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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김진혁 피디는 알고 있다. 그가 EBS에 있을 때 만들었던 '지식채널e'는 내가 너무도 사랑한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그가 만든 '미야자와 겐지'편은 그 때까지 그저 '은하철도 999'의 원작 동화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겐지를 전혀 다르게 보게 만들었고 인간적인 매력마저 한없이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니 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유투브를 뒤져 지난 방송분까지 다 찾아 보게 되었다. 그 정도로 내게 '지식채널e'는 각별했다. 몰랐던 것을 알게 하고 아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했다. 앎의 범위가 넓어졌고 아는 것은 깊이가 더해졌다. 그러니 김진혁 pd가 광우병을 소재로 한 '17년 후'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사측에 의해 보복성 인사를 당했을 때는 나도 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돌아와 '다큐프라임'을 할 때도 사측은 그에게 똑같은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다. '반민특위'에 관한 것을 만들자 70%넘게 제작했는데도 제작 중단 시켜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11년간 일한 EBS를 떠나게 된다. 권력의 눈치를 너무 보는 방송국에서 더이상 할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런 그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의 손으로 빚어낸 프로그램을 다시 못 본다는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그가 믿을만한 언론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사실 요즘엔 그런 언론인이 서울에서 반딧불을 보는 것만큼이나 희소하기 때문이다. 언론을 권력의 시녀도 모자라서 그 시녀의 시종이라고 일컫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편파와 왜곡은 일상이고 진실보다는 선동에 더 주력한다. 사실 지금의 정부가 들어서고나서 나는 가장 먼저 TV를 없애버렸다. 더이상 불공정하고 거짓된 말에 스트레스를 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김진혁 PD가 다시 돌아와 또 다른 형식으로 말을 걸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것이 바로 '5분'이었다. 나는 그것을 책이 나오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난 이 책을 순전히 '김진혁'이라는 이름 때문에 읽게 된 것이다. ![]() 대표적인 독립 언론 '뉴스타파'. '5분'은 거기서 만들어진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어봤는데 소재와 담론이 더욱 거침없어진 듯 하다. 책은 모두 '생각, 하다'와 '경계, 짓다'라는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 각각 9개의 꼭지를 담고 있는데 형식은 먼저 '5분'의 방송 내용을 수록하고 뒤에 그것에 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소재를 꼭 한국의 현실과도 연결한다는 것으로 항상 꼭지의 마지막은 그것과 상관있는 한국의 현실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아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또한 바로 내가 처한 현실이기에 사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더구나 여기에 실린 내용들은 오늘의 사회를 마주하노라면 꼭 한 번은 부딪혔을 문제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의무급식 중단으로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던 복지, 교학사의 친일적 역사 교과서 발간으로 더욱 관심을 불러일으킨 식민 사관의 극복, 젊은 시나리오 작가인 최고은씨의 아사로 불거진 열악한 영화판 종사자들의 문제, '안녕하십니까'의 대자보로 일깨운 이 모든 불의와 그로인한 아픔 앞에서 그저 나만 안녕하면 다냐는 문제 제기에다 정당한 파업권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해고당한 노동자에게 47억을 배상하라는 거의 살인이나 다름없는 판결로 수많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자살을 가져왔던 상황 앞에서 같은 노동자로서 느끼는 참담함 그리고 최근 어제 6030원으로 결정난 최저임금까지. 볼 때마다 한 번은 궁금했고 더러는 고민했던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니 절로 사유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 우리가 보아야 할 곳으로 데리고 가는 이 책 '5분'은 이 방송이 일종의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있는 미국의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가 했던 방송 제목 그대로 'SEE IT NOW'라 할 수 있다. 이 책엔 '안녕들하십니까'란 대자보 전문이 실려 있는데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 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자기 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P.93) 당신의 대답은 무엇일까? 나는 결코 안녕하지 못하다. 나는 작년 세월호 이후로 눈물이 많아졌고 분노도 많아졌다. 지금 논다박은 4대강으로 인한 가뭄으로 쩍쩍 갈라지고 있다고 하는데 내 마음도 비슷하다. 사회를 바라볼수록 해갈을 위한 단비는 그 어디에서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상심으로 더욱 깊게 갈라지게 만드는 삽질만 가득하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그저 이곳을 떠나야 하는 생각뿐이다. 보도를 보니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자가 한 해만 7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젊은 세대의 70%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고도 한다. 이유는 사람의 가치를 전혀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란다. 나와 닮은 자들이 많다. 그만큼 여기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5분'을 읽어보면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나 최저임금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영화판 종사자들의 이야기는 사람의 가치를 하찮게 본다는 젊은 세대의 성토가 사실이며 언젠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언론이라도 공정해야 할텐데 공영방송이라는 KBS 사장이 선출되는 과정을 보노라면 그리고 권력자를 비판하는 인터넷 댓글마저 명예훼손으로 걸고 넘어지겠다고 나서는 지금의 방통위를 보노라면 공정에 대한 기대는 어림도 없는 전망이라는 것을 확신케 한다. 더구나 지금은 마치 대처의 이중국민 정책을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온갖 라벨링으로 연대해야 할 사람들을 사분오열시키고 국민마저 부화뇌동하고 있으니 더욱 어디서 희망의 끈을 찾을까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심정은 김진혁 PD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본다. 무엇보다 그는 직접 경험까지 한 터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울분의 토로가 아니다. 절망의 목록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럴수록 냉정한 눈으로 사태를 보려하며 정확히 문제를 짚으려 한다. 나는 그것을 특히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에서 느꼈는데 사실 누구나 알듯이 '국개론'이 유행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국개론'은 이 책에 나오는 '국가개조론'의 준말이 아니다. 가난한 이들이 정작 자신을 위하는 사람을 뽑지 못하고 오히려 해가 될 사람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하는, 그러니까 그들의 '계급배반투표'를 비아냥하는 말이 '국개론'이다. 실제로 2013년 대선 당시 저소득층의 60.5%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이를 두고 유행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 책엔 좀 다른 시각이 있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를 쓴 손낙구의 분석이 그랬다. 그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있었던 네 번의 선거를 분석했고 거기서 계급배반투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조사 결과 사람들은 이제껏 계급에 충실한 투표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계급배반투표가 아니라 투표할 이유를 주지못하는 정치 또는 정당 체제에 있다"(P. 201) 이걸 보고 내가 퍼뜩 한 생각은 과연 내가 무엇을 아느냐였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섣불리 단정부터 내린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모든 문제를 바라보지는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너무 감정에만 치우쳐 냉정히 살펴보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식채널e'가 그랬듯이 '5분'도 은연중 내게 설령 아는 것이라 해도 좀 더 깊이 내려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바닥까지 모조리 훑어본 뒤에 절망해도 늦지 않다면서... ![]() 이로써 '5분'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내게 증명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꼭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짚어주는 데다 어떤 땐 그저 선입견이나 감정으로 대했던 문제들마저 냉정하고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하니까. 그렇게 보다 바른 판단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되려는 책이 바로 '5분'이다. 이는 서문에 인용된 해직 언론인의 마음 그대로다. 행복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순간순간 행복한 때가 있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한 순간들이 삶을 지탱해주는 거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니다.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음에도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 듯 싶다. 행복은 그런 분들과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p. 7) 이 말에 따라 김진혁pd는 이 '5분'을 어떤 의미로 만들었는 지를 밝힌다. 어떤 대단한 목적이 아니라 그저,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득 발걸음을 멈추는 5분을 마련해주고 싶었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그런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P.8 5분은 하루의 입장에서 보자면 별 것 아니다. 하지만 언론 기자의 말대로 우리의 행복이 완벽한 하루에서 오지는 않는다. 때로 어떤 하루는 아주 즐거운 작은 순간 만으로도 행복하게 채색되기도 한다. 사람의 추억이라는 것도 보면 순간 아닌가. 그 순간이 삶 전체를 '그래도 살만했어.'라고 여기는 만족감을 낳기도 한다. 그건 불과 5분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행복이란 상황에서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순간의 축적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내가 옳은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위해 용기를 내었던 순간, 아무런 계산 없이 타인을 돕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었던 순간, 그렇게 세상에 굴하지 않고 내 인간다움을 증명했던 순간. 바로 그것들이 모여 행복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 같다. 행복은 그런 순간들이 모인 모자이크일 것이다.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더 커지는. 이 책은 보아야 할 지점들을 가리키고 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사유하도록 인도하여 그런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행위란 앎이 수반되어야 나올 수 있다. 오로지 실용을 위해 취득한 설익은 앎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허다한 지식인들처럼 굴종을 낳지만 그런 타산없이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다른 앎은 옳은 것은 선택할 베짱을 줄 수 있다. '5분'은 그런 베짱을 키우는데 좋은 안내자가 될 듯 하다. '5분'은 스스로 그런 베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즉 이 시대에 전혀 안녕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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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다. 어떤 정부가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 정부는 비애국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정부에 반대할 것을 요구한다." 내가 배운 민주주의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서로 옳고 그름을 토론을 통해 따지고 그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정치 방식이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여러가지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끝까지 설득하는 과정이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수없이 전화를 하고 연설하는 모습들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비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상황이 이러니 적당히 이해 좀 해주세요.'라고 인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이 정부는 그러한 민주주의 원칙을 잘 지키지 않는다. 하워드 진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런 정부는 비애국적이다. 정부와 국가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현재는 분명히 이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적어도 그들도 이런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다음 단계인 과거를 통제하려 한다. 역사 국정 교과서를 통해서. 아무리 현직 교사들과 연구자들이 반대를 해도 묵묵부답이다. 역사를 모르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는 이 중요한 역사 교과서를, 우리는 누가 편찬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화법과 행동 사이의 자가당착에 이제는 분노를 넘어 지쳐간다. 대단한 트레이너다. 다음 단계는 미래까지 통제하게 되리란 걸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이상화 시인의 명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960년대 이후 발생한 주류세력에 대한 반발기류에 권위가 흔들린 기업과 군은, 자신들의 힘에 누구도 다시는 도전하지 못하게끔 하려 들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단지 이러한 권력과 권위에 저항할 책임만 있는 게 아니라 저항정신의 유산을 다져나갈 책임도 있다. 직장이나 가정, 학교, 그 어디서든 평등주의와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 그리고 자주적 결정의 이상을 실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라는 단어 속에 담긴, 아직은 실현되지 못한 약속이다. 그것을 마침내 이루어내야 할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다." 위의 굵은 글씨는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우리'는 할 일이 참 많다. 그런데, 오늘 아침 참담한 뉴스를 보았다. 엄마 연합이라는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나와 그들의 '엄마'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살아 계실 때 사과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베는 충분히 사과를 했습니다.'따위의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의 엄마인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일이지만 저렇게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면서까지 해야 하나 씁쓸하기만 하다. 이 정부가 해 나가는 일의 목적을 생각하고 비판하지 않고 실체도 불분명한 '현실적'이라는 미명 아래 정부의 방침에 무조건 찬성하는 저 사람들은 대체 어느 정부의 시민일까. 어느 나라의 국민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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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질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적절한 아니 부적절한 상황적 조건만 형성된다면 어떤 인간이 저지른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들 모두가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썩은 사과가 썩은 상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썩은 상자가 썩은 사과를 만드는 것이다." - 프란츠 파농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억압적인 식민 통치에 대해 쌓인 분노를 프랑스인들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가족, 형제, 친구, 동료에게 분출하는 알제리인들을 보며 수직 폭력을 가하는 억압의 근원은 은폐되고 수평적 폭력이 사회적 약자를 사이에서 돌고 도는 현상을 목격했다. 알제리인들의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라 수평적 폭력이 만연할 수 밖에 없는 모순적인 구조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알제리의 식민지배자들은 알제리의 범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을 바탕으로 '알제리인은 태생이 난폭하고 어리석은 종족'이라고 매도했다. 그러나 파농은 프랑스인이 아닌 동족을 향하는 알제리의 범죄가 다른 나라에서 알제리인들이 벌이는 범죄 형태와 매우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식민지인들이 서로를 증오하고 잔인한 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심리 기제를 밝히고, 그 자체를 식민지 상황의 직접적인 산물로 규정했다. "식민지 상황에서 원주민은 자기들끼리 싸운다. 그들은 서로를 은폐막이로 이용하며, 민족의 적을 이웃이 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역할을 한다. 하루 열여섯 시간 노동이 끝나고 지친 원주민은 자리에 쓰러져 눕지만, 천으로 구획된 방의 맞은편에서 아이가 울어 잠을 방해한다. 마침 그 아이도 꼬마 알제리인이다. 원주민은 상점으로 가서 밀가루 약간과 기름 몇 방울이라도 얻으려 하지만, 이미 상점 주인에게 수백 프랑의 빚이 있는 터라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증오심이 솟구치고 당장이라도 상점 주인을 죽일 듯한 살의가 번뜩인다. 상점 주인 역시 알제리인이다. 몇 주일 동안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원주민은 어느 날 '세금'을 내라며 닦달하는 관리를 만난다. 유럽인 행정관을 증오할 만한 호사도 누릴 수 없는 그는 증오의 대상을 그 관리에게로 돌리는데, 관리 역시 알제리인이다."(p213~214)
21세기의 대한민국에도 이런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감히 공감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상상을 뛰어넘는 패륜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배상금 때문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단원고에 세월호가 대박을 안겨준 셈이다.", "왜 하필 또래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느냐." 는 사람들. 답답한 심정으로 정부의 독단적인 위안부 협상 타결을 바라보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에게 "자발적으로 위안부로 나섰다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혀를 차고 분노하고 또 일각에서는 공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날의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그 사고가 일어나도록 방관하고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는 근원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 모양이다.
위의 글은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인용한 것이다. 알제리의 경우를 보고 쓴 책이지만 이 글 속에서 유영철이, 강호순이, 익명의 가면을 쓴채 온라인상에서 상대를 갈기갈기 찢는 댓글들이, 여성이 남성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보이는 증오가 읽히지는 않는지. 이를 뒷받침하듯 검찰에 기소된 강력 범죄(살인, 강도, 폭행 등)자들의 절반 정도가 우발적 범행이었다. 해가 갈수록 더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혹자는 파편화, 개인화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상대방에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식민 지배와 군사정권이 낳은 권위주의적 시스템, 오만과 모멸의 사회구조 안에서 높아지는 학업 스트레스, 직장 내 경쟁, 가정불화, 빈곤, 사회적 안전장치 부재로 인한 불안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하나같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의 해결책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미루는 것, 파농이 말했던 수직적 폭력의 은폐 아닌가. 프랑스 식민 지배 하 알제리와의 기시감이 가시지 않는다. 우리의 식민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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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는데도 꾹 참고 담담하게 말하는 사람이 무섭다. 화가 나는 이유가 뭔지, 그 원인을 어떻게 해소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무섭다고 하겠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무서운 책이다. 흔히들 시대정신을 말한다. 우리 시대에 남은 건 돈과 욕망의 배설물뿐이고 시대를 정의할만한 정신적인 배경이 없다고. 언뜻 수긍이 가다가도 왠지 지금 현실이 그러려니 하고 니 목구멍에 들어갈 밥 한톨, 가족들의 배를 채워줄 생활비 걱정이나 하라는 이야기로 들려서 께름찍하다. 실종된 시대정신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볼 일이다. 다양하게 우리 시대의 문제를 분석하고 배경에 깔려있는 역사적이면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왜 우리가 분노하게 되는지 이유까지 설명해준다. 화가 나는 이유를 모르면 홧병이 생기지만.. 분노의 연원을 따라가다보면 맞서 싸울 힘이 생기기도 한다. 아는게 힘이라는 이야기는 아마 이 책에 해당되는 이야기일것이다. 올바른 뉴스와 여론이 실종된 시대, 시대 정신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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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을 찾으러 갔다가 뉴스타파에서 기획했다는 것을 보고 읽게 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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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단발성 기사거리에 휩쓸려 다니는 여론 아닌 여론에 안타까울땐 조금 진지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찾게 되는데, 기존의 지식 e 시리즈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식 e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김진혁 PD가 EBS를 나온 후의 지식 e 시리즈는 뭔가 농도도 옅어지고 5분 영상의 효과도 현저히 떨어진 느낌을 받고 있다. 다루는 주제 선정의 한계가 원인일 수도 있고, 영상/음악 편집 능력 부족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이 '5분'은 뉴스타파를 통해 활동하는 김진혁의 온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고, 책이나 영상 모두 개인적인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같은 현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다시 생각하며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 신민사관 (역사를 잊은 민족) 정치 - 대자보 (안녕하십니까) 노동3권, 파업의 불법 여부, 손해배상, 가압류, 노란 봉투 프로젝트의 부작용?? (4만 7000원) 예술인의 근로조건 (꿈의 공장 속 '노동자'들) 최저임금 (다메) -실질임금이 나날이 줄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내수 부진과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는 현 경제상황을 타개할 방안이 노동자의 임금 인상뿐이라는 정책적 판단과 함께, 노조의 영향력이 줄어든 오늘날 기업을 압박할 만한 대상이 국가뿐이라는 씁쓸한 현실이 전제돼 있다. -막상 세대갈등이란 걸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상 20대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이다. 세대별로 상호 대등하게 갈등하는 게 아니라 20대를 제외한 나머지 윗세대가 20대를 일방적으로 훈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략) 그야말로 '꼰대'스러운 방식을 윗세대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159쪽) -사회 구성원 상호 간에 발생하는 폭력(그것이 물리적 폭력이든 인식의 폭력이든) 중 상당수는 사실 구성원 전체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회적 압력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그저 구성원 간의 갈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특히 세대론처럼 그럴듯한 '경계짓기'로 표현될 땐 더욱 그렇다. 처참한 KBS의 수난 (사라진 목소리와 공영방송) -"모든 사람이 정치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정'이란 게 뭔지 이해하고 권력자의 애완동물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정치적인 색깔이나 출신이 문제가 될 건 없다고 본다." -그렉 다이크 -방송에 대한 공적 가이드라인은 방송인을 제약하기보다는 자유롭게 해야 한다. (영국방송연구소가 발표한 '공영방송의 여덟가지 원칙' 중 여덟 번째)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 -유한계급이 자기 이익을 보존하고자 보수적 성향을 띠는 데 반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생존투쟁에 모조리 쏟아부어야 하는 하층계급은 내일을 생각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다."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그 자체로 개혁을 막는 직접적인 효과가 있음을 증거하는 이유다. 다양한 제도하에서 발생하는 수평 폭력. 분노의 근원을 보지 못하는 문제. 프란츠 파농이 제시한 개념. (썩은 상자와 수평 폭력) 하워드 진. 국가모독죄를 교묘하게 대체하게 된 명예훼손죄. (모독 vs. 모독) -"미국 민중사"에 따르면 미국사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주창했던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의 확장사가 아니라 정치, 경제 엘리트들이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과정이며, 상황은 여젼히 진행형이다. 그는 이러한 흐름을 바꿀 힘이 민중에 있다고 보았다. -"대통령과 정부가 해명 대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국가 권력에 대한 정당한 감시활동을 휘축시킬 수 있다"면서 "사라진 국가모독죄를 명예훼손이 대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한 이야기 (전시작전통제권과 세 명의 대통령) 이승만이 넘긴 것을 노태우, 노무현을 거쳐 받아 오기로 했던 것을, 이명박, 박근혜가 도로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 아예 전작권 전환을 '시기'가 아닌 '조건'을 갖췄을 때 하는 것으로 바꿨는데, 이는 "전작권 예기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아예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이라 풀이된단다. 꼰대 vs. 선배 -한영인은 이미 폐기된 "허구적 믿음을 잣대로 젊은 세대를 분석하는 안일한 정신"이 '요즘 애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꼰대'를 양산한다고 보고, 세대론에 입각한 청년론의 무용함을 받아들임으로써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구했다. 에필로그 주인의 자격 -"우리의 세금을 거두어 쓰며 지배하는 이들을 통제하기에 지금의 대의제는 너무나 취약하다.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만들 방법과 수단을 찾아내야 한다." - 힐러리 웨인라이트, 사회학자 -연대책임의식이 결여된 사회. (중략) 각각의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로 파편화된다. 결국, 선거 때가 아니면 사회 구성원들의 문제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지는 국회. 이런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까지도 자기 탓이라고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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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눈을 뜨는 과정 5분! 지식채널 e시리즈때부터 봐왔지만 그 많은 메시지들을 5분에 압축한다는 자체가 정말 매력적인 컨텐츠라고 생각해왔다. 5분은 철저히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책이다. 책은 '이게 바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라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식을 채워가는 것은 뿌듯하고 성장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현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은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해야 하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세상을 향한 窓같은 존재가 바로 '5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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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e에서의 못다한 얘기의 감동이 배가됩니다. 차마 못했던 말들, 차마 안하는 말들은 아직 세상에 많은 것 같습니다. 김pd님 계속 파이팅하시고, 어두운 곳을 비추는 밝은 등불이 되주세요. '5분'도 시리즈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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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생각에 힘을 주는 좋은 책을 접하여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생각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세상을 살아내는 것. 온전히 혼자만의 것은 아닌 것이므로 자신의 자유와 함께 연대의식을 가져야한다. 생각하기와 연대하기의 책.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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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지식채널e 시리즈가 몇권까지 나왔나 확인해보다가 마침 한때 해당 프로그램 담당 PD였던 분이 신작을 내셨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책 제목은 기존 시리즈와 다르지만(출판사가 다르니) 구성형태는 비슷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아직 뜯어보지는 않았지만 뒤에 책의 내용을 담은 영상이 담긴 DVD가 붙어있다는 점. 담긴 영상리스트를 보니 이 책에 담긴 내용과 동일해보이는데 영상이 만들어지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펴낸것이 아닌가 싶다. 뉴스타파 기획이라는 문구를 보니 여기서 먼저 공개된 영상이려나? 아, 이제보니 맞다. (책날개 저자 소개부분에 쓰여있다.) 295페이지 정도되는 분량이지만 이미지도 많고 글 자체가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특정 사건에 대해 조금더 심도있게 들어간 부분이나 생각꺼리를 던져주었던 문장들은 한번 옮겨써보면서 읽어나갔던 관계로 조금 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5분 :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부제처럼 정치사회적 이슈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드는 감정은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감과 조금 더 깨인 시민의식을 가져야 겠다는 마음가짐, 그리고 현 정부에 대한 어이없음이었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이 하는 짓이라는게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다못해 나라를 위하는 것도 아닌 자신이 속한 집단의 수장을 위하는 짓거리라니. 상식적이지 않은 제도-이를테면 공영방송이라는 KBS사장을 선임하는 제도 같은-가 애초에 만들어진 것도 이해가 안되는데 그걸 개선하고자하는 시도조차 막히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나같은 사람은 그렇다치고 개선을 추진했다가 좌절한 정치인은 얼마나 어이없고 울분이 터졌을까. 노동조합의 정당한 권리를 손해배상청구라는 얼토당토 않은 고소로 억누르려는 시도나 그걸 또 받아들이는 법원의 판사들은 대체 생각이라는게, 상식이라는게 있는 사람들인지도 궁금해졌다. 도대체가 먹고 살자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수십 수백억원을 물어내라는 판결을 내리는게 그들을 자살로 내모는게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보면 이것도 사법살인이 아닐까. 요즘 현대사를 다룬 책에서 정권에 빌붙었던 검사나 판사의 이름을 기억하자며 실명이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이런 판결을 내린 판사의 이름도 공개해서 기억해두어야 하지 않을런지. 도대체가 양심이라는게 있는 생명체인지가 궁금해졌다. 최대한 내재적 접근을 바탕으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보려해도 불가능한 일이더라는. 나또한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연대의식이라는 화두를 던지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감만큼은 널리 퍼뜨려 정치인들이 국민을 무서워 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고픈 마음이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서울여대 축제 사건같은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