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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어야할 힘든데 또 좋은 이유
"고전을 읽어야할 힘든데 또 좋은 이유" 내용보기
P. 4 “사상을 향한 요청이 반드시 ‘한국사상’으로 향할 이유가 되는지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사상이라고 하면 플라톤 같은 유구한 이름으로 시작하여 무수히 재해석된 쟁쟁한 인물과 계보로 가득한 서구사상을 으레 떠올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위기가 행성 전체에 걸친 것이라면 늘 그래왔듯 서구의 누군가가 자기네 사상전통에 기대 무언가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그런
"고전을 읽어야할 힘든데 또 좋은 이유" 내용보기


P. 4 “사상을 향한 요청이 반드시 ‘한국사상’으로 향할 이유가 되는지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사상이라고 하면 플라톤 같은 유구한 이름으로 시작하여 무수히 재해석된 쟁쟁한 인물과 계보로 가득한 서구사상을 으레 떠올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위기가 행성 전체에 걸친 것이라면 늘 그래왔듯 서구의 누군가가 자기네 사상전통에 기대 무언가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그런 것들을 찾아보는 편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사실 오래된 습관이다. 더욱이 ‘한국사상’이라는 표현 자체가 많은 독자들에게 꽤 낯설게 느껴질 법하다. (...)


하지만 이런 사정이야말로 창비 한국사상선 발간의 또 다른 동력이다.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구축한 단단한 상호참조체계를 바탕으로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인식의 ‘전회turn’라는 형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P. 6 “중요한 것은 이제 한국적인 것이 무시 못 할 세계적 발언권을 획득하면서 단순히 어떻게 들리게 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말할까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점이다.”


한국사나 고전문학과 아무 인연도 없는 내가 ⟪한국사상선⟫을 ‘읽을 결심’한 이야기부터 풀어보자. 시작은 그저 즉흥적인 우연이었다. 내가 매우 존경하고 또 사랑하는, 이십일세기 간서치인 어떤 어르신께서 ⟪목민심서⟫를 인생 책 중 하나로 말씀하시는 것을 옆에서 주워들은 것이 계기. 최고로 좋아하는 어르신인만큼 ‘그 인생책, 나도 읽어야 하나, 재미는 없을 텐데’라는 경박한 고민을 좀 했다. 그래도 읽을 거면 제대로 읽어보자고 ⟪역주 목민심서⟫를 전권 사서 완독하는 책모임을 작년 초 만들고 매듭지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읽기는 다 읽었다는 말이다(축하해주세요, 출판사 창비...). 충격적일 만큼 앞뒤 지식도 정보도 없이 ⟪역주 목민심서⟫를 이 악물고 읽는 봄의 말미, 운좋게 들은 조언으로 한 여름엔 다산연구회에서 소개해주신 박사님이과 다산 책을 쓰신 교수님 제자분께 강의 들며 이질적인 한국 고전을 읽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솔직히 다 읽어도 그 내용이 제대로 뇌리 들어오고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물 들어오는 김에 노 젓는다고 어렵게 읽는 ⟪역주 목민심서⟫로 독후감대회에 독후감 써서 냈다. 어쩐지 다산 정약용께는 죄송스럽지만 그 독후감 당당히 상도 받았다, 무려 2등. 아무튼⟪역주 목민심서⟫는 간신히 완독했으니까 당분간 고전 읽기는 얼씬도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얼떨결에 ⟪열하일기⟫완역본을 읽을 기회가 생겨서 또 다 읽었다. 이건 진짜 재미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과 백탑파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까 임진왜란이란 병자호란 같이 십칠세기 조선을 깊게 상처입힌 두 양란, 존주양이尊周攘夷나 조선중화주의에도 관심 생겼다. 그렇게 하다보니 속도는 느려도 틈틈이 조선의 고전이나 역사에 점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런 와중에 창비의 ⟪한국사상선⟫ 2차 출간 소식을 SNS에서 봤다. 어떤 책을 골라서 독서모임 서평단을 신청해야 할지 즐거운 고민이 될 정도로 반가웠다.


권수로는 많지는 않아도 한국고전과 역사 책을 읽어나가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내 안에 막연하게 박혀있던 조선시대에 대한 선입견들이었다. 예를 들면 조선은 중기 이후 격화된 당쟁으로 사대부들의 정신성은 매우 경직돼 있고 편협할 것이다, 조선은 성리학 사회라서 그저 진지하고 융통성이 없고 굉장히 재미없는 사회였다 등등.

(책 내용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를 자꾸 해서 좀 그렇지만) 원리원칙주의자에 융통성 없어보이는 다산 정약용의 ⟪역주 목민심서⟫가 내가 본격적이고 자발적으로 만난 조선의 첫 모습이라, 이런 선입견이 더 강화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다산의 시대에서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 조금씩 알아가는 조선은 사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유연하며 때론 재미난 모습들도 가지고 있었다. 놀라웠다. 십팔세기 조선 저잣거리에 이단 학문인 서교가 물밀 듯 전파되어자생적으로 자리잡다니. 그 원칙주의자 다산께서도 한때는 서교에 관심 많았고, 부모 신주를 불태운 진산의 권상연과 윤지충에 대해 만인지상의 바로 아래 재상인 채제공은 “대개 사람은 이전의 자기행위를 스스로 부끄럽게 여긴다면 사람답지 못하더라도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P. 332)이라며 엄벌 대신 기회를 주고 자신의 책임을 물어달라는 태도를 견지하기도 했다니.  순간 순간의 선택 향방에 따라 조선 역시 우리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느끼는 새로운 문화유입이 빠르고 변화의 역동성이 있는 나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실제 진산사건 두 주모자들은 이단의 대표성으로 말미암아 처형되었고, 정학을 중시했지만 서얼을 관직에 등용시키고 당파 다툼을 견제하며 개혁정책을 펼쳤던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한 것은 거스를 수 없었던 역사의 안타까운 이면이지만.


병렬독서로 읽고 있는 조선의 당쟁사에서 학문적 견해 차이는 표면적 이유일 뿐, 당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는 혈전을 치룬다. 그런데 전쟁 중에서도 격화되는 당쟁의 한 가운데 훗날 남인이 되는 동인 유성룡과 서인 이항복은 학통도 가문의 규모도 왜군의 북상을 파해하는 의견 차이도 있지만(P. 172) 평생 존중하고 협력하여 전쟁이라는 국가비상사태를 극복한다(P. 28). 조선이 아닌 이십일세기 대한민국 정치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협치다. 지난 12. 4 내란 이후 여의도국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더욱 놀랍지 않나?

그리고 십팔세기의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허생전⟫을 비로소 읽으며 그가 통렬하게 비판한 사대부의 노동관과 허위의식에 감탄했는데, 이미 백오십년 전 백사 이항복이 양반도 노동해야 마땅한데 부끄러워한다며 비판한 글을 읽으면서 또 얼마나 놀라웠는지!


P. 168 “나는 소싯적에 향방(向方)에 어두워서 오직 읊조리는 것으로 일을 삼다가 늦게야 조금 뉘우칠 줄을 알아서, 10년 동안 글을 읽고 나서야 천지(天地)의 생물(生物)하는 마음과 성인(聖人)의 본말(本末)에 대한 교훈을 조금 엿보게 되었네. 그래서 일상 우리 나라 유속(流俗)의 폐단에 대하여 슬프게 여겨왔으나, 불행히도 늙어버렸는지라, 나는 몸소 농사짓지 못하고 아내는 길쌈도 하지 못하네. 또한 학문에 스스로 힘쓰지 못하여 평소의 뜻을 저버리고 있소. 내가 걸어온 실상을 조용히 살펴보니 문도 아니고 무도 아니고, 농업도 상업도 하지 않았으니, 공연히 천지 사이에 한낱 커다란 좀벌레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오.”

-⟪백사집》권2, [여최정자유해서與崔正字有海書]36-


더군다나 박지원은 전傳의 형식으로, 제3자의 입을 빌어서 사대부와 양반의 내부 비판을 하는데 그쳤다면 이항복은 “저 자신이 실천하지 못하면서 시속의 폐단을 공격하는 데만 부지런하니 또 어떻게 시속을 깨우칠 수 있겠소. 말이 그럴 듯 해도 실행하지 않으면 말을 않는 것만 못하다오.”(P.168)라며 더욱 직접적인 자기반성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박지원의 ⟪민옹전⟫에 나오는 ‘황충蝗蟲’이라는 신선한 비유도 이미 선대 조상들에게 빌려온 것일 수도 있다니!


임진왜란 당시, 명이 왜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조선 왕을 교체하거나 조선을 두세 등분으로 분할해서 통치해야한다는 위학증의 문서 앞에 선위할 생각부터 하는 선조에게 “우리가 당면한 국난은 어느 누구에게 의존할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한다”(P. 45)는 전략적 사고를 한 서애 유성룡의 존재가 어둠 속 광명 같았다. 전후 수습대책을 위해 호조가 1년 경비의 양을 시급히 헤아려야하고, 피해가 시급한 지방인 경기도민에게 소금 배부하여 구휼하고 둔전을 실시하라는 서애의 [조진시사계 條陳時事啓]( ), 왜란 당시 왜적으로부터 점령당한 영남 공물까지 대신 징수하고 명군 요구까지 응해야해서 초토화된 호남민들을 위해 수군 수 조정하고 바닷가백성의 고초를 감안해야한다는 백사의 [경자 이도체찰사 재전라도차 庚子 以都體察使 在全羅道箚]은 사백년 후 지금 읽어도 전쟁 피해 속 백성들의 고통이 느껴져서 절절하다. 더군다나 백사는 거듭해서 백성들의 공납이 과도하며 불합리하다는 것을 호소한다.


P. 214 “팔도의 공납 문제는 전란 전의 평상시에도 이미 고르지 못하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일이 워낙 중대하여 쉽게 바로잡지 못했고, 전란을 겪은 이후로 해당 관부에서 헤아려 처음으로 개정해서 임시 규정을 세웠습니다.(...) 반드시 먼저 경계經界(농지를 측정하여 적절하게 나누는 것)를 바르게 하여 재정이 축적된 다음에라야 군사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백성이 안정되지 못해 들판이 묵어 황량한 상태이니, 양전量田은 가벼이 실시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담당 부서로 하여금 의당 적절한 사목事目을 만들어서 감사에게 몸소 지방의 수령들을 감독해서 시기전時起田(현재 경작하는 땅)의 수치대로 각기 측정을 해서 감사가 중앙에 보고하도록 하고, 이를 취합하여 조정에 보고하게 합니다. 그리고 재상경차관災傷敬差官(흉년이 든 해에 중앙에서 재해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하는 관원)을 파견할 때에 만일 잘못이 발견되면 그 관장에게는 중벌을 내리도록 합니다. 매년 이와 같이 하면 경계가 점차 바르게 되고 세입도 자연히 넉넉해질 것입니다.”

백사집별집⟫ 1, [진시무기획일계陳試務畫一啓 경자庚子 구월九月 모일某日]


백사의 절절한 주장은 한 세대 뒤 잠곡 김육의 [음성현진폐소陰城縣陳弊疏]에서 또 한번 만난다. 존경하는 어르신께서 “요즘으로 치면 운동권 대학생 출신” 같다고 표현하신, 광해군 때 폐모론 주장한 영의정 정인홍을 처벌하라고 주장했던 성균관 학생이었던 잠곡. 그는 십여년 간 시골에서 은거하며 숯을 구워파는 노동에 직접 종사했고 인조반정 후 등과했고 조선 사행단으로 북경에 머무를 때 병자호란(1636)이 일어나서 명에서 고국 전쟁 소식 들으며 조선-명 간의 마지막 사행단이 되기도 하는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P, 258 “공부貢賦를 납부하는 것은 백성이 아무리 집이 파산을 하더라도 마련해낼 것입니다. 그런데 궐번闕番의 댓가(역에 동원되는 것을 번이라고 하는데 참여하지 못하면 궐번. 궐번을 돈으로 납부하는 것을 말한다)에 이르러서는 죽도록 원통한 노릇입니다. 본 고을의 상번 군사는 모두 11명입니다. 그중에 남아있는 자는 4명 뿐이고, 그 나머지 7명은 도망갔거나 사망하여 절호絶戶가 된 지 이미 4, 5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병조에서 점고點考하여 매번 원액대로 바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일족과 이웃에 나누어서 가포價布(역의 댓가로 내는 포)를 징수하고 있으니, 일족이나 이웃이 없는 경우에는 전 고을의 민결에서 징수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고용해 세울 경우 1명이 2개월의 번을 서는데 대한 댓가가 급등하여 20필에 이르고 있습니다. 7명의 댓가는 140필이 됩니다. 매번 이와 같으니 백성이 어떻게 목숨을 지탱하겠습니까. ”


P. 260 “또 하나의 의견이 있습니다. 고을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실로 균일하게 해야 마땅합니다. (...) 군현이란 분명히 합쳐졌다가 다시 나누어지기도 하고, 나누어졌다가 다시 합쳐지기도 합니다. 변통하는 방도는 예로부터 있었습니다. 본 고을은 형편없이 쇠잔한 까닭에 일찍이 청안淸安과 합쳐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중로中路와 대로大路가 지나고 있어서 사명을 띤 관인이 줄을 이어 오고 가는 까닭에 고을 사람들이 두가지 역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조정해주기를 요청해서 도로 분리하게 된 것이 이제 겨우 5,6년이 지났습니다. 오늘날 형편없어진 상황은 지난날보다도 더 심하니, 다시 청안과 합병시키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P. 264 “대동법은 부역을 공평하게 하기 위한 편민便民의 방도이니 실로 당장의 시폐時弊를 구하는 좋은 계책입니다. 비록 대동법을 전국에 두루 시행하지는 못한다더라도, 경기. 관동 지역은 이미 실시하여 효과를 보았습니다. 또 만일 호서와 호남에서 시행한다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에 유익한 방도로서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이백여 년 뒤 다산이 강진 유배지에서 편찬한⟪목민심서⟫속 호전육조戶典六條에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내용과 어쩌면 이렇게 대동소이할까. 잠곡은 효종에게 반드시 대동법 시행해야만 한다는 충정을 임종 직전까지 전하며 “호남 지방의 일에 대해서는(...)신이 하루 아침에 눈을 감게 되면 추진하는 자가 없어져서 중도에 폐기될까봐 두렵습니다.”(p. 223)라고 한다. 이백년이 지나도록 공납과 전정의 불합리는 개선된 바가 부족했던 것이다. 대동법의 전국적 실시는 결국 숙종 때 이뤄졌고 이는 엄청난 조세개혁이었다. 다만 농지 측정규정과 공납 받는 지방행정 제도의 미비 때문에 십구세기 초반 다산은 여전히 불필요한 부세 폐지해야하며 호적 측정과 기입을 일원화하고 환곡을 제대로 걷어야한다고 일일이 나열한다. ⟪목민심서⟫ 중에서도 너무 어려워서 다산을 가장 미워하며 읽었던 장이 바로 호전육조였다. 다산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백년 간의 악습이요 잘못된 관행을 그간 개혁과 개선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얼마나 속 탔을까.


책에서 소개된 네 재상 중 앞선 세 인물들은 인용된 원문들에서 서로의 연결성이 있고 시기별 특성을 유추할 수 있게 한 반면 번암 채제공 편은 분량도 적지만 뭔가 부족하다 싶었다. 혹시 1차분으로 간행된 ⟪한국사상선 2- 세종. 정조⟫에 신해통공과 화성건설은 자세하게 나왔있는걸까? 그리고 아직 미발간된 3차분에는 다산 정약용과 소위 북학파 내지 백탑파들의 사상도 당연히(!) 포함되어있는 거겠지?


어려운 인문학책을 읽는 것은 내게 힘들다. 그런데 좋다, 좋아졌다. 내 역량, 내 깜냥에는 너무 어려운 수준들이라서 한번 읽어서는 내용도 그냥 스쳐지나가버린다. 그래서 일일이 정리해가면서 읽으니까 시간이 더디고 힘든데, 그 어렵게 뗀 한 권 한 권들이 연결되어 지혜의 사슬이 되어간다. 놀랍다. 느긋하게 한 몇 년간 1권부터 30권까지 정독할 수 있게, 멋진 기획의도로 출간해주시는 한국사상선이 제법 잘 팔리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아, 그리고 이건 지극히 개인적 이야기이긴 한데 이 책을 읽다보니 드디어 때가 되었다, 고 느꼈다. ⟪역주 목민심서⟫ 재독하며 다시 책모임할 그 때가! 같은 창비 책이니까 이야기해도 되겠지. 한국사상선 읽고 보니 다시 읽어야겠다 싶다. 두 번 읽으면 그래도 뭔가 더 남는 게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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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2026.05.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