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유령이 현대 러시아를 배회하고 있다. 빛과 어둠의 '이존재'라는 유령이. '나이트 워치'란 모스크바 시내의 야간 경비대를 뜻한다. 나이트 워치의 회의실에는 명품을 쓰는 걸 좋아하고 중소기업 사장을 닮은 치프, 서로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직장 동료들, 간간히 섞여있는 매력적인 여성 동료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앉아 있다. 언뜻보기엔 보통의 경비업체 또는 경호회사 같이 평범해 보이고 실제로 그들의 삶도 행동도 매우 평범하다. 단, 그들이 무기로 권총이나 방망이가 아닌 마법을 사용하고 경비의 상대가 좀도둑이나 강도들이 아니라 흡혈귀 또는 주술사같은 이존재들이란 것만 빼면. 이 소설은 빛의 수호자인 나이트워치와 어둠의 신봉자인 데이 워치의 치열한 대립에 의해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 소설을 보고 부천영화제에서 봤던 어두침침한 영화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영화 속에서는 지지리도 궁상맞고 정서불안 같아 보이던 주인공이 소설에서는 재치있고 약간은 냉소적이고 (나름대로)능력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토리 진행면에 있어서도 영화보다 소설이 더 속도감있고 박진감 넘쳤다. 보통 소설의 영화화한 것이 좋은 평을 받기는 힘들지만 '나이트 워치'의 경우에는 소설이 시각적인 면에 있어서도 영화보다 훨씬 뛰어나다. 보통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영화에서 내러티브는 시간 제약상 영화가 약했지만 시각적인 측면에서만은 책보다 영상이 훨씬 화려하고 인상적이었다.(직접 보여주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트 워치'는 소설이 영화보다 더 스펙터클하고 화려했다. 영화에서는 제한된 행동 반경안에서만 행동했던 주인공들이 소설에서는 현실, 어스름의 세계, 더 깊은 어스름의 세개라는 세개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박진감 넘치게 싸우고, 추격하고, 첩보전을 벌인다. 영화, 그 이상이 소설 속에 있었다.(그것이 러시아 영화의 기술력의 한계인지 감독의 재해석 때문인지 자본력 문제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이 모든 면에서 영화를 압도한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눈을 가리고 체스게임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단, 그 체스게임의 상대방은 한명이 아니라 다수이며 그들은 몇 수 앞을 미리 보면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은 복잡한 양상을 띄고 흘러간다. 독자는 주인공인 안톤의 입장에서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퍼즐 맞추기를 해야만 한다. 그 정보들은 직접 주어지기도 하고 우연히 얻기도 하고 엿듣기도 하며 얻은 것이며 그 중 어떤 정보가 얼마만큼의 진실을 가지고 있는지는 자신이 판단해야할 문제이다. 마치 스파이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이 책에는 단순히 화려한 마법과 치열한 두뇌싸움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판타지와 스릴러라는 옷을 입고 소설은 우리에게 '선과 악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한다. 이는 수없이 논의되어 왔기 때문에 진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우리 발목을 붙잡는 원론적인 문제다. 이 세계에서는 팽팽히 대립한 빛과 어둠이란 두개의 집단이 있으며 그 둘은 언제나 상호견제하며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보통 빛과 어둠의 대립구도가 나오는 소설들은 선과 악이 확실히 나뉘어 아군은 완전히 신뢰할 수 있었지만 '나이트 워치'에서는 빛이 곧 선은 아니며 어둠이 곧 악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선 아군도 믿을 수 없고 적도 믿을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현실에 대한 인식과 시대적 정신의 반영인 것 같다. 이제 인간이 본능적으로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을 알고 있으며, 그 둘이 흑백논리처럼 명확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리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숱한 교훈을 얻어 왔기 때문이다. 한 때 진리로 여겨졌던 온갖 종교, 이상, 체제, 철학, 신념, 과학, 이성......그 무엇도 절대적 선은 아니었다. 오래전에는 선으로 여겨져 왔던 진실이 이제에 와서는 선도 악도 아니며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에 의해 선 또는 악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절대적 가치가 붕괴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그때문에 혼란스럽다. 너무나 다양화되고 복잡화된 세상 속에서 일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어떤 행동은 선한 것 같아 보이나 악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악이라 생각되지만 선을 품고 있다. 세상은 수많은 인과관계와 카오스적인 고리로 엮여 있고 인간은 그 고리의 일부밖에 보지 못한다. 무엇이 궁극적인 악이고 무엇이 궁극적인 선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둠의 마법사를 죽이는 것은 선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로 인해 불러일으킬 악이 더 클 수 있다. 살인범에 대한 증오, 원망, 슬픔같은 감정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안톤의 모습은 이제는 어느 것이 진정 선인지 악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된 우리를 보는 듯하다. 그렇기에 그에게 더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되고 그를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마치 헐리우드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흥미진진한 전개 속에서도 늘 선과 악은 무엇인가를 묻고 고찰한다. 작가가 제시하는 텍스트들은 재기 넘치면서도 목적을 위한 수단은 정당화 되는가. 진정한 선이란 무엇인가, 공공의 복리와 개인의 행복은 일치할 수 없는가, 인간의 선택은 무엇에 달려 있는가 등에 대해 날카롭게 묻는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물음에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것을 찾는 몫은 언제나 독자의 권리라는 듯. 안톤이 결국 선의 편에서 선도 악도 아닌 잠정적 중립을 취했지만 자신의 연인에게는 강요하지 않고 그녀의 선택에 맡겼듯이, 작가도 그 선택은 오로지 독자에게 맡긴다. 재치있는 말장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해석, 풍부한 액션 등 볼거리가 풍부해서 읽을때는 웃으며 즐겁게 볼 수 있고 읽고 나서 많은 것에 대해, 평소때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고 지나쳤던 문제에 대해 되짚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역시 오타가 난무하고 단어만 한국말로 바꿨을 뿐 문맥상 도저히 해석이 안되는 말들은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
| 놀랍다. 러시아의 문학이 세계최고수준이란것은 알았지만, 대중문학조차도 세계최고수준이란것은... 까무러칠일이다. 술술 읽힌다. 중간 중간 펼쳐지는 스릴은 도저히 눈을 뗄수가 없다. 오죽하면 잠 못이루게 만들정도 일까.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소설속의 철학적 전개는 눈을 뗄수 없을뿐만아니라, 다른 생각을 할수도 없게 만든다 <나이트 워치="">는 선과 악의 대립을 주 소재로 삼고있다. 하지만 단순한 권선징악적인 소재를 사용한것은 아니다. 권선징악을 넘어서 악과 선이 어떻게 공존하는가를 담고있다. 선과 악이란 소재는 진부하지만 그 소재를 전혀 진부하지 않게 살리고있다. <나이트 워치="">의 배경은 현대 러시아, 그중에서도 모스크바이다. 작품에서 빛은 공산주의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어둠이란 자본주의-자유주의의 형태를 띄고 있다. 사상을 선과 악으로 양분 하는것은 분명 좋은것이 아니지만. 내 편협한 시각에는 이렇게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선과 악의 공존이 이 소설의 주제이다. 주인공 안톤은 6년차 빛의 편이며 야간경비대원이다 하지만 그는 과연 빛이 진정한 선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선이라는 집단 속에서도 모순적인 모습이 보여지며 계급적인 모습들이 보여진다. 반면 어둠의 편, 그러니깐 악의 집단 속에서도 나름의 선한 모습이 보여진다. 그는 갈등한다 과연 진정한 선과 악이란 세상에 존재 하는것인가? 러시아는 이제 공산주의의 벽을 넘어 자본주의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완벽한것이 아니며, 공산주의도 완벽한것이 아니었다. 상징적으로 이 작풉은 과도기적인 러시아의 현 상황을 반영하는듯하다. 장벽이 무너진지 이제 20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오랜기간 공산주의 였던 사회가 쉽게 변하지는 않을것이다. 많은 고통과 감내가 필요할것이다 이 소설또한 그 고통과 감내의 일부인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선과 악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선과 악이란 인간의 성향이 아니며 인간의 편협한 시각에서 만들어진 단순한 단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정말로 선하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그것이 '선'이라는 단어에서 나온것이 아닌지 생각해보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선하다고 생각하는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 나는 결코 악의 편도 아니지만 선의 편도 아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절대선을 추구할수도 절대악을 추구할수도 없다. 삶에 있어서는 떄때로 선도 필요하지만 삶 그자체에 있어서는 악이 더 필요하다. 혹은 그 반대 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단순히 오컬트 스릴러로 평가 해야할까? 그것을 넘어 이 소설은 너무나 많은것을 지니고 있다 나이트>나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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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는 한국말로 하면-밤을 지켜보는 자-줄여서 야간경비대를 말합니다.
데이워치와 더스크워치로 이어지는 시리즈의 1부에 해당됩니다.
위 책의 특징으로는 기존에 있던 빛과 어둠과 그 혼돈의 개념을
상당히 새로운 해석과 세계관으로 나타냅니다.
빛이라면 선이라고 생각하고 행복을 상징하며 어둠은 악이라고 생각하며 불행을 상징한다고 보고
혼돈은 그것의 짬뽕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빛의 영향력으로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전체적인 균형측면에서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를테면 성경에서 나오는 정도로 천년에 이르도록 사람이 아주 긴 삶을 산다.그리고 행복하다면
지상에는 생물은 전멸에 이르고 결국에는 인간만이 남으며 그러한 것은 욕심을 불러일으켜서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체가 너무 많아지면 망가지는 것처럼 균형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삶과 죽음을 떨어질 수 없음을
이 책에서의 세계관으로 지극히 현실적으로 단순히 이분법적인 세계관은 아닙니다.
어스름의 세계가 느리다는 것도 상당히 특이합니다.(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따르면
그 세계는 더 오래갈지도 모르죠.)
내용으로 들어가서 너무 자세한 얘기는 스포일러니 자제하고
주인공인 안톤 고로제츠키(상편 75페이지에서 풀네임 나옴)는 흡혈귀는 처지한 이유로
다른 존재들과 7급간섭의협정을 맺습니다.
간섭이라고 함은 영향력을 말한는데 결국에는 주인공은 2급의 영향력을 얻게되죠.
(간섭권으로 한도시전체나 태풍을 멎게하는 정도)
이렇듯이 사회의 범죄나 재해는 어떠한 급에 따라 그 규모나 파장이 달라지게 되는데
그러한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과도 상관이 있고, 여기서의 흡혈귀나 마법사 같은 존재들조차도
거스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안톤이나 그의 상관인 천년이상은 산 헤세르도 사랑과 일이라는 운명에는 거스리지 못하는
마치 현실세계에서는 경찰이나 공무원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며 능력급수가 올라감은 마치 천사의 계가 올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개의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전개되는데
주인공의 시점인 1인칭시점으로 추리소설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손에도 베이지 않는 고급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책재질을 거의 최고수준이며 가격도 무난한 편입니다.추리소설매니아라면 마땅한 추리소설이 없다는 점에서도 보면 추리소설인 것도 같고,실제로 환타지매니아에게도 마법같은 것이 보인다는 점에서도 환타지에도 들어간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시리즈가 기대되는 책으로 추천합니다.(처용의 탈,운명의 책,분필등의 소재도 참 독특합니다.하나하나의 요소가 앞으로도 전개가 궁금한 스케일이 크며 독특한 세계관의 해석으로 철학적이며 할리우드의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빛과 어둠의 차이는 대화장면인 상권 351페이지부터 나옵니다.다 보시고 자신의 가치관과 비교해보시면 재미가 있을 것 같네요.^^
전체적인 윤곽이 잡혀야 읽혀지는 것이 쉬우므로
하권 360페이지부터의 옮긴이부록인 나이트워치읽기를 보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인상깊은구절] "우리가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시도를 또 하게 될까요? 우리의 사사로운 문제는 별개로 하고 말이죠?" |
| 나이트 워치 - 부천 환타스틱 영화제에서 영화로 선을 보여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고 새로운 캐릭터들의 존재를 보며 책으로 꼭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가벼운 종이를 써서 들고다니며 읽기 편했다. 흡혈귀도 아닌 다른 존재의 등장. 마치 흡혈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흡혈귀는 아닌 듯 하다. 분위기는 왠지 흰 얼굴에 눈동자만 빨갖게 되어있을 것 같은 그리고 새까만 긴 직모에 검은 가죽 옷을 입을 것 같은 분위기의 존재들. 2권에 걸쳐 3개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안톤, 다른존재에서는 꽤 젊은 축에 속하는 그, 그도 예전엔 평범한 인간이었는데, 결국 자신의 초자연적 힘을 발견하고 다른존재의 세계속에 들어와 선악으로 대표되는 어둠의 무리들과 싸우게 된다. 사실 싸운다기보다는 약간 배신감마저 느껴지지만 빛의 선봉자인 치프의 꽤에 말렸다고 할수 있다. 나이트 워치는 크게 빛과 어둠이라는 선과 악을 두 축으로 세력이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빛과 어둠 어디도 선인지 악인지 구분하기 애매모호하게 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는 빛의 치프가 더 악하고 이기적으로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그리고 모든 내용에서 치프는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이끌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저주기둥을 간혹 사람들이 가지고 다닌다는 발상은 참 재미있다. 누군가에게 몹쓸짓을 하면 내 머리에도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저주기둥이 발생하겠지. 그들을 선과 악이라는 대칭 속에서 선은 악에서부터 인간을 구하자는 명목하에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무자비한 학살-이것은 이러한 시도의 실패로부터 나오는 결과-이 이루어지며, 선이라는 이름하에 이러한 것들이 정당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여기서는 역사적인 사건과 빛의 세력이 꾸민 여러가지 일들을 연결하여 러시아를 무대로 그러한 일들을 전개해 나간다. 책속에 간간이 나오는 한국적인 이미지들과 액세서리들은 역자의 주관인지, 원작에도 그렇게 나와있는지는 모르지만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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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책이 늦게 도착되어(12일 오전) 직장을 다니면서 짜투리 시간을 내어도 이제야 리뷰를 쓰게 되었는데, 이시간도 오후에 반차 휴가를 내어 쓰는데 늦게 쓰게된 점을 양해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어떤 판타지 소설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내용, 구성이 탄탄하고 재미 있었지만, 가끔 눈에 띄는 오타외에는 가격도 다른 책에 비해 비싸지도 않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나이트워치'라는 생소한 제목에 먼저 호기심이 들어 리뷰어를 신청했고 나중에 읽은 후에야 이 책이 영화화 된 것도 알게 되었는데, 대부분 원작이 재미있다고 하니, 해리포터 시리즈도 영화보다는 책으로 읽었던 것이 재미있었는데, 아마도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형성된 상상력이 영화화되면 생각하는 것보다 영사으로 제작하는데 있어 제약되는 것이 많은 듯 싶습니다. 나이트 워치를 읽으면서 우리들이 상상하고 있던 , 어찌보면 한번씩 꿈꾸고 하고 싶은 초능력을 지닌 마법사들의 이야기, 그 것도 경찰이라니, 현실에서도, 경찰이라면 나름대로 힘을 가진 존재인 것을, 이나이에도 어렸을 적 동심이 있었나 봅니다. 이 책은 읽다보면 주인공 안톤은 빛의 세계에 속하면서 야간에 순찰을 돌며 어둠의 세계를 감시한다. 반대로 어둠의 세계에 속한 데이워치는 낮 시간에 순찰을 돌며 빛의 힘을 컨트롤한다. 이들 사이를 중재하는 역활의 더스크 워치가 맡지만, 이 힘의 균형을 무너뜨릴 다른 존재가 출현하는데,서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데,소년 예고르가 그 중심에 서 있게 된다.작품속에 주인공 안톤은 마법의 힘을 가지면서 그 힘을 사용하면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옳다고 일이 나중에 나쁜일의 빌미가 될 수도 있고 지금 당장의 사소한 실수가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하면서 우리의 인생 새옹지마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판타지 소설의 흥미를 넘어 우리에게 철학적 교훈을 준다고 하는데,서양철학에서는 볼 수 없는 양 극단적인 대치체계가 아닌 중간단계의 설정은 아마도 러사아의 역사,정치,우여곡절속에서 작자 자신이 고뇌하던 상대주의적 가치관이 작용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우리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의 러시아가 어떤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상실된 혼돈의 가치세계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있어 서구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장단점을 어느정도 알게 되었고 어느 것이 낫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다시 공산주의에 대한 회귀, 동경도 아직도 많은 이들이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빛이 곧 선이 아니고,어둠이 곧 악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책은 워치시리즈 3부작 '나이트' '데이' '더스크'로 나눠, 그 첫번째 이야기로 각각 빛,어둠,어스름의 입장에서 어떠한 사건들과 논리로 서술한다고 하니, 앞으로 기대가 큽니다. 항상 소장가치여부를 적을때 고민이 됩니다. 책의 가격면이나 편집에서 특히나,눈의 피로를 덜한 재질의 용지를 사용한 점,책의 크기는 일반 소설책보다 가로 세로가 조금 작다는 점. 내용은 흥미진진하며,반전을 거듭,재미있어 소장해도 무난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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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는 무척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 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잡학다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주제와 접근법은 그리 색다른 느낌을 주지 못할 것이다.
거대한 명제라 할 수 있는 '선'과 '악'이라는 대립구조에 대해, 작가는 '빛'과 '어둠'이라는 표현을 쓴다. '빛'으로 대변되는 '선'과, '어둠'으로 대변되는 '악'.
그리고 그 중간계로 '어스름'의 세계가 있다.
그러나 누가 '빛'이 항상 선하며, '어둠'이 항상 악하다고 할 수 있을까?
'빛'과 '어둠'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의미에서는 무척 애매한 경계선상에 있는 단어라 할 수 있다. '빛'과 '어둠'은 그 정의만으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는 것이리라.
'나이트 워치'는 상/하권에 걸쳐 3가지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인간과는 '다른 존재'인 주인공 안톤은 빛의 편에 서 있지만, 그는 항상 고뇌한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선'의 본질이 선하다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까지도 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선하지 않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선'은 진정한 '선'이라 할 수 있을까?
이는 어둠의 세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논리이다.
주인공은 항상 '진실'을 말하는 '어둠의 세력'과, 대의명분을 위하여 남을 속이고, 심지어는 인간의 운명까지 (미약하다 하더라도) 바꾸어놓는 '빛의 세력' 사이에서 의문을 가진다.
이야기는 안톤과, 그의 운명의 상대이자 세상을 바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한 능력을 타고난 여인 스베틀라나와의 만남부터, 이들이 어떻게 '빛의 세력' 안에서 능력을 키워나가고, 사랑하게 되며,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타협해나가고, 운명을 깨달아 가는지를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구조는 흥미롭다.
특히 어스름의 세계라는 다층적인 세계 구조를 도입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계에 또 다른 패러렐 세계를 (물론 일반적인 패러렐 세계가 아니지만) 덧씌우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
'다른 존재'들은 이 어스름의 세계를 넘나들며 서로를 감시하고,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역시 아쉽다.
비단 오타와, 부자연스러운 현대어역 등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오타보다는 잘못된 띄어쓰기가 많았던 것 같다)
작가는 너무나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요구한다.
안톤의 사고는 사건의 핵심에 이를 때 갑자기 비약하곤 한다.
이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도는 무척 떨어지는 편이다.
그의 고뇌를 겉으로는 이해하겠지만, 그 본질적인 면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의 사고가 거침없이 비약하고, 그 비약 덕분에 어김없이 사건의 해결점에 다다르게 되는 이유는 후반에 밝혀지는데, 이 또한 언페어 플레이아닌가...
가장 뜬금없었던 게 안톤이 찾아낸 '예고르'라는 소년.
이 소년은 '빛'도 '어둠'도 아닌데, 작중에서 계속 '이 소년은 미래엔 어둠이 될 것이다...'라는 말로 소년의 미래를 확정짓는다. 그런데 이게 왠 걸 -_-
세번째 에피소드의 사건을 통해 이 소년은 놀라운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이 세계에선 별로 논리력이 필요없다.
세상은 운명대로 움직이는 것이며, 그 안의 존재들은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운명을 바꿔보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더욱 상층에 속한 상위계급자들의 뜻대로 결말을 맞이할 뿐이다.
'나이트 워치'가 빛의 관점에서 쓰여진 이야기이고, 후속편인 '데이 워치'가 어둠의 관점, '더스크 워치'가 어스름의 관점에서 쓰여진 이야기라 하니, 후속편까지 보기 전엔 '나이트 워치'의 진가를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야기는 지금 막 시작되었을 뿐이고, 그들은 이제 막 운명에 눈을 떴을 뿐이며, 그들이 보는 세계와 다른 존재들이 보는 세계는 반드시 다른 의미를 띌 것이기 때문에.
*참, 책에 사용된 종이질은 상당히 좋았다. 무척 가벼워서 두께에 비해 들고다니며 보기 무척 편했던 책. [인상깊은구절] "빛이여! 어둠이여!" 저 말로 인해 모든 것은 운명지워지는 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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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나오고 변신마법사 나오는데 아동물 아니고 유치하지도 않다.
소재답잖게 끈적끈적하고 음습한 느낌보다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즐겁게 몰입할 수 있다.
글의 느낌도 영미권 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러시아 소설의 힘일까?
세 개의 에피소드로 되어 있는데 약간 수사물 분위기도 나고...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가 아주 재밌었다. (원래 주인공이 누명 쓰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 누명을 쓰고도 별로 억울해 안하고 재빨리 머리쓰며 뛰는 맘에 드는 주인공...)
영화도 일찌감치 보았던 작품인데, 영화는 영상미나 특수효과 장면장면의 분위기 같은 게 압권이었고 스토리는 너무 중간에서 끝낸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거울 들고 싸우는 장면은 죽인다... 특수효과액션 팬들은 필추!)
소설은 전체적인 깊이가 있고 줄거리상 복잡한 복선을 찾아 가는 재미가 영화와는 비교가 안된다.
영화와 소설이 거의 별개라고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치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해두지. 이제 뭘 할 건가, 안톤?" "체포될 준비나 하고 있을까 합니다." (>_< 귀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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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탄탄하다. 그리고 만족한다. 탄탄한 내공이 실린 상업적인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러시아의 심리적이고 다소 철학적인 정신이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상업성을 만났을 때는 어떨까? 이 책이 모든 것을 말해 줄것이다. 두께를 보고 겁 먹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읽기 시작하면 그 두께는 이미 머리 속에서 잊혀져 있을 것이다. 하나 흠이 있다면... 번역이 조금, 아주 조금 문제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알아서 잘 읽을 수 있다. 아주 가벼운 철학이 담겨 있는 환타지이다 보니 그런가 보다. |
| 1. 리뷰를 어떻게 쓸 것인가 내 돈으로 샀다면 보다 설렁 설렁 읽거나 읽다가 던져버릴 수 (설마 실제로 던질까? 던진다, 살살. 이 책이 재미없어서 던지고 싶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 반대다) 있었는데, 두꺼운 책 두 권을 선물 받은 기분으로, 솔직이는 숙제하라고 받은 느낌이라 정말 책임감 있게 열심히 읽는다. 게다가 이 작품을 영화로 먼저 대했으므로, 간간히 영화를 돌려가면서 비교하면서 리뷰 잘 쓰려고 용을 쓰고 있다. 영화까지 포괄하기 위해 이 리뷰는 2부작으로 쓴다 (뭐, 길고 긴 스티븐 킹 작품도 몇부작으로 나눠 리뷰를 쓰는 마당에.. 변명같지만, 길고 대단한 작품을 읽으면서 순간 순간 마다 변화하는 감정이나 느낌을 한 번에 일괄적인 감정으로 통일해 쓴다는 것은 나에겐 너무 힘들다). 2. 영화와의 만남 어느날 휴일 정오, [출발 비디오 어쩌구]에서 보여준 맛뵈기 영화. 머리카락 더부룩한 한 남자가 바람난 금발 미녀 와이프를 되찾기 위해 마녀를 찾아간다. 마녀는 그 남자가 내민 부부사진의 뒤를 돌려가며 이름이나 사연 등을 캐치하는 등 사이비성을 보여주다가 이러저러한 것들을 섞어 (내가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다면 좋았을 터인데...그 남자의 피까지 포함해 두 가지 액체만 섞는데, 그 라벨까지 보여주었다) 그 남자더러 마시라고 한다. 그 남자 그걸 마시고 어찔하는 순간, 필름이 빠르게 돌아가며 뚱뚱한 마녀가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보여준다. 그 순간 선상에서 딴 남자와 찐한 키스를 하는 아내, 절교를 선언하고는 임신한 배를 움켜잡는다 (임신한 아이는 혼외정사의 산물이다. 이 소설의 역자는 역자후기에서 이를 정정해주기를. 남주와는 피로 얽힌 부자관계가 없단 말이다. 뭐 이혼한 아내의 자식을 꼭 부자관계로 만들고 싶다면 어쩔 순 없지만). 마녀가 손벽을 쳐서 주문을 마무리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두 남자(사실 아까 미행하던 사람들이었다)가 나타나 중단시키려하고, 거미로 변한 인형과 올리브 오일은 그들의 저지를 막는다. 이때 소설에서도 나타나는 언제나 호감을 사는 호랑이 여인이 등장, 위기사태를 막는다. 화면 바뀌고 때는 1342년 프랑스 남부, 빛의 전사들이 마녀와 마법사들을 체포해서 (무슨 짓을 했다구! 왜?) 가는 길에 어둠의 전사들을 만난다 (거참, 빛의 전사들은 밝고 깔끔한 갑옷을 입고 어둠의 전사들은 더러운 이빨에 짐승의 뼈와 털가죽을 이용한 야만적인 모습이다. 이런 전형적인 타입화를 좀 바꿔보는게 어떨까?). 이들은 죽어라 싸우고, 이 장면은 조금 점수 보태서 삼부작 [반지의 전쟁]의 전투씬을 연상케한다. 그러고보면 헐리우드 자본없이 이 정도 만들어 낸건 대단한거 아닌가. 이들은 이렇게 나가다간 한명도 못살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서로 협약을 맺는다. 악의 축은 주간 경비대 (the day watch)를 만들어 선한 축이 자연스런 흐름을 바꾸는 것을 견제하고, 선의 축은 야간 경비대(the night watch)를 만들어 악한 행동을 견제한다. 그것도 협약에 거스르는 것들만.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지만, 재미는 거기서부터 하락한다. 영화는 이 소설 [나이트 워치]의 앞부분만을 보여주고 있으며, 엔딩 장면에선 ''앞으로 또 보여줄께''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끝난다. 역시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원작의 심오한 철학 (그렇다고 본 작품이 심오한 철학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하하)이나 깊이있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은 힘들다. 시각적인 면에 치중하다 보니 오락성이 강조된다. [나이트 워치]의 세개의 에피소드 중 맨처음만을 영화화 하였다면 나머지 추후에 나올 영화들은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이 작품은 영화보다는 미니시리즈화 했어야 했다. 안타깝군. 3. 작품의 세계관 뱀파이어와 마녀 등이 등장하는 작품을 써보고 싶었다는 작가, 세르게이 루키아넨코는 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코드를 가진 인물인 것 같다. 난 뱀파이어와 마녀가 등장하면 꼭 읽고 보니까. 영화 [블레이드]에서도 족보있는 흡혈귀 순수혈통은 인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적응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하지만, 언제나 사이비가 설치듯 아무나 물어뜯는 흡혈귀등을 처치하기 위해 반흡혈귀인 사냥꾼 주인공과 일종의 휴전 및 협공 협략을 맺는다. 인간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는한 선의 세력이라고 볼 수 없는 이런 흡혈귀 세계는 공존하는 것이다. 억지로 이들을 없애려 하는 것은 차라리 모두를 망하게 하는 전쟁을 불러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에휴, 여기서 부시가 왜 떠오를까). 세르게이 루키아넨코의 삼부작 [나이트 워치], [데이 워치], 그리고 [더스크 워치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Twilight Watch였는데...]에서의 세계도 이와 유사하다 (어떻게 동일한지를 말할 수 없으니 유사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극중에 능력을 가진 소년을 찾아낸 안톤이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면서 난처해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선한 편에 서서 악의 세력을 처단하는 슈퍼맨이 아니라, 악의 세력과 공존하면서 서로를 견제하는 것 (소년의 입장에서 보면 소극적이고 비겁하기까지 하겠지)이 그들의 존재이유이다. 그리고 보면, 어째 우리의 삶 곳곳에서 발견되는 정치의 편재성 (omnipresent함)과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의 목표는 암흑 세력을 박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목표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암흑의 세력은 인간들이 자기 속의 악을 이겨냈을 때에만 사라진다. 또는 인간들이 빛보다 어둠이 더 좋다면 , 그때는 우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p.80 여기서 집어볼 것은 악의 세력을 감시하는 안톤이나 ''다른 존재''로 밝혀진 소년 둘 다 뚜렷한 빛의 세력은 아니라는 점이다. [블레이드]에서도 뱀파이어 헌터는 흡혈귀로 태어난 존재였다. 어떤 것을 사냥하고 없앨 수 있다는 것은 - 손자 병법의 ''지피지기는 백전백승''란 말까지 떠올리지 않아도 - 상대세력을 매우 잘 알아야,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버텨내지 못하면 상대세력으로 휩쓸릴 위험도 갖춘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것을 잘 알고 싫어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걸 무척 잘 알고, 어쩌면 한때 그 쪽에 속했을 거라는 헨리 제임스의 말이 떠오른다. |
|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러시아에서 만들어진(어마어마한 히트를 기록했다는) 영화를 먼저 봤는데, 감각적인 영상과 파워있는 비쥬얼은 무지 돋보였지만 내용은 도무지 뭔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내용도 다 이해가 되고(물론 영화적인 각색 때문에 원작과 영화는 상당히 내용이 틀리다), 그 방대하고 깊이있는 나이트워치의 세계관에 빠지게 되었다 배경은 현대 도시 모스크바 빛과 어둠으로 나뉜 ''다른 존재들''은 수백년 전의 대협약을 통해 휴전을 맺었다 다른 존재란 고대부터 존재해온 마법사, 마녀, 변신사, 흡혈귀들... 이들은 서로를 감시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어서 어둠의 세력을 감시하는 나이트워치와 빛의 세력을 감시하기 위한 데이워치가 있다 그리고, 어스름의 세력을 감시하는 더스크워치도 존재한다 이쯤되면 눈치 챌 텐데... 이 작품에선 빛과 어둠이 선과 악이 아니다 단지, 삶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자기가 선택한 하나의 길일뿐... 그래서 어둠의 세력도 인간성이 있고, 빛의 세력도 승리하기 위해 온갖 치사한 권모술수를 구사한다 어스름의 세계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면에 있는 다른 영역인데, 이곳을 드나들면서 다른 존재들은 여러가지 능력을 발휘하고 전투를 치른다 이런 세계관이 한데 어우러져서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환상적인, 반지의 제왕과 현대적인 첩보영화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판타지 작품이 탄생했다 그런데, 문제는 번역이 영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후졌다 번역자가 한국말을 잘 못하는 사람인지... 아주 오래된, 구식 냄새가 풀풀나는 촌티나는 단어들을 쓰질 않나... 문체도 너무 껄끄럽고 부자연스럽고... 정말 영 아니다 그래도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그렇게 크게 지장을 주진 않아서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