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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잘 몰라도 휴대폰만 있으면 일상의 순간들을 누구나 손쉽게 기록할 수 있는 시대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따지던 시대가 이백 년도 안 된다. 이제는 예술보다 가치를 더 따진다. 우리는 예술을 어떻게 알아볼까. 도로테아 랭은 “카메라는 사람들에게 카메라 없이 보는 법을 가르치는 도구”라고 말했다. 소설가이면서 규정하기 어려운 인상적 에세이를 여럿 쓴 제프 다이어는 자신이 사진가였다면 찍고 싶었을 사진들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라 소개하며 이 책에서 자신만의 포토 로드를 선보였다. 사진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발터 벤야민, 수전 손택, 존 버거 등을 인용하는 것을 최대한 피했다고 했는데, 이 책의 성과는 그들 못지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뉴욕 국제 사진센터 주관 사진 관련 부문 상을 받았다.
“『지속의 순간들』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전통이란 결코 완결되지 않으며, 그렇다기보다는 항상 점차 진보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사진의 역사적 계보를 좇는 나열이 아니라 활발한 예술의 중심이던 20세기 초중반의 미국을 초점으로 사진가들이 이전 세대와 동시대 사진가들에게 영향을 받고 의식하면서 하나의 예술 연대를 이루는 양상을 짚어낸다.
「* 우리가 랭의 <하얀 천사의 행렬>에서 본 인물은 디캐러바의 사진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또 다른 랭의 상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이주자 어머니>는 코소보에서 일어난 알바니아인들의 인종 청소를 포착해낸 사진에서 난민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불안을 호소하듯 입가에 가져다 댄 오른손은 60년이 흐른 뒤에도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케르테스와 스미스, 스티글리츠 등 여러 사진가들을 그토록 매혹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ㅡ고독한 사내의 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ㅡ은, 자신의 이웃인 무슬림들에 의해 온몸에 불이 붙은 크로아티아 민병대원이 잠식한다. 버스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가난에 찌든 러시아인 어머니들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러 그로즈니까지 왔다. “그들은 마치 지갑처럼 두려움을 운반한다.” 오든은 썼다. “공포에 잠겨 있는 것, 이것이 그들이 유일하게 하는 일이다.” 피츠버그에서 유진 스미스는 벽에 손바닥 무늬를 남기고 있던 어린아이의 사진을 찍었다. 코소보의 펙에서, 나흐트웨이는 피를 묻혀 남긴 손바닥 얼룩과 그림(이 역시 피로 그린 것이다)으로 뒤덮인 한 가족의 거실을 사진에 담았다. 끔찍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이 손바닥 얼룩들은 길고 펄럭이는 귀를 지닌 토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얼룩들은 자신들이 존재했다는 표시를 남기려는 소망으로 옛사람들이 동굴에 남긴 흔적들과 닮았다. 이러한 충동이 결국 카메라를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미지를 고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희구해왔다. **
모든 위대한 사진가들은 가끔, 그리고 우연한 경우에만, 다른 사진가들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한다. 그들은 모두 다른 위대한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과 매우 흡사하게 보이는 사진들을 찍었다. 라티르그는 이를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과장되게 선언했다. “한 사진가는 단 두 명의 사진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수 천 명의 사진가가 되어야 한다.” 라티르그의 주장대로, 카멜레온 같은 특성을 마음껏 발휘하며 눈부시게 빛나는 사진들을 충분히 많이 찍었던 브라사이는 라티르그의 우아함과 고요함을 공유한다.
*** 사진가는 가능성을 이해한다. …… 그가 사진을 찍었을 때, 그는 아마도 모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가 제대로 사진을 찍었는지, 그가 찍은 것이 어떤 사진이 될지를 알 수가 없다. 그는 단지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처럼 보일지 아닐지를 알 수 없다. 내 말은, 그가 본 것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찍은 것이 사진처럼 보일 수 있을지 없을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가 …… 사진을 찍는 행위와 결부된 무언가가 변화를 일으킨다. - Gary Winogrand」
1890년대 초반의 사진에는 다만 희끄무레한 광막함만 있었을 뿐 하늘도 구름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될수록 더 많은 걸 담을 수 있었지만 대체로 사진가들은 자기 지시적인 장소들, 사건들, 장면들을 애호하고 공유했다. 독창적인 창조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 않는가. 사진가들의 작업을 이렇게 한눈에 보면 동시성과 연속성이 그 속에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미지가 눈앞에 제시되었음에도 사진의 의미는 대체로 복잡하고 비밀스럽다.
아버스는 “내가 그들을 사진으로 찍지 않는 한 누구도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믿었다. 보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매혹, 이것이 예술가들의 큰 작업 동기이기도 할 것이다. 당시 사진가들에게는 눈먼 자들의 응시, 시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장소 같은 밤, 도시, 텅 빈 거리들과 집과 벤치, 창가의 풍경, 거리의 사람들, 노동자(특히 손과 모자), 초상 사진, 은밀한 나체, 꾸밀 수 없는 사람의 등, 실루엣으로 나타난 형상들(특히 케르테스), 고속도로, 미국의 이발소 등등이 주요 소재였다. 이들은 강박적으로 작업했는데 유진 스미스 경우, “그가 관찰하는 장소가 비극적인 장소가 된 까닭은, 단순히 그가 그곳에서 제한 없이 관찰하도록 스스로를 몰아갔기 때문이다.”(존 치버) 많은 사진가들의 작업은 “분명하게 묘사된 사실보다 신비로운 것은 없다”는 진실에 대한 열정과 “운명을 인식 가능한 것으로 변모”시키고자 한 열망이었다.
지금은 사진가보다 카메라가 더 많은 시대다. “카메라는 이제 너무 흔한 것이 되었고, 작아졌고, 또 재난을 경험하는 현장에 항상 함께 해왔으므로, 이제는 누구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다.” 넘치는 이미지 속에서 사진이 담으려 한 꺼지지 않는 순간들은 더욱 희소해지고 있다. 생각해보라. 오늘 당신의 기억 속에 어떤 기억할 만한 순간이 있었는지를.
ps)
절판된 게 매우 안타까운 책이다. 존 버거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삶이 더 크게 보인다"고 말했다시피, 기술적이고 딱딱한 사진론보다 훨씬 훌륭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부족한 사진을 보강해 다시 나오길 바란다. 이 책은 도서관에도 잘 없던데 나만 읽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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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65 사진은 모두 다르게 읽는다 ― 지속의 순간들 제프 다이어 글 한유주 옮김 사흘 펴냄, 2013.1.28. 사진 한 장을 놓고 똑같이 읽는 법은 없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사진 한 장을 놓고도 오늘과 모레에 읽으면 다른 느낌이 샘솟습니다. 올해와 다음해에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 납니다. 열 해가 지나거나 서른 해가 지난 뒤에 읽으면 새로운 느낌이 다르게 피어납니다. 사진비평은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 한 장을 놓고 백이면 백 사람이 모두 다르게 읽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읽을 사진인 터라, 비평가 한 사람이 굳이 사진을 이야기할 까닭이 없을 만합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비평은 어느 자리에서든 부질없습니다. 문학을 비평할 까닭이 없고 영화를 비평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인 느낌을 이야기로 살려내어 나누면 됩니다. 문학비평이나 사진비평이나 예술비평이 아닌, ‘문학 이야기꽃’과 ‘사진 이야기잔치’와 ‘예술 이야기놀이’를 함께할 때에 즐겁습니다. 제프 다이어 님이 쓴 《지속의 순간들》(사흘,2013)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제프 다이어 님은 참말 제프 다이어 님 나름대로 사진을 읽습니다. 어쩜 이렇게 읽느냐 싶기도 하고, 아하 이렇게 읽어도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는 제프 다이어 님이 읽은 대로 이런 작가와 저런 작가 사진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제프 다이어 님은 480쪽에 이르는 도톰한 책에서 유럽과 미국에서 사진길 걸어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는 사진가들 뒷이야기에 그리 눈길이 안 갑니다. 굳이 뒷이야기를 할 까닭은 없어요. ‘앞이야기’를 하면 돼요. “어떤 사진은 그 사진을 처음 찍은 사진가의 눈길을 끈 바로 그 방식대로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19쪽).”는 말마따나, 사람들은 저마다 스스로 느끼는 대로 느끼면 됩니다. 스스로 느끼는 대로 읽고, 스스로 느껴서 읽은 대로 말하면 됩니다. 사진비평에는 마땅히 ‘정답’이 없습니다. 이렇게 읽어야 대단하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저렇게 읽으니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지 않습니다. 이 사진은 이렇게만 읽어야 할까요? 이 사진을 저렇게 읽으면 안 될까요? 이 사진은 꼭 마루에 걸어야 할까요? 이 사진을 길가에 걸거나 대문에 붙이면 안 될까요? “사진가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몇몇 사진가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작업에 고의로 연출한 요소들을 담기 시작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대신, 그들은 사진이 구성되는 방식을 강조하는 편을 택했던 것이다(39쪽).”와 같은 말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합니다. 일부러 꾸며서 찍든, 꾸밈없이 수수하게 찍든, 모든 사진에는 사진가 넋이 깃듭니다. 어떻게 찍는 사진이든 사진가 삶이 드러납니다. 연출사진이면 어떻고 안 연출사진이면 어떻겠어요. 졸업식이나 생일잔치에서 찍는 사진은 어떤 사진일까 궁금합니다. 연출사진일까요? 스냅사진일까요? 기자회견을 하는 정치꾼을 찍는 사진은 어떤 사진일는지 궁금합니다. 딱딱하고 메마른 낯빛으로 말하는 정치꾼 모습은 연출사진이 될까요, 아니면 스냅사진이 될까요, 아니면 보도사진이 될까요? “그림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손을 묘사할 수 있는 사진의 능력은 사진이 지닌 대단한 매력들 중 하나다(103쪽).”와 같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손은 글로도 그림으로도 노래로도 얼마든지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사진이기에 손을 더 수월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사진이기에 더 잘 ‘기록’하지 않습니다. ‘기록’하려는 마음일 때에 기록합니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안 쓰더라도, 머릿속에 아로새긴다면, 그 어느 것보다 훨씬 또렷하고 수월하게 ‘기록’합니다. 온누리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 느낄 만한데, “어떤 도시나 마을은 때때로 수천 마일 떨어진 다른 나라의 도시나 마을과 ‘쌍둥이처럼’ 꼭 닮아서(118쪽).”, 사진 작품을 볼 적에도 어쩜 이리 똑같은 작품이 태어날 수 있을까 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표절일까, 도용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을 빚은 두 사람은 서로 동떨어진 곳에서 서로 모르는 채 살아왔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꼭 닮은 작품을 찍을 수 있어요. “늙고, 매우 지친 남자를, 우리가 사진가에 대해서나 피사체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면, 우리는 이 사진들을 손녀딸이 찍은 할아버지의 사진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161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손녀딸이 찍은 할아버지 사진이면 어떤가요? 나이가 쉰 살쯤 벌어진 짝꿍 사이가 찍은 사진이면 어떤가요? 사진을 읽으면 됩니다. 그러나, 제프 다이어 님은 이 사진에서는 사진을 읽기보다는 뒷이야기를 읽습니다. 아하 그렇지요. 뒷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은 뒷이야기를 읽으면 됩니다. 앞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은 앞이야기를 읽으면 됩니다. 사진을 읽고 싶은 사람은 사진을 읽으면 됩니다. 삶을 읽고 싶은 사람은 삶을 읽으면 됩니다. 사랑을 읽고 싶은 사람은 사랑을 읽으면 됩니다. ‘모나리자’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요? 모나리자 그림은 누가 그렸고, 왜 그렸을까요? 무엇을 그렸을까요? 아마, 모나리자 그림을 놓고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읽겠지요? 비평가마다 다 다른 소리를 줄줄이 읊겠지요? “예전에 존재한 시간이, 한 세기를 지나, 바로 지금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282쪽).”는 말처럼, 예전에 흐르던 하루가 오늘도 흐릅니다. 오늘 흐르던 하루가 먼 앞날에도 흐릅니다. 왜냐하면 삶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아 오늘을 살아갑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 사랑을 물려받아 오늘을 살아갑니다.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저희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줄 테지요. 그러니, 한 세기 아닌 천 해나 만 해가 흐른 뒤에도 똑같은 삶이 이어지곤 합니다. 제프 다이어 님은 “차 안에서 찍은 사진들은 너무나 명백하게 건성으로 찍은 것처럼 보여서, 사진의 가치를 발견하기 힘들 때가 있다(309쪽).” 하고도 말합니다. 그래요, 이렇게 읽어도 됩니다. 이렇게 읽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참말 너무도 뚜렷하게 건성으로 찍었을까요? 너무도 뚜렷하게 눈물을 흘리며 찍지는 않았을까요? 너무도 뚜렷하게 마음이 아파서 찍지는 않았을까요? 건성으로 찍은 사진이 한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엄청나게 땀흘린 사진이 한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 모두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둘 모두 서로서로 이녁 나름대로 사진을 읽습니다. 이리하여, “문맹의 세계에도 시가 존재한다면, 천박한 것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351쪽).” 같은 말은 살짝 뜬금없습니다. 어느 사진을 놓고는 건성이라 말하면서, 어쭙잖은 것에도 아름다움이 깃든다고 말한다면, 한 사람한테서 느끼는 두 얼굴일는지요? 뭔가 좀 뒤죽박죽입니다. 건성으로 찍은 사진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이 될는지요? 아니면, 건성으로 찍은 사진이라 참 볼꼴사납다는 소리일는지요? 건성으로 찍어서 제프 다이어 님은 “사진의 가치를 발견하기 힘들”다고 말하는데, 로버트 프랭크 님이 사진을 건성으로 찍었는지 건성으로 안 찍었는지 어떻게 알까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떻게 꾹꾹 눌러서 ‘바로 이렇다구!’ 하고 외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뒤죽박죽으로 읽어도 사진입니다. 뒤죽박죽으로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뒤죽박죽으로 읽든 말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제프 다이어는 제프 다이어대로 사진을 읽으면 됩니다. 스티글리츠는 스티글리츠대로 사진을 찍고 읽으면 되고, 스미스는 스미스대로 삶을 읽어서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아버스는 아버스대로 사랑을 노래하면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우리는 ‘정론’을 세우거나 ‘역사를 기록’하려고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즐기고 싶기 때문에 사진을 읽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듯이 사진을 읽습니다. 기쁘게 춤추듯이 사진을 읽습니다. 누군가는 토라진 얼굴로 사진을 읽고, 누군가는 싸우듯이 또는 술을 마시듯이 또는 잠꼬대를 하듯이 사진을 읽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이기에 저마다 다른 눈길로 저마다 다른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고 읽으며 나눕니다. “위노그랜드는 ‘누구라도 내가 찍은 사진을 인화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에게 암실에서 보내는 시간이란 곧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시간을 의미했다(448쪽).”와 같은 말마따나, 누군가는 인화와 현상에 품을 많이 들입니다. 누군가는 인화와 현상보다는 사진찍기에 품을 많이 들입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사진찍기를 즐기려고 애쓰고, 누군가는 스스로 사진읽기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디지털사진이 나오는 오늘날, 굳이 인화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굳이 포토샵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즐겁게 찍고 보여주고 나누고 얘기하고 웃고 떠들고 노래하면 됩니다. 오늘날에도 인화에 엄청나게 품을 들일 수 있습니다. 저마다 하고픈 대로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해야 ‘사진답지’ 않습니다. 저렇게 하기에 ‘사진답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제프 다이어 님은 “아버스가 헤밍웨이와 먼로에 대해 한 말들을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게드니의 사진에 나타난 아버스를 보고 그녀의 자살을 예감할 수 있는가(9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럼요. 미리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미리 못 느낄 수 있어요. 읽는 사람은 읽고, 못 읽는 사람은 못 읽습니다. 읽는 사람은 말을 안 하더라도 눈빛과 낌새만으로도 알아요. 눈빛과 낌새만으로도 삶과 사랑과 꿈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눈빛도 낌새도 못 읽는 사람이 있어요. 말로 찬찬히 알려주어도 못 알아채거나 못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즐겁게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즐겁게 사진을 읽습니다. 어제와 오늘은 고스란히 이어지고, 모레와 글피도 차근차근 이어집니다. 너는 나이고 나는 너입니다. 우리는 하나이면서 다 다릅니다. 지구별은 온누리 가운데 작은 빛이면서 고스란히 온누리입니다. 사진은 자그마한 모래알이면서 커다란 하늘입니다. 노래하는 사람한테서는 노래하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꿈꾸는 사람한테서는 꿈꾸는 사진이 자랍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서는 어떤 사진이 피어날까요? 사진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늘 스스로 곱게 가꿉니다. 4347.4.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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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런 종류의 책들은 읽기가 매우 어렵다. ...쓰기도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읽는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뭔가 곱씹으면서, 상상하면서 읽어야한다. 머릿속에는 그림(사진)을 그려가면서, 눈으로는 글을 읽어야하는, 그리고 그 두가지 상을 하나이 맺혀야 한 장이 넘어가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한 번 쭉 훑기는 했는데 아직 완독이라 말하기는 어렵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