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불의 책장수는 르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은 정통 인문서적처럼 매우 심층적이다. 내용은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책을 불태우는 탈레반 정부에 대항해 책 즉, 아프간의 정신을 지키려는 주인공 술탄 칸의 모습을 통해 과거 민주화를 외치며 독재에 항거하던 우리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으며, 한편으론 진보적이면서 철저히 가부장적인 주인공의 모습에선 이중적인 우리사회의 남성 문화를 읽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아프간의 생활상, 전쟁과 내전에 시달리는 피폐한 국토, 철저히 자유가 구속된 여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절망적인 삶은 낯설지 않게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구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가 아니라도 진지하게 삶을 성찰하는 독자라면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아깝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또한 이 책은 저자의 생생한 체험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묘사되어 있어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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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작가가 쓴 글을 좋아한다. 십여 년 전 일본의 여성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이후로 그런 성향이 생긴 것 같다. 그 지식과 지혜의 깊이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존경한다는 말조차도 모자라게 느껴지는 그런 분이었다. <토지>를 쓰신 박경리님도 그런 분 중의 한 분이다. 내게는 책을 고를 때, 읽는 중에, 그리고 읽기를 마친 후에 한참씩 저자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와 박경리의 사진도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았었다. 그 깊은 주름을, 그 총총한 눈을, 온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민함을 들여다보면서 우러르고 존경하고 감탄하고 질문을 하였었다. 내가 도서관에서 <카불의 책장수>를 고른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사진 속의 작가는 검은 윗옷을 입고, 긴 금발을 살짝 휘날리며,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환한 불을 켜고,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너보다 훨씬 많은 일을 겪었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작가의 이름은?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흠, 좀 특이한 이름이군.) 1970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출생. (1970년?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잖아.) 페미니스트 작가인 어머니와 좌파 정치학자인 아버지를 둠. (어머니가 작가라구? 우와~ 축복받은 태생이군.) 5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함. (5개국어를 능숙하게? 정말? 진짜로 능숙하게 5개국어를? 나는 영어 하나 하는데도 어렵고 힘들고 한계가 느껴져서 죽겠는데?) 체첸공화국, 세르비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함.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빗발치고 비명과 아우성과 혼란이 주인인 전장을 누비고 다녔단 말이지? 그래, 이 여자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구나.) <카불의 책장수> 외에도 세르비아 내전을 다룬 책과 이라크 전쟁을 취재한 내용을 쓴 책이 있다. (종군기자로서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군. 상을 많이 받았다는데, 돈도 많이 벌었을까?)
작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쫓겨나고 찾아온 첫 봄 동안 카불의 책장수, 술탄 칸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지냈다. 그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부르카를 쓰고 다니고,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고, 그리고 그것을 기록해서 이제 이렇게 그녀의 이야기를 전 세계와 공유하고 있다. 그녀는 저널리스트답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객관적인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가끔은 그녀의 주관적 느낌과 판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객관적 시점을 유지하였다. 그래서 그것이 가끔은 ‘어? 이건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타리적인 기록인가? 어째 글이 좀 삭막한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유엔 산하 구호기관이나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요원들의 체험적인 수기를 제외한다면 내게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소개한 책으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모두가 힘들지만, 특히 여자가 슬픈 나라, 아프가니스탄!
208쪽과 209쪽 사이에는 소설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17장의 사진들이 들어있다. 누런 먼지 빛깔의 카불.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카불강. 부르카를 뒤집어쓰고 시장에 나온 여자들. 무참하게 파괴되고 총탄 자국들이 즐비한 폐허 상태의 시내. 여기저기 나뒹구는 탱크의 잔해들. 도처에 묻혀있는 지뢰들. ... 잘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수 만 마디의 말을 대신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말보다 더 훌륭하게 진실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사진들이 자리를 잘 못 잡았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을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마치 신문이나 계몽주의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진들 중에는 탈레반이 물러간 후, 부르카를 써야 했던 엄마, 언니들과는 달리 더 이상 온몸을 가리지 않고 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된 한 여자 아이가 -검은색 긴 옷을 입고, 머리에 숄을 두른 건 여전하지만- 노랗고 빨간 가방을 들고 거리를 걸어가는 사진이 있는데 이 가방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그 가방에는 ‘백(암?)체육관’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어느 엄마가 재활용통에 넣은 것이리라. 아이가 더 이상 들고 다니지 않겠다고 했겠지. 그 체육관을 그만 뒀거나, 낡아서 새 가방을 받았거나. 이 아프가니스탄 여자아이는 그 가방을 구호품으로 받고 드디어 자기 가방이 생겼다며 기뻐서 깡총깡총 뛰었을까? 남의 나라의 허름한 물건을 구호물자로 받아서 살아가야 하는 자기 나라의 슬픈 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받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나, 가방을 어깨에 메고 결연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이 여자아이에게 알라의 축복을!
영화를 먼저 보고 온 친구가 그 영화의 내용을 다 말해버리면 정작 내가 영화를 볼 때는 재미와 감동이 떨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독후감을 쓸 때도 가급적이면 책의 내용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내 뒤의 독자들에게서 완전한 분노와, 완전한 슬픔 또는 행복을 느낄 권리를 빼앗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 나의 현실이 너무나 힘들고 희망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카불의 책장수>를 읽어보라. 나의 게으름이나 능력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체제 때문에 나의 꿈을 가질 수도, 자유를 가질 수도 없는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아픔이 가슴 절절하게 느껴져서, 그에 비한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어느새 긍정적인 생각들이 당신의 머릿속을 꽉 채울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어쩌면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은지도 몰라'' 레일라는 생각한다. 이래야 포기하기가 쉽다. 그녀는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사회라는 진흙과 전통이라는 먼지가 만든 교착 상태에. 수백 년 된 전통에 뿌리 내린 체계 속에서, 그리고 인구의 절반을 불구로 만드는 체계 속에서 그녀는 옴짝달싹 못한다. 교육부는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다. 도저히 갈 수 없는 30분. 레일라는 무언가를 위해 투쟁하는 일에 익숙치 않다. 오히려 포기하는 일에 익숙하다. 하지만 틀림없이 어딘가에 탈출구가 있다. 그녀는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