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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페이지의 에세이를 쓰기 위해 수 천 페이지를 써야했고 매 페이지마다 30~40개의 초고가 필요했을 만큼의 고통스런 '언어'를 통해 "무례한 천재적 아마추어리스트" 폴 굿맨과 "환호, 그리고 정신의 진지한 유희의 분류학자" 롤랄 바르트, "고통을 통해 발언할 권리를 획득한" 앙토냉 아르토, "열렬한 도덕주의자" 엘리아스 카네티, "병적 아름다움의 집착자" 레니 리펜슈탈, "우울한 열정의 소유자" 발터 벤야민, "절충주의적 초현실주의자" 한스-위르겐 지버베르크를 '투명'하게 복원하려 하는 것이다. (서문에서)
우연한 기회에 지적인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후 접하게 된 수전 손택, 그 고집스럽고 완고해 보이는 얼굴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녀의 글들은 쉽지 않았다. '우울한 열정' 속에 선택된 이들은 대중적이지 않은 사상과 지식으로 중무장한 천재들인데다, 그들을 이해하기위해 그녀식대로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이뤄진 지적인 글들은 휴~ 땀날 정도로 이해불능했다. 그럼에도 이 우울한 천재들을 이해하고 말았던 수전의 노고를 느낄 수 있는 글들이라 정말 멋있다.
'우울함'과 '광기', '고통', 그리고 '천재성' 사이를 배회하는 전위적 지식인들에 대한 송덕으로서, 예술에 대한 확고한 지지자로서 자신의 임무에 긴장감을 부여하며, 손택은 내면을 향한 열정과 어지럼증 나는 예술에 열렬히 찬미한다. 손택은 늘 그렇듯이 주류 예술 밖에 존재하는 광기어린 예술에 대한, 그리고 때때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인류의 경험이 닿지 않는 철저한 변방의 예술에 관심을 갖는다. 특유의 냉정하고, 합리적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정'이 베인 전위적인 언어의 확장에 있다. 너무도 만족스러운 듯이 그 작업을 반복할 수 있는 것은 아르토의 말처럼 "고통에 길들여지기"때문이다.(서문에서)
주류 예술 밖에 존재하는 광기어린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천재적 열정'으로 똘똘 뭉친 전위적 예술가들을 찾아내고 그녀의 언어로 그들이 재평가 될 수 있도록 찬미하는 '우울한 열정'은 그래서 쉽게 읽히진 않는다. 지하철 출퇴근 시간에 읽기엔 부적합한, 정좌를 하고 집중해서 읽어야 할 그런 책이다. 그렇게 정좌를 하고 읽어도 한 글자뿐만 아니라 한 단락조차도 쉽게 넘기지 못하지만, 왠지 수전의 소개에 흥미를 갖게 되어 천재적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검색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이지 않을까 한다. 작품을 공유한 후, 그렇게 수전의 우울, 광기, 고통, 그리고 천재성을 이해해볼 참이다. ㅋㅋㅋ 같은 공간에서 숨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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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평서를 읽으려니 조금 피곤해졌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것봐라 맨날 소설만 읽을 때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라며 오히려 고소해 한다. 책은 뉴욕을 대표하는 여성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수전 손택이 1972년부터 1980년 사이에 작성한 일곱 명의 작가들에 대한 비평 모음이다. 원제인 Under the Sign of Saturn 토성의 영향 아래, 라는 제목은 발터 벤야민에 대한 분석의 글에 달았는데, 이를 전체 책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ps. 뉴욕 지성계의 여왕으로 불리었던 수전 손택은 지난 2004년 71세로 생을 마감했다. (나중에 동성애자들에게 비판을 받기는 하였으나) 게이 감수성에 관한 에세이인 <캠프(camp)에 관하여>(1964)로 이름을 알렸으며, 유럽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인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이오네스크, 앙토냉 아르토, 브레송, 뤽 고다르 등을 뉴욕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 파리와 뉴욕을 오고가면서 유럽의 지성을 미국에 소개한 작가인 수전 손택은 베트남전에 반대하였고 9·11 이후에도 부시 정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혔고, 다섯 명의 여자 그리고 네 명의 남자와 사랑을 했다고 고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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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에 대한 꼼꼼한 반박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까지 느껴졌다. 우리는 역사에 대해 너무 쉽게 망각하거나 너무 관대하다. 그러한 대중의 속성을 철저히 이용하는 정치적인 수사와 미화화 과정들 때문에 역사는 왜곡되고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한 인물이 새로운 정치적 취향에 대한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된다. 어떻게 명백한 과오가 취향이 될 수 있는지,,,이 모든 과정은 오랜 시간과 조용한 물밑작업, 그리고 교묘한 언론 플레이와 몇몇의 평자들에 의해 자행된다. 그런식으로 복권은 이루어진다. 시간은 항상 지배자들의 논리에 손을 들어주는 것인양.
그치만 리펜슈탈은 이 책에서 좀 따로 노는 듯한 논리적인 글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원제와 맞닿아 있는 발터 벤야민에 대한 부분일 듯하다.
<토성적 기질은 느리고,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칼을 들고 자신의 길을 내며 나아가야 한다. 때때로 그 칼의 끝은 자기 자신에게 향하기도 한다.>
벤야민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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