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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읽는 제패니메이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문화 비평'의 틀로 저패니메이션의 세계를 조망하고 있는 책이다. 국내에는 2005년 경에 출간되었지만 본래는 2001년에 나온 책으로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아키라>나 <모노노케 히메> 또는 <우르츠키 동자> 그리고 <에반게리온> 등은 어느덧 클래식 저패니메이션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무시되거나 또는 지나치게 확대 해석되는 경향을 보여준 '저패니메이션'에 대한 입장을 좀 더 이론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좀 더 깊이 있게 저패니메이션을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듯 하다.
저자는 저패니메이션을 크게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놓고 보는데, 저자의 분류법에 따르면 저패니메이션은 아래의 특징적인 미학적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1. 카니발적 요소 2. 종말적인 요소 3. 애수적 요소
물론 이런 요소들은 한 작품 속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세가지 요소들이 한데 뒤섞여서 흥미로움을 더해주는 텍스트도 전제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요소들은 저패니메이션 또 일본 사회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화적 요소들이 반영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저자는 좀 더 심층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일단 저자가 이 분야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아래의 글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실제로 아니메가 일본 국내와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의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종류의 잡종성 hybridity에 대한 증거가 된다. 이들은 점점 늘어나는 전자기기의 도움으로 세계 각지의 다양한 대중문화와 친숙한 세대이다. 호미 바바가 사용한 용어 '잡종성'이 권력과 차별의 식민주의적 혹은 탈식민주의적 행사라는 의미를 가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잡종성은 평등한 것이다. 일본인이든 비일본인이든, 아니메의 무국적적인 판타지 공간에서 안전하게 '탈민족적' 정체성이라 불리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비록 이 판타지 공간이 일본 오락산업의 산물이며, 그 때문에 경제적 또는 심지어 정치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아니메라는 매체는 수용자가 타자성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일종의 정체성 탐구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는 오늘날 다른 매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다. (본문 p.60)
이처럼 독창적인 문화 매체인 저패니메이션에 대한 필자의 연구는 단순히 작품에 대한 감상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본문을 '신체, 변신, 정체성'으로, '마법 소녀와 판타지 세계'로 나아가며 다시 일본인의 정신적 핵심을 찾아가는 '역사와 마주선 아니메'라는 3장으로 나누어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먼저 네피어는 <란마 1/2>, <요수 도시>, <음수 학원>, <큐티 하니> 등 변신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보면, 표면적으로 여성의 육체를 에로틱하게 묘사하며 남성 시선으로 착취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 애니메이션의 내면에 여성의 육체에 대한 일본인들 더 나아가 남성 중심 사회의 공포가 담겨 있음을 주목한다.
"종합해 보면, 이 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신체는 단순한 성욕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여체란 것은 강하고 신비로우며 두려운 것이기에,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은 마물뿐이며 그조차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들의 두려운 변신 가능성은 일본 사회가 지난 십년 동안 겪어 온 커다란 변화. 특히 여성 역할의 현저한 변화를 반영한다. 1980~90년대 여성들은 경제적-사회적으로 더욱 자립하기 시작했고, 메이지 시대의 스테레오타입인 '현모양처'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변한다!"라고 외치는 큐티 하니처럼, 현실의 일본사회를 무대로 살아가는 여성들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pp.132~133)
이런 심리의 바닥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가이버>나 <에반게리온>같은 메카물인데, 이들 메카물은 여체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는 고딕/오컬트물의 위협적인 표현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남성적 세계를 구현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메카물은 날카롭고 공격적인 발산형 파워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남성적 세계를 그리며,. 클라우디아 스프링거가 말하는 "흉폭하기까지 한 남권주의자의 모습"을 찬미한다. 메카물은 초고층 빌딩, 실험실, 엘리베이터, 우주 정거장, 산업용 로봇이 널려 있는 거대 기업 등으로 미래를 묘사한다. <중략> 메카물의 서사는 클라이맥스에서 빠른 비트의 강렬한 음악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고딕-오컬트 포르노그래피와 유사하지만, 그것이 섹스가 아니라 전투의 클라이맥스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모든 메카물에는 거대하고 파워풀한 머신들이 서로를 찌부러트리며 해체하고 파괴하는 기나긴 대전투 장면이 있다. 메카물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공포보다는 스프링거가 말한 '테크노 에로티시즘'을 불러일으킨다. " (본문 p.149)
이런 아니메들의 특성은 훨씬 보편적인 할리우드 영화들과도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역시 반할리우드적인 영화이기는 하지만 SF 고전 <블레이드 러너>와 오시이 미모루의 <공각기동대>를 비교하고 있는 부분 역시 흥미로운데, 이 부분에서 발견되는 것은 휴머니즘의 세계를 초월해 버리는 아니메의 독자성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들은 가슴 시리도록 덧없는 인간다움과 생명을 위해 낙하하지만, 쿠사나기는 신체에 구애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인간을 버린다." (본문 p.187) 이를 통해 네피어의 관점이 페미니즘 또는 포스트 식민주의의 입장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오! 나의 여신님>을 비롯한 로맨틱 판타지 코미디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아니메의 서사는 본질적으로 남성의 시점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여성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랑과 남녀관계에 관한 부동의 진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관념, 즉 사랑으로 인해 남성의 정체성이 확고해지며 남성의 자아가 파괴되지 않고 부활한다는 생각이 이전보다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마법을 쓰는 여자친구'가, 단순히 마법을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나전히 다른 세계의 존재라는 사실은 필연적이다. 남성의 꿈이 이 정도로 완벽히 구현되는 일은 지금에 와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질적인 세계에서밖에 있을 수 없다는 암묵적인 인식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본문 p.255)
그리고 이런 일본인들의 근원적인 심리 바닥에서 네피어는 다소 고답적이기는 하지만 다시 원폭 투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심리의 근원을 보여주는 것은 역사르 바탕으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보다는 종말론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아키라>나 <우르츠키 동자> 그리고 <에반게리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잔 손탁이 설명하는 것처럼, 현대의 작품에서는 악의 파멸보다는 단순한 파괴 그 자체. "혼란을 만드는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 <아키라>의 압도적인 엔딩은 현대의 궁극적 스펙터클, 즉 문화 이론가 장 보드리야르의 말을 빌리자면 "소외에 따르는 외설적 무아경"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와 위계 질서의 카니발적 전복이 허용되는 <아키라도>도, 보다 전통적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본문 p.330)
이런 심리는 결국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종말에 대한 집착적 경향을 보여주는데, 이런 심리의 반작용으로 저패니메이션에는 '애수'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음을 저자는 다시 지적한다.
"현대 일본은 한편으로 소비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발전의 극단을 달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학자 매럴리 아이비가 말한 것처럼, "상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잃어버린 것은 때때로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보통은 문제가 있는 과거에 대한 강박을 통해 주제화된다."(본문 pp.348~349)
필자의 능력이 부족하기에 억지스러울 수 밖에 없기는 하지만 위와 같이 정리되는 네피어의 책 <아니메>는 물론 위 글에 담긴 것보다는 훨씬 복잡하게 아니메의 세계를 분석해 내고 있다.
<아니메>는 사실 애니메이션 팬들을 위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문화 이론의 틀로 아니메를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 시의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이 접근해 가는 방식들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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