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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제목 뒤의 따뜻한 시선
"과격한 제목 뒤의 따뜻한 시선" 내용보기
나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해 강력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켜 왔다. 그러나 은 달랐다. ‘안다는 것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라며 첫머리를 시작한 저자는 페미니즘을 통해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와 ‘차별’을 강조하는 대신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관계와 소통에 대한 그녀의 긍정적인 시선은 ‘안티 페미니스트’의 편견과 선입견을 가차없이 무너뜨린다.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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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해 강력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켜 왔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도전="">은 달랐다. ‘안다는 것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라며 첫머리를 시작한 저자는 페미니즘을 통해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와 ‘차별’을 강조하는 대신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관계와 소통에 대한 그녀의 긍정적인 시선은 ‘안티 페미니스트’의 편견과 선입견을 가차없이 무너뜨린다. 전복적인 사고와 새로운 삶의 조건을 생각케 한다.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고민을 던져준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의 신랄하고도 통렬한 비판을 읽으며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떠올랐다. 그들의 지성이 진정성을 갖고 있는 건, 의사소통에 대한 이해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i******5 2006.01.3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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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란 어떤 것인가
"페미니즘이란 어떤 것인가" 내용보기
내가 잘 모르지만 알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페미니즘이다.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권리회복이라는 것이 사실 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멍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은근히 페미니즘에 대해 응호적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비 페미니스트적인가를 깨닿게 되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뜻, 정의 자체가 내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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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모르지만 알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페미니즘이다.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권리회복이라는 것이 사실 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멍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은근히 페미니즘에 대해 응호적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비 페미니스트적인가를 깨닿게 되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뜻, 정의 자체가 내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러기에 저자 자신도 자신의 동료들에게 실망도 느끼고 절망도 느낀다고 누누히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페미니즘에 관한 책중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호되게 야단치는 선생님이 훌륭한 선생님일수 있듯이, 아주 야무지게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이 정말 제대로 된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s***g 2005.11.2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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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페미니즘의 도전" 내용보기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05수전 스워츠, 쥬시 토마토, 시그마북스, 2007얼마전에 딸애와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개그공연을 본 적이 있다. 워낙 작은 공간이라 앞줄에 앉은 내가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출연자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어머니, 왜 안 웃으세요? 이해를 못하셨어요?”그 개그는 이해를 하고 못하고 여부를 따질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젊은 사람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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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05
수전 스워츠, 쥬시 토마토, 시그마북스, 2007


얼마전에 딸애와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개그공연을 본 적이 있다. 워낙 작은 공간이라 앞줄에 앉은 내가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출연자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 왜 안 웃으세요? 이해를 못하셨어요?”
그 개그는 이해를 하고 못하고 여부를 따질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젊은 사람이었다면 웃지않는 이유를 개그가 썰렁해서라고 생각했을 것인데, 내가 나이든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해를 못했냐고 말한 것이다. 살짝 놀라서 “통과!” 하고 말았지만 은근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연령차별주의는 세상에 널려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서른 넘어 공부를 계속하려고 대학원 사무과에 갔을 때, 직원에게서 따님대신 오셨냐는 질문을 들었단다. 그 일로 해서 한동안 분노를 금치못했던 정희진은, 이렇게 생각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체험과 억압을 속속들이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나이듦의 차별을 겪어본 뒤에야, 왜 그토록 남자들이 여성운동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한지를 비로소 이해했다는 것이다. 자기자신도 20대에는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정희진은 연령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면에서 한국사회는 계엄령이 필요없는 사회다. 사회구성원들의 상상력, 용기, 소망은 나이에 따라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대단히 자발적으로 나이듦에 대한 지배이데올로기를 수용하고 있으며, 나이든 자, 나이든 여성을 혐오한다.
일상의 아주 감정적인 차원에서부터 나이듦에 대해 동일한 해석 틀을 지니고 있으며, 미세한 검열과 규율에 예속되어 있다. 나이에 따라 삶의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억압된 사회, 이것은 고도로 조직화된 조용한 폭력이다. 나이든 사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을 다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반 연령주의 정치를 시작해야 할 것같다.”


나이에 따른 역할을 조금만 벗어나도, 낙오자 혹은 수용불가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기성세대의 모습이 모두 똑같다. 수명연장시대에 사람들의 자의식은 이전과 비교할수없이 젊어지고 섬세해졌는데도, 연령주의의 편견은 철옹성처럼 우리를 옥죄고 있다. 가족관계에서는 ‘개인’이 사라지고 오직 의무만이 남아있다. ‘모성’만 가진 존재로 기대되는 어머니, ‘책임’만 살아있는 ‘가장, 대중매체에서 주책맞거나 탐욕스럽게 그려지는 나이든 사람의 이미지, 철저하게 차단되는 사회적 기회... 아직 창창한 나이에 조직 밖으로 내몰린 ‘사오정’과 ‘오륙도’들이 어떻게 연령차별주의의 폭력을 견디어내는지 궁금하다.


나역시 연령주의에 민감한 나이가 되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젊었을 때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관점이며, 아직도 스스로 빠져있는 함정이기도 한다. 친정어머니께서 얼굴의 점을 빼신 것을 보고 속으로 흉보는 식이다. 변화하는 시대와 걸맞지 않은 고정관념으로서의 연령주의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깨나가야 할 과제이다. 더욱이 신문지상이나 통계로 보는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떻게 나이들어갈 것인가. 어떻게 기존의 편견에 맞서 활기차고 재미있으며, 품위있게 나다움을 유지할 것인가.


“흔히 말하는 의식은 바뀌었는데 몸이 바뀌지 않았다라는 개탄은 일상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일상을 넘거나 일상을 극복하는 정치가 아니라, 모든 정치와 운동은 일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머리가 변하는 것이 의식화라면 몸이 변하는 것은 변태다. 그래서 언제나 혁명보다 개혁이 어려운거다. 혁명은 이름과 의식을 바꾸는 것이지만 개혁은 몸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개혁은 글자그대로 살갗을 벗기는 것, 피가 쏟아질수밖에 없다.
모든 변화는 새로운 인식을 의미하는데, 이는 머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발생한다. 변태는 기존의 나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며, 미래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알 수 없어 두려운 것이다. 모든 변태는 의미를 생산한다. 의식화는 변절이나 전향이 가능하지만 변태는 형태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의식화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변절이 불가능하다.”


정희진이 명료하게 분석하듯, 의식은 몸을 따라오지 못한다. 머리가 아닌 몸이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내 전부를 걸어야 한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대우를 받으며, 끝까지 내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생존을 건 사활의 문제이다. 여기에 연령차별주의를 뚫고 자기식대로 날아오른 역할모델이 있다. “쥬시 토마토”란 저자가 만든 용어로, 한창 무르익어 더욱 향긋해진 중년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책에는 나이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불평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나이에 비례하여 힘이 생긴 것을 자각한 여자들의 사례가 그들먹하다. 그들은 혼자서 세계를 여행하며 글을 쓰기도 하고, 은퇴후 일을 찾는 여성들에게 토론의 장을 제공하기도 하고, 정부생활보조금으로 4자녀를 혼자 키운 여성이 정치에 눈떠 55세에 미하원에 입성하기도 하며, 요트를 운전하며 트레일러에 살면서 전선배선과 단열처리를 직접 시공하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을 성취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맛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더 보기좋은 몸매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대해 기분좋게 느끼게 되면 더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 몸과 마음이 해방된다. 체력이 강해지면 정신적으로도 독립이 된다. 바로 이것,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걱정스러워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긴장하고 이완하는 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운동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은 아주 새로운 세상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남아도는 시간과 남아도는 정열을 활용하여, 스스로 ‘시간의 주인’이 된 여자들은 열정적으로 ‘변태’를 선택했다. 자기혁신을 계속함으로써, '천천히 죽어가는 것'대신, 시대의 변종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생의 전반부에서 어지간한 고난을 다 겪어온 체험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가는 담대함은 “슬픈 때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나 혼자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책에서 발견하는 기분은 최고다. 외롭지 않다. 나답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자유, 열정, 창조... 내 안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라면 할머니 히피인들 되지 못하랴 ^^
d******7 2008.05.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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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남성들이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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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내 세대는 남녀차별적인 상황을 그다지 겪게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당차게 자란 학생으로서, 놀랍게도 아직 세상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인권 침해가 많다는 걸 느껴가던 중 우연히 만난 책이다. 도전이라니...페미니즘은 아직도 사회에서 약한 위치에, 낮은 위치에 있는가? 그럼 이 책은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건가 비판하는 건가? 하며 책 소개와 평을 읽어봤는데, 웬걸, 당
"세상의 남성들이 읽어야 할 책." 내용보기
나름대로 내 세대는 남녀차별적인 상황을 그다지 겪게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당차게 자란 학생으로서, 놀랍게도 아직 세상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인권 침해가 많다는 걸 느껴가던 중 우연히 만난 책이다. 도전이라니...페미니즘은 아직도 사회에서 약한 위치에, 낮은 위치에 있는가? 그럼 이 책은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건가 비판하는 건가? 하며 책 소개와 평을 읽어봤는데, 웬걸, 당장 사더라도 아깝지 않을 만한 가치가 눈에 보였다. 그래서 저자나 출판사에 대해 아무 지식도 없는 채로 무작정 사서 읽어보았다. 책에 소개된 여러 실례(가정 폭력, 포르노, 성 매매 등 관련...)들을 읽으며 잠이 안 올 만큼 분노도 많이 하고 사회적 심각성도 깨달았다. 거리에 나가보면 멀쩡히 잘 굴러가고 있는 이 나라이지만, 아직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얼마나 여성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빈번한가. (같은 맥락에서 장애인, 노인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걸 뼈저리도록 깨닫게 한다.) 그런데도 아직 이 유교적인 사회에선 여성 인권 문제에의 시정은 크게 나아진 게 없다. 책에는 이런 사회 문제들만 비판되고 해설돼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과격하고 무모한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본래의 목적과 의의를 설명해놓았다. 그래서 난 솔직히 여자이면서도 페미니즘에 호의적이지 않았었는데, 이 책 덕분에 일상 의식에 큰 변화가 왔다. 내 남자친구는 내가 이 책을 사자마자 푹 빠져있는 걸 보고 자기도 빌려가 읽었다. 읽으며 참 남자로서 찔리는 부분 그러나 인정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고, 이런 책은 여성들만이 아니라 남성들이 같이 읽어야 좋을 책이라고 했다.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돈만 넘친다면 주변 친구 남성들과 친척 남성들 모두에게 한 권씩 새해 선물로 주고 싶었을 정도였다. 읽은 뒤에 그 뭔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었고 지금도 그러고 싶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또 내가 생각하는 여성운동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남성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정신 차려야 할'' 집단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남성들이 집에서 노동하지 않는 한, 여성에게 사회 진출은 이중의 중노동만을 의미할 뿐이다. -중략- 나는 "주체는 타자의 인질"이라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을 상기하면서 흠칫 놀라게 된다. 남성은 여성에게 의존한다. 타자(여성) 없이 주체(남성)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이제까지 유일한 것으로 군림해 온 목소리자 조금 낮아질 때, 비로소 다른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은 가부장제지, 여성의 ''직설적인''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s******1 2006.01.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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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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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란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페미니즘의 색채가 다양하듯, 이것에 반대하는 논거도 다양하다. 여성과 남성은 선천적으로 다르지 않느냐는 가부장제 근본주의부터, 한국사회는 이미 충분히 양성 평등이 실현된 사회 아니냐는 실용적 태도, 계급모순에 비해 성문제는 부차적이라는 자칭 진보 마초들. 이 중에서 마지막 입장이 가장 위험하다. 페미니즘은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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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란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페미니즘의 색채가 다양하듯, 이것에 반대하는 논거도 다양하다. 여성과 남성은 선천적으로 다르지 않느냐는 가부장제 근본주의부터, 한국사회는 이미 충분히 양성 평등이 실현된 사회 아니냐는 실용적 태도, 계급모순에 비해 성문제는 부차적이라는 자칭 진보 마초들. 이 중에서 마지막 입장이 가장 위험하다. 페미니즘은 진보 담론이다. 그런데 진보적이라 자처하는 이들에게 계급, 민족 모순보다 부차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배격 당한다면 페미니즘이 기댈 곳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양성 평등의 필요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페미니즘이 너무 지엽적이고 사소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하다. 페미니즘은 세계관이다. 철학이다. 아도르노의 <<부정 변증법>>에 의하면, 철학은 자기완결적인 절대성을 부인하는 인식이다. 철학은 이데올로기의 절대성을 개념으로써 접근한다. 개념이 개념을 넘어서고 그로써 비개념적인 것에 접근할 수 있다는 믿음, 비록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믿음이 철학에는 불가피하며, 이로써 어떤 순진성이 불가피하다(63쪽).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의 언어를 문제 삼는 태도(eg. 매춘과 매매춘 논쟁)가 지엽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당선자냐 이당선인이냐로 왈가왈부했던 현 정권의 모습을 사소하다, 소소하다고 비판할 수 없다면 페미니즘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도 정당하지 못하다. 

 

불행히도 현재 한국사회(딴 나라의 사정은 모릅니다)의 페미니즘은 사소하다, 지엽적이다, 배부른 운동이다, 따위의 온당치 않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못 생겼거나, 뚱뚱하고, 노처녀이며, 돈은 많은데 취업은 안 되는 중산층 출신이라고 단정한다. 당신이 이러한 편견을 갖고 있다면, 꼭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어 보시라. 운동에서의 경험과 학계에서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한 정희진 선생님의 글은 깔끔하면서 날카롭다. 물론, 이는 주관적인 견해라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몇 있더군.

 

이탈리아 자율주의 맑시스트 네그리는 '다중(multitude)'라는 개념으로 21세기형 인간을 재조직하고자 한다. 전통적 맑시즘이 설정한 변혁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이상 현실 정황에 맞지 않기 때문에 제국적 상황에서 착취 당하는 모든 사람, 즉 '다중'을 변혁 주체로 설정한다. 정희진 선생님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현 체제에서 억받 받는 사람은 비단 생산직 노동자일 수만은 없다. 근대적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서구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남성은 극히 소수이기 때문에, 이 중 하나 이상을 결(缺)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중적 주체로 스스로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헤겔의 '동일성'이 아닌 들뢰즈의 '차이'로 에피스테메가 이동해야 하는 이유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측면에서 가장 시급한, 중요한 세계관이다. 더 이상 자신의 말을 쓸데없이 늘어놓기 보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다중적 주체인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16쪽)

 

정체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모든 정체성은 차이를 가로질러 형성된다. 여성주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의미 체계 중 하나이며, 여성주의란 역시 나를 설명하는 다양한 정체성의 일부일 뿐이다. 여성주의는 세상 모든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17쪽)

 

차이로부터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라. (20쪽)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 속에서 자신을 당연한 주류 혹은 주변으로 동일시하지 말고,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찾아내고 소통해야 한다. (22쪽)

 

어떤 면에서는 억압 집단으로서 자본가와 미국이 저지른 잘못보다 억압집단으로서 남성이 행한 잘못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36쪽)

 

여성들은 안다. 여성들에게는 언제나 권리보다 도리(의무)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을. (37쪽)

 

마오쩌둥, 마르크스 모두 중산층 지식인이었지만, 언제나 페미니스트만 중산층 지식인인 것이 시빗거리가 된다. (39쪽)

 

나는 여성주의가 저항이라기보다는 한 가지 목소리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그리고 남성들이 살아남기 위한 협상 수단이라고 본다. (43쪽)

 

여성이 자궁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면 성대가 있는 사람은 모두 오페라 가수가 되어야 하는가? (50쪽)

 

남성은 젠더를 경험하지 않기 대문에 아버지라는 성역할과 노동자, 시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은 갈등하거나 충돌하지 않는다. (53쪽)

 

성의 변경은 어머니가 재가했을 때,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성과 섹스할 때 발생한다.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보았을 때'는 성을 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성을 가는 것이 엄청난 사건인 이유는, 그것이 계급 재생산이라는 가부장제 가족의 근본질서를 뿌리째 흔들기 때문이다. (59쪽)

 

어머니로 간주되는 여성은 성적 주체가 될 수 없고, 자신의 몸을 가질 수 없다. 그녀의 몸은 남성만이 주체가 되는 가족과 국가의 소유다. (57쪽)

 

한국이 국방비 지출 세계 10위권국가이면서도 이 정도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회 복지 비용을 여성들이 가족 내 무보수 노동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문화, 미풍양속, 전통으로 합리화한다. (60쪽)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근대적 인권 개념과 인간의 범주에서 여성을 제외하려는 가부장제 사이의 모순은, 모성의 발명으로 극복되었다. (61쪽)

 

전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인도인데, 대신 인도는 기혼 여성의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한국 여성들은 자살하느니 이혼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68쪽)

 

하긴, 어차피 외로움이란 삶의 조건이어서, 결혼해도 외롭고 안 해도 외롭다. (88쪽)

 

사회는 남성의 외로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용감하지만, 여성의 외로움은 '사소한 일로' 취급한다. (90쪽)

 

식욕, 수면욕, 성욕은 인간의 3대 욕구가 아니라 남성의 3대 욕구인 셈이다. (100쪽)

 

여성운동은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 아니라 '맞아 죽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자구책이다. (119쪽)

 

마르크스, 레닌주의보다 금기시되었던 일제 점령시기 1920년대의 민족주의나 아류 제국주의 국가로 이주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2004년 한국의 민족주의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우리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민족의 범주에서 제외된 여성이나 장애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비가시화하려는 의도로 연결되기 쉽다. (138쪽) -(나는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촛불집회에 등장하는 태극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정치화하는 것, 이것은 삶이 너무 피곤해지는 문제이다. (185쪽)

 

여성에 대한 억압을 개선하기 두려워하는 사회는 성별제도를 생물학적 문제로 환원하고 이를 정치화하려는 페미니스트에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연령주의의 문제화를 회피하는 사회는 나이듦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질서라는 식의 담론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189쪽)

 

어떤 면에서 한국 사회는 계엄령이 필요 없는 사회다. 사회 구성원들의 상상력, 용기, 소망은 나이에 따라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199쪽)

 

이제까지 성을 사는 남성은 문제화되지도 않았고 사회적 낙인의 대상도 아니었다. (227쪽)

 

성매매는 기본적으로 성별 권력 관계의 문제다. (229쪽)

 

여성을 매개하지 않는 군사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245쪽)

 

남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다. (252쪽)

 

정희진 선생님이 결국 나는 자기 변화를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후기를 맺듯, 나 역시 자기 변화를 위해 글을 읽는 사람이라고 위안을 삼지만. 계몽주의라도 좋으니, 나 자신이 좀 건설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0.02.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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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는 저항운동이 아니라 공존, 소통을 말하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저항운동이 아니라 공존, 소통을 말하는 것이다." 내용보기
책을 읽는 내내 놀랍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는것이 없었다.  이책은 결코 페미니스가 되자 라는 말이 아니다.  제목부터 주는 이미지에다가, 오히려 작가는 자신이 계몽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될까봐   걱정스러워 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라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소통의 책이라고 말할 수
"여성주의는 저항운동이 아니라 공존, 소통을 말하는 것이다." 내용보기

  책을 읽는 내내 놀랍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는것이 없었다.
  이책은 결코 페미니스가 되자 라는 말이 아니다.
  제목부터 주는 이미지에다가, 오히려 작가는 자신이 계몽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될까봐
  걱정스러워 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라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소통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 의식조차 못했던 단어, 행동들에서 많은 권력과 계급들이 숨겨져 있었던 것,

  무엇보다 그것이 오랜 학습과 관습으로 여자이기에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있었던

  것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남성의 언어로,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을 해석하며, 여성 스스로 그것이 우리의
  목소리라 생각했던 것들, 읽는 내내 충격적이었다.
  
  작가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저항이론, 저항 운동이 아니라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라한다. 남자의 시스템에 저항한다기보다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상대화시켜, 남성의 삶이 인간 경험의 일부이듯, 드러나지 않은 여성의 경험도 인간 역사의 일부임을 호소하는 것이라 했다.

 인간의 역사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없다, 그래 없었다.
 '평등'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수많은 권력이 개입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단어, 말, 역사는

 남성의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가 만들어 낸 여성노동과 여성의 성, '난 사람을 때린것이 아니라 집 사람을 때린 것이다.' 의 가정폭력, 아줌마에 대한 비하와 어머니에 대한 신성화, 성매매 여성- 어떤 여성도 성을 사는 여성은 없다, 파는 여성이 있을뿐.
군가산제 논쟁에서 '가산점을 인정하라' 는 것이 군대를 면피한 남성간의 계급/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도 군대가라'라는 성차별의 문제로 변화는 논리.
한국 여성이 한국 남자에게 성폭력 당하는 것은 '개인적'일이지만, 마국 남성에세 성폭력 당하는 것은 민족 모순의 결과로 '정치적' 희생자가 되는것, 결국 남성은 한국 남성이나 미국 남성이나 모두 강간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만 여성의 몸은 남성 집단간의 싸움의 대리 전쟁터로 제공되는 것. 남성간의 계급/권력 문제가 성차별 문제로 치환되는 상황에서도 인지 못하고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여성주의는 남성 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사유 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제까지 통용 되어온 지식과 언어가 누구의 삶을 기준으로 한것인지 사유해 본다면,
여성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전복적이고, 결코 객관적이고 보편적이 될 수 없다는 것.

남편이 대학시절 '여성학' 강의를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고 한다.
내 엄마, 누이가 새롭게 보였다고 했다.

작가의 머리글에 있는 글을 가져와 보면

'남성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질문에
'당연하지요, 세상에는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 뤼스 이리가레, 프랑스 철학자

세상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을때는 다른 목소리는 물론이고, 그 한가지 목소리마저

알기 어렵다. 의미는 차이가 있을때 발생하며, 인식은 경계를 만날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이 책을 표현해 주는 것 같다.

s****i 2008.02.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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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와 소통, 그리고 좌파
"여성주의와 소통, 그리고 좌파" 내용보기
#나는 젠더와 문화연구를 함께 배운다. '학문'과 '실천'이라는 것이 어떻게 마주치는 지에 대해 가장 극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 내가 페미니즘을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수업 전 날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긴장해서. 그리고 내 딴에는 나름 대화를 위한 '고민'이 담겨있는 언어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늘 어느 측면에서 꼭 문제적이곤 했다. 2009년 2학기 <젠더연구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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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젠더와 문화연구를 함께 배운다. '학문'과 '실천'이라는 것이 어떻게 마주치는 지에 대해 가장 극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 내가 페미니즘을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수업 전 날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긴장해서. 그리고 내 딴에는 나름 대화를 위한 '고민'이 담겨있는 언어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늘 어느 측면에서 꼭 문제적이곤 했다. 2009년 2학기 <젠더연구입문>이라는 수업이 마칠 때쯤 대화와 소통의 '기본'을 익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좌파 인텔리가 맑스주의를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차용하는 것과 달리 여성주의를 한국의 좌파 인텔리가 차용하는데에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것 같긴 하다. 아니 남 이야기 할 필요 없이 내 경로는 그래왔고,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여전히 내게 페미니즘은 늘 '낯설고' '불편하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가지 반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충 최소한의 선에서 멈추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신사협정' 같은 것을 가상으로 체결하는 방법이 있다. '가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합의의 당사자는 사실은 본인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역지사지'의 최대화가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방법으로 끝까지 싸워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나는 늘 세 번째 인 것 같다. '공감'의 윤리가 대화를 위한 기본이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으면 '공감'하지 못한다. 이게 절대 장점은 아닌데, 어쨌거나 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그 전에는 전혀 몰랐으나 내 주위에도 굉장히 '젠더 감수성'이 형성되어 있는 남성들이 좀 있는 편이고, 그들을 보면서 나름의 준거의 점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맥락과 내 맥락이 다르고, 여전히 급진적 페미니즘이 전제하는 바에 대해 몇 가지는 잘 동의가 안 되는 상황에서 그들처럼 하지도 못하려니와 마음이 여전히 꺼려진다는 게 솔직한 내 지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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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이래 저래 마음이 뒤숭숭한 찰나. 아는 여성 신학을 전공한 누이가 운영하는 카페에 갔다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집게 되었다. 내 심리 상태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두드려 맞던, 때리던 하여간 나를 좀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책의 내용은 너무나 평이하게 쓰여있고, 눈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급진적 여성주의등이 전제하는 '가부장제'와 '가부장제 사회 주체로서의 남성'에 대한 일원화된 구성에 대한 정희진의 반박을 읽으면서 통쾌해 했다. (물론 급진적 여성주의의 역사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횡단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 "현재 자신의 정체성과 멤버십에 기반을 두면서도(rooting) 그것을 본질화하지 않으며, 타자를 동질화하지 않고 상대방의 상황으로 이동(shifting)할 수 있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대화가 횡단의 정치이다"(p.20). 동일자 같은 '피해자'로 간주될 때가 많은 여성 주체가 아닌 '정체성의 정치'를 넘나드는 새로운 주체로서의 횡단의 정치는 늘 들을 때마다 느끼지만 매력적이다. 또한 이러한 수사는 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여성주의적 사유'의 전제들을 흔드는 방식으로 읽어낼 때 더 잘 드러난다.

"여성에게 (기존) 언어가 없다는 사실은, 인식론적 특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기 경험과 지배 언어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새로운 언어를 생산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모든 인식, 특히 새로운 언어는 현실에 의문을 가질 때에만 생성 가능하기 때문이다"(p.81). 페미니즘에 적절한 (기존) 언어가 없을 때 자신들의 말을 아로이 새기는 일. '프레임'이라는 말을 떠올려 보더라도 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일상'과 '성찰성'이라는 것을 '회고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움'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진보'로 구성할 때 이 역시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운동이란 정해진 어떤 입장을 현실에 적용, 실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우리/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계속 걷지 않고 멈춘다면, 즉, 삶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억압과 고통을 복잡하게 사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수구 세력'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과거의 한 순간에 자신이 선택한 정치적 입장을 변화와 성찰 없이 믿으면서, 혹은 자신이 하는 정치가 정치의 전부라고 생각하여, 자신을 계몽의 주체로, 타인을 계몽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진보' 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p.130).  그리고 이 또한 '현장'의 경험과 물려있기 때문에 '신뢰'라는 것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구성애나 전통적인 여성운동에서 자주 등장했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반박이 굉장하다. "성적 자기결정권론은, 개인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 내용이 사회 혹은 상대방과의 상호 작용과 사회적 맥락 안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추상적, 현실 초월적인 논리이다"(p.177). 내가 종종 굉장히 불편한 것은 여성주의가 만드려는 주체가 '근대적' 주체. 예컨대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전능함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강조하면서 '자기 경영'의 주체로 만들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보일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사회'의 부산물들이 개인을 꾸짓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마련인데, 문제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비판하려면 근대의 '독립적 주체'에 대한 판타지를 깨야만 한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급진주의 여성주의자들과 자유주의 여성주의자들은 종종 그 맥락을 탈각해버리거나, 혹은 그냥 판타지를 수용하고 멈출 때가 많다. 예컨대 김상봉 선생의 '서로 주체성'이나 '상호의존'을 가지고 주체를 다시 구성할 수는 없나? 그리고 그 구성은 '남성'과는 할 수 없는 일인가? 늘 내게는 그건 '질문'꺼리일 수밖에 없다.

또내 정신을 확 깨운 구절이 있었다. "'마초'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이들은 모두 내가 먼저 칭찬과 격려로 자신을 보살펴주기를 바란다. 이른바 '지혜로운 여자'를 요구하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위로'하기 전에는, 나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p.41). 언젠가 우리 과의 동료가 수업을 하다가 한국의 진보/좌파 남성들이 두 부류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1)가르치려는 남자 2)계속 물어보는 남자. 나는 분명 2번 항의 남자일 텐데. 그러면서 물어보니까 보살펴달라는 심리를 분명 깔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방식의 언어로만 대화가 되어야 '지혜롭다'고 간주한 적도 좀 있는 것 같고.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좀 짚어야 할 것 같은게. 책의 출간 시점은 2005년 11월. 글들은 그 전 1~2년 사이인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좀 변한 것 같은 양상들은 존재하는 것 같다. "한국 남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만나는 여성들을 동료로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훈련되어 있지 않다.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도 자신이 사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의 연장으로 본다. 그들의 '휴식처'인 가정에서 만나는 어머니 · 누이와 '놀이터'인 술집에서 만나는 접대 여성이, 남성이 여성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pp.54-55). 같은 주장을 볼 때 물론 공감할 수 있지만, 이제 점차 공적 영역에서 만난 여자들을 '동료'로 평가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이 되지 않는 지경에 남자들은 이미 돌입해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좀 더 어린 세대(86년생 정도) 밑으로 보자면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외려 다른 방식의 '학습'을 시키는 것만 같을 수 있다는 점이다. 386의 자녀들인 그들은 좀 다르긴 다르다. (2009/08/27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우정과 환대의 지식 공동체 - 조한혜정 외 : 교실이 돌아왔다, 2009). 전통적인 젠더 정치학으로만 구사할 수 없는 부분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분명 인정을 해야할 것 같다. 전통적인 이슈가 여전히 강고하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오랫만에 놓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좀 생각할 시간을 가져본 것 같다.
f***********x 2010.08.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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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발전될 수 있는 도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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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했다. 이 성차별적인 권력관계의 모든 것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있던 나를 발견했을 때도 불편했고, 사회의 모든 것을 뜯어보았을 때 내재되어 있던 철저히 남성위주의 이 모든 것들이 더욱 불편했다. 특별한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도 평소에 무척이나 많이 느끼는 성차별적인 제도와 담론들이 차근차근 살펴보면 얼마나 많이 있는 것일까.   어떻게보면 지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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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했다. 이 성차별적인 권력관계의 모든 것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있던 나를 발견했을 때도 불편했고, 사회의 모든 것을 뜯어보았을 때 내재되어 있던 철저히 남성위주의 이 모든 것들이 더욱 불편했다. 특별한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도 평소에 무척이나 많이 느끼는 성차별적인 제도와 담론들이 차근차근 살펴보면 얼마나 많이 있는 것일까.

 

어떻게보면 지나치게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관점으로 책을 쓴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기가 조금은 버거웠다. 그러나 결국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여자이기에 그 모든 것이 저자의 관점에 동조할 수 있게끔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말은 즉, 내가 남성이라면 이 책은 또 내게 다르게 읽혀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성차별 담론에서 항상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다. 누구에게는 평등과 권리를 의미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역차별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발전과 여성의 권리 분석 및 그에 따른 신장은 함께 해 왔다. 그런 맥락에서 이런 페미니즘과 관련한 이론 및 무수한 책들이 쏟아져나오지만, 사실상 양성평등은 급격히 진행되지는 못하다. 아직까지도 지구 곳곳에서는 빈곤과 함께 성차별이 만연해 있고, 심지어 선진 국가 조차도 그리고 그 국가들 간의 분쟁 조차도 극단적으로 강대국은 남성, 약소국은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은유를 거들먹거리고 있는 현실이니, 아직도 모두가 만족해질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길은 멀었다고 본다.

 

일상 생활에서 쓰던 모든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철저히 남성위주로 만들어진 언어 및 제도에 그대로 따라가고 종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가 의심스러워진다. 또 책을 읽고 난 후이지만, 해결책만큼이나 더욱 생각할 거리가 가득해진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 더 해진다.

p******i 2008.11.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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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페미니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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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책 <페미니즘의 도전>은 말하자면 참 늦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이 나름 화제를 모았던 것이 2005년이니 벌써 3년이나 흘러버렸다. 그 사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노무현 정부 시절 전성기를 맞이했던 여성부는 그 위용이 참 약해져 버렸다. 여튼 <페미니즘의 도전>은 이 분야에 대한 책 읽기라고는 권인숙의 책 <대한민국은 군대다> 밖에 없는 나로서는 방대한 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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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책 <페미니즘의 도전>은 말하자면 참 늦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이 나름 화제를 모았던 것이 2005년이니 벌써 3년이나 흘러버렸다.
그 사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노무현 정부 시절 전성기를 맞이했던 여성부는 그 위용이 참 약해져 버렸다.


여튼 <페미니즘의 도전>은 이 분야에 대한 책 읽기라고는 권인숙의 책 <대한민국은 군대다> 밖에 없는 나로서는 방대한 페미니즘 관련 서적 중 선택할 만한 가장 대중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희진의 균형 감각은 탁월한데, 결코 여성주의적 견지를 유지하면서도 여성주의의 문제가 단순히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는 학문이자 운동임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서두부터 인간사의 거의 모든 것이 남성적인 단어 정확히 말해 일류대 출신/중산층/비장애인/남자로 중심지워진 단어들로 채워져 있음을 밝혀나가가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매매춘 그리고 노인 문제의 권력적 문제와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페미니즘의 문외한이라고 해도 큰 문제 없이 이해할 수 있다.

페미니즘의 시각이니 만큼 현 사회의 '차별'의 문제를 젠더(gender)의 입장으로 다루고 있지만 여성주의가 지닌 다문화의 포용성을 역설하면서 우리 사회의 우파와 좌파 남성들에게 발견되는 일반화의 오류 또는 주류 남성적 획일화의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특히 보편화된 생물학적 '성'을 주장하는 입장에 대해 세계의 주체 형성의 오류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해 나가는데, 이는 단지 남/여의 성적 구분 뿐 아니라 보편적이며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권력=언어적 구분짓기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가령 매매춘에 대한 정희진의 입장을 보자. 그녀는 장애 남성에게 매매춘의 금지는 일종의 장애 차별이라는 남성 장애운동가 일부의 시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논박한다. 

 첫째, 사회가 장애 여성의 성적 권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장애 여성이 남성의 성을 살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이 입장을 남성과 여성을 모두 포함하는 보편적인 장애 인권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인신매매되어 감금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장애 여성이 있다는 점에서, 장애 남성들의 이러한 주장은 같은 장애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성 활동, 섹슈얼리티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만일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을 확충한다면, 교육 문화 의료 직업 훈련 등의 시설이 우선적으로 필요할까 ? 성매매 시설이 우선적으로 필요할까 ? 이에 대한 대답은,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의한 판단과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성을 사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에 장애 남성의 인권을 위해 성매매 시설이 당연히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매매 시설 필요 여부는 사회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사랑이든 성폭력이든 성매매든, 성과 사랑에 관한 인간의 실천은 특정한 제도와 규범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다. 성매매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선택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는 사회적 관행의 하나일 뿐이다. 
 샛째, 위와 같은 일부 장애 남성들의 주장은, 비장애 남성으로부터 받는  차별을 비판하기보다는 비장애 남성의 '남성다움', '정상성'을 욕망하는 것이다. (하략, 본문 pp. 174~175)

 이렇듯, 이 책의 서술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그렇다고 논문식으로 고답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문에서 활용되는 <알 포인트>, <집으로...>, <죽어도 좋아>같은 영화들의 예가 활용되면서 섹슈얼리티로서 역할 부여가 되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통찰하면서 흔히 중산층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페미니즘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있으며 이런 일관적인 태도가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할만하다.

 나같이 무지한 마초들이 읽어보면 좋을 만한 페미니즘 입문서...
YES마니아 : 플래티넘 p*****o 2008.03.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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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의 기억으로 돌아가며...
"10년전의 기억으로 돌아가며..." 내용보기
80년대말 대학을 다니면서, 여성학의 위력을 실감했었다. 당시는 어찌나 인기강좌였는지, 강좌를 듣는 자격을 학년별로 제한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열병이었는 지 아직도 분석이 불가능한 남학생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여학생들의 무조건적인 수강열풍으로 인해, 학교에서는 1학년은 수강조차 못하는 원천봉쇄를 했었다. 지금은 여성학이 어느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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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말 대학을 다니면서, 여성학의 위력을 실감했었다. 당시는 어찌나 인기강좌였는지, 강좌를 듣는 자격을 학년별로 제한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열병이었는 지 아직도 분석이 불가능한 남학생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여학생들의 무조건적인 수강열풍으로 인해, 학교에서는 1학년은 수강조차 못하는 원천봉쇄를 했었다. 지금은 여성학이 어느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지 알고 있지 못하지만, 미래에는 그러한 영광은 오지 않으리라 본다. 그 원인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가장 단순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하자면 세상이 바뀐 것이리라. 형식적이든 실질적이든 남녀의 구획선을 우리 사회에서도 약화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니까? 개인적으로는 90년대 중반쯤에 ‘여성학’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군대도 다녀오고, 세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염증도 생길 무렵인 20대 후반에 그것도 남자로서 말이다. 솔직히 그 당시의 감정이 어떠했는가를 지금 누가 묻는다면 ‘꾹 참고 들었다’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남성에 의한 여성의 차별, 현재 남성에 의한 여성의 차별을 한 학기 동안 줄곧 듣다보니, 인내심을 많이 요구했던 것 같다. 10년 정도의 세월이 흘러 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책 제목의 ‘도전’이라는 문구는, 페미니즘이 이제 다른 방향으로 자기정체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쯤으로 해석했다.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으니, 자기정체성 규정을 달리 하자는 것쯤으로 말이다. 결과는 완전히 허를 찔렸다. 책 구석구석에 소개되고 있는 현실과 관련된 부분은 내가 여성학의 열기가 조금 시들하던 90년대 후반에 배웠던 내용에서 별반 나아가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제의 본질은 변함없는데, 사실상 페미니즘의 열기와 관심은 많이 식상해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문제의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책표지에 붉게 씌여진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이 부족해서 아닐까 싶다. 내가 사는 도시의 여성관련단체가 인권위로부터의 주의를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주요한 사건의 과정은 도시정부로부터 연간 몇 억을 지원받아 여성의 권익증진을 표방하는 단체의 어떤 프로그램에 동성애자단체가 신청을 했다. 이 단체는 동성애자단체는 보편적인 여성단체가 아니므로 우리는 거부한다고 했고, 억울한 동성애자단체가 인권위에 진정하고, 인권위는 동성애자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요지는 대충 이렇다. 이 책의 전반에서 문제삼는 오늘날 한국의 페미니즘 현상과 유사한 맥락의 사건이다. 페미니즘이란 지극히 정상적인 여성의 권익에 대한 목소리이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다. 물론 내가 남자이고, 내가 페미니즘에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가가 앞의 생각을 다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10년전으로 나를 돌아보게 했고, 페미니즘의 도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를 나에게 권고했다. 생활속에서 진지하게 한 번 고민해보아야겠다. 점심시간의 구내식당에서 본 TV프로그램의 자막에는 “섹시가수 ㅇㅇ”라는 문구가 나의 심기를 건드린다. 저자가 같은 자막을 봤어도 같은 심정일까? 일단 여성에 대한 관심의 독이 오른 지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한민국은 군대다(권인숙 지음, 청년사, 2005)’를 읽어야겠다.
s********k 2005.12.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