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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화는 존큐라는 영화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존큐라는 영화는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적으로 다루었지만 이영화는 어머니의 사랑을 다루었다고 해도 됩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아이에게 수술을 시켜서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고픈 심정을 담아 우리에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어떤분들은 지루할지 모르겠으나 저는 일단 넘 잼있게 봤습니다. 그리고 뮤직컬틱한 영화입니다. 영화중간중간에 나오는 노래와 그 노래에 맞추어서 모든 출연진들이 춤을 추면서 어느덧 영화가 아닌 뮤직컬이 되어있고 또 다시 영화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형식으로 처음에는 낯설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영화입니다 물랑루즈와 허니 코러스 8mm등등 많은 음악과 영화가 만나는 장르가있지만 이 어둠속의 댄서는 그야말로 영화의 작품성과 배우의연기와 노래의 감미로움과 애절함이 한데 어울려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수있을겁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분이나 어머니의 사랑을 보고싶은분..오랜만에 눈물을 흘리고 싶은분은 한번봐보세요 절대 추천해드리는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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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다'라는 동사 단어를 '사물의 모양을 눈을 통하여 알다'라는 첫번째 사전적 의미 외에도 상당히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먹어보다, 가보다, 손해보다, 재미를보다, 시험을보다, 시장을보다, 용변을보다, 며느리를보다...등의 '보기'를 하고 있고 또 두고보기도 하고, 끝장을 보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들을 보면!! 우리는 '보다'라는 말을 경험하거나 누리거나 취하거나 당하는 데에까지 확장하여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살면서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듣기도 하고 맛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는데 왜 하필 그 많은 것들을 본다고 생각할까? 그 것은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인식하고 또 자아를 확인하는 활동을 할 때 시각적 능력에 가장 많이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행위를 할 때나 어떤 사건이 주변에서 발생할 때 눈을 통해 지켜보고 나서야 확실히 그 것이 이루어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볼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이라는 신체적, 어쩌면 정신적 변화는 어떤 큰 흔들림으로 인생에 진동을 전할지도 모르겠다. 셀마는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와 경찰관과 그 부인의 집에 세들어 사는 가난한 여성으로 공장에서 힘들게 일해가며 근근히 살아간다. 그녀는 유전적 질환으로 인해 점차 시력을 잃게 되는데 그에 주저앉지 않고 기차길을 따라 먼 길을 걸으며 출퇴근을 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노동을 계속하여 수술을 받지 않으면 역시나 실명을 하게 될 아들을 위해 돈을 차곡차곡 모은다. 그리고 너무나 좋아하는 노래와 영화를 즐기며 꼭 해보고 싶은 뮤지컬도 아마추어 극단에 나가 열심히 연습한다. 셀마는 생활이 불편할 지라도 결코 삶이 불행하지 않다. 그 이유는 보지않아도 되는 것을 보지않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실명은 보지 못함이 아닌 보지 않음의 상징이다. 영화를 볼때 엔딩이 나오기 전에 극장을 나오곤 하는 그녀는 그 결말을 보지 않음으로써 영원히 끝나지 않고 있는 멋진영화를 계속 마음에 품고 있을 수 있다. 보고 싶은 세상은 눈이 아닌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 셀마와 대비되는 인물인 경찰관 부부는 그들에게 돈과 총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길 좋아하는데, 이는 허영심에 사로 잡혀 물질과 권력을 계속 곱씹에 보며 확인하는 데 인생을 소비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집주인이 경찰관이라는 것은 그가 권력자 쪽의 인간,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는 쪽의 인간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경찰관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더불어 살던 이웃 셀마가 시력을 잃어감에 따라 그녀를 바라보는 태도를 감시로 바꾸게 된다. '상대에게 보임'의 불균형이 발생하면서 감시능력의 소유자는 감시능력의 비소유자에게 본다는 행위를 폭력, 제재, 착취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가 텔레스크린을 통한 일방향의 감시체계로 전체주의속에 모든 사람을 획일화 시키며 권력을 유지했던 것을 보았듯이 말이다. 셀마는 모두가 보는 것을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나오고, 극단에서 나왔으며 권력자에게 폭력도 당하게 된다. 결국 무자비한 폭력으로 죽음에 이를 지경까지 되지만 셀마는 "사람들은 이것을 최후의 노래라고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알지 못 해. 최후의 노래로 만드는 건 우리에게 달렸어" 라고 노래하면서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모두들 그녀의 종말을 봤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녀의 뮤지컬은 끝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커튼콜을 할 필요가 없다. 셀마의 사형집행에서 커튼이 활짝 열려있는 장면은 이를 잘 말해 주는 듯 하다. 사람들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결말을 지어버리고 점점 인간성을 상실하는 게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을 볼 수 있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서로를 볼 수 있다. 상대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또한 비인간성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 적절한 견제로서의 눈은 사람에게 하여금 짐승에서 벗어나 가치와 윤리가 존재하는 인간성을 갖게 할 수 있겠지만 과도한 감시로서의 눈은 자유를 상실케 하여 비인간성이 고개를 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다는 것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바르게 이해하여 그 가치를 제대로 활용할 때 고양된 인간성을 바탕으로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본다는 것을 1차적 의미의 시각적 정보수용의 범위를 넘어서 세계와 인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도 확대 적용시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똑바로 보며 무지와 타락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또 필요 이상의 무용한 것들을 보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이 사회는 눈뜬자들이 춤출 수 있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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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동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어떤 영화는 영상만 보아도 좋고, 그저 음악이 좋기도 하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좋기도 한데 이 영화는 주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면서도 그게 무엇이라고 결론내기가 쉽지 않았다.
시각을 상실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둠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야하는 인간조건을 상징할 수도 있다. 셀마의 이웃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항상 자신의 일처럼 도아주는 크왈다 혹은 캐시, 셀마가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한결같이 사랑하는 제프, 심지어 셀마가 사형수가 되어 수감되어 있을 때 간수까지도 그녀를 따뜻하게 돌봐준다. 그리고 문제의 빌과 린다 부부.
셀마는 그들의 집에 세들어 살고있는데 그들은 셀마의 아들 진에게 자전거를 생일 선물로 사주기도 하고, 진이 학교가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 학교를 빠지면 셀마에게 알려주고 진을 돌봐주기도 한다. 하지만 빌은 린다의 낭비벽을 어찌하지 못하고, 유산도 다 날려버리고 이제는 집 할부금도 밀려서 집을 잃게될 상황인데, 새 소파를 사고싶다는 아내의 바램에 자살이라는 해결방법 밖에 다른 방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자살 할 용기도 없어서 셀마에게 죽여달라고 사정하고, 셀마는 그를 위해서 울면서 총을 난사하고 얼굴을 내려쳐서 결국 죽게한다. 그리고 빌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자신은 사형을 선고받고 만다.
친구가 죽고싶어한다고 해서 과연 죽여줄 수 있을까? 약속은 모두 지켜야만 하는걸까? 그리고 자신과 같이 실명할 것을 알고도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인생은 불가사의로 가득 차있다. 셀마는 곧 자신이 실명할 거라는 사실 때문에 인생을 비관하지는 않는다. 아들에게 눈 수술을 해주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을 위해 연습을 한다. 그리고 공장의 소음 속에서도 리듬을 느끼고, 춤추고 노래하는 꿈을 꾼다. 시력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도 자신은 이미 봐야 할 것을 다 보았기에 슬퍼하지 않는다. 빌을 살해한 현장에서도 그녀는 음악을 듣는다. 나의 죄가 용서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하나. 재판정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노래하고있다.
뮤지컬 속에 누군가가 있어 그녀를 매혹한다. 그녀는 뮤지컬이 정말 좋다. 그리고 영원히 꿈이 계속되길 원해서 그녀가 극장에서 결말이 나기 전에 나오듯이 자신의 죽음 앞에서 진을 생각하며 결코 자신은 혼자가 아니고, 이것이 마지막 노래가 아니라고, 내가 그것을 허락할 때 마지막이 되는 것이라고 노래하며 죽음을 맞는다.
셀마는 아름답다. 그녀가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셀마는 용감하다. 힘이 세고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기꺼이 짊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세상이 나를 좌절시킬 수는 없다.
옛날 고교시절 책받침에서 본 만화가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다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곧 죽음인데 쥐 한마리가 그 나뭇가지를 갉아먹고 있다. 그 때 떨어지는 나무 즙이 그 사람 입에 떨어지는데 그는 달콤함을 느낀다. 이게 인생이라고 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지금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다른 걱정거리로 놓치지 않아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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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두 번, 세 번을 보아도 좋더군요. 처음에 볼 때와는 달리 이번엔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제프의 존재도 느껴지고, 전주와 마지막 노래의 절묘한 구성도 눈에 띄고. 세번째 볼 때는 스테디캠을 중심으로한 카메라 연출이 돋보였습니다.
역시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정말 천재인 거 같습니다. 역시 또 하나의 천재인 비요크와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의견충돌이 많았다던데... 이 두 명의 천재는 싸워가면서도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은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뮤지컬 연기, 특히 "사운드 오브 뮤직" 의 여러 노래들도 참 좋구요... 군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동작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