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은 극히 단순하다. 왕가위 감독의 평처럼 이 책이 그려내고 있는 스토리 자체는 이렇게 평범한가 싶을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 두 사람의 인생사와 사랑의 여정은 당대의 사회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독법 자체는 매우 혼란스럽다. 시간의 역행, 갑작스런 내러티브 구조의 변화, 행간을 마음대로 주물러도 좋다는 패러디적 장치. 그리고 각 장의 서두에 펼쳐지는 헐리우드 영화의 시나리오까지. 마치 모든 것이 형식주의에 강하게 도전하는 복잡계 이론의 소설적 구현이라도 되는 듯하다.
시퀀스의 서사적 흐름에 길들여져 있는 나같은 독자는 각 장의 앞에서 발걸음을 잃은 채 잠시 시선을 잃기도 한다. 여기서 다시 왕가위 감독의 말을 빌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주제는 종종 형식이 되고, 형식은 주제가 되기도 한다'는 그의 감상. 오죽했으면 모티브를 얻어 영화까지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자연스레 이와 같은 파괴미 앞에서 고개를 주억거린다.
포퓰리즘의 한복판에 있던 아르헨티나의 근현대사와 이후의 작품에서도 끊임없이 구현하고자 했던 사랑의 형태, 이 두 가지 문제의식이 마누엘 푸익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뚜렷한 주제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의 비서사적 구조는 이 주제를 한편으론 베일로 가리우는 듯 하지만 다른 한 쪽 구석에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구현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
|
문자가 영상이 될 수 있을까? 영상이 문자가 될 수 있을까? 마누엘 푸익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기존 소설이 넘어서지 못했던 경계를 우습게 넘어버린다. '소설의 영상화'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 소설은 플롯의 '혁명'과도 같은 독창성 때문에 시종일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장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만드는, 그냥 예술, 장르적 일탈을 이룬 예술이다. 이 작품은 1997년 왕가위 감독에 의해 <해피투게더>란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지만, 실제로 소설 내용은 영화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왕가위는 <부에노스아에레스 어페어>의 형식 기법에 영향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소설을 읽어보면 왕가위가 <해피투게더> 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도 마누엘 푸익 영향을 받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중경상림>에서 양조위가 비누와 젖은 수건과 대화하는 부분은 소설 속 여주인공인 글라디스가 쓰레기들과 소통하는 것(대화형식)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부분을 차용한 것이다(글라디스는 미술가다). 영화보다 더 자극적인 이미지가 흘러다니는 이 소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대사나 인물들의 의식 묘사, 풍경(바라보여지는)묘사의 세련됨 때문에 정신이 얼얼해진다. 인물들은 누워서, 걸으면서, 섹스를 하면서, 대화를 하면서, 행동을 천천히 바꿔갈 때마다 상상에 빠진다. 독자는 '인물들의 상상'을 같이 '상상'하면서, 인물들의 예민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소설 속에서 특히 아름답다고 생각한 묘사가 있다. "고통이 멈추고 커져가는 쾌감을 느끼면서 글라디스가 경험한 느낌"의 일부분이다. "농부는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온 힘을 다해 쟁기를 땅에 꽂는다. 그러자 땅이 열리고 쟁기는 앞으로 나아간다. 아, 훌륭한 남자! 당신은 땀으로 우리 조국의 미래를 경작합니다...... 당신이 방금 간 이랑에 던질 씨앗이 발아하면, 거기서 연약한 농작물이 자랄 것이고, 나중에 그것은 이삭을 맺어 온 인류의 음식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쟁기로 밭을 갈면서,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땅인 나는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신음 소리를 내지 않은 채 피를 흘립니다. 그리고 내 목숨을 바쳐 보리나 호밀, 밀, 옥수수가 됩니다. 아마도 당신의 겸손하고 고결한 행위 속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할 겁니다. 당신은 사랑과 우정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겁니다! 농부인 당신에게 하느님의 가호가 있길! 당신은 강인한 힘으로 우리 조국을 위해다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의식이 혼미한 글라디스가 겁탈하듯이 섹스를 강행(?)하는 레오를 받아들이면서, "고통이 멈추고 커져가는 쾌감을 느끼면서" 경험한 속마음의 독백이다. 푸익은 섹스묘사를 이런 기법으로 표현한 거다! 이때의 글라디스는 과량의 수면제를 먹었기 때문에 반은 무의식 상태다. 혼미한 정신으로 머릿속으로 맛있는 상상을 흘릴 때, 독자는 얼이 빠진 상태로 뜨뜻한 상상의 이미지를 받아 마시게 된다. 어떻게 저런 묘사가 가능할까? "땅인 나는 상처를 입습니다." 이 부분에서 나는 너무 놀라 크게 상처받는다. 복잡한 사건도 없는데, 플롯만으로 이야기를 풍요롭게 전개시키는 푸익의 능력은 <거미여인의 키스>, <조그만 입술>에서도 볼 수 있다. 푸익의 다른 소설들도 빨리 번역되어 나오길 기다려 본다. 읽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