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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한다. 세상은 나를 힘들어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그런 것처럼. 그것은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 속에 들어와야 한다고 세상은 내게 말했다...그와 같은 입장의 차이가 불화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100 - 101쪽)
책을 읽는 내내 '남한산성'(김훈)의 문체가 거듭 포개졌다. 그러면서도 현란하면서도 적확하다 싶은 단어의 구사가 돋보이는 면에서 작가의 독서 편력과 문학적 자질이 돋보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작가 이승우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운명과 사랑과 죽음과 문학과 종교라고 하는, 사람들이 살아 가면서 만나게 되는 근본적 화두들을 다루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하나하나의 화두를 때론 참 기구하고 때론 참 극단적인 장면들로 보여준다. 그리고 나 같은 독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각각의 장면들을 경험에 비추어 보고 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스스로의 그것을 회상하고 잠기게 된다.
# 공감 1 '다른 사람의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하고 중대한 결단으로 보이는, 따라서 그 결단을 유발한 동기도 당연히 심각하고 중대할 것으로 판단되는 어떤 일에 대해, 정작 당사자는 아주 사소한 이유를 내세우거나 우연의 작용을 들이대어 실소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155쪽) - 우리들 삶이 상당 부분 그런 과정들의 연속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가 가져온 생각이기도 하다.
# 공감 2 '사실에 대한 우리의 신봉은 소설을 소설을 작가의 삶과 겹쳐서 읽게 한다... 독자들의 의식 속에서 소설가가 쓴 글들은 너무 쉽게 글쓴이의 현실을 지향한다... 그래서 소설 이전의 작가의 현실을 복원해 보려는 부질없는 꿈을 꾼다. 나쁜 버릇이다...아무리 진지한 독자도 이 버릇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독자는, 그런 뜻에서 모두 맹추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158쪽) - 나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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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끼고 읽어야 했다.
목표 없이 부유하는 삶, 순간순간의 선택만이 존재하는 삶, 아프고 불쌍했다. 운명처럼 드리워진 어두움을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듯한 주인공의 무게가 느껴졌다.
작가의 서문에 보면 주인공이 강을 건너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간다고 씌어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듯한 메세지를 준다.
그러나, 과연 청소년들이 이 글을 보고 희망을 느낄까? 운명속에 허우적거리다가, 잠시 빠져나오는 듯 하다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 버린 듯 한데 말이다. 그래서 안타까운데 말이다.
소설이 계속 전개되었다면, 오히려 글쓰기가 그의 삶을 구원하지 않았을까, 빛으로 인도하지 않았을까 생각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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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관념적인 소설을 한 권 읽어치웠다. 안그래도 철학적 사유와 깊이에의 강요에 시달리던 터라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를 즐기고 싶었으나, 프랑스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이라는것에 끌려 집어버린 '생의 이면'.
너무도 암울하게 '잘' 쓰여진 소설을 보면 공연히 잡생각만 많아진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박부길의 삶은 가슴이 아프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가장 자신있게 쓸 수 있는 소재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작가 이승우에게마저 연민을 느끼게 하면서. 결국 첫장부터 난 사춘기 시절 그렇게나 동화되고자 원했던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복잡미묘한 감정이 넘실대는 채로 마지막 장까지 끌려왔다. 내 롤모델은 점차 기억에서 아릿해지고 있는데 이 정신병자같은 박부길이란 주인공은 왜 다시 날 흔들어 놓는거야?
뒤집힌 서사와, 운명의 난해함을 냉정한 문체로 그리고 허구의 작가와 작품을 진짜처럼 노출시켜 그리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깊이감이 있다. 쉬이 읽히진 않지만 미간에 주름 팍 주고 정독해야 제맛이 나는 소설이 있는데, 뭐 이 뒷말은 굳이 안해도 알겠지요.
사람이 노출 본능 때문에 글을 쓴다는 말은 거짓이다. 더 정확하게는 위장이다. 사람은 왜곡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현실이 행복해 죽겠는 사람은 한 줄의 글을 쓰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오직 불행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때 그는 펜을 들어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마취제를 주사한다. 독자들 또한 그 마취제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뿐이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에게 나는 가장 서툴다. 서툰것을 사람은 용납하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빈번하게 상처를 입는다. 궁색한 선택이지만, 그래서 유일한 나의 대안은 사람 곁에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참혹하고 질긴 생리적인 외로움은 어쩔 것인가. 하여 나느 나의 물색없는 외로움을 가장 위험한 것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그 전부터 삶은 화해하기 힘든 대상이었다. 나는 세상을 요리하는데 너무 서툴렀다. 아니, 세상이 요리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그 때문에 나의 삶은 한 번도 가벼워 본 적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