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이 주신 참나는 성령이라 사람의 본성은 성령입니다(37쪽). 길을 걸으며 님(하느님)을 그리면 마음에 기쁨의 샘물이 터진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우러르며 걸으면 더욱 신비를 느낀다(37쪽). 나는 이것을 읽고 이제는 바닥에 돈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다. 사실 인간만이 서서 하늘을 본다. 언제 개가 하늘을 보는가. 그래서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하늘을 보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마음처럼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가난뱅인가 되는 것, 거지가 된다는 것, 순례자가 된다는 이 모든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다."(톨스토이, 『신앙론』)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물질을 모으는 것을 그만두고 마음을 비워 두자. 그래야 하느님이 들어오신다."고 하였다(118쪽). 그러니까 톨스토이가 모든 저작권을 포기하고 집을 나서서 역사에서 죽은 것이 아닌가. 톨스토이 부인은 이것이 싫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부인인 크산테페가 악질이 아닐 것이다. 남편이 돈을 벌어 오지 않는데 성질 안나는 부인이 있을까.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 옳으리라. 부모를 버려야 깨닫게 된다고. 그래서 가족은 깨달음의 길에 방해자인 것을 나도 느낀다. 그래도 버릴 수가 없다. 나의 업보이니 말이다. 예수가 그의 어머니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한 2 : 4 개역성경)라고 하고 "이 세상 누구를 보도고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마태오 23 : 9)라고 한 것은 가정을 초월하라는 것이요, 초월한 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가정은 인정하였다.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마태오 19 : 6)고 한 것이 바로 가정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류영모는 무론 예수와 생각이 같았다. 류영모는 가정을 초월하려고 애썼지만 가정을 버리지는 않았다(154쪽). 중세 가톨릭에서 일반인들이 성경을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헬라어 성경을 쓴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16세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겉껍질 개혁에 지나지 않지만 그의 성경 번역은 불후의 공적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189쪽). 루터의 개혁은 가톨릭을 비판하는 수준 특히 면죄부에 집중되는 것이었다. 성경의 번역은 민주화를 초래했다. 물론 구텐베르크의 공헌도 무시하지 못한다. 아무리 번역을 해도 책으로 찍지 못하면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류영모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느님과 그의 보내시는 성령을 아는 것이니이다"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만 빼고 그리스도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영모는 그리스도가 줄곧 성령이라고 하였다(205쪽).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것은 상대와 절대를 가려 보지 못할 때의 일을 말한 것이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것으 상대적 존재를 부정하고 절대적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 존재도 절대존재의 구현이더라는 뜻이다(256쪽). 그런데 이것은 이미 중국 고승들이 많이 한 이야기인 것이다. 불교계의 나의 스승이신 숭산스님의 360도 논리와 같을 것이다. 토인비는 기독교 전통교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수의 처녀 탄생과 육체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였다(366쪽). 정신적이 관계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란 정도의 문제일 것이다라고 말했다(토인비의 『회고록』(366). "(중략) 하느님을 바로 깨닫지 못하니까 사람더러 하느님 돼 달라는 게 사람을 숭배하는 이유다. 예수를 하느님 자리에 올려 놓은 것도 이 때문이고 가톨릭이 마리아 숭배를 하는 것이 이 까닭이다"『다석어록』고 하였다. 위대한 말씀이다. 하느님이 달이라면 그 달을 알기 위해서는 그 가리키는 손가락(예수 그리스도, 석가, 공자, 노자, 장자, 맹자, 소크라테스 등)을 치워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석 선생님은 나의 스승이시다. 1890년에 태어 나셔셔 1981년에 돌아가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탈이고, 나의 스승님은 너무 오래 사셨다. 차라리 기존의 교회를 도발하셔서 일찍 돌아가셨더라면 어떨까하고 생각해본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그 스승님이 못하신 일을 해보면 좋으리라고 생각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