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전체 모임으로 다시 묶인 팀모임에 의지를 내어 가게 되었다. 덕분에 바빠서 책에 손도 못대던 때에 얇은 문고판 "인생의 계절들"을 읽을 수 있었고, 또 바쁘다고 하루종일 개인적으로 나누는 대화다운 대화도 못하고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면을 돌아보지 않으면 지쳐서 나가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임이 계속 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집단 상담이나 상담 공부에 대한 마음도 커져 갔다. 참 소중한 모임이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참, 이렇게 좋고 잘 읽어지는 책이 품절이라 온갖 서점을 돌아다녀도 구할 수 없어서 한 온라인 서점에서 겨우 주문했다).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인생을 사계절로 풀어가고 있다. 그는 우리가 통상 말하는 비유로서의 사계절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책을 다 읽고 보니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저자의 풀이 방식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사계절 그 자체의 의미보다도 봄->여름, 여름->가을, 가을->겨울로 넘어가는 그 지점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굴곡마다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비약한다는 점에서 '숭고'가 떠오른다. 1899년에 태어나 1900년대 초반을 살았던 저자에게서 낭만주의적인 색채가 느껴진다. 논문 생각 난다.
두 세계에 속해 있는 인간 "일부 젊은 의사들이 더욱 모험적인 치료를 감행하기도 하는데, 이 모험에는 넘어설 수 없는, 아니 허락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 한계를 넘는다면 자연은 우리에게 보복해 올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남아 있는 한, 자연의 힘과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점에서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지만 역시 동물처럼 자연의 제약을 받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즉 인간은 자연 세계와 초자연적인 세계라는 두 세계에 동시에 소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초자연 세계를 신앙으로 자각하지 못한다면 이 두 개의 세계에 동시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영원한 비밀이 될 것입니다. 최선과 최악은 인간의 내면에서 갈라놓을 수 없도록 짜여져 공존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62쪽."
봄은 순응을 배우는 시간이다. 일단 어린 아이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배운다. 여름은 열매를 맺는 시간이다. 여름에는 멈추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린다. 가을은 성숙의 시간이다. 그런데 청년 때 생각했던 성공과 가을의 성공은 방향이 다르다. 가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할 수 없는 일을 단념하고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을 저자는 성숙이라고 부른다. 겨울은 쇠퇴하고 죽음을 향해 가면서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노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자기중심과 타자중심이 힘 겨루기를 하며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보인다.
가을에 관한 부분 "선택은 인생의 첫째 날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을 단념하는 것이지요. 젊은 시절에는 자기가 선택한 것에만 주목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는 단념해야만 할 것에 자주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청년기에 우리는 성공이라고 하면 그저 무엇이든 적극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나이가 들면 성공보다 열매가 실한 패배도 있을 수 있고, 자기를 여유 있게 해주는 것이 단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앙드레 사라동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내면에 "사산한 쌍둥이로서의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했을 때 선택하지 않은 것의 잠재적인 존재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실제로 살아보지 못한 삶을 실현한다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될 것입니다. 118-119쪽."
각 발달 단계에는 걸맞는 모습이 있다.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청년이 되려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무엇인가를 생산해내야 한다. 책임지지 않고 자유만 누리려 하거나 생산하는 것 없이 즐기기만 한다면 철없는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성숙하려면 그 모든 것을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단념하고 내려놓아, 그렇게 비축한 에너지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쏟아 부어야 한다.
그리 어른스럽지도 않은데 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사회 생활을 시작한 나는 요즘 가을에 떠밀려 가고 있는 느낌이다. 20대의 해맑음도 40대의 연륜도 없는 빈털터리 같은 느낌이다. 종종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예요.", "더 이상은 노력해도 안 돼요"라는 말을 들으며 나도 저 시기가 오면 그런 생각을 할까 무서워지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그 모습이 지혜로운 것인가 생각했다. 책 나눔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한 선생님은 "아직도 열심이다, 열정적이다. 나는 이제 그렇지 못하다."라고 말씀하셨고, 또 한 선생님은 "아이들 때문에 힘든가, 선생님들 때문에 힘든가??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면 아직 잘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한 해 농사를 거의 지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쏟아 부은 노력과 마음 만큼 보람차냐고 하면 뭔가 아쉽고 부족한 느낌이다. 생판 새로 시작할 학기가 벌써부터 무서워지기도 한다. 이 책을 덮으며 꼭 하나 기억하고 싶은 것은 내려놓을 줄도 알자는 것. |
|
책두께는 얇지만..책의 내용만큼은 절대 얇지 않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와 생각을 주는 의미깊은 책입니다... 봄..여름..가을..겨울..어느 계절에 내가 서 있던지.. 피할 수 없는 고통은 받아들이고 견디고 통과해야 할 관문이란 걸.. 나이가 들면서 더 깊게 와 닿고 깨닫게 되네요... 마침 이책을 접할때 힘든 일이 있었는데 책을 읽고 많은 위안 받았습니다.. 한번 보고 나서도 힘들때마다 자주 이 책에 손이 갈 것 같아요... |
|
책을 처음 들었을때는 폴투르니에의 얇은 책이라 짧은시간에 그의 이야기의 완결을 들을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책을 읽으면서는 아이의 성장 방법, 청년의 꿈을 이루는 법을 머릿속에 기억하려 애썼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결국 인간은 인생의 가을과 겨울을 맞게 됨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의 지금의 야망 역시 그것을 이루든 못 이루든 가을이 되면 서서히 내 손에서 떠날것이고 결국 나의 존재와 이름조차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 더 가슴 아프게 한것은 항상 인간과 하나님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한번쯤 만나보았으면 했던 폴투르니에 박사 소개란에 (1899-1986)이란 생이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묘하다. 인생을 통달한 듯한 그가 세상에 없고 더 이상 그가 21세기에 변화된 사회속에 새롭게 발견한 그의 고귀한 이야기들을 들을수 없다는 사실이, 또한 그런 사실을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여 얇게 펴낸 책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이 참 기분이 묘하게 하였다. 마치 이책은 너희들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는 지시적인 책이 아니라 나는 인생을 이렇게 살았습니다라는 폴투르니에 박사의 유언이나 죽기전의 고백같아서(아마도 마지막이 겨울이기에 그런 감정이 더했는지도 모른다.) 슬펐다. 내 인생의 목적과 동기를 살펴보았다. 나는 내가 이뤄놓은 열매만 남고 내가 사라진다면 견딜수 없이 시기나고 질투날것 같다. 목적을 이룬다는 것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요 그 열매를 맛보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랬다. 양파를 까듯 파고들어 그 핵심을 보니 그 중심에 업적을 통해 나의 가치와 존재를 증명해보이고 싶은 내가 서있었다. 그럼 내가 가지고 있어야할 태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열매가 풍성하든 작든지에 상관없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신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리라. 또한 내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드러나더라도 잠깐이며 결국 나는 이 세상에서 단 1cm의 자리조차 차지하지 못할것이기 때문이다. 참 많은 일을 한 폴 투르니에 박사에게 애도를 보내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