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으며,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치매와 파킨슨으로 말씀도 못 하시고 팔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하시며 욕창으로 고생하시고 누워만 계시는데, 입을 벌리지 않으셔서 음식을 드시지 못하시게 되자 콧줄을 끼워 영양분을 공급해 드리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어머니에게 콧줄을 끼워 드리기 전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었다면, 진정 어머니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며 어머니가 덜 고통받으시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을 것 같다. 말씀을 못하시고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며 끙끙 앓으시는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의 건강이 요양원에 들어가실 정도로 나빠지기 전에는, "그는 이 책임감이 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삶의 폭이 좁아짐에 따라, 아내를 돌보는 일은 자신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라는 본문의 내용처럼, 나 또한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나의 삶을 충만케 해주는 경험을 하였다.
그러더가 나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삶의 시야가 축소되어 눈앞의 미래가 불확실하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삶의 초점은 지금, 여기로 변화하게 된다. 일상의 기쁨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로 옮겨 가게 되는 것이다."라는 본문에 나오는 내용처럼 나 또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완화 치료 전문가인 수전의 "만약 시간이 촉박해진다면, 선생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라는 질문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 밖의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되기 전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꼭 물어야 할 질문 목록인, 병의 예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앞으로 일어날 일 중 무엇이 염려스러운지, 기꺼이 희생할 용의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 건강이 더 악화되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할 상황이 되면 누구에게 그걸 대신하게 할 건지 등의 대화를 어머니가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실 때 나누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러면서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
|
간단히 얘기합니다. 나이 마흔 넘었으면 이 책 사서 읽으세요. 이십대가 읽기에는 아직 이르고 삼십대는 몇몇은 생각이 많아질겁니다. 아, 이십대도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시면 이 책 얘기가 남 얘기 같지 않겠네요. 다시 말하지만, 마흔 넘었으면 속는 셈 치고 한번 읽어보세요. 이른바 기술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학자들이 '죽는 자의 역할'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잊고 말았다. 그것이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 두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
|
젊은 사람들은 죽음이 내게 곧 들이닥칠거란 생각을 하진 않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지인, 가족 등의 안타까운 상황으로 죽음을 대하긴 했지만 대부분 병원에서 질병과 사투를 벌이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
|
아툴 가완디(김희정 옮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부키 출판사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나중에 당신에게 일이 생기더라도 "무의미한 생명연장은 하지 말라" 고 심심찮게 말씀하셨다.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하여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나, 사실은 크게 쓰러지지 않으셔서 건강해 보일 뿐이지 이미 어머니의 몸에 여러 질병과 노화가 진행중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결정이 어떠한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맥락을 이해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요컨대 어머니의 결정은 마지막 순간의 삶의 질(의미 있는 끝맺음), 과도한 의료비 지출 방지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
미국 의사인 아툴 가완디는 현대사회의 선진국에서 사람들이 의료시스템에 의존하며 생의 마지막을 있는대로 지연하다가 인공적인 장치들과 함께 임종을 맞는 것이 과연 존엄한 죽음인지 묻는다.
저자는 '좋은 죽음'이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누리는 것이라 정의하고, 이를 위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자율성과 주도권을 의료 시스템에 넘기지 않아야 하며, 환자 자신이 의미있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치료/ 수술/ 생명연장/ 중단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임종을 앞둔 여러 환자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자율성과 주도권을 갖는 일이 현재 선진국의 의료시스템에서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가졌다 하더라도 환자와 가족들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행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율성과 주도권을 행사하여 결정한 의미있는 죽음이 환자본인과 유가족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남기는지 저자의 부친과 몇몇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노년 생활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요양원에 비해 개인의 사생활과 자율성을 폭넓게 보장하는 미국의 "Assisted Living" 시설을 긍정적으로 소개하고, 임종에 관해서는 "완화치료"와 '가정방문형 호스피스 케어'를 제안한다. 암환자의 통증을 관리하며 삶의 마지막 일상을 의미있게 보내는 것이 인공적이고 무의미한 생명연장보다 낫다는 것이다.
저자는 행정 및 의학적인 내용은 알기 쉽고 명료하게, 환자의 상태와 언행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독자가 환자와 유가족들의 객관적 상황와 감정까지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초반부를 읽을 때는 상황 묘사가 다소 장황하지 않나 싶었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어느새 저자의 이야기 방식에 적응하여 몰입하게 읽었다.
추천대상 : 환자 및 환자 가족분들께, 나이 드신 부모나 조부모를 모시고 계신 분들께, 의료 / 상담/ 심리/ 보건 등의 분야에 뜻을 둔 학생들에게 권합니다.
TMI : 저자는 안락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
| 나이가 들고 주변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때 마음의 정리가 필요해서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책을 읽다가 접하게 된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 해주었고 어떤이는 20대 30대 40대가 될때마다 아니면 매년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하기도 하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여러가지 과정이 있는데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죽음은 질병으로 인해서 죽어가는 경우가 가장 중심이 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불필요한 연명치료는 하지 말자는게 핵심으로 판단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단력이 흐려지기 전에 미리미리 가족들과 의견을 얘기해서 나중에 가족들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요양원 요양병원등도 본인의 삶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선택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하자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말기암 환자의 경우 호스피스 치료를 하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나 하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개인의 판단이므로 미리미리 의견을 나누면 좋을 것 같다고 합니다. 본인은 이책에 있는 내용이 크게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만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할때 나의 판단력이 명료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미리 많은 얘기를 나누어서 불필요한 혼란을 막자는 얘기는 수긍이 갑니다. 그러나 아직 이런 얘기는 가족끼리 편하게 얘기하지 못하는게 대부분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더 좋은 선택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게 되며 40대 이후 부터는 한번은 꼭 읽어 보고 생각해봐야 하는 책입니다. |
|
# 0 글 잘 쓰는 의사, 아툴 가완디를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린 책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산 책이 24쇄이니, 대략 10만 부 정도 팔린 책 아닐까 싶다. # 1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서 죽기 마련인데, 그 모습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현대 문명은 죽음을 집에서 병원으로 옮겨놨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긴 했지만, 과도한 의료 개입과 연명 치료가 비용만 높이고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일부 의사들도 이러한 비판에 동의하며 호스피스, 존엄사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 2 이 책이 죽음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묘사한다. 이 책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면서 '어떻게 늙을 것인가'이기도 하다. # 3 아툴 가완디 책은 『어떻게 일할 것인가』와 이 책을 접해봤는데, 구성력이 뛰어나다. 클라이막스를 짜잔, 하고 하는 데 천재적(?)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 예상할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한데, 이 책의 마지막은 본인 아버지 이야기다. 역시 의사였던 아버지가 목에 종양을 발견하고, 여러 전문가와 협의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상하게 전한다. 아버지를 추모하는 대목은, 그 어떤 아들이 이렇게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뭉클하다. # 4 내 나이도 어느덧 30대 후반이다. 예전이라면 이런 종류의 책은 지적 호기심에서 봤을 법한데, 요즘은 지극히 실용적인 면에서 본다. 좀 있으면 무릎이 안 좋아지겠구나, 좀 있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겠구나...... 물론 이런 걸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노화, 죽음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사람, 과 관련한 좋은 기억을 많이 쌓자. --- 우리는 현실을 인정하지도, 환자를 위로하지도, 적절한 안내자 역할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환자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치료 방법을 제시했을 뿐이다. 어쩌면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면서 말이다 (15쪽) 현대화가 강등시킨 것은 노인들의 지위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였다. 현대화는 사람들에게 - 젊은이와 노인 모두에게 - 더 많은 자유와 통제력을 누리는 삶의 방식을 제공했다. 거기에는 다른 세대에게 덜 묶여 살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 노인들에 대한 존중은 ㅇ벗어졌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젊음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독립적인 자아에 대한 존중으로 대체된 것이다 (43~44쪽)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94쪽) 삶을 추동하는 주요 동기는 꾸준하고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엄청난 변화를 거친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매슬로의 고전적인 욕구 위계에 끼워 맞추기 힘든 경우가 많다. (중략) 삶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우선순위가 급격히 변한다. 대부분은 성취와 사회적 관계를 추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줄인다. (중략) 무엇을 하는 것보다 존재하는 데, 그리고 미래보다 현재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150쪽) 우리는 지금도 저물어 가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곁에 있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있게, 그리고 그저 수수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159쪽)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삶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172쪽) 죽음을 의미 없는 것으로 느끼지 않게 할 유일한 길은 자신을 가족, 공동체, 사회 등 더 큰 무언가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지 않을 경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저 공포로 다가올 뿐이다. (198쪽) 질병과 노화의 공포는 단지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다. 그것은 고립과 소외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227쪽)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소비자 문화의 영향으로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점점 왜곡되는 시대에 의사들은 환자의 기대를 짓밟는 발언을 하기를 특히 주저하게 된다. 우리는 과도하게 낙관적인 것보다 과도하게 비관적인 것에 대해 훨씬 더 많이 걱정한다. (258쪽) 문제는 현대 의학 시스템과 문화가 그 긴 꼬리를 위해서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의학적으로 마치 복권과도 같은 것을 제공하기 위해 몇 조 달러에 달하는 체제를 만들었으면서도,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는 환자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서비스만을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희망은 계획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계획은 희망밖에 없다. (263쪽) 삶의 마지막 단계를 제어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안한다는 것은 보통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을 진정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물리학과 생물학, 그리고 우연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우리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용기란 이 두 가지 현실을 모두 인식할 수 있는 힘이다. (370쪽)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373쪽) |
|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의사인 작가가 죽음에 대해서 쓴 글이다. 특히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서. 누구나 죽지만 의학 기술에 발달함에 따라 죽음은 자신과 먼 이야기처럼 생각된다.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죽기 전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주변 사람들의 사례를 들어 좀더 현실감이 있다. 특히 마지막에는 역시 의사였던 작가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늙고, 죽어가고 싶은지 생각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는 공포와 두려움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죽음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과 그 고통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의 몸을 컨트롤할 수 없는 고통,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고통등 죽기 전에 우리는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곧 가가올 부모님의 죽음, 이어서 나의 죽음까지.. 생각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
|
요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나도 곧 늙어 저분들처럼 요양원에 들어올텐데 싶은 생각에 나름 잘하려고 하면서도 많은 순간 시간을 지키지 않고 늦은 시간까지 TV를 보시거나, 식사를 안 하시고 약을 안 먹겠다 등의 자기 주장을 하시는 분들로 하여금 업무가 늘어나고 그로인해 힘이 드니까 미워했던 적이 많았다. 그때는 그분들의 과거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렇게 말하면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정든 많은 것에서 떨어져 나와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 섞여 갑자기 모든 규율과 질서를 요구하는 그곳이 얼마나 낯설고 외로웠을지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제시한 몇가지 사례들을 엮어 요양원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꾸어봤다. |
|
이 책은 갑작스런 죽음이 아닌 자연스럽게 노화에의한 고령에서의 죽음을 다룬다. 죽기전에 모든것이 통제당하고 시간표대로 생활되는 요양원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늙더라고 주체적으로 생활하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다사 죽을것인가 경제적인 안정이 필수가 되어야 다른 삶도 생각할수있는것 아닌가 한다 점점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죽을것인가는 생각해볼문제이다.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죽음이기에 요양원에 있는 내모습이 떠올라 섬뜩했다. 주체적으로 살수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책을 읽고 혼자사는 집에 생명이없었는데 화분하나를 샀다. 생기가 느껴지도록 의사들이나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
|
가완디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을때 그는 의사로서가 아닌 부모와 자식으로서의 끈끈한 연민을 느낀다. 죽어가는 아버지의 화장실 처리를 도우며 그는 아버지의 세계가 세상에서 닫히고 있음에 슬퍼한다. 그가 철학을 공부하다 의학을 공부하게 된것은 아버지의 영향인 듯 싶다. 현실적이면서도 소박하게 주위를 바꾸고 나아가길 원했던 가완디자신의 모습은 시골의 작은 땅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 반해서 사버리고 그 속에서 소박한 삶을 꾸리려 꿈꾸는 장면에서 엿볼 수 있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우리는 생명연장의 기회를 선물로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최후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죽음, 행복한 죽음일 수 있는지 그는 우리에게 묻고있다. 수많은 스쳐간 환자들을 통해 과연 그들의 마지막 순간에 혈관에 놓는 항생제와 목을 뚫고 삽입하는 관이나 정맥으로 주사하는 영양제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질문하는 것이다. 의사는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의 행복한 마감에 대한 선택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으며, 그들 개개인이 자율적인 행복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갖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난 과거동안 치료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환자)맞이하는 최후의 순간을 방치해 왔음을 시인한다. 최후를 맞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그들의 병과 맞서 싸우려하고 끝까지 생명을 놓치 않으며 그들의 시간을 병실에서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남은 시간을 가족안에서 행복하게 끝낼 수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간다운 아름다운 죽음임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