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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이틀 동안 참았던 긴 한숨을 겨우 내지른다. 함석헌이란 사람의,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간직했던 그 사람의 일대기를 어제, 오늘 숨막히게 따라갔다. 사실 평전은 정말 읽기 힘든 책이다. 한 사람의 역사가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마치 그 사람의 혼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란 평가를 받고 있는 함석헌 선생. 1901년 20세기 시작과 함께 평안도 용천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 하의 격동, 미소 강제 점령에 의한 분단, 6.25 한국전쟁, 4.19혁명과 박정희의 독재 치하, 전두환의 신군부의 탄압과 5.18 광주민주화항쟁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렇게도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맞을 수 있는지... 그 딱한 운명과 시대의 좌절과 하나님에 대한 한없음과 씨알(민중)의 사랑을 지켜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생을 2명의 동지와 2권의 잡지로 나눌 수 있다. 김교신과 장준하, 성서조선과 사상계... 그의 씨알 사상을 완성하게 했던 많은 인물들(남강 이승훈 선생, 우찌무라, 간디, 셸리...)이 등장한다. 그 방대한 내용과 사유의 깊이를 도저히 짧은 줄글로 헤아릴 길이 없어 말줄임표로 대신할 수밖에...(그의 사상은 메모로 기록한다.)
인상적인 장면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 시대의 레지스탕스, 그 선봉에 선 함석헌 선생의 가르침과 투쟁이었다. 오산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평생을 씨알을 생각하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으로 깨우치기 위한 교육자로서의 면모가 단연 전반기 생애를 관류하고 있다. 또한 후반기 생애는 박정희 유신 독재 체제에서 모든 언론들이 쉬쉬하며 침묵으로 일관할때, 사상계를 통해 적나라하게 현 정권을 비판하며 그의 국가적 민족주의에 목숨을 내걸고 항거한다. 간디의 영향을 통해 그의 저항은 비폭력주의였으며, 저항의 대상 또한 현 정권과 지배층에 국한된 것이 아닌, 지식인과 무지한 민중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70~80년대의 풍경은 정확히 지금의 상황과 동일한 형국이다. 독재 정권은 언론을 장악하고, 반대 세력 숙청, 출판물 폐간, 집회 금지, 끝없는 감시와 미행 등을 서슴치 않는다. 함석헌 선생만 하더라도 10여 회가 넘는 옥고를 치루며, 88년 평생에 걸쳐 친구 김교신, 장준하를 잃고, 전태일을 잃었으며, 광주를 잃었다. 물론 뜻을 함께 하는 많은 동지가 있었다. 그 중 김동길 씨의 경우는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함석헌 선생의 끈끈한 제자(?)로 활동한다. 의외다. 김종필 씨는 우리가 알고 있듯, 제2의 이완용으로 불리며 기회주의자이자 실패한 정치인으로 꼽고 있다.
시대의 살인마, 전두환의 만행도 무시무시하기 이를데 없고, 김대중 씨와 김영삼 씨도 함석헌 선생과의 인연을 자랑한다. 물론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군부 세력의 집권 연장(노태우가 어부지리로 당선된 사건)을 방조한 안타까운 정치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책의 서평을 쓰는 일이 참 괴롭다. 단 이틀 만에 100여 년 격동의 한국사를 다시 읽는 기분이라... 내내 아프고 괴로울 따름이다. 2번의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되었고, 88세 그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할 때 조차도, 자신의 육신을 실험용으로 기증한 씨알 함석헌. 검색을 해보니 마침 그의 정신적 교우였던 장준하 선생의 의문의 죽음이 어제로 딱 34년이다. 함석헌 선생과 동지애를 나눴던 문익환 목사의 평전도 도서관에서 확인했다. 물론 장준하 선생도...
이제 함석헌 선생의 거룩했던 발자취를 찾아, 장준하 선생과 문익환 목사... 이 두 사람의 평전으로 옮겨갈 생각이다. 그동안 우리네 역사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고, 등한시 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고, 나 또한 그 씨알의 밀알이 되어, 생각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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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후 두고두고 사숙하고 싶은 스승을 또 한 분 만났다. 현대의 정치, 사회,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논문 같은 책 그러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현대[역사 편찬의 편의를 위한 시대의 구획으로 대개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고종, 순종시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말한다고 함]역사의 거의 모든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한 그의 일대기(1901.03.13~1989.02.04)를 통해, 쓰라린 그리고 아직도 아물지 않은 한국의 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씨알과 우리나라의 기저에 흐르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상당히 귀중한 바탕공부가 되리라 확신한다.
책을 읽는 중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국회위원 뽑아놓고 욕하지 말고, 그들을 뽑은 우리가 먼저 반성하자. 역사의식도 없고 참여의식도 없는 우리 우매한 씨알로서의 자화상을 거울에 먼저 비춰보자. 그 후에라야 우리들 씨알 가운데에서 비로소 존경할 만한 정치인이 탄생할 수 있으며, 우리의 정치와 역사는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씨알로부터 시작된다. 민주화가 이만큼이나 이루어 진 오늘날에도 우리는 우리 씨알의 권리와 자유를 소수 기득권에게 담보 잡힌 채 종모냥으로 투덜대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을 삿대질하기 전에, 그들을 비난하고 조소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자. 누가 그들에게 우리의 권리를 위임했는가? 바로 우리 아닌가! 왜 그들을 욕하는가! 왜 계속 누워서 침 뱉기만 하는가! 요즘 MB가 참 좋은 술안주라지만, 그게 어디 이번뿐인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할 것 없이 분명 지금과 다른 게 없었다. 그것이 우리 한국인의 부정적 근성이다. '남 탓하기', '남 욕하기',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파하기', '근시안적 경쟁의식' 등등.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부정적인 민족성의 실마리를 한국 현대사에 찾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은 쪽수를 더해 갈수록 강화된다.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함석헌 선생님의 사상에 역사의식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신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지식인'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책을 덮으니 다음 단락이 잔상처럼 남는다. "씨알을 피라밋의 밑바닥, 정신을 그 꼭대기라고 한다면, 국가는 몸통 전체입니다. 깊은 뜻으로 한다면 밑바닥보다 꼭대기가 더 중요합니다.(중략) 그런데 이 피라밋 그림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현실적인 입장에서는 보통대로 놓습니다. 그때는 국가의 주인인 씨알은 넓게 깔려 있고, 권력은 높아질수록 약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점이 되었다가 없는 지경에 가서 정신계에 통하게 됩니다. 반대로 정신적인 입장에서는 거꾸로 놓아 밑이 한 점이고 꼭대기가 넓어야 합니다. 거기서는 정신이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터가 하늘에 가 있고, 그 국가에서는 국민을 수로 보지 않기 때문에 한 점으로 표시됩니다. 하나의 씨알 속에서 나라 전체를 보기 때문입니다. 물질계에서는 밑이 넓은 것이 안전하지만 정신에서 보면 현실에 닿는 면이 점뿐입니다." |
| 우리 민족은 사실 얼마나 건망증이 심한 족속인가. 요즘 20대 이전 세대들은 "예전에 우리나라가 정말 그렇게(동남亞나 라틴아메리카 같이) 못살았었나요?" 진지하게 묻는다고 한다. 이제 조금만 세월 이 더 지나면 그들은 또한 이렇게 물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참''을 참이라 못하고, ''거짓''을 거짓이라 바른대로 말할 수 없었던, 야만의 시대·폭력의 시대가 진짜로 있었던가요?" 라고. 우리 민족 고난의 역사 20세기를 온몸으로 살다간 씨 함석헌, 우리는 이분을 쉬 잊을 수 없고, (민족이 언젠가 바로 서려면) 끝내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함석헌은 식민지 시대 일제로부터 탄압받고 요주의 인물로 감시받았지만 독립투사라고 하기에는 살짝 옆으로 비켜 있었고, 월남하여 40년 가까이 독재시대에 살면서 자의반 타의반 민주화 세력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나 단순히 민주화 인사나 정치인으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하나님을 믿고 끝내 신앙인으로서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으되, 말년에 노장(老莊)사상에 심취한 범신론적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다. 그는 암흑시대의 유일한 정론(正論) "씨의 소리"를 목숨을 걸고 지킨 언론인이자, 민족 교육의 요람 오산학교의 영원한 스승인 교육자이면서, 간디의 ''사티아그라하(Satyāgraha:진리의 힘)'' 정신을 온전하게 계승하여 실천한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이 책은 가장 근자에 나온 함석헌의 평전이다. 저자의 의도는 책 서두의 화려한 추천사에서도 밝혀져 있듯이, 요동치는 20세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석헌의 인간적인 삶과 그 광대무변한 사상을 동시에 아우르는 완벽한 평전을 꿈꾸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상당히 졸속스럽다는 느낌이고, 삶과 사상 양쪽 다 핵심을 제대로 짚어 내지 못한 것 같다. 참조한 1차 사료가 부실한 것인가, 함석헌의 사상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우찌무라(內村)·이승훈·김교신·유영모·장준하와의 인간적 교류를 다루는 부분은 상당히 피상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스승인 유영모가 ''함석헌은 자기 제자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자신이 먼저 사용한 ''씨''이란 용어를 허락도 없이 썼다고 혼내주었다''(533~534쪽)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토록 극진히 아끼던 제자에 대한 태도가 왜 그렇게 돌변하였는지 전후관계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다. 그렇다고 함석헌의 독특한 사상에 대한 해설이 충실한 것도 못된다. 중언부언(重言復言) 말만 많았지, 명쾌하게 전체를 꿰뚫는 시원스런 서술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평전이 평전다우려면, 먼저 ''인간''의 모습을 온전히 그려내야 한다. 평전의 대상이 되는 인물에 존경심을 갖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대상을 철저하게 객관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단 사적 영익인 가족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중대한 결함이고, 1960년 즈음에 불거졌던 소위 ''로맨스'' 문제를 살짝 거론만 하고 넘어간 부분 등도 납득하기 어렵다. 숭배하는 대상에 대한 신성(神性)이 훼손되는 것은 우상(偶像)이 쓰러지는 이상의 아픔이겠지만, 그것이 (경전이 아니라) 평전이라면 남김없이 까발려야 한다. 판단은 오직 독자의 몫일 뿐이다. 또한 저자의 참을 수 없이 늘어지는 문체(文體)는 이 방대한 분량의 평전을 읽어나가는 것을 고통스럽게 만든 무시할 수 없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함석헌의 문장을 많이 인용했기 때문인가, 저자가 존경하는 대상 인물의 문체에 상당히 오염되어 있는 것 같다. 물론 약간의 고어(古語)체와 익숙치 않은 순우리말을 즐겨 사용하는 함석헌의 문장이 녹록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명쾌하기는 하다. 독자들이 그의 진의를 놓칠 만한 아리송한 문장을 구사할 까닭이 없었다. 이치석이란 분은 프랑스에서 학위까지 받은 양반인데, 솔직히 한국어 구문법에도 맞지 않는 문장이 버젓이 사용되기도 한다(책 자체의 脫·誤字도 보통 이상이다). 그렇지만 사실 척박한 우리 문단의 현실에 비추어, 이한 평전이라도 구경할 수 있음은 오히려 다행스런 일인 것이다. 함석헌의 전면모를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그의 자전적 기록과 놀라운 사상이 온전히 담겨있는 방대한 전집을 비롯하여 수많은 연구서들을 쉽사리 구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평전은 (완결판은 못된다 하더라도) 하나의 유용한 입문서로서, 그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는 초심자들이 안심하고 접근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저작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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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이런 문체로는 짜증나서 읽을 수가 없다.
이 글도 5장을 읽는 도중에 쓴다.
이후 진행 될 내용은 모르지만, 문체가 어디 가겠는가.
아무리 작가의 원글이 중요하다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이번 초판은 이미 찍힌걸 어찌 할 수 없지만, 다음 판은 작가와 상의해
독자를 배려 했으면한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면 몇장 정도 읽게 되고, 이래 저래 거부 반응이 있으면 선택하지않았다.
이것이 너무 편중된 책 읽기가 되는 것 같아 관심있는 책을 인터넷에서 구매하고 있다.
인터넷 구매로 책을 몇장 읽지 않고 덮는 책 과소비 현상이 조금 있다.
그래도 이 책을 보기전까지는 서점에서 책을 둘러 보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은 후회가된다. 내가 서점에서 이 책 2장만 읽었어도, 이 책은 내 책상 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씨알 함석헌 고난의 인생을 독자에게 체험토록한 설정이면 200% 이상 성공이다.
외국어를 번역기로 한번 돌려나온 듯한 글은 함석헌이 살아온 시대처럼 어지럽고, 또한 함석헌에게 주어진 시대의 사명 처럼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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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씨알 씨알해서...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함석헌은 만들어진 영웅에 가까운 인물인 듯하다. 이상하게도 함석헌에 대한 글은 대부분 남성이 쓴다. 그것도 특정한? 사람들이. 그리고 그 사람들은 함석헌의 최대 치부?를 최대한 가리려고만 한다. 일종의 워터게이트 사건의 위증자들 같다는 느낌일까?
다른 리뷰에서도 함석헌의 "소위 로맨스"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느다고 불평이 있었는데 사실 그 사건은 함석헌이 56세때 16세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이었다.
잠시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단둘이 있게 되자 함석헌 선생?은 제 욕심을 차린 것이다. 얼마나 한다고 정신이 없었는지 그 성폭행을 목격한 사람이 6명이나 되었는데 (불륜이었다면 왜 하필 제자들이 성관계를 목격하도록 했을까? 그래서 성폭행이란 말이 나온다.) 그 제자? 6명이 공모해서 그 사건을 덮기?로 한 거다.
결국 다짜고짜 그 16살 소녀는 부모와 떨어져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고 (유학/생활 비용을 함석헌 측에서 다 대 주기로 한 듯...) 그 6명은 함석헌이 25살 서울대 대학원생과 불륜이 났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당연히 대부분의 평전이나 어록집에는 불륜이야기도 안 나오니 실재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은 언급도 안 된다.
(그 16살짜리 당사자가 아직 생존해 있는데 그 사건을 말을 안 한다. 생활비를 지금껏 대주니까 혹시 생활비 끊을까봐 그런 것인지 가해자가 죽기 전에 용서를 구해와 화해를 이룬 탓인지 모르겠다.)
물론 그 사건 이후로 함 선생은 아주 겸손?해 지셨다.
문제는 그 당시야 군부의 핍박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까지도 그 사건을 밝히지 않는 씨알의 제자?들이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이 책 내용에 따르면 씨알 같은 성인?/영웅?이 따로 없는데 왜 한국사회에서 박정희 신드롬은 있어도 씨알에는 그닥 시큰둥인지에 대해 씨알의 제자들은 좀 생각해 봐야한다.
공과를 다 따질 수 있어야 영웅이 되지 공만 있고 과는 없다고 주장하면 누가 그 말을 믿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