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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디 수녀의 명상 / 웬디 베케트 지음, 이 영아 옮김 / 예담) …
이 세상은 참 재미난 세상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는 결국 보고 싶은 부문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얘기는 결국 세상은 냉엄한 법칙에 의해 돌아가는 물리적인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심리적인 영향을 무척 많이 받는 주관적 경험 세계라는 것이다. 즉, 아름답게 보면 아름다운 것이고, 추악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보는가?
이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한 곳인가? 아니면 고통스럽고 불만스러운 세계인가? 어느 것을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릴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분명히 선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런 기준이 종교인들에게는 신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양심이나 도덕 혹은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종교적인 관점을 보류하고 보면, 딱 하나의 기준으로 일반화 시킬 수 있다. 자, 어떤 것일까?
그것이 진정 네게 이로운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한 것이다. 아니 옳은 것이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 내게 이로운가라고 자문을 해 보자. 그러면 답은 분명해진다. 좀 억울하고 분한 경우를 당해서 이 세상을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그러한 생각에 붙들리게 되는데, 그런 생각이 자신을 더 해치게 된다. 그래서 폐쇄적으로 살게 되면 자신만 위축되고 일그러지게 된다. 아무튼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내게 오랫동안 진정으로 이로운가 자문을 해보면 된다.
왜 나는 이처럼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술적인 관심을 갖고 보면 세상은 더 풍요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깊고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에 빠지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세상의 더 많은 부분을 보게 되는 것이다. 더 많은 경험과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좀더 많은 경험을 해 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오, 이 책은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녀님이 영성을 확장시키기 위해 종교에만 귀의한 것이 아니라 미술작품에도 관심을 두었는데 그로 인해 종교적 영성은 더 깊어질 수 있고 또 예술 감상도 더 능동적으로 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니 그림의 의미가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같이 미술 특히 그림 감상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깊은 세계를 잘 안내를 해 줄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이 해인 수녀님이 아름다운 시로 우리의 가슴을 풍요롭게 해 주시고 있다. 그녀의 시를 읽노라면 그녀의 세상을 보는 순수하고 가슴 떨리는 감정에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다. 이처럼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빛내준다. 자연스레 영적인 세계를 맛보게 된다.
이런 책은 읽기도, 보기도 좋다. 아름다운 그림이 있어 시원한 느낌마저 드는데다가, 글 또한 간결하고 깊이가 있어 한 구절을 오랫동안 되새김질 해보아도 좋다. 웬디 수녀님의 안내가 없었다면 ‘그저 한 장의 그림이구나’ 정도로 끝났을 텐데, 그림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어 한층 더 그림 즉 예술작품과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나는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방편적이기는 하지만 스캇펙 박사의 아름다운 정의를 이용하곤 한다. 그는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사랑은 자신과 상대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주기 위해서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사랑을 하면서 결혼하는 연인이 과연 작은 성격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우리 사랑 아니었나 봐’ 하면서 시계바늘을 과거로 돌리려고 하겠는가 말이다. 우리가 이처럼 보다 큰 의미의 아름다운 사랑을 할 때야말로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은가?
세상이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했듯, 사랑도 아는 만큼만 할 수 있다면 좀 심각해지지 않는가. 그저 주고 받는 거래와 같은 사랑만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고작 그런 사랑만 알다가 가게 된다. 참으로 깊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데도, 이기적인 사랑에 집착하다가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더욱 깊게 생각해 보아야만 하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이 아름다운, 참으로 행복을 주는 큰 사랑인지 확인해 보아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은 친구처럼 곁에 두고 지내면 좋은 책이다. 기분이 다운되었을 때나 울적할 때 그리고 화가 날 때에 잠깐씩 열어보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영성이 충만했을 때 써 놓은 시를 한 수 읊어보며 아름다운 책 여행을 마치고자 한다.
연금술사에서 사막의 여인은 진정으로 찾았던 사랑을 만났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떠나 보낼 줄 안다. 그녀의 사랑이 얕아서가 아니라, 그녀는 진정한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 것을… 사랑은 자기 마음 속에 영원히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슴 아프지만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 보낼 수 있다.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찾는다. 하지만 모르고 있다. 영원한 사랑은 자기의 결심이고 의지라는 것을 말이다. 자기가 변하지 않고 지켜야 하는 것이 영원한 사랑인 것이다. 사막의 여인 그녀는 그런 사랑을 아는 여인이다. 아, 나는 사막의 여인이 그립다!
웬디 수녀님을 따라 깊은 명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 나는 이렇게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2006. 6. 29. 20:24
진정한 사랑은 자기 안에 있다고 알고 있는 고서
김 선욱 [인상깊은구절] 사랑은 무엇일까? 평생의 약속이란 글에서 웬디 수녀님은 「아르놀피니의 결혼」이라는 그림을 보여주며, “… 두 사람은 떨리는 마음으로 서로를 의식하며 오로지 상대의 진지한 행동만을 응시한다. 그들은 서로 간의 절대적인 약속을 지키겠다고 결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안다. 평생의 동반자라는 선물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자신도 상대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라고 사랑의 결실 결혼을 정의하고 있다. 어떤가 오늘날 우리는 너무 쉬운 사랑을 하고 있는데 한번 깊이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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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상 중인 그림들을 보고 명상을 하라는 건지
아니면 그 그림 장면이 명상 중이 아닐까 하는 웬디 수녀의 설명을 읽으라는 건지
좀 모호하다.
개중 몇몇 그림은 유명하지도 않고 직접적으로 명상하는 사람이 등장하지도 않아서 명상에 도움이 되었지만
유명한 그림은 그다지 명상의 보조용으로는 쓰기 곤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