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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대신한 호의 의미를 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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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환경이 발달하고 SNS가 보편화되면서, 많은 이들은 자신의 일상 혹은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가상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글이나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닉네임 혹은 별명으로 SNS를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하겠다. 근대의 문인들도 본명 대신 ‘필명(筆名)’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는데, 예컨대 시인 김소월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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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환경이 발달하고 SNS가 보편화되면서많은 이들은 자신의 일상 혹은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시대가 되었다가상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글이나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지만대부분의 경우 닉네임 혹은 별명으로 SNS를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하겠다근대의 문인들도 본명 대신 필명(筆名)’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는데예컨대 시인 김소월의 본명은 김정식이지만 사람들에게는 소월이라는 필명이 익숙하게 느껴진다이름과 달리 자신을 특징짓는 별명아마도 사람들이 이름 대신에 짓는 ()’를 이러한 성격으로 규정할 수 있을 듯하다본래의 이름이 아닌다른 사람이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별명을 일컫는 말이 바로 이다

  

조선 500년 명문가 탄생의 비밀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호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준다제목에서부터 드러내고 있듯이조선시대의 지식인들에게 호란 자존심과 연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그래서 저자는 호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는 소제목을 머리말에 붙였을 것이다한때 정치인들을 이름의 영문 이니셜로 약칭해서 부르던 시절이 있었는데이 역시 호의 역할을 하던 것이었다모두 20장으로 구성된 목차를 통해서, ‘여유당 정약용율곡 이이’ 등으로부터 추사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모두 36명의 호에 얽힌 이야기와 그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몰론 등장하는 인물들이 시대 순으로 소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나로서는 읽기에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수록 순서는 아마도 저자기 생각하는 선호에 따른 배치일 거라고 짐작된다

  

단순히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의 의미를 풀어주는 것이 그치지 않고, ‘역사평론가로 자처하는 만큼 해당 인물의 삶과 시대적 상황까지 설명하고 있어 간단한 평전’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예컨대 처음 등장하는 정약용의 경우 소수파인 남인으로서 정조의 치세에는 왕의 측근으로 홀발하게 활동했었으나정조의 사후 집권 세력인 노론들의 집중적인 견제로 18년 동안이나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다더욱이 천주교도였던 형제들과 친척 등 주변 인물들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강진 유배 시절 그가 머물렀던 다산(茶山)’은 자연스럽게 정약용의 호가 되었고각박한 시대 상황에서 신중하고 경계하라!’는 다짐은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堂號)를 지니게 했다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고 난 후 세 갈래로 갈라진 눈썹으로 인해 삼미자(三眉子)’라는 호를 취하는 등호에 얽힌 다양한 사연들을 인물의 삶과 함께 엮어내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이름을 갖게 되는데옛 사람들은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피했다그래서 이름을 대신한 ()’()’를 갖게 되었고간혹 스스로 짓기도 했으나 이름 대신에 부모나 웃어른들이 ()’를 지어 부르기도 했다., 이와 달리 ()’는 누군가 지어주기도 햇지만스스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살던 곳의 지명을 따서 짓는 경우가 많았고자신의 신체적 특징이나 뜻하는 바를 압축해서 호로 삼기도 했다상황에 따라 언제단지 새롭게 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서예가인 김정희의 경우 가장 잘 알려진 추사(秋史)완당(阮堂)을 비롯해서 100여개가 넘는 호를 사용했다고 한다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의 작명과 관련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조선시대와 근현대사 인물들의 호를 풀이한 소사전 형식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i*****n 2023.02.24. 신고 공감 1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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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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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한정주다산북스/2015.06.10. “명(名)과 자(字)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생물학적 자아(태생적 자아)에 가깝다면, 호(號)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를 살펴보면 그의 사람됨과 더불어 그 삶의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p.5)”면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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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한정주

다산북스/2015.06.10.


“명(名)과 자(字)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생물학적 자아(태생적 자아)에 가깝다면, 호(號)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를 살펴보면 그의 사람됨과 더불어 그 삶의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p.5)”면서 저자는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에서 조선선비들의 대표격인 36명의 호를 20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선비들의 호를 설명하면서 뒷받침하는 전거를 들어가며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기술하고 있다. 호를 통해 조선을 대표할 만한 선비들의 다채로운 삶과 철학을 추적해보자. 저자 한정주는 역사평론가 겸 고전연구가. 고전·역사연구회 뇌룡제 대표. 역사와 고전을 현대적 가치와 의미로 다시 발견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글쓰기의 목표로 삼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한국사 전쟁의 기술>,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외 다수가 있다.


이 책은 36명 조선선비들의 호에 대한 설명과 행적을 20장으로 나누어 설명한 본문과 부록으로 자(字)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자설(字說). 호는 어떻게 짓는가? 하는 것을 설명한 작호론(作號論). 그리고 조선시대의 자호 소사전 및 근·현대 인물들의 호 사전으로 이루어 졌다. 책의 내용을 소제목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유당 정약용: 남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율곡 이이: 기호사림의 본향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 가사문학의 산실, ‘명양정’과 ‘성산’/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조선의 대표화가, 삼원(三園)/남명 조식: 대붕의 기상을 품은 산림처사 /삼봉 정도전: 도담 삼봉인가? 삼각산 삼봉인가? /퇴계 이황: 평생 ‘물러날 퇴(退)’한 글자를 마음에 품고 살다!/일두 정여창, 사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선비의 사표(師表), 동방 사현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 수락산이 맺어준 200년의 인연/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조선의 관포지교, 오성과 한음 /화담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 송도삼절과 최초의 양반 상인 /교산 허균과 죽도 정여립: 만민 평등과 천하공물을 부르짖은 두 혁명가/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 땅끝 마을 해남에서 꽃피운 예술혼/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조선의 주자 vs 사문난적/반계 유형원과 잠곡 김육: 개혁을 설계한 땅, 부안 우반동과 가평 잠곡/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 실학의 산실(산실), ‘성호학파’/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 북학파의 비조(鼻祖)/홍재 정조 이산‘임금은 모든 신하와 백성의 스승’이라는 군사(군사)라고 자처한 제왕/청장관 이덕무와 초정 박제가: ‘기호(記號)’와 ‘소전(小傳)’, 글로 그린 자화상/추사 김정희: 추사(秋史)인가? 완당(阮堂)인가?


부록 : 자설(字說) : 자(字)란 무엇인가?/이름(名) 이외에 자(字)를 지은 까닭은?/자(字)는 이름(名)과 연관지어 짓는다!/자(字)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작호론(作號論) : 호(號)는 어떻게 짓는가?/소거(所居), 소축(所畜), 소득(所得), 소우(所遇), 소용(所容), 소인(所人), 소직(所職), 소전(所典)

이름(名) 이외에 자(字)를 지은 까닭은? 이름을 귀중하고 귀하게 여기고 공경했기에, 성인이 되는 관문인 관례를 치르고 나면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자(字)를 지어 부르도록 한 것이다.

관례는 대개 15-20세 때 행해졌다. 자 역시 이름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부모나 친척 혹은 어른이나 스승이 지어주는 것으로 자기 마음대로 지어 사용할 수 없었다. (p.597)


자는 누가 어떻게 짓는가? 자(字)는 이름(名)과 연관 지어 짓는다! 자를 지어주는 사람은 절친한 친구나 집안의 웃어른, 또는 스승이 지어주기도 했다. 관례를 치르고 자(字)를 받을 때는, ‘자(字)’를 지은 뜻과 의미 혹은 이유 등을 밝히는 글을 꼭 함께 지어줬다. 그런데 자를 지을 때는 지켜야 할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다. 자는 반드시 이름과 연관 지어 짓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설(字說)’은 이름과 자의 상호 연관성 혹은 상호 보완성을 밝히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p.598)

자(字)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 명(名)과 자(字)와 호(號)로 대표되는 호칭은 제각각 그 나름 알맞은 용도가 있었다. 먼저 名은 족보나 관직(官職)과 같은 공식 문서나 기록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자(字)가 윗사람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다면, 호(號)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즉, 자는 아랫사람이나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함부로 부를 수 없었던 반면, 호(號)는 아랫사람이든 어린 사람이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부를 수 있었다.(604)


호(號)는 어떻게 짓는가? 옛사람들은 호(號)를 지어서 이름을 대신한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거처하는 곳(居所)’의 이름을 취해 호로 삼은 사람도 있고,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것(所畜)’으로 호를 지은 사람도 있고, ‘사는 동안 깨달아 얻은 것(所得)’을 가져와 호로 삼은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이 여덟 가지 유형으로 작호(作號)의 세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과 인연이 있거나 거처한 곳의 지명 사용 ‘소거(所居)’ : 茶山 정약용, 栗谷 이이, 松江 정철, 三峯정도전, 花潭서경덕, 孤山윤선도, 星湖이익,

둘째, 자신이 간직하고 있거나 좋아하는 사물 ‘소축(所畜)’ : 梅月堂 김시습, 蟬橘堂. 이덕무, 勝雪道人, 苦茶老人김정희, 梅竹軒 성삼문

셋째,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과 의지 ‘소득(所得)’ : 退溪 이황, 順菴 안정복, 楚亭 박세가, 牧隱이색,

넷째,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처지에서 호를 취한 ‘소우(所遇)’ : 土亭이지함, 海翁윤선도, 俟菴정약용, 醉暝居士장승업

다섯째, 자신의 용모나 신체적 특징을 빌어 호로 삼은 ‘소용(所容)’: 豹菴강세황, 豹翁강세황, 三眉子정약용

여섯째, 자신이 존경하거나 본받고자 하는 인물에서 호를 찾은 ‘소인(所人)’: 檀園김홍도, 吾園장승업, 晦齋이언적, 阮堂김정희

일곱째, 자신이 하는 일이나 직업을 빗대 호로 삼은 ‘소직(所職)’: 秋史김정희, 古山子김정호, 印朱안견

여덟째, 옛 문헌 혹은 기록인 고전에서 호를 취한 ‘소전(所典)’: 南冥조식, 恭齋윤두서, 弘齋정조이산, 於于堂유몽인

20세기 인물들의 호 : 한힌샘 주시경, 외솔 최현배, 가람 이병기, 바보새 함석헌, 늦봄 문익환, 옹기 김수환


호(號)는 누구나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지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조선 선비의 호를 살펴보면 호에 얽힌 역사적 사실이나 흥미로운 일화, 또는 조선 시대의 생활상 등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오성과 한음 : 조선의 관중과 포숙아라 할 만큼 오성과 한음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지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청년이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이항복이 나고 자란 곳은 인왕산 아래 필운동이고, 이덕형이 나고 자란 곳은 남대문 밖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을 가능성 또한 지극히 적다.(p.254) 오성은 선조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임금을 잘 모시고 전쟁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공적을 높이 사 이항복을 호성일등공신으로 봉하면서 내린 작호이자 군호 였던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서 비롯되었다. 반면 ‘한음’은 이덕형의 실제 호였다.(p.255)‘


정조임금의 호 : 조선은 성리학에 기초한 유교를 국가의 기틀로 삼은 나라이기 때문에 임금 또한 일개 선비로서 호를 갖고 있었다. ‘역대 임금의 호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인조는 송창(松窓), 효종은 죽오(竹吾), 영조는 양성헌(養性軒), 순조는 순재(純齋), 헌종은 완헌(元軒) 등의 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일찍이 호학군주(好學君主)였던 정조만큼 스스로 다양한 호를 지어 자신의 뜻과 철학을 세상에 드러낸 제왕은 없었다. 홍재(弘齋),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홍우일재(弘于一齋) 등 정조가 남긴 호는 다른 어떤 선비들의 호보다 독특하고 다채롭다. 더욱이 이 호들을 사용했던 시기를 살펴보면, 왕세손과 임금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의 정치적 상황과 판도까지 읽을 수 있다. 정조는 임금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학자에서 찾았던 사람이다.(p.498)’


홍제라는 호를 통해 왕세손 정조는 훗날 자신이 왕위에 오르더라도 ‘넓은 도량’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아 정적을 대하겠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비친 것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다.(504) 정조가 도달한 높고 거대한 학문 세계와 정신세계는 184권 100책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개인 문집인 <홍재전서>를 남긴 사실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송자대전>의 우암 송시열이나 <성호사설>과 <성호전집>의 성호 이익 그리고 <여유당전서>의 다산 정약용에 견줄 만한 저술 분량이다.(p.508)

오늘날 수원시에서는 정조임금의 호를 딴 홍재문화제, 홍재예술제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정조의 이상을 널리 보급하고 홍보하는데 힘쓰고 있기도 하다.


추사김정희의 호 : 김정희는 평생 수백여 개의 호를 썼지만, 그를 대표하는 호를 든다면 추사(秋史)와 완당(阮堂)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정희 하면 ‘추사’를 가장 먼저, 그리고 ‘추사체(秋史體)’를 가장 쉽게 떠올릴 것이다. 반면에 완당이라는 호는 조금 낯선 느낌이 들 것이다.(p.558)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20대에 쓰던 추사라는 호보다는 완당이라는 호를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완당이라고 부른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완당이라는 호는 어떻게 생겼을까?

김정희가 스승으로 모신 사람은 바로 북학파의 두뇌나 다름없던 초정 박제가였다.(p.572) 그러나 그의 제자가 된 5년 후 박제가의 사망으로 사제 관계는 끝이 났다.


그 후 김정희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보내는 사신의 일행으로 중국에 가서 대학자인 옹방강과 완원을 만난다. 완원은 당시 47세의 나이로 청조학이라 일컫는 청나라의 학술계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던 대학자였다. 완당(阮堂)이라는 호 역시 이때 김정희가 완원과 맺은 사제의 인연으로 탄생했다. 완원(阮元)에서 ‘완(阮)’자를 따와 김정희가 마침내 자신의 당호를 ‘완당’이라고 한 것이다.(574)

이와 같이 간략하게 몇 사람의 호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36명의 조선시대 선비들이 썼던 호를 하나하나 전거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조선의 시대상과 선비사회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k******4 2024.08.22. 신고 공감 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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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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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당 정약용 /율곡 이이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남명 조식 /삼봉 정도전 /퇴계 이황/일두 정여창, 사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화담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 /교산 허균과 죽도 정여립/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반계 유형원과 잠곡 김육/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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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당 정약용 /율곡 이이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남명 조식 /삼봉 정도전 /퇴계 이황/일두 정여창, 사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화담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 /교산 허균과 죽도 정여립/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반계 유형원과 잠곡 김육/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홍재 정조 이산/청장관 이덕무와 초정 박제가/추사 김정희/

자설(字說) : ()란 무엇인가?/이름() 이외에 자()를 지은 까닭은?/()는 이름()과 연관지어 짓는다!/()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작호론(作號論) : ()는 어떻게 짓는가?/소거(所居), 소축(所畜), 소득(所得), 소우(所遇), 소용(所容), 소인(所人), 소직(所職), 소전(所典)

명과 자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생물학적 자아(태생적 자아)에 가깝다면, ()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를 살펴보면 그의 사람됨과 더불어 그 삶이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p.5

k******4 2017.09.12. 신고 공감 7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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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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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名)과 자(字)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생물학적 자아(태생적 자아)에 가깝다면, 호(號)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를 살펴보면 그의 사람됨과 더불어 그 삶의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p.5)”면서 저자는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에서 조선선비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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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자()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생물학적 자아(태생적 자아)에 가깝다면, ()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를 살펴보면 그의 사람됨과 더불어 그 삶의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p.5)”면서 저자는 , 조선 선비의 자존심에서 조선선비들의 대표격인 36명의 호를 20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선비들의 호를 설명하면서 뒷받침하는 전거를 들어가며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기술하고 있다. 호를 통해 조선을 대표할 만한 선비들의 다채로운 삶과 철학을 추적해보자. 저자 한정주는 역사평론가 겸 고전연구가. 고전·역사연구회 뇌룡제 대표. 역사와 고전을 현대적 가치와 의미로 다시 발견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글쓰기의 목표로 삼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한국사 전쟁의 기술>,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외 다수가 있다.

 

이 책은 36명 조선선비들의 호에 대한 설명과 행적을 20장으로 나누어 설명한 본문과 부록으로 자()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자설(字說). 호는 어떻게 짓는가? 하는 것을 설명한 작호론(作號論). 그리고 조선시대의 자호 소사전 및 근·현대 인물들의 호 사전으로 이루어 졌다. 책의 내용을 소제목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유당 정약용: 남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율곡 이이: 기호사림의 본향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 가사문학의 산실, ‘명양정성산’/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조선의 대표화가, 삼원(三園)/남명 조식: 대붕의 기상을 품은 산림처사 /삼봉 정도전: 도담 삼봉인가? 삼각산 삼봉인가? /퇴계 이황: 평생 물러날 퇴(退)’한 글자를 마음에 품고 살다!/일두 정여창, 사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선비의 사표(師表), 동방 사현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 수락산이 맺어준 200년의 인연/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조선의 관포지교, 오성과 한음 /화담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 송도삼절과 최초의 양반 상인 /교산 허균과 죽도 정여립: 만민 평등과 천하공물을 부르짖은 두 혁명가/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 땅끝 마을 해남에서 꽃피운 예술혼/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조선의 주자 vs 사문난적/반계 유형원과 잠곡 김육: 개혁을 설계한 땅, 부안 우반동과 가평 잠곡/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 실학의 산실(산실), ‘성호학파’/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 북학파의 비조(鼻祖)/홍재 정조 이산임금은 모든 신하와 백성의 스승이라는 군사(군사)라고 자처한 제왕/청장관 이덕무와 초정 박제가: ‘기호(記號)’소전(小傳)’, 글로 그린 자화상/추사 김정희: 추사(秋史)인가? 완당(阮堂)인가 

부록 : 자설(字說) : ()란 무엇인가?/이름() 이외에 자()를 지은 까닭은?/()는 이름()과 연관지어 짓는다!/()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작호론(作號論) : ()는 어떻게 짓는가?/소거(所居), 소축(所畜), 소득(所得), 소우(所遇), 소용(所容), 소인(所人), 소직(所職), 소전(所典)

 

k******4 2017.02.12. 신고 공감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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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_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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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지사항- 서명 :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저자 : 한정주 / 역사평론가- 출판사 : 다산북스 / 경기도 파주- 출판일 : 2015년 6월 10일2. 리뷰# 선비의 삶과 정신을 담은 이름, 호(號)  전공 분야의 역사를 배울 때, 호(號)와 관련하여 인상 깊었던 두 가지 기억이 있다. 하나는 해당 과목을 공부하면서 상당히 애를 먹었던 기억이다. 다름 아닌 명(名 ; 이름), 자(字), 호(號)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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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지사항


- 서명 :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저자 : 한정주 / 역사평론가

- 출판사 : 다산북스 / 경기도 파주

- 출판일 : 2015년 6월 10일


2. 리뷰


# 선비의 삶과 정신을 담은 이름, 호(號)


  전공 분야의 역사를 배울 때, 호(號)와 관련하여 인상 깊었던 두 가지 기억이 있다. 하나는 해당 과목을 공부하면서 상당히 애를 먹었던 기억이다. 다름 아닌 명(名 ; 이름), 자(字), 호(號) 때문이다. 유난히도 이 분야의 역사적인 인물 중에는 장(張)씨가 많았고, 그들의 명, 자, 호가 제각각인데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주장하는 이론마저 제각각이었으니,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내용을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또 하나는 그 과목을 가르쳤던 교수님의 호(號)에 대한 당신의 설명이었다. 당신도 멋진 호를 갖고 싶어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큰 태양, 큰 빛'의 의미를 담은 호를 지었다고 하셨다. 지을 당시에는 상당히 멋지다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으로 건방진 호가 아니냐며 웃으셨다. 지금은 다른 호를 쓰고 계신다 했다.


  명(名)은 보통 집안 어른들이 지어주시는 이름, 즉 본명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두 자, 혹은 석 자 이름들이 모두 명(名)이다. 자(字)는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웃어른이나 스승께서 지어주시는 이름, 특별히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친밀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칭할 때는 자(字)를 불렀다. 그리고 이 책의 주제인 호(號)는 보통 자신이 마음의 어떤 뜻을 담아 지은 별칭으로, 여럿이 공공연히 모인 자리에서 이름 대신 사용하는 호칭이었다. 자칭한 것도 많으나 종종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람의 특징을 보고 붙여준 호도 있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작가들의 필명이 일종의 호(號)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일상에서 잘 와닿지는 않지만 지금도 학계에 계신 많은 교수님들은 자신만의 호(號)를 갖고 계신다. 정년 퇴임 기념 논문집의 출간 즈음에 이르러서야 그 제목에 '00 000교수'라 하여 그때에나 교수님의 호(號)를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만 해도 호(號)를 쓰는 것은 선비들 사이에서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다. 선비들은 호(號)를 통해 자신이 마음에 품은 뜻과,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취향을 가감없이 드러내었다. 즉, 호(號)를 키워드로 하여 그 인물의 삶과 정신을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의의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명(名)과 자(字)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생물학적 자아(태생적 자아)에 가깝다면, 호(號)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를 살펴보면 그의 사람됨과 더불어 그 삶의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더욱이 호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자의식)를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뜻과 의지 역시 읽을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우리 각자가 삶의 방식과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좌우명이나 혹은 마음에 새긴 멋진 명언 하나씩을 갖고 있듯,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신의 뜻을 담은 문장을 압축해 두 세 자의 호를 씀으로써 '나 이런 사람이요'를 사람들에게 나타낸 것이다. 또한 그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선비들은 자신이 세운 뜻과 방향을 다시금 인식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가다듬었으니 실로 호는 각 사람의 거울이라 하겠다.


# 호(號)의 집대성을 통해 살펴보는 조선의 사상사


  책의 구성에 대해 잠깐 살피자면, 이 책의 분량은 무려 703쪽에 이른다. 명, 자, 호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집필 의도를 밝힌 서문을 지나면 조선의 이름난 선비들의 호와 삶을 조명한다. 그리고 첫번째 부록으로 작호(作號), 즉 호를 짓는 방법에 대해 잠시 논하고(사실 읽다보면 이 부분에 가장 관심이 갈 것이다. 나도 '호' 하나 멋지게 지어볼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두번째 부록으로 본문에 수록되지 않았던, 조선시대 유명 인물들의 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모아 실었다. 그리고 세번째 부록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 정주영 전 현대 회장, 조지훈 시인 등 근현대 인물들의 호에 대한 설명을 실었다. 그야말로 호 대사전이다. 어찌보면 별 것 없는 작은 소재 같지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책을 펴내기까지 한 저자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분야는 좀 다르지만 한때 학문의 길을 꿈꾸었던 한 사람의 후학으로써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바다.


  호(號)에 의미를 담아 쓸 정도면 이미 양반 계층인데다, 그 뜻을 고전에서 갖고오는 경우가 많았으니, 호에 대한 거창한 설명이 붙으려면 벌써 유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인물들이어야 한다. 저자가 의도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선시대 대표 문인들의 삶과 생각을 집대성한 셈이다. 본문을 읽다보면 그러한 방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비록 시대 순서로 인물을 싣지는 않았으나 삼봉 정도전에서부터 사림의 거두였던 정암 조광조, 율곡 이이, 퇴계 이황,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의 대표 인물 여유당 정약용, 연암 박지원에 이르기까지 한편의 조선 유학사(儒學史)가 그려진다. 거기에 더하여 매월당 김시습,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고산 윤선도, 추사 김정희에 이르는 또 한 축이 자리하는데, 이는 조선 미술사(美術史)의 흐름이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성급한 일반화가 아닐까 염려하지 마시라. 여기에 빠진 인물들은 부록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 호(號)라는 작은 단서를 통해 조선의 흐름과 역사를 어렴풋이 드러내는 저자의 통찰이 놀랍다. 아쉬운 것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시대 순서가 아니기 때문에 흩어진 퍼즐 조각을 제자리로 이어 붙이는데는 독자의 노력이 다소 필요하다는 점이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이런 순서를 정하였는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대순으로 챕터를 정렬해서 읽는 것이 내용 이해에도 오히려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 거친 인생의 파도를 헤쳐나가는 지혜 '여유당(與猶堂)'


  내용을 쭉 읽어가다 보니 특별히 한 인물의 호(號)가 인상 깊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여유당(與猶堂)' 정약용이다.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를 비롯해 수많은 저작을 남긴 조선의 지식인 정약용. 흔히 알려지기로 그의 호는 '다산(茶山)'이다. 우리나라 차(茶)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답다. 그의 호가 다산이 된 것은 그가 차를 매우 즐겨 마시기도 하였거니와, 유배되어 간 강진 지역의 만덕산의 별칭이 '다산(茶山)'이었다. 예로부터 질 좋은 차가 많이 나서 다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정약용의 입장에서 힘든 유배 생활 가운데 만덕산에서 나는 좋은 차(茶)가 그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던지 만덕산의 다른 이름 '다산'을 기꺼이 그의 호로 삼아버린다. 그러고보면 그의 인생에 있어 상당히 후대에 지어진 호가 '다산'인 것이다. 그럼 그 이전에는 어떤 호를 썼을까? 500여 권이 넘는 그의 문집은 또 다른 호인 '여유당(與猶堂)'의 이름을 달았다. 바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다.


  '여유당(與猶堂)'이라는 호는 '다산'에 비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붙은 것으로 보인다. '여유당'의 유래가 된 문장은 <노자(老子)>에 등장한다.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與兮若冬涉川).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猶兮若畏四隣)" - 본문 중에서


 이 두 구절에서 각각 앞 글자를 따와 만든 것이 '여유당(與猶堂)'이라는 호다. (당(堂), 재(齋) 등의 한자는 집을 뜻하는 글자로, 호(號) 뒤에 흔히 붙여 쓰곤 한다.) 정조에게 많은 총애를 받고 능력을 펼쳤으나 그로 인해 오히려 많은 시기와 비난을 받은 이가 정약용이다. 정조 생전에도 천주교로 인해, 실학 사상으로 인해, 노론의 공격을 당했던 이인지라, 정조 사후 노론이 권력을 잡자 그의 인생은 끝없는 유배 생활 속으로 내던져지기에 이른다. 삶을 온통 쥐고 흔드는 인생의 풍상 속에서 그는 신중하고 경계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들었을터다. 격렬한 세파 속에서 처절한 인고(忍苦)의 시간을 담아 지은 호, 그것이 바로 '여유당(與猶堂)'이었다.


# 이 시대에 호(號)를 쓴다는 것은


  "호는 권위의 상징도 아니고 과시의 수단도 될 수 없다. 따라서 고상한 뜻과 우아한 멋을 담아 지은 호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간결하고 소박하며 평범하더라도 자연스러움과 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는 호가 더 좋은 호라고 할 수 있다. ... 필자는 가장 훌륭한 작호(作號)란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에서 찾아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호(號) 문화'가 다시금 이 시대에 이어져 가기를 바라고 있다. '구태의연하게 요즘 누가 호를 쓴다고.'라고 생각할런지 모르겠으나 필자 또한 저자의 의견에 동감한다. 자유롭고 진솔하게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 그것이 호가 갖는 의의라면,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호 문화'는 더욱 필요하다.


  옛 선비들은 약관의 나이에 이미 '입지(立志)', 즉 뜻을 세웠다. 서른이면 이미 뜻을 세우고도 수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서른을 '이립(而立)', 즉 '이미 세웠음'의 의미로 불렀다. 신분 질서가 엄격하여 타고나기를 잘못하면 뜻을 세우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을 시대다. 하물며 그런 시대에도 꿈을 펼 자유를 얻은 이들은 뜻을 세웠을진대,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말이다. 마음에 '뜻'을 세워 품고 사는 이가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꿈을 좇아 살던 젊은 시절은 지나갔다고 이야기 할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젊은 학생들을 붙들고 물어보시라. "학생은 꿈이 뭔가요?"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답한다. "없는데요."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있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마음에 품은 '뜻'이 있는가, 그 '뜻'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부록에 실린 근현대 인물들의 호를 보면, 꼭 어려운 한자어만이 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순한글을 쓰기도 하였고, 세례명을 쓰기도 하였다. 저자의 말만따나 형식은 자유다. 그저 솔직하면 그만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조용한 밤, 가만히 앉아 자신의 '호'를 조심스레 골라보자. 내 마음에 품은 뜻을 멋지게 세상에 선포하는 그런 '호'를 정성들여 지어보자. 그리고 그 '호'에 당신을 비추어보라. 그 안에 당신의 인생이 담겨있을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t*********s 2019.06.08.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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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정신의 결정체, 호(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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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건국과 통치 이념이었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의식 세계부터 실제 삶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성리학의 훈증을 받지 않은 영역이 없었다. 뼛속까지 공맹과 주자의 원리가 스며들어 그들의 삶을 온통 지배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교유할 때나 혼자 있을 경우라도 늘 자신을 돌아보고 삼가곤 하였다. 군자의 지경에 닿고자 혼신을 다했던 것이다. 그런 정신의 단적인 발로가 자호문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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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건국과 통치 이념이었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의식 세계부터 실제 삶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성리학의 훈증을 받지 않은 영역이 없었다. 뼛속까지 공맹과 주자의 원리가 스며들어 그들의 삶을 온통 지배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교유할 때나 혼자 있을 경우라도 늘 자신을 돌아보고 삼가곤 하였다. 군자의 지경에 닿고자 혼신을 다했던 것이다. 그런 정신의 단적인 발로가 자호문화라 하겠다. 그런데 자(字)는 주로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였던 관례 시 집례자가 수여하는 것이어서 본인의 정신세계가 투영되어 있다기보다는 주위 어른들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기 십상이다. 이에 반해 호(號)는 스스로 자임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의 내면을 오롯이 담고 있다 하겠다. 어떤 성현의 삶을 본받으려 하는지, 스스로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사회는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 등 그들의 입장과 이상을 함축하고 있는 상징인 것이다. 따라서 호를 읽으면 그 사람이 보이고 배경이 되었던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은 이런 측면에 착안하여 여유당 정약용부터 추사 김정희까지 스무 분의 호를 통해 그들 개인의 정신세계와 조선 시대 전반의 지적 풍토, 내지는 사회상 전반을 짚어내고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스무 명의 선비는 조선 선비계급과 지성계에서 나름의 일가를 이룬 분들이다. 물론 정치적 비중도 만만찮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스무 분 가운데 임금님 한 분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개혁군주의 표상 정조대왕이다. 처음엔 좀 뜨악하다 싶었는데 필자의 설명을 듣자니 이해가 되었다. 정조는 임금님이기 이전에 학문을 하는 선비였던 것이다. 그것도 당대의 어떤 지성보다 더 높은 지경에 도달하여 굽어보고 있을 정도였으니. 왕이 경연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과 선비들을 가르치는 군사가 되어 그들을 이끌고자 하였던 것이다. 홍재 정조 이산의 넓은 뜻(弘)이 막힘없이 구현되었더라면 19세기 조선의 운명도 많이 달라졌을 텐데 자못 아쉬울 따름이다. 한 자연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개혁 비전이 일거에 파기되고 조선은 걷잡을 수 없는 격랑에 휘둘리다 끝내 좌초되고 말았으니. 호에 관한 한 추사 김정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그의 호가 무려 500여 개에 이른다고 하였다. 흔히들 추사를 대표적 호로 알고 있는데 유홍준 교수의 견해를 받아들여 필자도 완당을 최고로 꼽고 있다. 중국 지성계의 거두 완원을 따르고자 했던 김정희의 후기 지적 지향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 선비들의 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때론 즐겁게 더러는 안타깝게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스무 분의 호에 관한 정사와 일화가 재미 있게 또 의미 심장하게 이어져 조선 지성사의 도도한 흐름을 엿볼 수 있어 흐뭇하였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실 내가 꼽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부록 부분이라 하겠다. 특히 부록 2에 나와 있는 작호론은 거의 완결된 한 편의 논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작호의 원리 여덟 가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또 실제 근거를 제시하며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작호에 유형에 관한 한 거의 전 범위를 아우르고 있다 하겠다. 이는 후속 연구의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록에 딸려 있는 조선 시대 인물들의 자호와 근현대 인물들의 자호 소사전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근현대 인물 가운데는 아직 생존하고 있는 이들도 있어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살아난다. 그들도 본인의 호에 대해 읽는다면 필자의 의미 부여와 곁들인 견해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읽는 동안 문득 떠오른 생각은 자호문화가 사라진 게 아니라 요즘도 여전히 우리 정신세계의 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온라인 활동이 활발한 우리나라의 특성 상 자신을 표상하는 자호, 닉네임은 거의 대부분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에 본인의 실명을 거론하는 경우는 드물고 거의 필명, 닉네임으로 자신의 지적 성향과 내면을 드러내며 다른 이들과 차별성을 띄려고 애쓰고 있으니 말이다.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은 이렇게 우리 사회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자호문화, 특히 조선 선비들의 자호문화에 대해 이론과 실제, 정사와 야사를 적절히 가미하여 정리하고 있어 문헌적 가치와 읽는 재미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존숭하는 선비가 있다면 그의 호와 관련한 설명을 통해 그 분의 내면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a*****7 2015.06.09.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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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조선 선비의 자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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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정약용은 마땅한 거처조차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큰 고초를 겪었다. 그나마 거처라고 정한 곳이 동문 밖 주막이었다. 그러나 정약용은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 스스로 '사의재'라는 이름을 붙여, 비록 비참한 유배객일지라도 선비의 품격과 아취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정약용은 임술년(1802년) 봄부터 즉시 저술하는 일에 몰두하여, 붓과 벼루만 곁에 두고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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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정약용은 마땅한 거처조차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큰 고초를 겪었다. 그나마 거처라고 정한 곳이 동문 밖 주막이었다. 그러나 정약용은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 스스로 '사의재'라는 이름을 붙여, 비록 비참한 유배객일지라도 선비의 품격과 아취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정약용은 임술년(1802년) 봄부터 즉시 저술하는 일에 몰두하여, 붓과 벼루만 곁에 두고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작업했다. 이 때문에 왼쪽 어깨가 마비되어 마치 폐인이 될 지경에 이르렀고, 시력이 아주 나빠져 오직 안경에만 의지하게 되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저술 작업에 몰입했다.

이이의 자경문 제1항은 '입지立志'이다. 여기에서 이이는 이렇게 선언했다. 먼저 그 뜻을 크게 가져야 한다. 성인을 본보기로 삼아서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난 것이 아니다.

면앙정은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부끄럽지 않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다는 의미이다.

남명 조식은 항상 문을 닫아걸고 홀로 단정히 앉아 새벽까지 독서를 했다. 하루 종일 한 가닥 소리도 없이 고요하다가 때때로 손가락으로 책상을 치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 작은 소리로 말미암아 아직 독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0.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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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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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한정주 / 다산초당 / 704pg   엄청난 두께의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것이 얼마만인가 싶다. 아무런 지식도 서평도 미리 읽어보지 않은 채, 책 겉표지만 보고 책을 접하게 되었다. “조선 500년 명문가, 탄생의 비밀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이라고 되어 있어서, 명문가에서 인재를 발굴하는 방법,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나? 하는 생각에 처음 책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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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선비의 자존심 / 한정주 / 다산초당 / 704pg

 

 

 

엄청난 두께의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것이 얼마만인가 싶다.

 

아무런 지식도 서평도 미리 읽어보지 않은 채, 책 겉표지만 보고 책을 접하게 되었다.

 

조선 500년 명문가, 탄생의 비밀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이라고 되어 있어서, 명문가에서 인재를 발굴하는 방법,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나? 하는 생각에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조선 선비가 자기 자신이 지금 호()를 짖게 되는 계기, 역사적 바탕, 인물의 됨됨이 등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역사적 서적을 읽을 때, 왕비중심으로, 또는 특정사건 중심으로, 인물 중심으로 된 책만 접해봤는데, 이렇게 이름을 중심으로 역사와 그 인물에 대해 배우는 건 신선하고, 저자가 역사적 바탕이 되는 자료들을 제시했을 때 설득력도 있었다. 그림, , , 남겨진 역사적 기록들 바탕으로 추리해 나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요즘의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름 한 개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옛 조선의 선비들은 최소한 셋 이상의 호칭인 명(), (), ()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름이고, ()는 성인식을 치른 후, ()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너무 귀해서 자()를 지어서 불렀다고 한다. 이때 이름()과 연관되게 지었다고 한다. 위의 둘은 자신이 직접 짖지 않고 스승이나 부모가 지어주지만, ()는 자기 자신의 직접 지을 수 있는데, 자신이 살아가는 신조, 장소, 사물 등을 바탕으로 지을 수 있는 호칭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보자면 율곡 이이와 교산 허균, 연암 박지원은 자신이 좋아하는 지명(地名)을 호로 삼은 것이고, 퇴계 이황과 조청 박제가, 순암 안정복은 마음에 품고 있는 뜻과 의지를 호로 표현한 것이며, 취금헌 박팽년, 매월당 김시습은 자신의 기호나 취향을 좇아 호를 지은 것이다. 단원 김홍도, 완당 김정희는 존경하거나 본받고자 하는 인물의 이름 혹은 호를 따와서 호로 삼았다. Pg4,5

 

 

 

최근 읽은 정향교 작가의 사임당을 그리다』 중에서 사임당 역시 조선시대 여성에겐 특별히 명이 없어, 스스로 호를 사임당이라고 지었는데 이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이란 여성의 영향을 받아 ()”을 가지고 왔고, ()는 스승이니 본받는 다는 뜻이라고 읽은 적이 있다. 사임당도 자신의 뜻과 의지, 그리고 좇고 싶은 사람의 호를 따서 지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해 ()”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는 여유당 정약용, 율곡 이이,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남명 조식, 삼봉 정도전, 퇴계 이황, 정암 조광조, 화담 서경덕, 추사 김정희 등 내가 친숙한 인물들의 호가 부여하는 의미를 분석하는가 하면, 사실 내게 친숙하지 않은 인물들인 일두 정여창, 사옹 김굉필, 최재 이언적,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 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토정 이지함, 죽도 정여립, 고산 윤선도, 공재 윤두서, 그리고 이 많은 인물들 중 한 명의 임금인 홍재 정조 이산 외에 다양한 인물에 대해 소개한다.

 

 

 

실로 엄청난 양의 역사적 배경과 다양한 시조, 그림 등을 바탕으로 역사를 재해석 해주는 것 같아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데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는 어떠한 역사적 이야기를 흑백논리로 단정하기 보다는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나온 자신만의 결론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생각해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어, 저자와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 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뭔가 나도 동의 또는 반박을 해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해 주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실 내가 친숙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좀 더 흥미로웠다. 최근 읽은 책들 중에서 등장한 인물들을 다시 접할 때 더 재미있었다고 해야 하나또는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한 인물들에 대해 읽을 때에는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억에 남는 인물들의 호를 중심으로 조금 정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율곡 이이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호를 어리석다의 뜻의 우()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고 한다. 율곡은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난 것이 아니다.” 학문이란 닦으면 닦을수록 그 깊고 넓음을 알게 되므로,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자기 수양이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려워,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어리석음만 인식하게 된다. 백성을 가르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한 현실의 장벽 앞에 부딪히면 자신의 본래 뜻과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기 일쑤여서 오히려 자신의 어리석음만 깨우칠 뿐이다. Pg 49

 

 

 

실로 훌륭한 인물임에 틀림없다란 생각이 드는 대목이였다. 아홉번이나 장원급제를 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즉 아홉번이나 장원한 분이라고 일컬었는데 그의 겸손과 사상이 너무 훌륭하다.

 

 

 

율곡 이이는 자신을 율곡이나 석담이라는 호 보다, “우재(遇齋)”라는 호를 더 사용하였다고 한다. 율곡은 경기도 파주의 율곡과 황해도 해주의 석담인데, 이 곳들은 이이의 얼과 혼이 서려있는 장소라고 한다. 율곡 이이하면 떠오르는 지명이 강릉 오죽헌일 수 있지만, 실제 이이의 삶과 철학의 주요 무대는 그가 호로 정했던 율곡과 석담이라고 하는 점도 매우 흥미로웠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은 자신의 정체성을 화가가 아닌 선비에 두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단원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 화가로 인정을 받아 많은 활약을 했는 반면, 혜원 신윤복은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을 걸어 그 시대에는 친송을 받지 못하였지만, 오늘날 혜원 신윤복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 시절 만약 신윤복이 김홍도를 따라 그리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그를 기억하는 기는 아마 없지 않을까. 독창성과 창의성, 그리고 가지고 있는 신념을 지킨 것이 후대에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단원이나 혜원처럼 ()’이라는 한자를 취해 호를 지은 또 다른 이가 있는데 그의 이야기가 너무 웃기다. 오원 장승업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그의 천재성 하나로 이름이 떨쳐진 인물이다. 술을 너무 좋아하고 억매이는 것이 싫어서 왕의 명령에도 술 마시고 싶다고 도주를 하는 등의 행동을 보아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였던 사람같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엄청 많은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가 그렸는지 그의 제자가 그렸는지 확실치 않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도장을 자주 잃어버리기도 했고, 술에 쩔어서 그림을 완성 하지 못해 제자가 마져 그린 것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퇴계 이황의 호 역시 매우 인상적이였다. 평생 물러날 퇴(退)’한 글자를 마음에 품고 산 인물이다. 정치에 나가는 것을 꺼리고 학문에 열중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일이 더 천직인 사람이였던 것 같다.

 

 

골짜기 바위 사이로 옮겨 모옥을 짓고 지붕을 이으니

 

때마침 바위에 핀 꽃 흐드러지게 붉네

 

옛적부터 지금까지 때 이미 늦었으나

 

아침에 밭 갈고 밤에 독서하니 즐거움은 끝이 없네

 

-퇴계집, 초옥을 퇴계 서쪽으로 옮기고 한서암이라 이름 짓다

 

 

 

이황이 자신의 묘비에 일체의 관작을 기록하지 말고 오로지 퇴도만은이라고만 적으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황은 벼슬에 나아간 것을 자신의 본래 뜻과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묘비를 관작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던 당시 사대부들과는 다르게 그냥 도산에 물러나 만년을 숨어 지내다라는 뜻의 퇴도만은(退陶晩隱)’이라고 적으라고 했다.  Pg162

 

 

 

이 밖에도 너무 재미있게 풀어놓은 인물들의 호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한 개의 호만을 고집한 사람이 있는 가 하면, 100개도 넘는 호를 사용한 추사 김정희도 있다. 최근 재밌게 봤던 "육룡의 나르샤"의 삼봉 정도전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자신을 일컬어 사용했던 호도 알고, 그들의 사상, 신념, 의지 그리고 삶의 스타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다만 두께가 다소 위협적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혀서 오히려 좀 놀랐다.

 

 

 

호 중심으로 풀어가는 역사 이야기 책인 , 조선 선비의 자존심을 추천한다.


YES마니아 : 로얄 f********r 2016.05.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호를 통해보는 조선 선비의 의지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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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를 통해보는 조선 선비의 의지와 마음>   사실 조선 선비의 호보다도 먼저 익숙하게 다가온 것은 중고등학교 때 시인이나 소설가를 배우면서 그들의 호를 외웠던 것이 먼저인 듯하다. 소월 김정식, 만해 한용운 등등 ..이렇게 외우면서 그들이 지닌 호가 자신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에서 거의 사라진 호는 조선시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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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를 통해보는 조선 선비의 의지와 마음>

 

사실 조선 선비의 호보다도 먼저 익숙하게 다가온 것은 중고등학교 때 시인이나 소설가를 배우면서 그들의 호를 외웠던 것이 먼저인 듯하다. 소월 김정식, 만해 한용운 등등 ..이렇게 외우면서 그들이 지닌 호가 자신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에서 거의 사라진 호는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는 자존심 그 자체였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이 다소 과장된 면도 있지만 책을 읽어가다보면 조선 선비들에게 호가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면 그러한 제목에 딴지를 걸지는 않게 된다.

 

제목에 반해서 꼭 한번 읽고 싶었던 호에 얽힌 이야기. 이 책은 우선 분량 면에서는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700쪽 가량 되는 분량이니 웬만한 책 3권 정도의 분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분량에 압도당하고 조선시대의 이야기가 어렵지 않을까 살짝 주눅이 들었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고 이야기와 시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따분하게 읽지 않을 책이다.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도 좋지만 목차에서 자신이 관심있는 사람을 먼저 찾아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다.

 

현대인들은 이름 하나로 평생을 사는게 보통이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름과 자, 호를 가지는게 보통이었다. 이름이나 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지어주시는데 이름은 태어나면서 짓고, 자는 성년식을 거치면서 보통 스승이나 부모에게서 받는게 보통이다. 그러니 자를 지을 때도 이름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지어주는게 보통이란다. 그에 비해 호는 자신이 스스로 짓기도 하고 친한 벗들이 지어주기도 했다니 분명 이름이나 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름과 자에 비해서 호는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 혹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의지나 마음이 훨씬 담겨 있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유명한 성리학자인 율곡 이이의 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전에 파주에 갔다가 밤나무가 많이 나는 지명을 따서 이이의 호를 율곡이라고 지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지명을 따서 짓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가장 인기 있는 조선의 실학자 중의 한사람인 정약용은  차를 즐겨 마셔서 '다산'이라는 호도 있고 남인이기에 늘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담아 '여유당'이라는 호를 짓기도 했다. 여유당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신중하고(여), 사방을 경계한다(유)는 뜻이니 그가 얼마나 주의깊게 살았는지 알만하다.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남양주의 다산기념관을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오성과 한음으로 알고 있는 이항복과 이덕형의 호에 대한 이야기이다.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부암동의 백사실 계곡을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백사가 바로 이항복의 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성은 그가 공신으로 받은 직위이다. 강가 어느 노인의 '백사'라는 호를 너무도 갖고  싶어서 그가 죽은 다음 이항복은 말년에 '백사'라는 호를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너무 흥미로웠다. 흰모래 나룻토의 노인처럼 청렴하고 욕심없이 살고자 한 그의 뜻이 담겼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의 절친인 이덕형은 원래 호가 '한음'이란다. 한양의 남쪽을 뜻하는데 그가 태어난 곳이 경기도 광주이고 그가 마지막을 보낸 곳도 두물머리 부근이니 그의 호대로 살다 간 것인가? 재미난 것은 이덕형이 태어나 묻힌 그 곳에서 150년 후에 최고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아직 한번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한 남양주와 두물머리의 운길산을 꼭 한번 걷고 싶어지는 것은 두 학자 때문이기도 하고 일년에 한두번은 꼭 가는 백사실 계곡의 백사 이항복의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 선비의 호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지만 실제로는 그의 인생과 사상을 집약적으로 이야기 듣는 셈이 된다. 호가 바로 선비의 마음과 의지, 혹은 그를 판단하는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읽는 내내 인용되는 기록이나 시문이 많아서 또 다른 색다름을 맛볼 수 있다. 분량은 많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기에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정말 강추하고자 한다.

 

'호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재미있게 접하길 바란다.

c******u 2015.06.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호號, 조선 선비를 읽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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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 선비를 읽는 키워드 누군가는 이름을 불러주면서부터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고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 관계의 성립에서 주목하는 바는 부르게 된 이름에 담긴 뜻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여, 이름 짓기에 심혈을 기우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름에 심오한 뜻만 담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의 경우 부모님이 지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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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선비를 읽는 키워드

누군가는 이름을 불러주면서부터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고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 관계의 성립에서 주목하는 바는 부르게 된 이름에 담긴 뜻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여, 이름 짓기에 심혈을 기우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름에 심오한 뜻만 담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의 경우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 다른 이름을 지어 사용했다. 그것이 호였다. 호는 스승이나 벗이 지어주기도 했고 스스로 지어 사용한 경우는 자호라 이름 하였다. 호는 부모로부터 얻은 이름을 대신하여 벗들 사이에서 자주 불러졌던 이름이라도 봐도 좋다.

 

한정주의 책 , 조선 선비의 자존심는 바로 그런 조선 선비들에게 호가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 조선 선비들의 삶을 따라가는 내용을 담았다. 정약용, 이이, 김홍도, 이황, 정도전, 박지원, 김시습, 정조 등 조선의 역사를 이끌었던 선비들의 호()를 최초로 분석하고 집대성한 책이다.

 

이 호에 조선 선비들은 특별한 애정을 기우렸다. 호를 지으며 자신의 삶의 지향점을 담거나 태어난 고장이나 마음에 담아두었던 선천경계를 비롯하여 때론 자신과 세상을 향해 해학적 의미를 담아 사용하기도 했다. 주목되는 것은 여유당이라는 정약용의 호와 선비의 삶을 살고자 했던 단원 김홍도를 비롯하여 삼봉 정도전의 경우는 삼봉의 유래가 어디로부터 출발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또한 조선 역사에서 호를 애용한 사람으로 수백 개의 호를 지었던 김정희를 살피면서 호가 사용되었건 다양한 용례를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선비들의 호를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참고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한시, 그림, 초상화 등 이러한 자료는 특별한 호를 사용한 선비의 삶을 이해하고 그러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졌던 조선이라는 사회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렇듯 호에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사회적 표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호만으로도 그 사람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알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현대에 들어 이러한 호는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예술가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경우로 축소된 경향이 있다. 몹시 아쉬운 점이다. 호와는 다른 의미를 갖지만 종교인들에게 있어 법명이나 세례명 등과 유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무진無盡, 호처럼 사용하고 있다. 인연 따라 온 별호이지만 담긴 뜻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내 의지를 담았기에 애용한다. 이처럼 호는 또 다른 이름이면서 개인의 가치관을 담고 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거나 극히 일부에서만 사용하는 호에 대한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자호自號자라도 지어 사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m*****8 2015.07.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