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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보여준 숨어있는 고통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쓰나미가 보여준 숨어있는 고통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내용보기
지난 3월 11일 일본 북동부 해안지역 밀어닥친 쓰나미로 해당지역 뿐 아니라 일본 전역이 심하게 고통받고 있다. 지나온 역사와 현실의 정치경제 상황은 일본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나이지만, 자연재해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의 일반 민중들에게는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  벌써 10일이 지났음에도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제대로 된 복구는 커녕 원자력발전소 문제로 현장에서 더욱 멀
"쓰나미가 보여준 숨어있는 고통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내용보기
지난 3월 11일 일본 북동부 해안지역 밀어닥친 쓰나미로 해당지역 뿐 아니라 일본 전역이 심하게 고통받고 있다. 지나온 역사와 현실의 정치경제 상황은 일본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나이지만, 자연재해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의 일반 민중들에게는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  벌써 10일이 지났음에도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제대로 된 복구는 커녕 원자력발전소 문제로 현장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다. 예로부터 지진이 잦았기에 어느 나라보다 대비가 철저했던 일본이 이 정도라면 다른 나라는 어땠을까...
 
쓰나미와 관련하여 ’아체’ 또는 ’반다아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지...? 
2004년 12월 26일 오전 8시에 발생한 동남아 쓰나미 재해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아체주로서 인도네시아 전체적으로 250,000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되었는데, 그중 85%가량이 되는 200,000명의 희생자가 아체지역에서 생겼다. 수마트라 섬의 제일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이 책에서는 40만명이 죽은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고의적으로 아체지역에 쓰나미 발령 정보를 알렸으며 그로 인해 인명의 피해가 더욱 컸다고 한다. 주민들의 말.. "우리는 울고 싶어도 울 자유가 없습니다. 쓰나미로 초토화된 아체를 보며 인도네시아 정부가 팔짱끼고 웃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부패한 정부 관리들이 구호금마저 착복하고 있습니다. 계엄군은 구호품을 나른다며 구호자금으로 새 트럭이나 사고 있습니다. 우린 구호품 하나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이 책의 곳곳에 실려있는 아체지역의 피해 현장사진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들의 이야기는 책 표지를 덮을 때까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불거지도록 만들었다.  
 
사실 아체는 우리가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아는 것보다 더 역사적인 지역이다. 위키백과 사전에서 아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이슬람이 퍼진 지역이며 17세기에 이미 믈라카 해엽 일대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와 일본, 인도네시아 등의 지배를 차례로 받으며 긴 독립을 향한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실제로 아체는 포루투칼, 네덜란드에 이어 일본의 식민지 지배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제도의 어떤 지방보다 장렬히 싸웠고 인도네시아 제도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이후 1953년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군사독재자인 수하르토에 의해 다시 강제 점령되었다. 아체는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그 역사와 특성을 인정받아 1945년 이후에 계속 특별주로 존재해왔다. 최근까지도 산과 밀림 속에는 아체의 독립투쟁을 진행하는 무장 게릴라 자유아체운동(GAM)이 정부군과 투쟁을 진행했다. 아체지역의 무시무시한 정치상황은 시인이 석유기업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간 록스마웨라는 곳에서 무장경비에게 총구로 목숨을 위협당하는 사례에서 보여진다. 다행히도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반군인 자유아체운동(GAM)이 쓰나미가 발생한 후 8개월여만인 2005년 8월15일 1만5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혈분쟁을 종식시키는 헬싱키 평화협정에 합의했다.
 
이 책은 박노해시인이 쓰나미가 할퀴고 난 4개월, 그리고 6개월 후에 아체주를 직접 방문하여 그 처참한 현장을 사진에 담고 절망에 몸부림치는 아체지역 곳곳을 다니면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 지난한 몸부림과 아픔의 이야기를 담아온 것이다. 서방 언론이나 한국의 인터넷에서 수박 겉핧기 식으로 인도네시아 정부의 이야기를 베겨쓴 것과 달리 시인은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언론 보도와는 달리 절망과 비통함 그 자체였으며, 아체지역이 쓰나미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인도네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차별로 고통받고 있으며 박정희보다 더한 군사정권의 폭력 아래 무수한 인명과 재산이 무참하게 피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체주가 그렇게 처참하게 고통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체지역이 천연자원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인구 400만. 석유와 천연가스, 금과 석탄, 참치와 은빛 물고기... 아체주는 인도네시아 영토의 30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인도네시아 석유의 20%, 천연가스의 30%를 생산하고 수출의 11%를 담당하고 있다. 이것이 그동안 세계의 제국들이 너나없이 이곳을 차지하려고 했던 이유이고 인도네시아 군사정권이 아체지역 사람들의 씨를 말려서라도 내놓지 않으려고 한 이유이며, 미국이 군사정권의 폭력을 눈감아 주는 이유다. 아체지역의 석유는 처음부터 미국의 석유기업 엑손 모빌이 시추,유통하고 있다.(엑손모빌은 아체주에서 정부군의 원주민 탄압을 도와오다가 2006년 아체주민들에 의해 제소되었다.)
 
시인이 찾아가 아체지역은 말 그대로 ’초토화’된 모습이었다. 마을마다, 거리마다 온전한 가옥이나 농경지를 찾아볼 수 없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물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였다. 그나마도 천정이나 벽 곳곳이 무너진 채로...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아체 주민들은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었고 물과 식량이 부족하여 고통받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마련한 난민피난소는 열악하기 짝이 없고 뜻 있는 아체인들은 정부의 아체에 대한 음모와 탐욕을 경계하여 피난소에 들어가지 않고 지옥같은 현장에서 하루하루 희망의 싹을 만들어 간다. 시인은 자신이 함께하고 있는 모임인 [나눔문화]에서 모금한 적지만 소중한 지원금을 전달하고 현지에서 부모형제를 잃은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나눔문화] 차원에서 학교 건축과 운영비를 매년 지원하고 있다.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쓰나미가 닥친 직후 일부 국제 구호단체들이 아체지역을 방문해 활동하기도 했지만 한 두달이 지난 후 모두 떠나갔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그들의 고통을 직접 확인하고 위로해주고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기위해 찾아간 시인은 그들에게 사람에 대한, 인류에 대한 애정과 신뢰의 싹을 틔워냈다.(코리아에 대한 좋은 인상도 주었겠지만 한국 정부가 제3세계에 취하는 외교정책들을 보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심으로 아체지역 주민들에게 평화와 희망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2005년 평화협상 이후 소식은 아직 찾지 못했다. [나눔문화]의 작은 도움을 계기로 한국 뿐 아니라 아체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세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도 다음 번 모임에 가서 나눔학교 지원용 통장을 받아와야겠다...^^

- 박노해시인의 시 [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어요 ]
하늘이여 저에게 화를 내고 계신가요.
여기가 세상의 심판대인가요.
인도네시아의 검은 머리라 할 수 있는,
아체를 이렇게 날려 버렸어요.
아무 경고도 없이.
아무 자비도 없이.

제가 당신은 아프게 했나요.
그래서 온 지구를 흔들었나요.
왜 하필 아체였나요.
아체는 이미 울고 있는데.
밤마다 사라져 간 별들이 발 밑에서 우는데,
총살당한 부모 품에서 살아나온,
저 아이가 또 무얼 잘못했나요.
밀림의 스무 살 이농발女戰士이 무얼 잘못했나요.
쓰나미로 몰려든 외국인이 떠나면,
여긴 다시 계엄의 공포인데,
저는 언제까지 울어야 하나요.

푸른바다 물결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부드러운데,
사람들은 이젠 잊어비린 채 웃고 마시고 분주한데,
하늘이여 눈물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나요.
착하고 가난한 사람의 희생이 필요했나요.
이미 당신께 속해 있는 자의 희생이 더 필요했나요.

오 하늘이여.
오래된 제 눈물은 흘러도 좋아요.
그러나 피지도 못한 아체의 아이들은 받아주세요.
울 힘마저 없는 사람들은 받아주세요.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어요.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어요.
 
[ 2011년 3월 21일 ]
c****n 2011.05.03. 신고 공감 3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사진을 찍고 싶은 이야기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이야기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내용보기
사진을 찍고 싶은 이야기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37] 박노해,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느린걸음,2005)   - 책이름 :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사진·글 : 박노해- 펴낸곳 : 느린걸음 (2005.11.7.)- 책값 : 9800원     (1) 아체에서 사람을 읽는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느끼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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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고 싶은 이야기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37] 박노해,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느린걸음,2005)

 


- 책이름 :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 사진·글 : 박노해
- 펴낸곳 : 느린걸음 (2005.11.7.)
- 책값 : 9800원

 


  (1) 아체에서 사람을 읽는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느끼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내 사랑을 들려주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네 사랑을 듣고 싶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한 장에는 내 사랑이 고스란히 담깁니다. 사진 두 장에는 네 사랑이 나란히 담깁니다. 사진을 찍는 내 손길을 타고 내 마음이 흐릅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이녁 눈길을 타고 이녁 마음이 흐릅니다. 사진기는 서로를 잇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사진기에서 나온 사진 한 장은 서로 꿈꾸는 삶을 보여줍니다. 사진기로 빚은 사진 두 장은 우리들이 누리고 싶은 아름다운 꿈누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그래도 쓰나미 재앙으로 계엄치하의 아체 땅에 외국인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오래된 고통을 들여다봐 주는 것이 위안이고 힘이라고, 아무 힘 없는 나를 반겨 주는 것이었다 … 그는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구호금이나 착복하며 뒷짐지고 웃고만 있다.” 정말이지 정부가 움직인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막을 쳐 주는 것도 식량을 공급하는 것도 세계의 구호단체들이었다. 그나마 그런 구호의 손길도 인도네시아 정부가 조성한 집단 난민촌에만 집중되고 있었다 … 난민촌은 바닷가 자기 집터와 생계 터전에서 한두 시간씩 멀찍이 떨어진 곳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차 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곳에서 그들이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난민들은 수동적으로 주는 것을 받아먹기만 하다 보니, 배급 이권 다툼에나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  (34, 48∼49, 68쪽)


  나는 한국에서 살아갑니다. 나한테는 한국사람이라는 이름표가 붙습니다. 한국에는 주민등록증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태어난 1975년 12월 7일이라는 숫자를 앞에 박아 ‘751207’로 여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습니다. 이곳 한국에서 살아가자면 나는 내 어버이나 내 아이들 이름을 잊더라도 내 주민등록번호 숫자는 외워야 합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 일거리를 얻자면 나는 내 동무 이름을 모르거나 내 이웃 이름은 잊더라도 내 주민등록번호 숫자는 아로새겨야 합니다.


  주민등록번호가 박힌 주민등록증에는 내 앞얼굴 사진이 실립니다.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에 담는 사진은 ‘웃어’도 ‘울어’도 ‘찡그려’도 안 됩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살짝 삐딱하게 있어도 안 됩니다. 주민등록증 사진은 뒤쪽을 까맣게 하거나 파랗게 합니다. 집에서 찍은 사진은 주민등록증에 못 넣습니다. 맑거나 밝거나 곱구나 싶은 옷을 입어도 주민등록증에 못 넣습니다. 사내는 서양 정장을 걸쳐야 합니다. 가시내는 깔끔한 정장이나 정장 비슷한 차림새여야 합니다.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무언가 다른(?) 사람으로 여깁니다. 수염을 안 깎거나 머리를 기른 채 사진을 찍는 사내 또한 어딘가 다른(?) 사람으로 살핍니다. 그러니까, 주민등록증에 담는 사진은 온통 ‘범죄자로 여기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이름은 ‘증명’사진이지만, ‘앞으로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미리 보여주는(증명)’ 사진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주민등록증을 가리켜 ‘신분증’이라 가리킵니다. 내 신분을 가리키는 쪽종이라고 합니다. 여느 때에 주민등록증을 꺼낼 일이란 없습니다. 어쩌다 주민등록증을 꺼내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작은 쪽종이가 어떻게 ‘나를 말하’거나 ‘나를 보여주’는 그림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내 마음 어느 구석이 이 작은 쪽종이에 담겼을까 궁금합니다. 내 생각이나 내 꿈이나 내 삶이나 내 사랑 가운데 어느 한 가지가 이 작은 쪽종이에 깃들었을까 궁금해요.


.. 아체 고아들 입장에서 보면 식민 본국의 수도에 와 있는 것이었다. 아체에서는 아체어를 썼는데 이곳에서는 인도네시아어를 쓴다. 언어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겪는 아이들도 있었다 … 뚜띠 총장은 내게 성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꾸만 기숙사 시설을 증축해야 한다는 등의 언질을 주었다. 그럴 만한 돈도 없지만 시설에 투자해 봐야 고아원 것이지 아이들 것은 아니다 … 그들(이름난 구호단체 자원봉사자)은 정치에 무관하다고 하지만 ‘쓰나미 정치’가 벌어지고 있는 아체에서 사실상 ‘무관심의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  (53, 60, 72쪽)


  나는 내 신분을 모릅니다. 내 신분이 거룩한지 초라한지 모릅니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이라고 느낄 뿐, 내가 어떤 나인지 모릅니다. 나를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 나란,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를 사랑하려는 나요, 옆지기와 아이들과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려는 나입니다. 해와 흙과 달과 바람을 좋아하려는 나요, 지구별 동무랑 곱게 손잡으려는 나입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아체라는 곳에도 신분증이 있을까요. 인도네시아와 아체를 가르는 신분증이 있을까요.


  제주사람이 쓰는 제주말을 ‘뭍사람’은 쉬 알아듣지 못합니다.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면 소리와 결과 느낌에 따라 어떤 뜻인가 읽을 수 있으나, 오늘날 여느 제도권교육을 받으며 ‘표준말’에 길드는 사람은 제주말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곧, 제주말과 전라말이 다르고, 제주말과 서울말이 다르며, 제주말과 강원말이 달라요. 삶도 제주살이와 경기살이가 다르다 할 만하고, 제주살이와 경상살이가 다르다 할 만해요.


  그렇다면, 제주도 사람들이 ‘제주 자치 나라’를 세우겠다고 한다면, 뭍사람은 어떻게 여길까요. 말도 삶도 다르니까 흐뭇하게 받아들여 자치정부를 세우라 할까요. 제주도에서 푸는 물을 사들일 때에는 세금을 더 내고, 제주도로 관광하러 갈 때에는 출입국 수수료를 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려 할까요.


.. 그(울렐르 마을 젊은이)는 말했다. “우리더러 거지가 되라는 말입니까? 우리가 여기를 떠나 버리면 그건 인도네시아 정부가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겁니다. 우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겁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절대 안 해 줍니다.” … “우리가 키울 겁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냅니까?” … 압도적인 무력과 외교력을 가진 인도네시아는 아체를 결코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동티모르처럼 독립을 허락하기에는 아체에 자원이 너무 많다 … 정말이지 아체는 계엄군과 무장 경찰이 훨씬 더 많다. 여자와 아이들보다 더 많고, 밥집과 찻집보다 더 많고, 학생과 선생보다 더 많고, 나무와 꽃보다 더 많고, 깜빙과 짐승보다 더 많다 … 이렇게 불의한 전쟁은 인도네시아의 돈만 낭비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땀과 전문가의 창의성과 아이들의 미래마저 탕진한 것이다 ..  (77, 78, 93, 175, 208쪽)


  아체는 인도네시아에 깃들 수 있습니다. 아체는 ‘아체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에 서든 아체사람 스스로 생각하며 걸어갈 길입니다. 아체에 인도네시아 군대나 경찰이 머물러야 하지 않습니다. 아체 교육과 문화와 사회와 복지와 경제에 인도네시아 중앙정부가 남 내놔라 배 내놔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는 군대와 경찰을 잔뜩 이끌고 아체를 식민지처럼 주무릅니다. 아체사람을 노예로 부리며 석유를 캐거나 광석을 캐거나 논밭을 일구도록 시키면서 모든 권리를 빼앗습니다. 중앙정부한테 한마디를 하면 총알 하나로 목숨을 빼앗습니다.


  새삼스레 한국을 돌아봅니다. 한국에서 중앙정부한테 한마디를 한대서 총알 하나로 목숨을 빼앗지는 않습니다. 때때로 명예훼손이라느니 공무집행방해라느니 해서 무시무시한 벌금을 물리곤 하지만, 목숨을 쉬 빼앗지는 않습니다. 다만, 군사독재자가 우두머리 자리에 있을 때에는 사람 목숨도 파리 목숨처럼 함부로 꺾었어요. 이제 한국에서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에서 벗어난 지 스무 해 즈음 되었어요. 그런데,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중앙정부한테 외치는 목소리가 스며든다고는 느끼기 어려워요. 아니, 중앙정부 아닌 지방정부한테 외치는 목소리조차 스며든다고는 느끼기 힘들어요. 신분이 높거나 계급이 높거나 돈이 많거나 이름이 알려졌거나 어떤 권력 한 가지라도 손에 쥐어야 중앙정부한테 목소리를 낼 만해요. 중앙정부가 세운 제도권 틀에서 벗어나려 하면 거의 모든 권리를 빼앗겨요. 주민등록을 안 한다든지, 주민등록증에 손그림을 안 찍는다든지, 제도권학교에 안 다닌다든지, 공공기관이나 회사에 일자리를 얻지 않는다든지, 주민세나 보험세를 안 낸다든지 하면, 머잖아 ‘사람이지만 사람 아닌 것’으로 다루어집니다.


.. (한국 마산·창원 지역 이주노동자였던) 그는 “한국에서 많이 맞고 억울하고 분했는데, 여기까지 찾아준 당신을 봐서 다 용서할게요.” 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  (173쪽)


  내 삶은 주민등록증 같은 쪽종이 하나에 담지 못합니다. 내 이야기는 고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장 같은 쪽종이 하나에 담지 못합니다. 내 사랑은 주민등록번호 같은 숫자에 담지 못합니다. 내 꿈은 내 은행계좌에 찍힌 숫자에 담지 못합니다.


  내 삶은 오직 내 마음에 담습니다. 내 이야기는 내 마음을 살찌우며 쓰는 글에 담습니다. 내 사랑은 내 마음에 실어 내 몸으로 이 땅에 심습니다. 내 꿈은 내 마음에 실어 내 손가락을 놀릴 때에 사진 한 장에 가만히 심습니다.

 


  (2) 시인이 찍은 사진


  시를 쓰는 박노해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느린걸음,2005)를 읽습니다. 박노해 님은 시인으로서 여러 시집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박노해 님은 시인이면서 노동자였습니다. 노동자로 살아가며 시를 쓰던 사람입니다. 돈을 버는 길은 노동자였으며, 마음을 밝히는 길은 시인이었어요.


  이제 박노해 님은 노동자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따로 어떤 이름표를 붙일 만한 일자리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그예 ‘사람’으로 살아가요. 사람으로서 스스로 가장 하고픈 일을 해요. 사람답게 스스로 가장 사랑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일을 해요.


.. 사진 속의 공포 어린 얼굴 표정들을 보자 15년 전 나 자신의 악몽이 그대로 되살아 왔다. 안기부 지하 밀실에서 24일간의 고문 끝에 감옥에 입감되면서 나는 수번이 적힌 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때 내 사진도 이렇게 살벌할 것이다 ..  (82쪽)


  시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한국을 떠나 이라크로 버마로 아체로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 만난 이야기를 글로 갈무리합니다. 사람들 만난 이야기를 글로 갈무리하기 앞서 사진으로 하나둘 아로새깁니다.


  박노해 님이 좋은 사진기를 쓰는지 값진 사진기를 쓰는지 모릅니다. 박노해 님이 시를 쓸 때에 좋은 연필이나 값진 만년필을 쓰는지 모르는 만큼, 어떤 사진기를 쓰는지 알 길이란 없겠지요. 어떤 연필을 쓰는지 궁금하지 않을 뿐더러, 어떤 사진기를 다루는지 궁금할 일이 없겠지요.


  왜냐하면, 어떤 시를 쓰는지를 대수롭게 바라볼 노릇이니까요. 왜냐하면, 어떤 사진을 찍는지를 대수롭게 헤아릴 노릇이니까요.


..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쟁의 후폭풍이라는 것을 나는 이라크에서 경험했다 … 그래도 아체의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밤벌레 소리는 야생의 적막감을 더한다 … 아체 아이들은 울지 않고 이제 스스로 웃음꽃을 피운다 …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삶은 스스로 강인하게, 스스로 지혜롭게 흘러간다 ..  (114, 117, 122쪽)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기에, 아체 밤하늘을 바라보며 미리내를 느낍니다. 아체에서도 밤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한국에서도 밤하늘 바라보며 시를 썼겠지요. 한국에서도 밤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감옥에서 시를 썼겠지요.


  아체 아이들뿐 아니라 아체 어른들 누구나 스스로 웃음꽃을 피웁니다. 스스로 웃음꽃 피우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박노해 님도 스스로 피울 한 가지란 눈물꽃 아닌 웃음꽃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박노해 님이 스스로 쓸 글이란 울음꽃 같은 글이 아니라 웃음꽃 같은 글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곧, 박노해 님이 손에 사진기를 쥐고 사람들을 만날 때에 담을 사진이란, 환한 웃음꽃이 되고 맑은 웃음꽃이 되며 빛나는 웃음꽃이 될 사진이에요.


  해님 같은 사진입니다. 달님 같은 사진입니다. 꽃님 같은 사진입니다. 눈님 같은 사진입니다. 흙님 같은 사진입니다. 물님 같은 사진입니다.


  박노해 님은 무얼 사랑할까요. 미루나무를 사랑할까요. 갯벌을 사랑할까요. 꼬막을 사랑할까요. 석류를 사랑할까요. 고구마를 사랑할까요. 나락을 사랑할까요. 어떤 사랑을 헤아리면서 아체사람 이야기를 사진으로 그러모으고 싶을까요.


.. 절박한 마음으로 단순하게 짓는 성벽보다 오래 가는 아름다움이 어디 있으며, 절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린 원시 벽화보다 아름다운 그림, 간절한 마음으로 골판지 위에 쓴 ‘군고구마 잇슴니다’ 같은 글씨처럼 아름다운 서예가 어디 있겠는가 ..  (126쪽)


  시쟁이 한 사람이 사진쟁이로 살아갑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이 시쟁이로 살아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고 그려 봅니다. 그림쟁이 한 사람이 시쟁이로 살아가거나 사진쟁이로도 살아간다면 어떤 무늬일까 하고 그려 봅니다. 노래쟁이 한 사람이나 춤쟁이 한 사람이 시쟁이나 사진쟁이로 살아간다면 어떤 빛깔일까 하고 그려 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춤을 춥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이리 구르고 저리 달립니다. 이리 어지르고 저리 뒹굽니다. 그러나, 어른 눈길로 볼 때에 ‘어지르기’이지, 아이 삶으로는 ‘놀기’예요. 놀며 이것저것 만지다가 다른 놀거리를 느껴 자리를 옮기느라 ‘안 치울’ 뿐이에요. 다른 데에서 이것저것 만지며 놀다가 또 이리로 와서 ‘안 치우고 둔 놀거리’를 마음껏 누려요.


  아이들하고 한마음이 되는 사람은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골목동네 이웃하고 한마음이 되는 사람은 골목동네 이웃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한마음이 될 때에 찍을 수 있는 사진입니다. 섣부른 구경꾼은 사진을 찍지 못해요. 섣부른 구경꾼은 ‘기록’을 남기거나 ‘증명’을 할 뿐이에요. 어설픈 예술꾼은 ‘예술’을 하거나 ‘문화’를 빚는다 하겠지요. 곧, 사진을 찍으려면 구경꾼도 예술꾼도 되어서는 안 돼요. 구경이나 예술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구경을 누리려면 구경을 하면 되고, 예술을 즐기려면 예술을 하면 돼요. 구경을 하면서 ‘구경’에 ‘사진’이라는 껍데기를 씌우면 거짓이 되고 말아요. 예술을 하면서 ‘예술’에 ‘사진’이라는 옷을 입히면 이때에도 거짓이 되고 말아요.


  공무원이 행정을 맡을 때에도 ‘일’이고, 회사 사장이 서류에 이름을 적을 때에도 ‘일’이에요. 어느 일이 올바르고 어느 일은 일 같지 않다고 나눌 수 없어요. 그런데, 사진쟁이로 살아가며 사람을 마주하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행정 처리하’듯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서류에 이름만 적고 끝내는 회사 사장처럼 사진을 찍을 수도 없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두 다리로 이 땅에 우뚝 서서 맑게 웃는 사람이에요.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가방에 웃음보따리 짊어지고는 이곳저곳 신나게 마실하는 사람이에요.


  박노해 님 가방에는 ‘구호 성금’이 들었다지요. 그런데 참말 구호 성금일까요? 박노해 님은 구호 성금이라는 ‘돈’이 아니라, 이 자그마한 물건으로 피워낼 ‘웃음꽃’을 생각하며 가방을 꾹꾹 눌러 챙기지 않았을까요? 웃음보따리를 가방에 꾹꾹 눌러 채운 다음, 사진기 몇 대를 가붓하게 챙겨 지구별 이웃을 사귀려고 나들이를 떠나지 않을까요?


.. 록스마웨의 모습은 사진에 담을 수 없었다. 수동카메라는 아예 꺼낼 수도 없었다. 달리는 차 속에서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사진 몇 장 찍다가 긴급출동한 무장 군인들에게 곧바로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  (183쪽)


  록스마웨 모습은 박노해 님 시로도 내 마음속으로 그릴 수 있어요. 꼭 어떤 ‘그림으로 보여지는’ 사진을 찍어서 베풀지 않아도 좋아요. 박노해 님 눈이 사진을 찍었어요. 박노해 님 마음이 사진을 찍었어요. 눈으로 찍은 사진을 글 한 줄에 차곡차곡 갈무리합니다. 마음으로 찍은 사진을 책 한 권에 알뜰살뜰 여밉니다.


  사진 100장을 찍어서 책에 실어야 아체살이를 잘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사진 1000장이나 1만 장이나 10만 장이 되어야 비로소 아체살이를 낱낱이 보여주지는 않아요. 사진 한 장으로도 넉넉해요. 사진 열 장으로도 즐거워요.


  부디 사랑을 길어올려 주셔요. 부디 사랑을 담은 웃음꽃을 터뜨려 서로서로 예쁘게 어깨동무해 주셔요.


  아체는 너무 오랫동안 울었다지요. 어쩌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울는지 몰라요. 그런데, 어떤 사람 눈에는 울음이 보이지만, 어떤 사람 눈에는 ‘마음으로 기운을 북돋우며 웃는 해님 같은 꽃봉오리’가 보일 수 있어요. (4345.8.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h*******e 2012.08.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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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울리는 책. 정말 추천합니다
"가슴을 울리는 책. 정말 추천합니다" 내용보기
리뷰를 쓴적이 처음이라 잘 써질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보고 수갑이 채워져 있는데도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도서관에서 빌리게 되었는데,, 빨간 표지가 인상적이었죠..   2시간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제가 모르던게 많더군요... 인도네시아 끝머리에 있는 아체라는 나라에 대한 슬픈이야기들...   제 가슴을 울린 박노해님(저자) 몇줄의 이야기를 적어보겠습
"가슴을 울리는 책. 정말 추천합니다" 내용보기

리뷰를 쓴적이 처음이라 잘 써질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보고 수갑이 채워져 있는데도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도서관에서 빌리게 되었는데,, 빨간 표지가 인상적이었죠..

 

2시간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제가 모르던게 많더군요...

인도네시아 끝머리에 있는 아체라는 나라에 대한 슬픈이야기들...

 

제 가슴을 울린 박노해님(저자) 몇줄의 이야기를 적어보겠습니다.

 

"나는 가난과 슬픔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나처럼 가난하고 슬픈 사람들과 함께 잘 나누고 서로 위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박노해님께서 한 고아원에서 고아원아이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겪는 슬픔, 아픔을 코코넛처럼 깨끗이 떨쳐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 슬픔과 아픔은 여러분의 힘이 될 거예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큰힘은 슬픔의 힘과 가난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 힘이 우리를 서로 이어줄거에요."

 

아체의 아이들은 울지 않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아빠를 잃어버리고 친구를 잃어버리고 학교를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렸는데도 울지 않습니다. 아픔이 아이들을 성숙시켜 버렸기 때문이래요..

 

 

 

저는 이책에서 제가 묵인하고 있던 소리를 발견했습니다. 아직 어리니깐 이런 이야기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모습을 깨우쳐준 책입니다.

 

 

제가 느낀감정은 너무너무 많은데요 글 쓰는 솜씨가 없어서 제 감정을 글로 옮기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부디 이 책을 꼭 사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꼭 사서 볼 예정입니다.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특히나 이 리뷰를 읽으신 학생분들이 더더욱!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정 위대의 인간을 알게 해준 책...!

b******2 2007.09.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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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것만이 사랑이 아닐진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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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행운에 감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는 그 말이 왠지 가슴에 사무치는 책이다. 한비야의 세계구호활동을 보고 느꼈던 감동과는 사뭇 다른 뭉클함이 느껴진다. ''도울 수 있어 행복하다''라고 외치는 복지 재단의 그들이 아닌 울고있는 아체인의 입장을 더 생각한 글이기에 아체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살아남은 죄책감에 마냥 안도의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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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행운에 감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는 그 말이 왠지 가슴에 사무치는 책이다. 한비야의 세계구호활동을 보고 느꼈던 감동과는 사뭇 다른 뭉클함이 느껴진다. ''도울 수 있어 행복하다''라고 외치는 복지 재단의 그들이 아닌 울고있는 아체인의 입장을 더 생각한 글이기에 아체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살아남은 죄책감에 마냥 안도의 숨을 내실 수 없는 그들의 모습, 그럼에도 더할 수 없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 뜨거운 것만 사랑이 아닐지므로, 나역시 그들에게 온기 어린 인간으로서의 애정을 보내야 할 듯 하다. 내 중심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말이다.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서도 가진 것을 모르고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슬픔의 힘을 믿는다. 기쁨은 공유하기 어렵지만 슬픔은 함께 나눌 수 있다. 슬픔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공감에 이르고 하나가 된다. 슬픔은 우리를 돌아보게 하며, 우리 자신을 정화하고, 참된 나 자신과 진리에 가닿게 한다. ...... 슬픔은 흘러야 한다. 너의 슬픔이 나에게로, 나의 슬픔이 너에게로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 국경 너머의 슬픔이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함께 하는 그 슬픔의 힘으로 우리 자신을 소생시키고 다시 희망 쪽으로 걸어가야 한다.
s*****i 2006.05.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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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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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쓰나미가 휩쓸어 간 아체 바닷가 마을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죽은 것은 모두 가난한 자들이었다. 부자 마을과 잘 지은 집들은 파손되긴 했어도 여전히 건재했다. (중략) 일본에서 강도 9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50명이 죽었다. 그와 비슷한 강도의 지진이 방글라데시를 강타했을 때 50만 명이 죽었다. 한번 지진으로 만 명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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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쓰나미가 휩쓸어 간 아체 바닷가 마을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죽은 것은 모두 가난한 자들이었다.

부자 마을과 잘 지은 집들은 파손되긴 했어도 여전히 건재했다.

(중략)

일본에서 강도 9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50명이 죽었다.

그와 비슷한 강도의 지진이 방글라데시를 강타했을 때 50만 명이 죽었다.

한번 지진으로 만 명 이상 죽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뿐이다.

재앙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사라진 구호성금~

 

(중략)

쓰나미 참사가 보도되자 세계 각 나라는

두 달 만에 구호지원성금 목표액 97%를 모금했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 돈은 사회기반시설 재건 비용을 제한다고 해도

아체 이재민 1인당 500달러 정도가 돌아가는 액수이다.

그러나 인류가 정성을 다해 보내준

구호성금과 구호품 90%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쓰나미 현장의 난민들에게는 500달러가 아니라

단돈 5달러도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쓰나미 정치와 무관심의 정치~

 

(중략)

반면 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기 집터에서 천막을 치고

마지막 삶의 터전을 지켜 보려는 사람들은 불법점거자인 양 밀려나고 있었다.

아예 구호품 지급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

그들을 몰아내고 깨끗이 정리해서

새로운 리조트로 재개발하겠다는 것이 지배자들의 생각이란다.

마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마을 사람들이 난민촌으로 밀려나기가 무섭게

인도네시아 군대나 무장 경찰의 막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선다.

주민들은 이 모든 사태를 한마디로 `쓰나미 정치`라고 분개하고 있다.

(중략)

 

 

~아체의 고아들~

 

(중략)

자카르타 고아원을 운영하는 뚜띠 여사는 이슬람 대학의 총장이자

명문 귀족 출신으로, 사회복지부 장관을 두 차례 지낸 저명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여론은 반드시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불우한 아이들을 앞세운다는 의혹도 사고 있었다.

세계 여성이슬람협회 부회장 겸 아시아 여성이슬람협회 회장이라는 것이

작용했는지 이번에 리비아의 카다피로부터 150만 달러의 후원을 받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 밥 먹는 것을 보니 거의 소금과 기름에 볶은 맨밥뿐이어서

그녀에 대한 소문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집은 호화로운 대저택에 고급 외제차를 굴리고 있어 대조적이었다.

얼마 전에는 어떤 현명한 자선가가

아체 고아들에게 직접 한 명 한 명 현금 봉토를 전달해 주었는데

그가 돌아서자마자 모두 강제로 걷어 들였단다.

고아들이 언론사에 연락하고 항의 시위까지 벌였는데

묵살되고 말았다는 귀띰도 듣고 있었다.

내가 깜빙이라는 `창조적 나눔` 방식을 택했던 것은

그런 문제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는 차단해야겠는 속마음도 있었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

 

어디서나 아이들은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다.

폐허 더미에서 아이들은 바람 빠진 축구공 하나 없어

부서진 벽돌 조각을 가지고 재미나게 축구를 한다.

조그만 공이라도 많이 가져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체 아이들은 울지 않고 이제 스스로 웃음꽃을 피운다.

y******8 2009.11.27.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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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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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에 갔더니, 이 책은 너무 팔리지 않아 반품했다고 한다. 비극이다. 왜 좋은 책은 팔리지 않을까. 광고가 충분히 되지 않아서일까.   박노해의 글을 오랜만에 읽는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읽고 박노해를 오래도록 잊었다. 왜일까? 나는 왜 그를 잊어야만 했을까? 그 사이 나는 어느새 어느 편을 들려고 했었던 거고, 어느 편에도 들지 않고 진리를 찾아 나선 사람은 끊임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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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에 갔더니, 이 책은 너무 팔리지 않아 반품했다고 한다. 비극이다. 왜 좋은 책은 팔리지 않을까. 광고가 충분히 되지 않아서일까.

 

박노해의 글을 오랜만에 읽는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읽고 박노해를 오래도록 잊었다. 왜일까? 나는 왜 그를 잊어야만 했을까? 그 사이 나는 어느새 어느 편을 들려고 했었던 거고, 어느 편에도 들지 않고 진리를 찾아 나선 사람은 끊임없이 방황만 하는 사람으로 쉽게 치부해 버리는 연습이 되어 버렸던 걸까?

 

이 책은 인도네시아의 작은 돈에 '아체'에 대한 글이다. '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체는 쉽게 말해 중국의 티벳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자원이 많다는 이유로 미국과 인도네이시아에 의해 끊임없이 핍박받는다. 그 절망은 박노해는 사진과 정직하고 꾸밈없는 글로 옮겨진다.

 

아체는 우리의 거울이다. 우리는 아체라는 얼룩을 우리를 비추는 거울에서 끊임없이 지울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시골 아체와 우리는 어떤 관계일까. 아니, 그들과 우리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일까.

 

오랜만에 울음이 나왔다. 아체인들의 절망에 울음이 나왔고, 이런 책이 전혀 안 팔리는 우리 현실에 울음이 나왔다. 아체인들은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다시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 체력을 갖추게 됐을까. 혹시, 무력의 억압에서 벗어나자 마자 자본과 국가와 민족의 억압에 길들여 지게 된 것은 아닐까.

 

좋은 책이다. 더 팔렸으면 좋겠다.

g********m 2007.07.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