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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미련된 야망을 위해... 누구든 미련은 남는가 보다. 흔적과 함께 지워지질 않은 아쉬움으로... 그것도 살아가며 아니라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바보스런 미련은 가끔 다가선다. 자주하는 얘기다. 우린 무엇을 소원한들 전부를 갖을수는 없다. 그리고 신은 한꺼번에 두가지를 선사하지 않은것이 행복이다. 만폭인 달처럼 삶은 지고 또 뜨는것이고 지나며 자신을 회고하는 것이다. 그래! 가장 진실스러울때 미련이라는 이름이 생각나곤 한다. 오늘처럼 한겨울의 세찬바람이 나의 곁을 스치울때 말이다. 처음부터 삶을 견지할 능력이 있다면 미래를 왜 허망으로 살까? 그렇게 낯설은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익숙하여 질 때 우린 성숙한 인생을 배우고 그리고 곧 미련을 배운다. 나도 한때 명예와 부를 위해 세상과 본연을 부정한채 지독한 걸음을 내딛을 때가 있었다. 그건 그때 욕망이라 일컬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건 이기였다. 수많은 희생을 치루고 겨우 얻은 안위는 부질없는 허망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삶이란 순리적으로 살아야 함이 서로의 희생을 알아차릴수있는 잣대인 것을.. 서로 정점을 향하여 질주하다 보면 다시는 재회 할수 없는 평행선으로 흔적 없는 회한만을 남긴다. 그러나 이기와 욕망 둘중 하나만이라도 이루었다면 그 또한 이유를 합리화 할수는 있다. 무엇인들 자신의 본능의 질주를 막을수 있는 허울이 있었겠는가? 그건 그 자리에 머물 운명의 자취인것이고 난 바람에 나붓끼는 홀씨인것 뿐이었던 걸.. 지독함이란 고질적 진실에 가깝다. 그러나 지독함은 한없는 여운과 회한을 남긴다. 미련도 함께...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 우리를 본연의 고리에 머물게 만든다. 이미 흔적이 지워진 채 쓰러져 내뒹구는 술병처럼... 슬픈 고뇌의 쓴잔을 마신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우린 가끔 고리의 마디에 걸친다. 미련이라는 것은 당시 욕망보다 더욱 중요한 것도 있으나 자신의 이상에 이기가 접목될때 남자는 한없는 질주를 느낀다. 타인은 이해하기 힘이 든다. 내가 알기는 그것도 모르는 이들도 태반이며 좋은 교만으로 자신을 피력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그것이 옳은 것일 수 있으나 가장 이기적이던지 가장 용기없는 남자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렇다. 겨우 얻은 나만의 안위가 초라하다. 그러나 그마저 나를 재촉치 않았던들 한없는 초라함에 나의 상실이 나를 잠식했을 것이다. 전부를 얻을 수 없던 것처럼.... 미련도 남는다. 지금 나도 절반의 회한으로 겨우 자신을 명목해 가고 있다. 한땐 미련으로 후회로 회한으로.. 그러나 잃은것 만큼 채운 자신의 용기는 지금도 이글거린다. 부질없지만 절반의 혼신으로 살아감도 난 감사하다. 그것은 나의 희망의 절반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미련은 우릴 가끔 후회스럽게 하지만 절반은 나를 위안을 주곤 한다. 그것이 전부라 믿고 오랜 추억의 흔적을 들추어본다. 미완인 자신과 세상에 덧없는 미련을 갖는것은 이기라는 것을 알도록.. 우린 하나 하나 껍질을 벗어 성숙의 나래로 달려가는 것이다. 본연으로.... 미련을 뒤로 한 채 말이다. 전부를 갖을 욕망을 어리석음으로 덮은 채 익숙한 길을 걷는가 보다. 욕망도 용기도 없는 너그러움은 영원히 자신을 대변할 교만이 못된다. 그렇게 남아(男兒)는 살아감이 힘들때도 많은 것이다. 지나친 미련을 회상하며.. 울먹이지도 못하는 미련을 두고 南兒는 그렇게 세월을 지우려 노력한다. 아무일 없듯 미련을 뒤로한 회한을 회피하려 노력하며 오늘을 산다. 2013년의 막차가 떠나려한다. 세찬 겨울바람이 미련을 남기고 떠나려한다 세상과 본연을 부정하며 내 청춘의 미련된 야망을 위해 질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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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권의 페이지가 어떻건간에 일단 심리적으로 글로 된건 3권(~4권), 만화로 된건 13권 이상을 못가는 내가 안팽개치고 놔두는 것은, 한 나라를 두고 제패하려는 이 역사상 인물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거나와 (전투 직전에 왜 내가 두근구근한지) 참으로 영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두개의 눈으로 사물을 보라. 하나는 내 이익의 눈이요, 또 하나는 상대의 욕망의 눈이다. 무릇 일이란, 두 눈의 촛점이 맞춰져야 성사된다....
자신이 아닌 타인이 A라고 말했을때 그건 그에겐 A인 것이고, 내가 보기에 아무리 a라도, 타인을 단문이나 몇단어로 단정짓거나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서로간에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대체로 캐리커쳐된 특성을 가지고 말을 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상대의 희화화를 바탕에 까는 유머이다. 유머의 특성상 그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것일 뿐, 그 유머에 사용된 단정적인 캐리커쳐를 가지고 일상의 것들을 판단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또한, 타인에 대해 어떤 것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 들어줄 일은 만무하다. 가끔 막무가내인 사람들을 보면, 왜 '사회생활이나 조직생활'의 쓴맛을 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지 알 것 같다.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는 거친 오르막길이지만 무사안일은 미끄러운 내리막길이다
개인이 사회와 다른 방향의 분위기로 나간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 올해 느낀 것이다. 외환위기때만해도 뭐 누가보기에 철딱서니없게 혼자 룰루랄라 거렸건만, 살다보니 나와는 먼 정치같은 것들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도저히 그냥 무관심하게 살기는 좀 힘들지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하간, 올해의 슬럼프가 간신히 달래져서 의욕을 불태우던 마당에 추석이후 다시 다운되어버렸다. 책도 손에 안잡히는 이때에 잠시 주춤하던 [야망 패자]가 손에 다시 걸렸는데, 책에서 나오는 위의 구절이 90도 이상의 둔각을 유지하던 나의 자세를 점점 더 바로잡아준다. 감상적인거 하나도 없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이리 울컥하던지.
1부에선 우에스기 겐신 vs 다케다 신겐에서 전자 쪽으로 호감이 갔지만, 2부에선 오히려 오다 노부나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가와 이에야스),vs 다케다 신겐에선 오히려 하이라이트인 전자보단 후자에게 좀 더 애정이 쏠린다.
적이 될만한 여지를 가진다면 여자고 아이고 상관없이 다 죽여버렸기에 잔인한 평을 듣는게(배워서 더 잔인해진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닌가) 오다 노부나가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에 비하면 목검을 써서 상대방을 죽이지않으려 했던 득도이후의 미야모도 무사시가 선해보이지않나, 워낙에 자라면서부터 모든 조건들이 호의적인데 반해, 다케다 신겐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의 영주 아들에서 출발하여 20여년을 버틴뒤에 맞대결을 뜨는 것도, 게다가 가능하면 희생없이 전투를 하려는 다케다 신겐의 여우같음도 오히려 더 대단하다.
그닥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농사도 짓고 싸움도 하려는 다케다 신겐의 병사들이 오히려 농병분리된 오다 노부나가의 병사보다 3배 정도 더 쎄다는 것, 한파에 더 고생을 한 것이 오다쪽의 겨울 전투에서 더 유리한 것을 보면, 그 어떤 고생도 스스로가 잘만 이용한다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전투에서의 100%의 승리를 경계하고 언제나 그 이하로 떨어질 수 있음을 겸허하게 경계하는 모습 또한 다케다 신겐에서도, 그리고 차후 최후의 제패자가 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모습에서 발견하는 것 또한 배울만 하다. 작품속 무사들은 승리가 아니라 실패에서 성장을 한다. 게다가 이를 두고두고 곱씹는다. 그리고, priority에 충실하다. 사사로운 감정보다도 무엇이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가! 그걸 항상 염두에 둔다 (그럼에도 사고방식이 이해불가인 부분이, 얼마나 많은 영토나 중요한 자원이 많냐보다는, 천황쪽으로 진출해서 그 패권을 잡아야만 모든 것의 지배자가 된다는 그 상징적인 의미에 목숨을 건다는거).
다케다 신겐을 적으로 삼던 세이노스케가 40이 되어서 이제 자신의 모습에서 다케다 신겐의 모습을 발견하고 쓴 웃음을 짓는 장면 또한 의미심장하다 (딴말로, 그래서 사람들이 누군가 미워하면 그 상대방을 닮는 아이를 낳는다 하던가? 애정보다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증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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