. 말 그대로 비보호란 어떤 경우에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혹 좌회전하다가 사고가 난다면 모든 책임은 스스로 지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일상에서 무심코 읽고 지나친 말이지만,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를 생각하면 좌회전하겠다고 쉽사리 자동차 앞머리를 내밀 수가 없다.

 

그렇게 보면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대형사고들도 이와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스스로 자초한 사고가 아니라, 권력이, 자본이, 기득권자가 혹은 그들 모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충대충한 공사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사고이지만, 사고를 당한 일반인들은 마른하늘의 날벼락을 맞듯 아무런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당한다는 점이다. 지난 세월을 보면 한국사회는 유난히도 사고가 많았고, 일어났다 하면 대형참사로 이어졌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 훼리호 침몰, 충주 유람선화재, 대구지하철방화 참사, 그리고 지난해 세월호까지..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니, 자세히 알아본다면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정부나 언론의 대응은 언제나 똑 같았다. 정부는 성역 없는 수사를 외치며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언론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내세워 예견된 인재라고 호들갑을 떨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딴청을 피울게 분명하다. 이처럼 똑같은 시나리오는 우리를 어떤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정부와 언론의 대응을 알 수가 있는 전문가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사고에서 억울한 것은 유가족뿐이다. 정부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고, 언론과 국회는 잠시 시끄러울 뿐이고, 사람들은 금세 사고를 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구도 위험에서 나를 돌보지 않는 나라,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차량통행이 많은 네거리에서 '비보호좌회전'을 하는 것과 같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위험사회 한국의 민 낯을 말하면서 책의 제목을 [비보호좌회전]이라 했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위험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어떻게 하면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각종사고가 말해주듯 위험은 늘 우리와 함께했다. 위험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예측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아직도 살아있는 우리는 운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반복적으로 이런 위험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저자는 이런 위험을 키우는 주범은 자본주의적 특성이라고 단언한다. 1940년대 초 미국 LA에서 발생한 유해스모그는 1970년에는 도쿄, 1980년대 후반에는 서울, 그리고 지금은 베이징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은 각 나라가 자본주의 발전모델을 순차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적 특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던 각종사고,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는 위험을 증폭시키는 자본주의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출현에 그로 인한 이익과 편리함을 기대하지만, 기술과 과학은 자본주의 특성과 만나면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강조하는 가치, 이윤, 효율이라는 이름 앞에 안전을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자본은 위험을 감소시키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험을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청소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의 정치가들은 툭하면 규제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규제란 경험의 산물이다. 삶의 가치와 안전, 환경 등을 위해 제도적으로 사회가 약속한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윤과 효율을 위해서는 장애가 되는 것들이며, 그래서 정치인들은 경제활성화라는 명분아래 끊임없이 주장하고, 또 끊임없이 완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해 기업이 돈을 버는 행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두 치워버리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이윤과 효율이란 사회의 그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이윤과 효율이다. 그나마 이러한 위험도 평등하지가 않다. 자본주의는 위험을 만들고 키울 뿐만이 아니라, 그것의 분배까지도 불평등하게 한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은 위험을 적절하게 회피할만한 수단과 방법을 갖추지 못했기에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위험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까닭을 저자는, 위험의 수준을 소수의 정책결정권자나 이익집단이 이윤을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의로운 부의 분배를 넘어 정의로운 위험의 분배가 새로 고민해야 할 정치의제가 되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연대와 민주주의가 그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삶이 고되다는 이유로 눈 감아버리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불편하고 껄끄럽다는 이유로 치워버린 질문과 의문이 얼마나 많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자는 저자의 말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운에 기대어 위험사회를 살아갈래 하는 물음으로 들려온다. 비보호좌회전이란 표지판대신 신호등이 설치되는 그 날까지, 우리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연대해야만 할 것이다.

k*****1 2016.01.12. 신고 공감 5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