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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밀
돌 지난 딸아이가 요즘 열심히 말놀이 중이다. 나는 귀에 달린 많은 손가락으로 그 연한 말을 만져본다. 모음이 풍부한 자음이 조금만 섞여도 기우뚱거리는 말랑말랑한 말들을.
어린 발음으로 딸아이는 자꾸 무어라 묻는다. 발음이 너무 설익어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억양의 음악이 어찌나 탄력있고 흥겨운지 듣고 또 들으며 말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음직한 비밀스러운 문법을 새로이 익힌다.
딸아이와 나의 대화는 막힘이 없다. 말들은 아무런 뜻이 없어도 저 혼자 즐거워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뛰어논다. 우리는 강아지나 새처럼 하루종일 짖고 지저귀기만 한다. 짖음과 지저귐만으로도 너무 할말이 많아 해 지는 줄 모르면서. - 김기택, 말랑말랑한 말들을
돌 지난 딸아이가 열심히 말놀이를 한다. 제 딴에는 말을 하는 것인데, 듣는 사람에게는 말놀이인 것 같다. 하긴 돌 지난 딸아이에게 무엇을 바랄까? 저리 입을 벌려 무언가를 말하려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딸아이가 내는 소리에는 모난 게 없다. 시인은 “귀에 달린 많은 손가락으로/ 그 연한 말을 만져본다.” ‘연한 말’이라는 시구에 주목해 보자. 딸아이는 부드러운 말로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엄마’라는 말에 드러나듯 딸아이는 주로 목구멍으로 자연스레 공기가 흐르는 말을 한다. 당연히 모음이 중심이다. 자음은 조금만 섞여도 기우뚱거린다. 공기가 막히지 않고 흘러나오는 소리가 모음이라면, 자음은 흐르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막혀 나오는 소리다. 물론 자음 가운데 울림소리(ㄴ, ㄹ, ㅁ, ㅇ)는 다른 자음보다 한결 부드러운 소리를 내보인다. 딸아이가 왜 ‘엄마’라는 말을 ‘아빠’라는 말보다 먼저 하겠는가? 딸아이는 이미 “말랑말랑한 말들”에 적응되어 있는 것이다.
‘말랑말랑’이라는 시어에도 울림소리만 나온다. “어린 발음으로” 자꾸 무어라 말하는 딸아이는 입속에서 울리는 소리들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딸아이는 말 그대로 말을 갖고 논다. 물론 어른들이 하는 말이 아니다. 하긴 어른들이 말 자체를 가지고 노는 경우가 있던가? 말장난을 해도 입속에서 말을 굴리며 노는 어른들은 거의 없다. 시인은 딸아이가 내뱉는 말에서 음악을 느낀다. 발음이 너무 설익어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딸아이는 분명 리듬에 맞춰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다. 탄력 있고 흥겨운 딸아이 말을 듣고 또 들으며 시인은 “말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음직한 비밀스러운 문법을/ 새로이 익힌다.” 말 이전에 소리, 곧 음악이 있었다. 딸아이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리듬을 표현한다. 딸아이가 들려주는 음악을 시인은 어떻게 듣는 것일까?
‘비밀스러운 문법’이라는 시구에 그 해답이 나와 있다. 딸아이가 온몸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려면 딸아이와 눈을 맞추어야 한다. 딸아이는 말랑말랑한 말로 음악을 연주한다. 말랑말랑한 말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의미를 찾으려고 할수록 말랑말랑한 말은 저만큼 멀어진다. 어떻게 하면 딸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랑말랑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딸아이 리듬에 맞추는 방법밖에는 없다. 딸아이는 온몸으로 말을 하고, 시인 또한 온몸으로 딸아이가 하는 말을 듣는다. “딸아이와 나의 대화는 막힘이 없다.”는 진술은 정확히 이 지점을 가리킨다. 모어(母語)라는 말로 이 상황을 표현해도 좋다. 시인은 엄마에게 말을 배웠고, 딸아이 또한 엄마에게서 말을 배웠다. 엄마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리듬이라고 해도 좋다)을 따라하다 보니 딸아이는 자연스레 말의 세계로 들어선다. 엄마가 하는 말을 딸아이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온몸으로 엄마가 내는 소리=음악을 받아들일 뿐이다.
시인은 지금 딸아이가 엄마에게서 말을 배운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딸아이가 내뱉는 말들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저 혼자 즐거워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뛰어논다.” 시인 또한 마찬가지다. 딸아이가 즐겁게 웃으면 시인도 웃고, 딸아이가 춤추고 노래하고 뛰어놀면 시인도 춤추고 노래하고 뛰어논다. 두 사람은 강아지처럼 짖을 때도 있고, 새처럼 지저귈 때도 있다. 강아지가 되면 강아지 말을 하고, 새가 되면 새가 하는 말을 한다. 딸아이에게는 인간이 하는 말이 특별하지 않다. 소리에서 소리로 이어지는 리듬을 타며 딸아이는 걷잡을 수 없는 즐거움 속으로 기꺼이 스며든다. 언어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끙끙대는 시인에게 딸아이가 전하는 몸말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딸아이는 온몸으로 말을 하는데, 그 말 하나하나가 그대로 시가 되고 리듬이 된다. 강아지가 짖으면 딸아이도 짖고, 새가 지저귀면 딸아이도 지저귄다. 말랑말랑한 말은 딸아이를 상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상상에 기대면 시인 또한 “짖음과 지저귐만으로도/ 너무 할말이 많아 해 지는 줄” 모른다.
어른들이 하는 말 너머에 딸아이가 내뱉는 소리가 있다. 소리는 언어로 진화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소리에 의미를 덧붙여 언어 속에 가둔다. 시인들이 왜 언어를 통해 의미 너머로 나아가는 길을 상상하겠는가? 언어에 들러붙은 의미와 거리를 두지 않는 한 시인들은 시를 쓸 수 없다. 의미는 언어에 관습처럼 견고하게 들러붙어 있다. 시인이 아무리 새로운 언어를 상상해도 이러한 의미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런데, 돌 지난 딸아이가 지금 시인 앞에서 말랑말랑한 말들로 언어 이전의 소리를 들려준다. 오죽하면 딸아이가 하는 말을 시인이 “비밀스러운 문법”이라고 표현할까? 딸아이가 하는 말의 비밀은 당연히 엄마로부터 왔다. 엄마가 몸으로 말을 전하면 딸아이도 몸으로 그 말을 받는다. 말랑말랑한 말은 이런 점에서 부드러운 몸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 시인은 딸아이의 말=소리에서 시(어)에 드리워진 비밀과 마주하는 셈이다.
2. 아기
아기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잔다. 부드럽고 기름진 잠을 한순간도 흘리지 않는다. 젖처럼 깊이 빨아들인다. 옆에서 텔레비전이 노래 불러대고 아빠가 전화기에 붙어 회사 일을 한참 떠들어대도 아기의 잠은 조금도 움츠러들거나 다치지 않는다. 어둠속에서 수액을 퍼올리는 뿌리와 같이, 잠은 고요하지만 있는 힘을 다하여 움직인다.
아기는 간간이 이불을 걷어차거나, 깨어 울거나, 칭얼거리며 엄마 품을 파고든다. 그래도 엄마는 젖을 주거나 쉬를 누이지 않는다. 얼핏 깬 듯 보여도 실은 곤히 자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몽유병자처럼 허깨비 몸은 움직이지만, 잠은 한치도 흔들리거나 빈틈을 보이는 일이 없다.
남김없이 잠을 비운 아기가 아침 햇빛을 받아 환하게 깨어난다. 밤사이 훌쩍 자란 풀잎같이 이불을 차고 일어난다. 밤새도록 잠에 씻기어 맑은 얼굴, 웃음말고는 다 잊어버린 얼굴이 한들거린다. 풀잎 위에 맺힌 이슬은 아기의 목구멍에서 굴러나와 아침 공기를 낭랑하게 울린다.
저렇게 달게 자고 나니, 하룻밤에 이 세상 다 살아버리고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눈을 뜨자마자 눈알들은 아침을 보고 잠시 휘둥그레지고 어리둥절해진다. 전생이 기억날 듯 말 듯 모든 것이 아주 낯선 모양이다. 그러다가 아기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금방 친해져서 온몸으로 그 즐거움을 참지 못한다. - 김기택, 아기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잔다
아기가 잠을 잔다. 있는 힘을 다하여 잠을 잔다. 아기는 잠을 잘 때는 잠만 잔다. 다른 걸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걸 생각하다가 잠 못 이루는 어른들에 비해 아기는 하품을 하는 순간 잠에 빠진다. “부드럽고 기름진 잠을 한순간도 흘리지 않는다.” 옆에서 텔레비전이 노래를 불러대도 아기는 잠을 자고, 아빠가 전화기에 붙어 회사 일을 한참 떠들어도 아기는 잠을 잔다. 엄마 젖을 온몸으로 빨아들일 때처럼 깊은 잠에 빠져든 아기는 어떤 상황이 와도 결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흔들어도 잠에 취한 채 정신을 못 차리는 아기를 상상해 보라. 아기는 먹을 때는 오로지 먹기만 하고, 잠을 잘 때는 오로지 자기만 한다. 다른 것이 들어올 틈을 아기는 내어주지 않는다. 있는 힘을 다하여 잠을 자는 아기를 보며 시인은 한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기는 잠을 자면서 간간이 이불을 걷어차거나, 깨어 울거나, 칭얼거리며 엄마 품을 파고들기도 한다. 신기한 건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주거나 쉬를 누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기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걸 엄마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잠을 자며 하며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아기에게는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몽유병자처럼 허깨비 몸을 움직이면서도 아기는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없다. 입맛을 다시며 달콤한 잠에 빠진 아기를 보면 한없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잠자는 아기 얼굴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다. 잠자는 아기 얼굴만큼 고요한 게 세상 어디에 있을까? 주변 환경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잠에 빠진 아기를 시인은 본다.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매만져도 아기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잠을 자는 아기 얼굴에는 고요만이 감돌 뿐이다.
지친 몸을 남김없이 잠으로 털어낸 아기가 아침 햇빛을 받으며 환하게 깨어난다. 시인은 밤사이 훌쩍 자란 풀잎같이 자라나 이불을 차고 일어나는 아기를 본다. 잠을 잘 때는 고요했던 아기 얼굴은 한 송이 꽃처럼 활짝 피어 있다. 밤새 깊은 잠을 잔 아기 얼굴은 한없이 맑기만 하다. 맑은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바람에 한들거린다. 생활의 피곤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기 얼굴에서 시인은 “풀잎 위에 맺힌 이슬”을 본다. 햇볕을 받아 반짝 빛나는 이슬 한 방울이 아기 얼굴에서 뚝 떨어질 듯하다. 아기가 엄마를 보고 옹알이를 한다. 자기를 쳐다보는 엄마 얼굴을 기억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아기는 활짝 웃으며 옹알이를 한다. 옹알이 하는 아기 목소리가 아침 공기를 낭랑하게 울린다. 시인은 지금 아기에게 깊숙이 빠져 있다. 그는 아기 눈으로 세상을 본다. 아기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잠을 달게 자고 일어난 아기에게 햇빛이 비치는 밝은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이다. 잠에서 깨자마자 아기는 휘둥그레 눈을 뜬 채 햇살이 넘치는 세상을 본다. 하룻밤 새 이 세상이 완전히 바뀌기라도 한 걸까? 어제 본 세상을 잊고 아이는 지금 보는 세상을 다시 눈에 담는다. 어제와 같은 오늘일지라도 아기에게는 모든 게 새롭다. 일상에 젖은 어른들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아기들은 날마다 보고 있다. 예술가들이 왜 아기 눈을 그토록 얻으려고 했는지 이해할 만하다. 아기 눈은 끊임없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눈이다. 잠에서 깨어난 아기는 오늘 보는 풍경에서 어제 보지 못한 풍경을 발견한다. 기억날 듯 말 듯한 전생처럼 아기가 보는 세계는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모순을 담고 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세계에 가닿으려는 시인의 모습을 아기는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기는 눈에 보이는 낯선 사물들과도 금방 친해지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날마다 낯선 세계에 다시 태어나는 능력은 어찌 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금방 친해지는 이 마음에서 뻗어 나오는지도 모른다. 날마다 다른 세계를 보는 아기는 얼마나 즐거울까? 일상에 치여 습관처럼 반복되는 삶에 지친 사람은 아기가 즐기는 이 기쁨을 한없이 부러워한다. 아기 마음을 지니고 세상을 사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기가 지닌 천진난만함은 사실 일반 어른들과는 상관없는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아기 눈으로 보는 세상은 예술가가 표현한 작품 속에서나 나타나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현실에서 우리는 아기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낯선 사물들과 어울리는 힘이 지금 우리에게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시인이 아기 눈으로 이 세상을 새로이 보려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아기 눈은 시인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시적 단서와도 같다.
아기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친숙하게 대하는 능력이 있다. 아기를 보면 사물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연다. 초롱초롱한 아기 눈을 보고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나 사물이 있을까? 환하게 웃는 아기 얼굴을 본 사람은 저도 모르게 자기 고집을 내려놓는다. 입체파 작가인 피카소는 나이가 들어 어린아이 눈으로 보는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어린아이 눈에는 편견에 휩싸여 있지 않다. 어린아이는 보이는 대로 본다. 어린아이를 아기로 바꾼다면, 시인 또한 피카소처럼 아기 눈으로 본 세상을 언어로 표현하려고 한다. 아기 눈으로 본 세계는 언어 이전에 있다. 언어 이전에 있는 세계는 의미에 물들지 않은 장소를 가리킨다. 인간은 의미를 얻은 대신 사물을 보는 순수한 눈을 잃었다. 시인은 아기를 통해 언어 이전의 순수한 눈을 찾으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아기 눈처럼 해맑은 눈으로 시인은 이 세상 사물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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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시간과 읽은 페이지'를 써 주세요. 19:00~22:00 전권
회사를 다니는 일상적인 삶에서 무척 공감할 수 있는 시들이 실린 시집입니다. 특히 사무원의 경우 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우리의 모습을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어 무척 공감가는 부분이 많은 해학적인 시입니다. 김기택 시인 시들은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그 깊이가 무척 뛰어나다는 것이 포인트인데 이번 사무뤈은 특히 더 그런 점이 드러난 시집 같습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은 시집이고 좋은 시집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3) '독서습관 이벤트를 알릴 수 있는 아래 문구'를 꼭! 남겨주세요.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이벤트'에 참여하며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사무원>> 을 통해 처음으로 김기택시인의 시집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모처럼 편안함 기분을 느끼게 되었는데요. 시집 내용 중 <발자국 2> 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이 시에서 묘사된 겨울 풍경에서는 편안한 마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각박한 샐러리맨들을 묘사한 다른 시를 읽으면서는 시인 특유의 해학이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집에서는 겨울을 묘사하는 시가 아주 인상에 남았는데요. <또 겨울을 기다림> 이라는 시에서는 할아보지가 한 명 등장하는데, 할아버지의 신체 각 부위를 통해 추운 겨울을 묘사하는 장면은 실제로 제가 한겨울, 아주 추운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김기택 시인의 시적 묘사와 관련해 이 시집에 깊이 푹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집의 글의 구성 형식과 관련해서도 다른 여느 시집과도 다소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집의 내용 중 <조성환의 죽음> 이라는 시가 있는데, 조성환은 시집의 친구 같더군요. 과거에 웃음을 안겨주었던 친구가 죽을 때도 웃으면서 죽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는 시의 내용을 접하고서는 다소 시 같지 않은 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더 가슴 깊이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가 시같지 않으니, 기존의 관행을 깬 서술 방식을 통해 오히려 글의 효과를 높이지 않았나 생각 될 정도로 이 시집에서는 다소 의외의 시도 간혹 있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분들 중에 아직가지 김기택 시인의 시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저 또한 지금 현재 예스 24를 통해 책을 주문해서 책이 오기를 기다리는 상황인데, 다음에는 김기택 시인이 쓴 다른 책을 예스 24를 통해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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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김기택 시의 특징은 누구나 인정하듯 묘사의 힘에 있다. 하품하는 그 찰나의 순간으로 20행이 넘는 시를 쓸 수 있는 묘사력,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은 오랜 연습이거나 타고난 재주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묘사 안에는 '따뜻한 시선'이 존재한다. 롤모델이라는걸 정해놓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히 배울 점이 많다. 김기택 아저씨는 결정적으로 지금의 내가 갖고 있지 못한걸 가졌다.ㅠ 자신의 경험을 시로 체화하는 능력이다. 좋은 문장이나 묘사하는 능력을 갖는건 연습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경험은 일부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경험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잘만 하면 한순간 뽀오얀 젖살도 오를 것 같다'), ('깜빡 졸았던가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던가')와 같은, 보기만 하는 눈을 넘어 가슴으로 느껴지는 어떤 울림이 담긴 구절을 새파랗게 젊은 내가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모사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연세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공감을 끌어내긴 힘들 것이다. 오랜만에 합평을 받아서 그런지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와 마음속에서 우왕좌왕한다.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이라는 말이 모든 장르에서 통용되는건 아닌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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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0.21. 노래책시렁 453 《사무원》 김기택 창작과비평사 1999.5.1. 날씨를 알릴 적에는 날씨를 알리면 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서울 출퇴근길”이라는 말을 굳이 붙이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서울나라’인 탓에 무엇에든 ‘서울’이라는 이름을 앞에 넣어요. 서울이라는 곳은 논밭이나 들숲이나 바다가 아닌 ‘달삯살림(월급쟁이)’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탓에 ‘출퇴근길’이라는 이름도 웬만하면 안 빠집니다. 그러나 숱한 사람은 ‘출퇴근’이 아니면서도 일을 하고 살림을 꾸리고 하루를 짓습니다. 일터를 다닐 적에도 ‘일꾼’이면서 살림꾼이자 하루짓기이고요. 《사무원》을 가만히 읽습니다. 서울에서 집과 일터 사이를 오가는 ‘어느 사내’가 돌아보거나 부대끼는 발걸음을 담은 듯싶습니다만, 자꾸자꾸 께름합니다. ‘남사무원(남자 월급쟁이)’만 있지 않을 텐데, 짧은치마를 흘깃거리는 눈이라든지, 툭하면 술을 들이켜는 줄거리로 ‘달삯일꾼’을 그려내어도 어울릴는지 아리송합니다. 더욱이 ‘남사무원 눈길로 쓴 문학’은 ‘집안일을 하는 곁님(여성)을 구경할 뿐’입니다. 날마다 온몸을 바쳐서 마룻바닥을 걸레질하는 곁님하고 나란히 걸레질을 한다면 아주 다르게 글을 쓰겠지요. 짧은치마를 구경하는 응큼눈이 아니라, 버스나 전철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면 그야말로 사뭇 다르게 이 책을 여미었을 테고요. ㅅㄴㄹ 청정한 法과 道가 / 열대의 온갖 동식물처럼 / 뿌리내리고 자라 넘실거리는, / 뛰고 날고 헤엄치며 노는, / 투명하고 차가운 밀림을 본다. (얼음 속의 밀림/13쪽) 미니스커트처럼 맨살에 싱싱한 바람 감기는 배꼽티. // 미니스커트에서 폭포처럼 곧고 하얗게 쏟아져내리는 다리. // 움직임 없이 그녀는 그 자리에 눈감고 있었다. (늙는 순간에 대한 짧은 관찰/17쪽) 그녀는 방과 마루에게 먼지에게 / 매일 五體投地하듯 걸레질을 한다. (34쪽) 칼자국 무늬로 나이를 먹은 / 늙은 도마 위에서 / 산낙지 한마리 / 내리치는 식칼과 싸우고 있네 (포장마차에서/41쪽) 빈속에 술을 마신다. / 술이 몸의 어둠속으로 들어간다. (內省的/66쪽) + 《사무원》(김기택, 창작과비평사, 1999) 허리가 공손하게 굽어지는 추위 정신통일하며 밥생각을 하면 → 허리를 다소곳하게 굽는 추위 오롯이 밥생각을 하면 → 허리를 얌전하게 굽는 추위 가만히 밥생각을 하면 8쪽 결빙의 힘 속에 식물의 본능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 어는 힘에 풀빛이 숨었을까 → 얼어붙는 힘에 풀숨이 있었을까 12쪽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 그는 날마다 윗분한테 굽실굽실 108절을 올렸단다 → 그는 늘 윗사람한테 굽실굽실 108절을 올렸다고 한다 20쪽 그녀는 방과 마루에게 먼지에게 매일 五體投地하듯 걸레질을 한다 → 순이는 칸과 마루한테 먼지한테 노상 온몸절하듯 걸레질을 한다 → 가시내는 칸과 마루한테 먼지한테 늘 온몸바쳐 걸레질을 한다 3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