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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아이 유디트, 행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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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몸을 움츠리며, 두려움에 떨며 소리 없이 우는 아이 유디트. 착한 아이, 가여운 아이 유디트.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치 내가 유디트가 된 듯, 숨죽이며 두려움에 떨었다. 유디트는 누가 봐도 착한 아이다. 작은 체구에 수줍음 많은 착한 소녀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엄마에게 그토록 많은 학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책 속 유디트는 굉장히 사랑스럽고 예뻐서 누구에게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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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몸을 움츠리며, 두려움에 떨며 소리 없이 우는 아이 유디트. 착한 아이, 가여운 아이 유디트.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치 내가 유디트가 된 듯, 숨죽이며 두려움에 떨었다. 유디트는 누가 봐도 착한 아이다. 작은 체구에 수줍음 많은 착한 소녀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엄마에게 그토록 많은 학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책 속 유디트는 굉장히 사랑스럽고 예뻐서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것 같은 아이다. 그럼에도 부모의 학대로 인해 그 사랑스러움을 꽃피지 못 하는 아이다. 그 아름다움은 친구 미하엘을 통해 서서히 나타난다. 미하엘. 이 책 '두친구 이야기' 제목 그대로처럼 이 책은 두 친구, 미하엘과 유디트의 이야기이다. 상처가 많은 아이 유디트가 미하엘로 인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수동적인 모습에서 능동적으로 변하는 그러한 이야기이다. 미하엘 역시 같은 아픔을 겪었다. 미하엘은 부모의 신체적 학대는 아니지만 정신적 학대를 받았다. 정신적 학대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신체적 학대만큼이나 무서운 게 정신적 학대이다. 정신적 학대를 받은 아이들의 표본이 그러하듯 미하엘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약하게 자랐다. 소중한 친구 스테피를 만나면서 그러한 자신을 극복한다. 그리고 그 소중한 우정을 유디트에게 전해준다. 물론 유디트의 엄마에게도 이유가 있다. 유디트의 엄마 역시 학대를 받았고, 동생을 죽였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 그 동생을 똑같이 닮은 유디트를 보니 당연히 그게 상처가 되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게 폭력으로, 학대로 이루어지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아이는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일차적인 존재는 부모다. 그런 부모의 기능을 유디트의 엄마는 전혀 수용하지 못 하고 있다. 다행히 유디트는 자신을 사랑하는 이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미하엘과 선생님이 있다. 모두 유디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존재다. 이 책엔 유디트였지만, 전세계적으로 유디트 같은 아이는 무척 많을 것이다. 이 책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이런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주어야 한다. 내 주위에도 이런 친구들이 있을 수 있고, 내가 이러한 학대를 받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유디트는 자신의 이해자가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그러한 이해자 조차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사랑받아야한다. 이 책을 보는 내내 슬펐다. 유디트가 안타까웠고 책을 읽는내내 속상했다. 무참히 짓밟힌 아이의 권리가 안타까웠다. 마지막 유디트는 수동적인 성격에서 능동적으로 변한다. 마지막이 조금 안타까운 게 유디트가 그 후로 어떻게 됐고, 유디트의 엄마는 어떠한 조치에 취해졌는지 이러한 점들이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꽤 좋은 책이었다. 아이들의 학대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했고, 내가 아이들을 보호해야겠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청소년 도서의 좋은 점이 그런 것 같다. 무언가 느끼고 의미를 깨닫는 것. 유디트가 미하엘을 만났듯이 전세계의 학대 받는 아이들도 진정한 자신의 편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유디트는 정말 가엽고 불쌍한 아이였지만 미하엘을 만나 행복을 찾았듯이 모두가 그러했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집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나와서 아래층 화장실로 갔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워서는 눈물이 마른 눈으로 어둠을 뚫어지게 보았다. "나는 유디트야." 유디트가 속삭였다. "유디트." 유디트는 자기 이름을 까먹지 않으려는 듯 부르고 또 불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2 2005.12.17.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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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두친구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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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신청 할 때만 해도 두친구의 아름다운 우정쯤으로만 여겼었는데... 물론 가정 학대로 인한 외로움을 친구와의 우정으로 치유한다는 등등의 문구를 보긴 했지만... 책 표지를 보면 자전거와 함께 여자애와 남자애가 다정히 걸어 가는 모습이 나온다. 왠지 너무나 평화스러운 모습... 하지만 이 책 처음부분을 읽을때부터 아니 소제목부터 심상치가 않다. ' 나쁜 예감'의 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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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신청 할 때만 해도 두친구의 아름다운 우정쯤으로만 여겼었는데... 물론 가정 학대로 인한 외로움을 친구와의 우정으로 치유한다는 등등의 문구를 보긴 했지만... 책 표지를 보면 자전거와 함께 여자애와 남자애가 다정히 걸어 가는 모습이 나온다. 왠지 너무나 평화스러운 모습... 하지만 이 책 처음부분을 읽을때부터 아니 소제목부터 심상치가 않다. ' 나쁜 예감'의 소제목처럼 주인공 유디트는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고 어김없이 나쁜 예감은 적중한다. 이유도 모른체 무방비 상태에서 엄마에게 폭력을 당한다. 이런 일들이 책장을 넘길때 마다 계속해서 나온다. 내가 유디트가 되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엄마를 만난다는 것은 심히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TV든 영화든 책이든 갈등이 증폭되고 서로 오해하고 이런 폭력이 난무하는 (?) 책들은 잘 안본다. 너무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워낙 상대방으로의 감정이입이 잘 되는 편이라... 하지만 이 책은 한번 읽으면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읽는 내내 유디트의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랬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이 얼른 눈치 채기를... 미하엘과 그의 이모, 그리고 `베크만 선생님과 소피까지 누구든 알기를 바랬지만... 결국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층집 할머니에 의해서 밝혀지는 유디트의 엄청난 이야기 왠지 씁쓸하기 짝이 없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유디트를 도와 주었다면 하는 생각에 어른들의 이기적인 사고방식과 이웃의 일에 무관심한 어른들 내 자신부터가 부끄럽기 그지 없다. 유디트가 엄마의 불우한 어린 시절때문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다면 그것도 육체적으로 엄청난 가해를 받는다면 미하엘은 권위적인 아버지의 무관심과 말때문에 정신적인 상처를 입고 그것이 신체적인 현상으로 난독증이 나타난다. 아이들은 어떠한 무기도 가지지 않은 힘 없는 존재이다. 독립할 수 없기에 누군가 돌봐 줘야 하는 존재이기에 폭력 엄마가 싫더라도 권위적인 아빠가 싫더라도 함께 살아야 하고 그 고통을 모두 감내해야 한다. 자기 부모이기에 거짓말까지 하면서 엄마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지 않는 유디트의 모습은 정말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이란 말인가? 폭력은 세습된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을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든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이 가족 그것도 자기 부모에게서 이루어진다고 하니 이 책이 소설로서가 아니라 현실에 있는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더욱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생을 통해 유년기의 기억들이 평생을 간다고 한다. 그만큼 유년기에 어떻게 보냈는냐가 중요하다는 말일테다. 어찌보면 유디트의 엄마도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무관심과 폭력이 그대로 유디트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사랑스럽고 착한 유디트를 그렇게 괴롭히는 일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다. 미하엘을 보면서 신체적인 폭력 못지 않게 정신적인 폭력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지 새삼 느끼며 내가 우리 아이에게 생각없이 내뱉었던 말이 없나 돌아보게 된다.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말이나 행동들이 어쩜 그 아이의 일생을 두고 영향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미하엘은 헬렌 아줌마의 도움으로 변한 아빠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스럽다. 유디트 곁에 미하엘이 없었다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고 끔찍하기까지 하다. 누군가 내가 힘들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삶은 훨신 윤택 해 질것이다. 유디트에겐 그나마 미하엘이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자기 집에서 나오는 유디트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 유디트에겐 좀 더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을것이다. 그녀의 곁에 미하엘이 있으므로... 다시한번 가정내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리고 우리들의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독이나 약이 될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내 자신이 부모로서 아니 더불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에게도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연말 즈음에는 더욱이.... 그리고 내 삶에서 내가 힘들고 어려울때 말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전해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너무 너무 고맙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도 그런 힘을 주는 친구이자 가족이어야 할텐데.... 간절하게 '나는 유디트야, 유디트'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도 어디선가 또 다른 유디트와 미하엘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
YES마니아 : 골드 o****o 2005.12.12.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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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로 가는 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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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야, 나 수학책 좀 빌려줘. 수업 시간에 필기 못했거든." "안 돼, 나 공부해야 돼."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는 학생에게 시험 볼 준비는 잘 되고 있느냐고 물었다가 들은 상황입니다. 반 아이들이 대개 다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고. 그깟 필기가 많아 봤자 얼마나 오래 책을 빌린다고 저럴까요? 아이들이 지나치게 각박하게 생활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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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야, 나 수학책 좀 빌려줘. 수업 시간에 필기 못했거든." "안 돼, 나 공부해야 돼."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는 학생에게 시험 볼 준비는 잘 되고 있느냐고 물었다가 들은 상황입니다. 반 아이들이 대개 다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고. 그깟 필기가 많아 봤자 얼마나 오래 책을 빌린다고 저럴까요? 아이들이 지나치게 각박하게 생활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는 공부 잘 하지 않으면 무시당한다고 말합니다. 이 뿐 아니라 학교를 벗어나 사회를 보아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계산적으로 사람을 사귀고 있는 듯합니다.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 부, 명성, 나에게 어떠어떠한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 등등 '친구'라고 칭하기는 하지만 서로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서로의 처지가 좋을 때에만 찾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인생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이 책의 두 주인공 유디트와 미하엘을 만나면 누구나 쉽사리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주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여자 주인공 유디트의 이야기입니다. 유디트는 엄마가 어릴 적 이혼을 해서 아빠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심하게 학대당하며 자라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녀의 세상은 오로지 그녀의 엄마, 그리고 두 살박이 남동생 데니스 뿐으로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엄마 눈치 보며 기분 맞추기, 남동생 보살피기, 집안일 하기가 그녀의 주된 일과이며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심하기 구타당하는 것이 자주 여기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러던 그녀의 일상이 같은 반 친구 미하엘을 만나면서 달라집니다. 두 번째 큰 줄기는 남자 주인공인 미하엘의 이야기입니다. 미하엘은 유디트와 반대로 어릴 적 엄마를 여의고 아빠와 단 둘이 살았습니다. 그의 아빠는 사회적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였는데 하나 뿐인 자식에게 매우 엄격하게 대했습니다. 아마도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홀로 자식을 키울 때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 당하지 않도록 엄격하게 키웠던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하엘은 인간적인 애정을 느낄 수 없는 아빠를 떠나 고모네 식구들과 함께 살아가던 도중 유디트를 만나고 가까워집니다. 미하엘의 아빠는 어떠한 계기를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변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등장인물들의 전반적인 관계입니다. 주인공들의 우정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들이 소소한 일들을 겪으며 우정을 키워나가는 과정, 미하엘의 고모네 식구들의 밝고 따뜻한 분위기와 애정, 상냥한 리아 이모와 엄마의 어두운 과거, 엄마의 새 애인인 니콜, 동생 데니스의 탁아소 직원인 소피의 배려,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담임 선생님인 베크만씨의 관심 등등. 이러한 것들이 각각 에피소드가 될 뻔한 유디트와 미하엘의 사정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하나하나의 소재들이 모두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들로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아동 학대와 사회적 관심이 가장 부각됩니다. 유디트의 경우 체념하는 쪽을 택합니다. 진작 말하지 않은 이유는 엄마가 항상 때리는 것만은 아닌 데다 그게 정상인 줄 알았기 때문이고, 엄마가 때리는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엄마가 곧 폭발한다는 짐작에 지나치게 조심하다보면 더 초조해져서 일을 그르치고 만다고 말합니다. "널 때리는 엄마가 싫지 않아?" "나는 나를 더 싫어하는 것 같아. 왜냐하면 너무 겁을 먹거든. 그냥 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무서워." 아무리 똑똑하고 야무지다고 하여도 어린 아이는 어른의 폭력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가정에서 학대 당하는 많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무차별적인 폭력을 고스란히 당하지만 청소년기에 이르러 저항을 하고 가출을 한다든지 패륜을 저지른다든지 탈선의 길을 걷고는 합니다. 인성의 중요한 형성 시기는 가소성이 풍부한 유아기 또는 아동기라서 이러한 폭력을 증오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모방하여 똑같이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가 되기도 합니다. 엄마의 과거가 잠시 소개되어서 폭력의 원인을 밝히고 있지만 이유야 어떻든 엄마의 습관적인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정당화되어서도 안 됩니다. 아마도 유디트가 자신의 온 세상이었던 가족을 버렸을 때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미하엘과 그의 따뜻한 가족이라는 안식처가 없었다면 이러한 다수의 전례를 답습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줄곧 나라면 어떻게 도울 수 있었을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이웃이었더라면 윗 집에 큰 일이 있나보다고 생각만 하거나 혹은 아이가 맞는 것 같다고 추정할지라도 할아버지와 같이 남의 일이니까 라며 무심히 넘겨버렸을 것 같습니다. 내가 담임 선생님이었다면 베크만 씨와 같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는 보지만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더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우리를 빨아들이는 원동력은 누군가가 비겁한 나를 대신해 가녀린 유디트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어주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데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인상깊은구절]
내 코알라가...... 내 코알라가 죽었어......
b****4 2005.12.1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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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내밀지 못한 손을 다시금 상기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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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위 개나리가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던 4월의 어느 날, 그 날 만큼 교문 밖을 나서기가 싫었던 적이 없었다. 선생님의 지시로 같은 반 친구 집에 가야했는데 그 아이가 우리 반아이들 모두가 같이 있기를 꺼려하는 그런 아이였기 때문이다. 5학년에 올라와 그 아이를 처음 보았던 건 새 학기를 시작하고도 보름 정도 지나서였다. 내내 비어있던 그 자리 때문에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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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장 위 개나리가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던 4월의 어느 날, 그 날 만큼 교문 밖을 나서기가 싫었던 적이 없었다. 선생님의 지시로 같은 반 친구 집에 가야했는데 그 아이가 우리 반아이들 모두가 같이 있기를 꺼려하는 그런 아이였기 때문이다. 5학년에 올라와 그 아이를 처음 보았던 건 새 학기를 시작하고도 보름 정도 지나서였다. 내내 비어있던 그 자리 때문에 우리는 그 의자의 주인공이 안 그래도 궁금했던 참이었는데, 어느 날 떡하니 나타난 그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 모두는 눈만 둥그렇게 뜬 채 할 말을 잃고 있었다. 모두 기가 막혔던 것이다. 세수를 하기는 하는 걸까 싶게 얼굴은 더러웠고 머리는 까치집으로 가득한데다 낡을 대로 낡은 옷마저 추레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를 비롯하여 그 때 우리 반 아이들의 마음은 모두 한결 같았다. 제발 저 아이가 자기 가까이로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난 그 아이의 집으로 가야했다. 공부가 뒤쳐진 그 아이를 상담한 선생님이 그 아이가 아직 한글을 제대로 못 깨우쳤다는 걸 알고는 반장인 내게 일주일에 두 번 방과 후 그 아이 집으로 가서 한글을 가르쳐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 날 만큼 반장이 된 게 후회스러운 적은 없었다. 그 아이의 집은 학교 후문 쪽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었다. 우리 학교는 산등성이에 비스듬히 걸쳐 있었는데 가난한 산동네가 바로 옆쪽에 있었다. 선생님이 집을 가르쳐주었을 때 나는 그 집이 어디인 줄 금방 알 수 있었다. 너무나 낡고 집세가 아주 싸서 뜨내기들이 잠깐 살다가 가기로 유명한데다 골목에서 조금만 아이들이 소란스러워도 이내 연탄집게를 들고 나오시던 심술궂은 할머니가 주인인 것으로도 유명한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 낡디 낡은 집 뒷방에 그 아이가 아버지와 단 둘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 집 대문도 들어가기 싫었고 하물며 그 아이 집 방문은 더욱 열기가 싫었다. 연탄 그을음인지 여기저기 온갖 더러운 검댕이들이 거대한 곰팡이처럼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안에서 그 아이와 함께 오래도록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반장이고 선생님의 부탁이니 결국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잡기 싫은 문손잡이를 그래도 억지로 잡고 열었다. 하지만 방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고 흔들리는 문소리 때문인지 안에서 “누구세요?”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인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는 아이들의 삶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에 대한 작품이나 기록 등을 찾던 중에 누군가의 추천으로 이 소설 네덜란드 태생이라는 작가 안테 드브리스의 ‘두 친구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엄마로부터 지속적으로 신체적 학대를 당하는 여주인공 유디트와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로부터 고통을 받으며 살다가 이모집으로 와서야 비로소 삶다운 삶은 찾은 남자 주인공 미하엘이 바로 그 두 친구들이다. 바로 그 미하엘이 오래도록 학교에 결석한 유디트를 찾아 처음으로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소설에 나오는데 나는 그 장면을 읽으며 문득 그 날 그 아이 집 앞에 서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닫힌 문 앞에서 실망하던 미하엘의 모습이 그 날 그 방문을 잡고 서 있는 나와 그대로 겹쳐졌던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 방안에 있던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내내 내 마음 어딘가에서 이렇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아이 역시도 유디트처럼 내내 홀로 버려진 아이였다고...


 

  그 날 처음 그 방안에서 그 아이를 만났을 때 내가 똑똑히 느낀 건 그 방 전체가 마치 그 아이를 내리누르고 있는 듯 곧 쓰러질 만큼 아주 힘겹게 그 아이가 버티고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구부정한 자세로 고개를 약간 위로 들며 인사를 했지만 표정엔 나를 정말 반기고 있으며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렇게 자기에게 오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것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내게 그런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내게 들어온 것은 그 아이를 둘러싼 방 전체의 모습이 그 아이랑 똑같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저분하다는 것이었다. 두 달 정도 그 아이 집에 다녔다. 그 아이는 내게 처음 만났을 때 보였던 그 표정으로 늘 나를 맞아주었다. 그지없이 반가우면서도 미안한. 그렇게 내가 불편하지 않을까 눈치를 살폈고 뭔가 먹을 것을 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런 태도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단 한 번도 그 아이에게 마음을 연 적이 없었다. 더러운 이불이 깔린 그 방으로 들어가는 건 여전히 싫었고 내어주는 과자 같은 것도 손대기 싫었다. 선생님 지시로 할 수 없이 여기 와서 가르쳐준다는 티를 팍팍 내었고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정해진 진도만 나갔다. 그저 빨리 끝내고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아이가 제대로 알아듣는지 하는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선생님이 내게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렇게 별다른 작별의 시간도 없이 그 아이와의 만남은 갑작스럽게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제 가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이 개운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왠지 마음이 무겁고 그 아이가 내게 늘 보여주던 그 표정만 계속 떠올랐다. 불편했다. 그 한결같던 표정이 꼭 나를 비난하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나를. 뭔가 따스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지 않은 나를.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아이였는데도, 바로 코앞에서 그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뻔히 보았는데도, 난 그 아이가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반 친구였는데도 내가 내내 보여주었던 것은 말로 꺼내지 않았다 뿐이지 ‘너 같은 건 정말 싫어. 가까이 오지 마. 친하게 굴려고 하지 마.’라는 냉랭한 표정뿐이었다고. 그 아이가 그렇게 떠나고 일주일쯤 지나서 나도 모르게 그 아이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늘 잡기 싫었던 그 방문 손잡이가 그 날만큼은 왜 그렇게 쉽게 잡히던지. 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검댕이가 덕지덕지 묻은 문은 그대로인데 조금만 잡아당겨도 이내 안에서 활짝 열리던 그 문은 이제 날 받아들이기를 단단한 침묵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그 문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울었다.

 


  살면서 자신이 정말 나쁜 놈이란 걸 알 때가 있다고 한다면 그 날이 내겐 그랬다. 그 문 앞에서 울면서 내가 정말 나쁜 놈이란 걸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그 일은 내게 상처가 되었다. 한 번도 위로해주지 못한 입. 한 번도 웃음지어주지 못한 얼굴. 단 한 번도 인사하지 않았던 손. 그 모두가 오래도록 보기 싫을 정도로 크나 큰 상처가. 아마 그 때 부터였으리라. 드라마를 보던 영화를 보던 어른들에게 버려지거나 학대받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아프고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안달하게 된 것이. 바로 그래서 지금 이 책, 안케 드브리스의 ‘두 친구 이야기’도 만나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을 만나게 된 것도 다 그 아이 덕분이다. 그 아이와의 일이 아니었으면 난 아이들의 고통에 둔감한 무정한 어른이 되었을 테고 이런 소설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갔을 게 분명할 테니까. 그렇게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또한 유디트처럼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소설에서 많은 어른들이 학대받는 유디트를 그렇게 방치했듯 나 역시 마냥 그런 방관자로서 살아갔을 것이다.


  친엄마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면서도 남들이 알아챌까 두려워 스스로 자꾸만 그것을 숨기려드는 유디트는 냉랭한 내 표정 앞에서 늘 미안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그 아이와 닮았다. 그래서 아프다. 그 마음이 손에 잡힐 듯 잘 알기에 더욱 아프다. 유디트가 그러는 건 그 일을 누군가 알게 되어 친엄마와 헤어질까 봐 그런 게 아니라 누군가가 알게 되었을 때 엄마로부터 더 가혹한 일을 당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엄마로 부터의 극심한 공포감이 스스로 그 모든 유디트 몸에 새겨진 학대의 증거들을 감추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아이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혹시나 싫은 내색이라도 하면 그나마 유일하게 찾아오는 반 친구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살갑게 날 대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게 약한 그들이기에 홀로라서 더욱 더 약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기에 언제나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늘 스스로 자신을 가두며 살아야하는 그들의 마음이 내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 표정의 변화를 계속 살피던 그 아이의 존재와 겹쳐지며 더욱 더 내 마음을 조여온다.
 
  내내 물 밖으로 밀려난 물고기처럼 질식할 것 같던 답답함 가운데 읽어나가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작가 안케 드브리스는 주인공에게 유디트라는 이름을 준 것일까 하는 의문이. 유디트는 우리나라의 논개처럼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 적장의 목을 스스로 베었던 강한 여성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의 이름이다.
언제나 두려움에 떠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아이의 이름으론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미하엘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강압적인 아버지로부터 조금도 기를 펴지 못하고 살던 아이와 미하엘이라는 루시퍼와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강한 대천사의 이름도 역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도대체 왜 작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강한 이름을 부여했던 것일까? 그것은 혹시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그들은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한 존재들이고 얼마든지 스스로의 힘으로도 자신을 덮고 있는 고통의 어둠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을까? 사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유디트는 미하엘이 자신에게 선물한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코알라 인형을 엄마가 칼로 무참하게 난도질하는 걸 보고서 그제서야 엄마를 떠나게 된다. 이것은 언뜻 여기에 맞아 보이지만 그래도 유디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미하엘이 끊임없이 내민 우정의 손길 덕분에 가능했다는 걸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늘 미하엘과 함께 그의 이모 집으로 찾아갈 때 마다 그 가족들이 언제나 자기 가족처럼 환영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역시도. 거기서 유디트는 얼마든지 다른 행복한 삶이 가능함을 보았고 그 환대를 통해 자신이 얼마든지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란 걸 깨달았기 때문에 결국은 스스로의 의지로 엄마를 떠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건 미하엘 역시도 마찬가지다. 미하엘도 자신을 위해 아버지와 맞서 네덜란드로 데려와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해주었던 이모네 가족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에서 신음하며 살았을 것이다. 결국 여기서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건 아무리 유디트나 미하엘 같은 이름을 통해 작가가 의도한 바 그대로 강인한 힘을 그 내부에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해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고통의 굴레를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새삼 코알라 인형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문득 앞부분에서 미하엘이 아버지로부터 결정적으로 단절되는 장면에서도 역시 곰인형이 등장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렇게 인형들이 반복되는 것은 아마도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미하엘이 아버지가 곰인형을 버리는 바람에 아버지와 정서적으로 단절되었듯이 유디트 역시 엄마가 코알라 인형을 찢어버렸을 때 결정적으로 엄마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도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미하엘이 유디트에게 준 코알라 인형은 사실 그가 미국에서 난독증으로 아버지에겐 구박을 받고 학교에선 따돌림을 당하던 아주 고통스러운 시기에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스테피가 선물해준 것이었다. 미하엘은 그 인형으로 친구와의 유대감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인형들이 상징하는 것은 어떤 유대감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그저 서로를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는 그러한 유대감의 상징이 바로 인형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그 인형을 선물한다는 것은 너와 나는 진정으로 연결되었다는 의미이고 그런 인형을 어른들이 버리는 것은 그 유대감을 끊어버리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어른들이 인형을 없애버렸을 때 아이들은 결정적으로 그들과 관계가 끝났음을 절감하고 다른 또 누군가의 손이 그들에게 다가오자 얼른 그것을 잡고 뛰쳐나오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어른들이 설사 그들의 친부모였다고 해도 말이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나는 왜 작가가 주인공들에게 그렇게 강한 이름들을 부여했는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름처럼 아무리 강한 존재라 해도 그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없으면 그들 스스로는 절대로 그 고통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거꾸로 더 강조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 어떤 강한 자라도 ‘함께’가 아니면 진정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는 소설 속에서 미하엘의 아버지와 유디트의 어머니에게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먼저 소설에서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로 그려지는 미하엘의 아버지는 그러나 미하엘에겐 온전히 벗어나고만 싶은 고통 그 자체다. 그 아버지는 자신이 미하엘에게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사랑이란 미명하에 그가 원하는 것만을 미하엘에게 강요한다. 그러다 결국엔 그 사실을 알게 된 이모 가족들에게 아들을 망치는 자라는 비난을 받고 그만 미하엘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훗날엔 아주 변하게 된다. 이해심 많고 자상한 진짜 아버지 변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미하엘에게 스테피가 그랬듯이, 유디트에게 미하엘이 그랬듯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헬렌이란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렇게 강한 미하엘의 아버지조차 누군가의 따스한 유대감이 있고나서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음을 본다. 유디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물론 유디트의 어머니는 소설이 끝날 때 까지 학대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어린 자식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감행하는 괴물로 남는다. 그런데 유디트의 엄마가 그렇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엄마 그러니까 유디트의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그토록 아끼던 막내를 엄마 자신의 부주의로 사고로 잃게 만들었던 탓에 엄마는 할머니로부터 평생 그 원망을 들어야했다. 그런데 그 원망이란 다름 아니라 할머니가 유디트의 엄마를 아예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존재하지 않는 자식으로 취급받았다. 그렇게 할머니로부터 받은 절대적 무시로 인해 어느새 마음속에 자라고 쌓인 고통과 원망의 앙금들이 그대로 막내를 빼다 박은 유디트에게 학대의 형태로 쏟아졌던 것이다. 할머니에게서 그런 대접을 받는 동안 그 누구도 엄마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준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오롯이 혼자 그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미하엘의 아버지와는 완전히 반대인 상황을 본다. 하나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에 보다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미하엘의 아버지와는 달리 그 누구의 손길도 없었기에 그대로 자신의 친자식을 무자비하게 학대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유디트 엄마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 어떤 누구든 간에, 그가 얼마나 강하거나 약하거나 상관없이 타인과의 진정한 유대가 없으면 아무도 그 고통의 콧두레를 벗어나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모든 소설에 나타난 것을 통하여 안케 드브리스가 진심으로 호소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이제 정확히 알 수 있다. 그것은 타인과의 진정한 유대를 위해 누군가에게 먼저 그 손을 내밀라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아무리 약하고 더럽고 가난하고 혐오스럽더라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는 기꺼이 손을 먼저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디트에게 미하엘이 그랬듯이, 미하엘에게 스테피가 그랬듯이, 미하엘의 아버지에게 헬렌이 그랬듯이, 그리고 그 누구의 손길도 받아보지 못한 유디트의 엄마에게서 보듯이...


 

  따라서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그 아이를 떠올린 것은 너무도 당연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내내 내게 왜 그 때 그 아이에게 넌 손을 내밀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떠올릴라치면 그만 내 온 몸이 먼저 싸늘하게 가라앉아버릴 만큼 그 아이의 표정, 자주 흠칫거리던 구부정한 몸짓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내가 내밀지 못한 손 때문에, 건네주지 못한 말 때문에, 지어주지 못한 웃음 때문에 영원히 메울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남아있는 것이다. 같은 네덜란드가 배경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제때 내밀지 못한 손 때문에 내내 괴로워하는 한 남자가 나왔던 알베르 까뮈의 소설 ‘전락’이 생각난다. 어느 네덜란드의 다리 위에서 그 남자는 한 여자가 자살을 하려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하고 그냥 지나간다. 뒤이어 뒤에서 첨벙하는 물소리와 함께 그녀가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음을 알게 된다. 그 자살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그 때 알아차렸으면서도 도와주지 못했던 자신을 평생 원망하며 살게 된다. 그가 우연히 선술집에서 만난 한 관광객에게 들려주는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는 이렇게 애절하게 부르짖는다. “여자여 그 날로 나를 데려가 다시 한 번 그 다리에 서 있어다오.” 나 역시도 이 남자와 똑같은 잘못을 범했고 때때로 그 아이가 생각날 때마다 이 남자의 마지막 말과 같은 푸념을 반복하곤 했기에 이 소설을 읽는 순간 그 남자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고 이러한 잘못들을 나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네덜란드와 한국이라는 거리도 멀고 시간대도 전혀 다른 우리들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보편적인 일이라는 게 아닐까. 보편적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어디서건 언제가 되었든 이렇게 손을 내밀어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오리란 걸 암시한다. 아니 어쩌면 이미 닥쳐왔는데 자신이 모르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미 닥쳐왔던 소설 ‘전락’의 그 남자도, 나도 타인과 제대로 된 유대 관계를 맺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하나는 죽음으로 하나는 버려둔 채 방치하고 말았다. 나와 유디트의 엄마를 만든 할머니와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나도 할머니와 같은 가해자였기 때문에 안케 드브리스의 소설은 읽는 내내 내게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이 소설을 추천하는 것은 내 경험상 안케 드브리스의 말대로 타인과의 진정한 유대만이 내 삶을 보다 온전하게 만들고 손을 내밀어야 할 때를 알면서도 그 손을 내밀지 못했을 때 받게 될 고통을 정말 생생하게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어서라도 깨달아 나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소설에서도 나오고 나도 뒤늦게 깨달았지만 우리의 이 손은 생각보다 커다란 힘이 있다. 진정한 위로와 사랑이 담긴다면 그 손은 그 어떤 백 마디의 말보다도 더 큰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사랑하는 마음만 담아 내밀기만 하면 된다.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그렇게 가볍게... 이렇게 손쉬울 수 있다는 것을 난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다른 누군가는 제발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l****1 2011.06.2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마음을 나누는 벗..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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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와 함께한 시간 내내 내 가슴이 녹아내렸다.. 눈시울이 뜨거운데 출퇴근길 지하철 안이라는 공간에서 입술을 깨물고 참느라 편히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가슴으로 운다는건 이런 것일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며 내가 내 가슴을 쓸어 내린다. 유디트의 슬픔이 고스란히 내 눈앞에 펼쳐지고.. 그런 유디트에게 미하엘 이라는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한숨도 나오고,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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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와 함께한 시간 내내 내 가슴이 녹아내렸다.. 눈시울이 뜨거운데 출퇴근길 지하철 안이라는 공간에서 입술을 깨물고 참느라 편히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가슴으로 운다는건 이런 것일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며 내가 내 가슴을 쓸어 내린다. 유디트의 슬픔이 고스란히 내 눈앞에 펼쳐지고.. 그런 유디트에게 미하엘 이라는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한숨도 나오고, 매일같이 아프기만한 유디트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따뜻한 선생님의 모습에 마음이 애잔한.. 그런 소설이었다.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으면서 자라면 후에 그 아이에게 그와 같은 대물림은 하지 않겠지~? 란 평범한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또다시 자신의 처지를 재현이라도 해내듯 더한 매질과 학대를 서슴지 않는 부모들이 참으로 많다고 한다. =나도 당했는데 너도 당해봐라 일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유도 모르고 갖은 매질속에 피난처를 찾지 못하고 숨어있을지..새삼 생각해보게한 소설이었다. 

 

뜻하지 않은 남동생의 죽음이 유디트 엄마의 실수에서 비롯된 까닭에 어린시절 할머니의 냉대를 받고 자란 유디트의 엄마는.. 할머니에 대한 복수심에 할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유디트를 낳게되었다. 결혼생활은 계속되지 못했고 유디트의 동생 데니스의 아빠와도 이젠 같이 살지 않는다. 죽은 남동생을 너무 많이 닮았다는 이유로 유디트를 때리는 엄마의 모습은 그 어떤 악마와 괴물에 빗댈수 없을만큼 공포스럽다.
때리고 난 후엔 유독 유디트에게 잘해주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잠시라도 잘해주는 순간에도 유디트는 엄마의 기분을 경계해야만 했다. 엄마를 바라보는 유디트의 가슴엔 눈물이 흐르고, 엄마의 눈에 예쁘게보이려고 무던히 노력해 보지만 엄마의 사랑은 온통 동생 데니스의 것! 아무것도 아닌일에 화가나거나 본인의 심사가 틀릴때면 늘 유디트에게 화살이 꽂혀 손지검에 갖은 욕설에 급기야는  칼까지 들이미는 극한의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이러한 생활의 연속속에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아가는 가엽은 아이 유디트는 미하엘 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아름다운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세상에 따뜻한것도 있음을 알아가는,  유디트에게 있어 미하엘은 어쩌면 새 인생을 살게 하는 매개체 인지도 모르겠다. 미하엘과 또 미하엘의 이모인 엘렌이모 식구들과의 관계속에서 사랑을 배웠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하엘 역시 처음부터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아니었다. 미하엘도 한때는 아빠의 억압된 삶의 부속품에 불과했으나 엘렌이모의 도움으로 이모네 집에와 아이답게 살수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아빠역시 맘좋은 여자 체육선생님과의 연애를 통해 아이의 삶을 돌아보게 됨으로써 둘사이의 관계는 호전적으로 변화 되어가고 있다.
매맞아도 엄마한테 맞은 상처라 남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가엽은 유디트.. 세상에 자기만큼 하찮고 쓸모없는 인간은 없을꺼라 생각했던 유디트가 그대로 같은 삶을 살아갔다면 언젠가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시켰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엄마의 손에 의해 숨을 거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목처럼 두 아이가 친구가 되어 유디트의 아름다움을 미하엘이 이끌어내 줌으로써 학교 선생님도 점차 유디트의 어려움에대해 알게된다. 하찮은 존재이며 엄마에게 늘 잘못해서 쓸모없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던
유디트도 점차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 유디트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닳게 되고 학교 선생님이과 미하엘이 유디트에게 처한 처참한 환경을 알게 된 순간 사람들의 낌새를 눈치챈 유디트의 엄마는 쥐도새도 모르게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이사를 가버린다.  미하엘은 끈질긴 수소문 끝에 유디트의 전학간 학교로 찾아가게 된다.  미하엘이 다녀간후.. 자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된 유디트는 이렇게는 더 살수 없다는 의지와 함께 떠나는 기차표를 끊으며 마지막장을 넘긴다.

 

책속의 유디트에겐 세상에서 가장 따듯해야할 엄마라는 존재의 학대가 다른 사람들의 사랑의 손길을 전혀 느끼지 못할만큼의 무섭고 두려운 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점차 스스로를 자신의 방어벽속에 가두어 가고 있을 때 미하엘이란 친구를 만나 사랑에 대해 배워가기 시작했다.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사람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도 평범하지만 마음이 아픈아이 유디트에겐 신선한 충격이자, 다시 살고싶은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런 유디트에게있어 미하엘을 만난건 다행이었다.
두 친구의 우정쯤으로…. 어린시절 두친구의 추억쯤으로..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어린시절을 생각해 보고 싶어서.. 무작정 집어든 소설에서 난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고, 그러면서 동시에 두 아이이의 따뜻한 우정도 느껴지고.. 아이들의 생각도 읽어볼수 있는 많은 감동과 깨달음을 받게된 책이었다..

이 책을 나보다 먼저본 사무실 언니는 꿈에 언니가 자신의 딸을 이유없이 막~ 때리는 바람에 굉장히 꿈자리가 뒤숭숭 했다고 한다. 글이 얼마나 긴박하게 흘러가고 실감나게 느껴졌는지 나역시 가슴이 아프면서도 굉장히 빨리 책장이 넘어갔다.

 

어떤이가 이런말을 했다. 
[  여기에서 누가 나쁜 사람일까 생각을 해 보았다.
   유디트 엄마? 미하엘 아빠? 선생님? 이층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무관심인 것 같다.
   조금씩 주변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고 웃어 보이면
   혹시 또 다른 사람이 내게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를 할지 모르는 일이 아닐까.   ]

 

이 말도 참으로 맞는말인 것 같다. 유디트가 그토록 오랜세월을 맞고 사는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것은
한마디로 무관심 으로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그리고 이층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관심 했던게 아니라 무관심 하고 싶었던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의 자잘못을 따질수 없지만 지금도 분명 어딘가에는 제 2의 유디트가 살고 있을것이다. 그 아이들이 커서 또 제 3의 유디트를 만들지 않도록 주위에서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으로 인해 다친 마음의 상처는 사람으로만 치료할수 있다는데.. 그들이 다가가는 우리를 냉대해도 속으로는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에 점차 마음을 열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바로 내 주위엔 이토록 만신창이가 되거나.. 학대받거나.. 가여운 아이들은 없지만 앞으로 본다고 한다면 내 기꺼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다.

 

헤이그로 가는 기차표를 산 유디트는 차표만 산 것이 아니라 그 조그만 여자아이가 과거엔 슬펐지만 사랑하며 살고싶은,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갈수 있는 희망의 표를 한장 산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끝난것같지 않아 끝이 흐지부지 하다라는 독자평이 많지만 그 깜깜한 감옥안에서 나오려는 작은 어깨의 힘찬 출발을 한껏 느낄수 있지 않았나 라고 생각해 본다.

 

학대 받는 아이는 아니지만 책을 덮고나니 문득 한 꼬맹이가 생각이 난다.
그 아이를 알게된지 벌써 일년 반쯤 되어간다.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 나도 마음이 가슴이 짠하게 눈물이 나는 장면은 아이들이 너무도 기본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장면을 볼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는 까닭에.. 내가 할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천으로 월드비젼의 네팔에 사는 노에미 라는 여자아이에게 일인후원을 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봐야 한달에 기껏 2만원 정도를 보내고 있을뿐인데.. 그 아이는 그 돈으로 학교도 다닐수 있고 포기해야한 공부도 할수 있고 필요한 필기구도 살수 있다며 종종 나에게 편지를 보낸다.. 어떤때는 사진을… 그리고 어떤때는 자기 손을 그려서 보내주기도 한다..
도와줄수 있는게 2만원 뿐이라는게 너무 부끄러워 난 한번도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근데 이런생각을 해봤다. 어쩌면 그 아이도 나의 달랑 사진한장에 기뻐할지도 모른다는…  그 아이도 나의 무관심에 실망해 버렸을지 모른단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는걸 나도 알기에..

 

 

내 사진을 한장 인화해서 보내줘야 겠다.. 안녕~ 이라는 인사말과 함께..

YES마니아 : 로얄 e*****h 2007.05.1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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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이야기....두친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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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고 나서 한숨에 다 읽은 책.. 내가 책속에 들어가 또다른 인물이 되어 이야기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학대당하는 유디트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유디트 어머니의 어린시절과 현재의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유디트에게 하는 행동은..정말 친어머니가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성향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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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고 나서 한숨에 다 읽은 책.. 내가 책속에 들어가 또다른 인물이 되어 이야기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학대당하는 유디트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유디트 어머니의 어린시절과 현재의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유디트에게 하는 행동은..정말 친어머니가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성향탓으로, 조금은 불편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세상에 혼자인것만 같았던 유디트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려는 주변사람들을 보며 가슴 뭉클함과 함께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미하엘 집에서의 점심시간을 즐거워하고 기다리는 유디트의 모습은, 보통과 다름없는 여느 소녀의 모습이었다... 벼랑끝에 몰린 마음으로 최종의 선택을 한 유디트.. 내 마음까지 후련해지는 듯 했다.. 쌀쌀한 날씨에 내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준 책이었다..
j****0 2005.12.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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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그리고 안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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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은 지 며칠이 지났는 데도, 내 마음 속에 아직도 그 책이 펼쳐져 있다. 유디트와 그 가족, 미하엘, 일부러 관심을 안 두는 이웃, 적극적이지 못한 선생님들, 그리고 학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우리 사회의 초상화라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엄마는 동생 데니스에겐 한없이 사랑스럽고 너그러운 엄마이지만, 유디트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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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덮은 지 며칠이 지났는 데도, 내 마음 속에 아직도 그 책이 펼쳐져 있다. 유디트와 그 가족, 미하엘, 일부러 관심을 안 두는 이웃, 적극적이지 못한 선생님들, 그리고 학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우리 사회의 초상화라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엄마는 동생 데니스에겐 한없이 사랑스럽고 너그러운 엄마이지만, 유디트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늘 엄마 앞에서는 긴장되고 불안한 유디트...엄마의 학대속에 세상 또한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유디트에게 한걸음씩 다가오는 미하엘...이 아이에게도 세상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난독증과 아빠의 경멸을 감당해내지 못 해 힘들어 했다. 다행이 미하엘은 엘렌 이모의 도움으로 점점 자신감을 찾아 가고 활기차게 지낼 수 있게 된다.  미하엘과 엘렌 이모네 가족을 알게 되면서 사랑을 알아가는 유디트와 아직도 세상에 문을 걸고 있는 유디트의 엄마......  이제 엄마에게서 탈출한 유디트에겐 미하일과 그 가족도 있고, 엄마의 언니인 리아이모도 있어서 희망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유디트의 엄마에겐 안타까운 마음만이 든다. 데니스를 대하는 걸 보면, 유디트에게도 그 못지 않은 사랑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데, 남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유디트의 외할머니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세상에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사는 유디트의 엄마에겐 어떤 손길이 사랑을 알려줄까?  다음 장에선 치유된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다.
r******e 2005.1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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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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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폭력과 신체적 폭력에 시달리는 미하엘과 유디트.. 두아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 책제목을 봤을때는 두아이의 성장소설이겠구나 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니 너무나 가슴아픈 폭력에 대한 이야기... 난 어렸을적 맞으며 자라지 않았기에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이라고 가정하기가 어렵다. 역시 책을 읽으면서도 주인공과 일치가 되기는 쉽지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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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폭력과 신체적 폭력에 시달리는 미하엘과 유디트.. 두아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 책제목을 봤을때는 두아이의 성장소설이겠구나 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니 너무나 가슴아픈 폭력에 대한 이야기...

난 어렸을적 맞으며 자라지 않았기에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이라고 가정하기가 어렵다.

역시 책을 읽으면서도 주인공과 일치가 되기는 쉽지가 않았다.

엄마의 죽음으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아빠는 그 아픔과 어려움을 아들 미하엘에게 고스란히 언어폭력으로

돌려준다. 아빠보다 더 상처받고 힘겨워하는 아이는 보살핌을 받지 못할뿐만 아니라 폭력속에 버려지면서 글을 읽지 못하는 난독증에 시달린다. 성장하는 아이들은 잠깐 방치하면 어딘가가 부족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또 다른 친구 유디트는 엄마의 신체적 폭력속에 살아간다. 유디트의 엄마는 그녀의 엄마 또한 무시와 폭력속에서 그녀를 키워 왔던 것이다. 그녀의 무의식중에는 그때의 설움과 어려움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기에 유디트에게 투영시키며 자신의 어려운 현실을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어른들의 폭력세계를 이해하고 고스란히 받아내며 살아가기란 무척이나 힘들텐데 두아이는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아낸다. 정말 살아낸다는 말이 유디트에게는 적합한것같다...

그래도 조금더 먼저 광명을 찾은 미하엘은 유디트의 상황을 알았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13살 나이지만 무척이나 어른같은 두아이들, 엄마인 나는 그런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두아이가 너무나 안쓰럽고 안타깝다. 물론 그런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두아이의 부모도 마음이 쓰이긴 마찬가지지만.

나도 나의 스트레스를 우리 아이들에게 풀어내는 나를 보며 순간순간 자책하고 후회하고 미안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젠 고해성사할 일들을 그만 해야할텐데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이책속에서 가장 가슴아프고 쓰라렸던 말이 있어 한줄 적어봅니다.

엄마에게 맞기 직전에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너무 괴롭고 무섭다는 말..

얼마나 지옥같은 시간이였을지 생각하는 순간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습니다.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행하지 말아야 할것이라는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b*******g 2013.08.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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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케 드브리스 [두 친구 이야기]- "학대를 탈출하는 힘, 우정"
"안케 드브리스 [두 친구 이야기]- "학대를 탈출하는 힘, 우정"" 내용보기
(홈즈가 사무실로 들어선다, 왓슨이 기다리고 있다)   홈즈 : 왓슨, 오래 기다렸지? 미안하네.   왓슨 : 괜찮네. 자네 많이 바빴군 그래.   홈즈 : 그렇게 됐네. 의뢰받은 사건 현장을 면밀히 조사하고 관계된 사람들과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지 뭔가. 자네, 2시간이 넘도록 기다리느라 지루했겠어?   왓슨 : 하하. 전혀 지루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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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가 사무실로 들어선다, 왓슨이 기다리고 있다)

 

홈즈 : 왓슨, 오래 기다렸지? 미안하네.

 

왓슨 : 괜찮네. 자네 많이 바빴군 그래.

 

홈즈 : 그렇게 됐네. 의뢰받은 사건 현장을 면밀히 조사하고 관계된 사람들과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지 뭔가. 자네, 2시간이 넘도록 기다리느라 지루했겠어?

 

왓슨 : 하하. 전혀 지루하지 않았네. 책을 읽었거든. 자네 요즘 아동도서도 읽는 모양이지?

 

홈즈 : 내 지식의 폭을 넓히려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겠나. 그래, 최근엔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동도서도 읽고 있네. 자네가 손에 들고 있는 <두 친구 이야기>도 읽었고.

 

왓슨 : 음, 이 책은 제목을 보곤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로만 생각했어. 근데 처음부터 긴 한숨이 나오더군.

 

홈즈 : 그렇지? 자네가 긴 한숨을 토해 낸 건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때문이겠지.?

 

왓슨 : 맞아, 홈즈. 어떻게 열 살짜리 여자 아이 유디트에게 그토록 심한 폭언과 구타를 일삼을 수 있을까? 그것도 엄마가 말이야. 생각만해도 끔찍하군.

 

홈즈 : 유디트의 엄마(코니 반 헬더르)라는 사람이 저지르는 폭행은 거의 광기에 가깝지. 그 여자는 허울만 엄마일뿐 유디트에겐 잔인한 괴물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지 않겠나?

 

엄마는...진공청소기의 금속 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제발……엄마, 제발……." 유디트는 멍한 상태에서 중얼거렸다. 어느새 등과 팔과 엉덩이는 쏟아지는 매를 맞고 있었다. 매질은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았다. 유디트는 침대로 기어가 베개 밑에 머리를 묻었다. 공포에 질려 몸을 잔뜩 웅크렸다. <두 친구 이야기> 95p

 

느닷없이 손이 다가와 유디트의 머리채를 거세게 잡아서 뒤로 확 젖혔다. 유디트는 아프고 겁에 질려서 비명을 질렀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여서 얼굴을 가리는 것도 잊었다. 엄마가 유디트를 부엌으로 끌고 가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밟고, 마구 차기 시작했다. 유디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조리대에 쿡 쳐박혀서 두 팔로 얼굴을 가로막았다. "역겨운 도둑년." 엄마는 낮은 목소리로 을러댔다. <두 친구 이야기> 139p

 

왓슨 : 홈즈, 이 여자의 잔인함이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홈즈 : 왓슨, 자넨 지금 약간 흥분상태네. 진정하게. 하여간 유디트의 엄마가 왜 유디트를 그토록 심하게 매질했을까 생각해보는 건 중요한 문제야. 그건 유디트의 미래와도 관계되어 있으니까.

 

왓슨 : 홈즈, 자네도 짐작하고 있군. 보통 자녀를 학대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지. 자기도 부보로부터 학대를 받았거나 심한 차별을 받은 경우가 많아. 유디트의 엄마도 그런 유년의 슬픈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말이야. 자기의 아픔이 자녀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심한 폭력으로 자신의 과거를 보상받으려 하더군.

 

홈즈 : 학대받는 아이들의 문제는 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해가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겠나? 극도로 소심해져서 친구관계에 폐쇄적이된다든지, 아니면 집에서 겪은 폭행, 폭언을 다른 약한 친구들에게 행사한다든지. 물론 그보다 아동학대가 그토록 위험한 이유는 끊어버리지 못하고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어 나타난다는 것이겠지. 마치 물을 먹은 스펀지가 불쑥 불쑥 스며있는 물을 짜내듯이 어느덧 가해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해서 학대에 중독된 낯선 자신을 발견하곤 통탄해한단 말이야.

 

왓슨 : 그러니까 가정에서 학대받은 아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 장치가 필요하네. 아이들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 아니겠나? 하지만 이 나라엔 그런 부분이 매우 취약하지.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세. 그래도 유디트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등장하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홈즈 : 미하엘이라는 친구지.

 

왓슨 : 홈즈, 친구라는 말이 참 좋지 않나? 정겹고 들으면 웃음이 나고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야, 하하. 친구라는 말 속에 홈즈 자네의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지.

 

홈즈 : 참, 그 친구 새삼스럽기는. 친구 관계가 빚어내는 보석을 우리는 우정이라고 부르네. 왓슨, 우정이 언제 싹 트는지 아나?

 

왓슨 : 글쎄?

 

홈즈 : C.S.루이스는 <네가지 사랑>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네.

 

단순한 동료 의식으로부터 우정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은, 동료 중 어떤 두사람(혹은 그 이상이) 다른 동료에게는 없는 어떤 공통된 본능이나 관심사나 취향-그 순간 전까지만 해도 각자 자기에게만 있는 고유한 보물(또는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입니다. 우정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 전형적인 표현은 이런 것입니다. "뭐, 너도?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었는데!"  C.S.루이스 <네가지 사랑> 

 

왓슨 : 꽤 공감되는데.

 

홈즈 : 유디트와 미하엘은 가족때문에 겪는 '아픔'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었지. 둘 다 한부모 가정이지. 좀 복잡하게 얽혀있긴 하지만 말이야. 

 

왓슨 : 미하엘은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아버지가 있지만 네덜란드 헤이그의 엘리 이모네 집에서 생활하지. 홈즈, 이 책은 말이야 낳았다고 부모가 되는 것도, 함께 산다고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어.

 

홈즈 : 맞네. 부모다워야 부모고 가족다워야 가족이지. 유디트의 엄마를 엄마라고 할 수 없네. 또 미하엘의 아빠가 미하엘에 대한 태도,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면 진정 아빠가 될 순 없었을 걸세. 낳지는 않았지만 미하엘을 자식처럼 데리고 사는 엘리 이모를 보게. 미하엘이 엄마라고 불러도 손색없어. 

 

왓슨 : 미하엘과 유디트는 매일 점심도 같이 먹고 조금씩 과거와 가족사 이야기도 하면서 깊은빛을 내는 우정을 만들어 가네. 또 서로의 약점을 메워주면서 일종의 동지 의식도 느끼고. 유디트에게는 미하엘이 일종의 쉼터 역할을 했지. 미하엘도 자신의 난독증을 이해하고 책을 읽어주는 유디트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고.

 

홈즈 :  그래. 왓슨, 난 이런 열 살 또래의 아이들이 과연 이런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네. 내 어린 시절이 떠 올랐기때문이지. 부럽더군. 아무튼 유디트와 미하엘의 관계가 더 진전되려면 유디트가 진실을 말하는 용기가 필요했네. 

 

왓슨 : 홈즈, 우린 유디트를 좀 더 이해해야하네. 미하엘이 편안한 쉼터같은 친구였겠지만 유디트는 엄마로부터 학대받는다는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을 걸세. 아니, 진실이라기보다는 봉인된 비밀 같은 것이었겠지. 어린 아이의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 없는...

 

홈즈 : 그랬겠군, 왓슨. 소중한 친구가 자신의 비밀에 휘말리도록 하고 싶진 않았겠지. 그 보다 더한 이유는 공포와 긴장감이었을 거고.

 

"왜 진작 말하지 않은 거야" (중략)

"왜냐하면 너무 겁을 먹거든. 그냥 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무서워." <두 친구 이야기> 278-279p

 

왓슨 : 홈즈, 사람이 언제 더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지 아나? 폭행 순간이 아니라 폭행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 순간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라네. 긴장의 진폭이 커지고 공포는 극대화되지. 유디트는 늘 그런 분위기 속에 살았네. 폭행 후 엄마의 우호적 행동조차도 공포스러워지는 그런 분위기 말이야. 난 한 순간도 그런 삶을 살 수 없을 걸세. 그런 분위기는 열 살 소녀 유디트를 완전히 불능상태로 만들었겠지. 공포는 비밀과 거짓말을 키워낼 수 밖에 없었을테고.

 

홈즈 : 자네 말을 들어보면 미하엘이 끈질기게 유디트를 위해 준 마음이 결국 유디트를 진실과 용기의 마당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겠어. 미하엘은 유디트에게 '유디트'임을 상기시키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유디트는 유디트'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네. 나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은 나와 내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니까.

 

"처음에, 널 알기 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넌 스테피가 아니라 유디트잖아."

유디트는 몸을 돌려 미하엘의 얼굴을 보았다. 눈에 이상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래, 나는 유디트야. 유디트."

유디트가 천천히 되풀이했다. 자기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처럼 말했다.

<두 친구 이야기> 215p

 

왓슨 : 유디트의 이야기와 함께 <두 친구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미하엘의 이야기는 가족의 회복이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해서 좋았고.

 

홈즈 : 왓슨,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한 장면을 짚고 넘어가야겠네.

 

왓슨 : 혹시 이 책에서도 추리할 만한게 있었던 건 아니겠지?

 

홈즈 : 좀 비약적인 생각이긴 해. 하여간 이 장면부터 보자구.

 

그때부터 선생님이 틀어 놓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정신을 집중했다. 포악한 괴물 같은 불도저들이 열대우림을 파헤치고 있었다. 동력 톱이 기분 나쁜 소리로 울부짖고 나자 키 큰 나무들의 몸통이 트럭에 실렸다. 몇백 년 동안 숲에서 종족의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분노하는 사람들은 숲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미하엘은 그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느꼈다. 원주민과 오랫동안 살면서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영국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숲의 파괴를 막으려고 벌목 작업을 방해했다. 그의 목에는 막대한 현상금이 걸려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누구 하나 그 사람을 신고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숲에 숨어,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며 주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두 친구 이야기> 101p

 

왓슨 : 이건 베크만 선생과 아이들이 수업하는 장면이잖나?

 

홈즈 : 맞아. 좀 느껴지는게 없나?

 

왓슨 : 어디 보자...

 

홈즈 : 이 장면이 <두 친구 이야기>가 인류와 자연이라는 거대한 주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믿네. 작가가 의도한 건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왓슨 : 들어 보세.

 

홈즈 : 이 책은 표면적으로 유디트와 미하엘의 상처난 가족사, 둘의 우정이 싹트고 열매맺는 과정을 다루고 있네. 물론 이것만으로도 작품의 의미가 대단하지. 하지만 책 속에 소개된 다큐멘터리 수업장면을 보면 인류가 친구 자연에게 한 짓이 유디트의 엄마가 유디트에게 한 학대와 뭐가 다른가 하고 생각해보게 되네. 상처입은 유디트는 파괴된 자연환경(숲과 원주민)으로, 유디트의 친구가 되는 미하엘은 원주민의 방패가 되어주는 영국 사람으로 대비해볼 수 있어.

 

왓슨 : 오, 홈즈. 그건 비약이 아니라 대단한 통찰인걸.

 

홈즈 : 파괴된 것이 무엇이든 원상 복귀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되돌려 놓으려해도 파괴의 시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걸 우린 기억해야하네.

 

왓슨 : 아이들을 지켜가는 노력만큼 자연을 지키는 건 중요해. 다 망쳐놓고 자연보호캠페인이다, 탄소배출제한이다 떠들어봐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지. 아이들과 자연은 인류의 미래라는 걸 다시 한 번 뼈져리게 깨닫게 되는 구만.

 

홈즈 : 아이들의 언어를 배워야 하네.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지. 그래야 공감할 수 있어. 또 자연의 경고도 잘 들어야 하고. 훼손된 자연과 상처입은 아이들이 여는 미래는 비참할 수 밖에 없겠지. 그들이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가 버리지 않도록 희망찬 오늘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가는 길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네.

 

왓슨 : 오늘 즐거웠네 홈즈. 이래서 자네 사무실에서 2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도 손해볼 게 없다니까. 하하.

  

 



k*****i 2011.06.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외쳤던 아이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외쳤던 아이" 내용보기
나의 유년 시절은 주인공 유디트보다는 축복된 삶을 누렸다. 그러나 그 축복이 굉장한 것인지 미쳐 깨닫지 못했던 나를 새삼 깨우쳐 주는 책 한권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단 한번도 신음하지 않고 견뎌내고 있는 유디트라는 아이와 이를 삶의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미하엘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어린 유디트는 어머니의 학대와 외로움으로 자신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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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년 시절은 주인공 유디트보다는 축복된 삶을 누렸다. 그러나 그 축복이 굉장한 것인지 미쳐 깨닫지 못했던 나를 새삼 깨우쳐 주는 책 한권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단 한번도 신음하지 않고 견뎌내고 있는 유디트라는 아이와 이를 삶의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미하엘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어린 유디트는 어머니의 학대와 외로움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긴채 조용히 순종하며 살아간다. 어린 아이가 느끼는 이 학대와 외로움에 대해 무관심한 부모를 난 용서하기 힘들었다. 왜 울분을 참고 견디는지 유디트가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유디트가 조금이라도 빨리 말하기 힘든 고민이나 상처를 말없이 들어 줄 누군가를 만났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 작가는 그를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끌어내 주는 한 친구를 만나게 해준다. 바로 미하엘이라는 친구말이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많은 일을 겪어야만 했던 유디트에게 미하엘은 단비와도 같은 존재가 된다. 이 아이는 학대와 외로움 속에서 사회 구조적인 보호를 받기 위함보다도 단 한명의 진정한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조용히 그를 안아 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그는 위로 받았을 것이다. 자신의 깊고 깊은 상처를 드러내기 힘들었던 그에게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다가와 주는 이 친구도 역시 도움을 받아 보았기에 자신이 또다른 누군가의 삶에 축복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지 않고는 남을 사랑할 수 없다. 나 역시 내가 사랑 받아 보지 않고서 남을 사랑한다면, 그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의 미하엘은 그런 아이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아이. 그리고 그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유디트. 그토록 나 자신을 알기까지 너무 많은 학대와 외로움에 떨던 유디트를 난 동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친구는 더이상 외롭거나 두렵지 않다. 그에게는 또 다른 그를 알게 해준 소중한 친구가 있기 떄문이다. 이 둘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라고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마땅히 사랑 받아야 함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s*******5 2005.12.1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