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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여 다섯 시면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한다. 책읽기는 그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했던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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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에 대한 명상', '충남 당진 여자'의 창작자, 장정일.
'충남 당진 여자'에 푹 빠져 침대에 반쯤 누워 티비를 보는 신랑에게 시를 읊는(평소 이런 낯간지러운 행동 절대 안한다) 이상 증후까지 보이게 한 장본인.
그를 그의 시집이 아닌 소설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초반에 자서전과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에 1/3씩 엉덩이를 디밀고 있는 형태를 선보인다. 자서전 냄새가 나는 대목은 이런 거.
내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자의식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죄다 나의 분신일 거라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나는 한 5년 전, 내 첫번째 장편소설이 영화화되어 시사회장에서 그것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중간에 슬그머니 나와버렸다. 까닭은 거기 나오는 주인공들이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하나같이 내 분신이었기 때문이다. 중인환시에 자신이 까발려진 느낌을 누가 견뎌낼까.
양계장의 닭처럼 멍한 밤, 털그럭거리는 타자기 앞에 앉아 내가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소설을 쓰는 일이 아니다. 몇 줄의 글을 쓰자마자 조바심치며 하는 일은, 씌어진 원고와 앞으로 채워야 할 매수를 계산해보는 일이다.
그러다 클로버 727 타자기를 찾으러 간 섬유회관 앞의 가게에서 이주민을 만나면서 자서전과 에세이 경계에서 소설로 정착하게 된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 신선하다 지루하다 / 외설적이다 낭만적이다 / 쉽다 어렵다 / 산뜻하다 역겹다 / 는 흑백 논리를 펼치기 힘든 소설을 처음 만나 본 탓에 어리둥절해하며 열심히 읽어 내려 갔다. 중간중간 소설가 박민규를 떠올리면서.
어리둥절한 감정 속에서 작가 후기까지 다 읽고 난 지금, 안도의 숨이 터져나오는 건 내가 이 책을 어릴 때 - 나이 정신상태 육체 모두 어렸을 때- 읽지 않아 다행이라는 점에서다. 지금보다 더 얄팍한 식견으로 세상을 살아가던 때, 장정일이라는 사람을 알았더라면 글쓰기가 범죄라 느껴왔다는 이 사람을 좋아할 수 없었을테니까.
이제 그와 그의 분신처럼 '해변가에서 반바지와 소매 없는 티셔츠를 입은 채 파라솔 아래 펴놓은 기 비치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얼음 재운 콜라를 마시는 순수한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나는 글쓰기가 범죄라고 느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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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니 <내게 거짓말을 해봐> 이후의 필화 사건을 치른 후에 쓴 글이다. 다시 김영사에 의해서 출판된 것으로 보인다. <아담이 눈뜰 때>의 후일담이라고 해서 아담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했을까 궁금하다.
여기에 나오는 작중 화자이자 이름이 "나는"이 전작인 거짓말에서의 제이인지 좀 헷갈린다. 그리고 아담이 제이이고 아담이 나는 인지도 좀 헷갈린다. (그다지 열심히 읽지 않았기에) 사실 장정일의 소설은 두 권 보았기에 이 글의 주인공은 장정일 자신인 것임에 확실하다. 그의 전작인 소설에 대한 소회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왜 타자기에 집착할까 생각해 보았다. 이미 나는 원고지를 지나서 타자기를 거치고 워드프로세스를 거치고 노트북 컴퓨터를 두대나 박살내지 않았나. 그것이 마라톤 타자기도 아니고 클로버 특정 모델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의 첫번째 소설에 나오는 뭉크의 화집과 턴테이블과 타자기란 말인가? 초심으로 돌아가서 작품을 하는 것인지 퇴행하는 것인지 보기 나름인 것 같다.
90년대 시각으로 보더라도 장정일의 소설은 김기덕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불편한 점이 있다. 특히 젊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불편하다. 여기에 나오는 젊은 남자와 늙은 남자 통털어 정상적인 사람은 없으니 남녀차별이라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마초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자신이 없다. 어쨌던 대부분 인물들에 대한 비판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고 정치인에 대한 비판, 혹은 돈에 대한, 악에 대한 비판이다.
책 내용하고는 크게 관계가 없지만 카프카의 변신 내용이 서글펐다. 그리고 전당포 주인공을 죽인다는 것에 대한 도스트포예프스키 내용이 인용되고 있다. 무엇으로 변신하고 싶을까? 타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