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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적 사회의 생명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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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조선을 강타했던 이데올로기가 있다. 사회진화론이었다. 우승열패와 적자생존이라는 구호로 집약되었던 사회진화론의 광풍은 전 조선 사회에 휘몰아쳤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이식된 사회진화론은 인종주의의 다른 버전이었으며, 백인종우월주의 그 자체였다. 강한 인종만이 살아 남는다는 공포가 조선을 뒤덮었고, 계몽가들은 이 논리에 상당부분 동화되었다. 외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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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조선을 강타했던 이데올로기가 있다. 사회진화론이었다. 우승열패와 적자생존이라는 구호로 집약되었던 사회진화론의 광풍은 전 조선 사회에 휘몰아쳤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이식된 사회진화론은 인종주의의 다른 버전이었으며, 백인종우월주의 그 자체였다. 강한 인종만이 살아 남는다는 공포가 조선을 뒤덮었고, 계몽가들은 이 논리에 상당부분 동화되었다. 외세의 조선 침탈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은 사회진화론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할 기회를 빼앗아 버렸다. 이런 시기에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명윤리 같은 '고상한'(?) 얘기는 생뚱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생학의 극단적 발현을 이미 나찌즘을 통해 배운 바 있다. 100년의 시공간을 뛰어 넘어 21세기가 도래한 이 시점에서도 사회진화론은 여전히 그 위력이 감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련되고 정교한 방식으로 우생학의 시대는 재구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생명복제가 공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고,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한 기업들의 주가는 연일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전혀 다른 'DNA 구조'를 지닌 것 같은 인문학자 도정일과 생물학자 최재천이 '인간의 생명'에 관한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도정일과 최재천의 대담집 {대담}은 아주 먼 과거로부터 현재에 걸쳐 '인간이란 혹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 책은 과학과 인문학의 해묵은 오해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적극적이면 생산적인 대화의 시도로 보인다. 또한 '생물학=유전학'이라는 우리들의 편협한 생각을 불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책의 곳곳에서 생명에 대한 생물학자와 인문학자의 견해가 때론 충돌하면서 격한 파열음을 내기도 한다. 이는 "과학은 답을 추구하고 인문학은 질문을 추구"(120면)하는 학문의 속성에서 연유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격돌은 현학적이거나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새롭게 재편되는 우생학적 사회 속에서 자칫 간과할 수 있는 생명윤리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통섭'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몸짓이다. 유전자 복제가 이루어진 현실 속에서 일부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우월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우성인 유전자, 시쳇말로 '명품 유전자'에 대한 욕망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특정한 사회 이념 속에서 열등한 것으로 규정되는 모든 것들은 제거되어야 할 '악'으로 치부된다. 대담자들은 이러한 끔찍한 현실과 미래를 경계한다. 그들은 소위 "진 클리닉(Gene Clinic)"(254면)으로 명명된 병원 앞에서 대기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 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암울한 예측이 빗나가기를 갈망한다. 대담자들은 인간에 대한, 생명에 관한 사유가 유전자중심주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인간의 생명이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는 사회를 질타한다. 그렇다면 과연 유전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최재천에 따르면 "단백질을 만들어놓은 후에는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다."(82면)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에서 인용한 재미난 예는 유전자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생화학자 조지 월드는 노벨상 수상자라는 이유로 윌리엄 쇼크리 정자은행으로부터 정액 샘플을 요청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생산하는 정자를 원한다면 우리 아버지처럼 외국에서 이민 온 가난한 재단사를 만나보시오. 내 정자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아시오? 두 명의 기타리스트요!"(82면) '명품 유전자'가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도정일의 말처럼 '비생물학적 차원', 즉 문화적 환경과 생물학적 요인이 적절하게 결합되었을 때만이 생명은 보다 나은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정일과 최재천이 제시한 미래의 인간형은 어떤 모습일까? 모순과 갈등이 공존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공생(共生)인간. 도정일과 최재천의 말을 조합해 보면 아마도 "두터운 세계를 살아가는 호모 심비우스"(579면)가 아닐까? 이 책은 또한, 바로 그런 사회를 위한 첫 걸음은 아닐까?
w*******2 2005.11.20. 신고 공감 1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문쟁이와 과학쟁이의 대화를 엿보는 과학쟁의의 입장
"인문쟁이와 과학쟁이의 대화를 엿보는 과학쟁의의 입장" 내용보기
그리스 문명이후에 학문적 통섭이 와해되어 가면서, 고도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이라는 화두는 대중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단지, 이미 고도로 전문화가 된 시대에서 교육을 받고, 그런 시대가 구성해 놓은 문화의 영향권내에서 성장한 전문가 두 분의 대화가 과연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라는
"인문쟁이와 과학쟁이의 대화를 엿보는 과학쟁의의 입장" 내용보기
       그리스 문명이후에 학문적 통섭이 와해되어 가면서, 고도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이라는 화두는 대중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단지, 이미 고도로 전문화가 된 시대에서 교육을 받고, 그런 시대가 구성해 놓은 문화의 영향권내에서 성장한 전문가 두 분의 대화가 과연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뽑아져 나올만한가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겠다. 윌슨의 통섭이 주는 무거운 주제의식과는 달리, 이 책의 제목을 내용과 부합하게 그대로 뽑아낸다면, 『문학이론가와 생물학자의 만남. 대담』이 되어야 한다. 책 장사가 좀 안된다 하더라도, 제목을 뽑은 휴머니스트의 담당자의 과대 광고는 좀 심한 편이다. 문학 이론이 전체 인문학을 대표할리 만무하고, 생물학이 전체 과학을 대변할리 만무한 시대에 출판된 책이니 말이다. 이런 직접적이지만 사변적인 비판은 차치하고, 책 내용을 보면, 주제 또한 현실적으로 제약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목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이야기하자면,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만나서 대화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교집합이 이루어 지는 곳, 바로 인간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이다는 말이다. 수학 이야기가 아니고, 화학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인간이 살아 가는 모습과 문화권에서의 교류가 대담의 주제인 것이다. 책 제목을 보고, 뭔가 거창한 것을 상상한 독자들은 지극히 실망할 것이고, 현실적으로 두 전문가의 고급스러운 만담을 따라가는 즐거움 정도를 상상했던 독자들에게는 원하는 그만큼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한가지를 더 밝혀야 겠는데, 이 리뷰는 인문쟁이와 과학쟁이의 대화를 과학쟁이가 보고 쓴 느낌이라는 것이다. 인문쟁이가 되어 본 적이 없기때문에, 이 말이 주는 제약이 있을지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사실이기에 밝혀 두어야 겠다.
       과학쟁이가 읽고 있다는 티를 내는 것일까? 책의 약 1/4이 지날때까지도 도정일 선생의 이야기는 그저 하나의 해석일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쓰는 단어와 단어들의 조합이 이루어 낸 문장의 세련됨은 압도적으로 인문쟁인인 도정일 선생의 말이 우세하다. 최재천 선생의 이야기는 일단 직설적이고 상대적으로 단순하며,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과학쟁이들은 언제나 의문투성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게 해 준다. 자연과 우주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에 말의 강렬함을 스스로 흐희하는 과학쟁이들이 다분히 진실될 것이다. 단지, 고대의 신화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에 사회생물학자들과 같이 조금은 매달리는 듯한 최재천 선생의 이야기는, 그의 전공 분야때문인지 조금 힘겨워 보인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문화와 그의 다양한 교류와 변이. 이를 진화생물학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분명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언젠가 뇌 과학의 확고한 발전을 통해, 우리가 영혼, 종교, 문화라고 말하는 단어들의 실체가 과학적으로 드러날 날이 오겠지만, 그 전까지는 인문쟁이 도정일 선생의 다양한 해석이 기회주의적이기는 하지만, 오히련 진실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책의 중반이후에 이야기가 겉돌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다 읽고 나면, 책의 내용을 200여 페이지로 압축하여도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유전자 결정론으로 생물학을 바라보는 오해를 네번 정도 반복하는 도정일 선생.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을 사회생물학점 관점에서 바라 보려는 최재천 선생. 두 사람의 이야기는 중첩되는 부분이 없을 것 같지만, 서로에 대한 대답을 통해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보편적 결론을 복선과 같이 예고하고 있다. 그런 복선적 장치를 조금만 거둬낸다면 책의 주제를 정확히 전달하고 책의 부피를 줄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의 대화가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정확히 주제만을 향한 대화로만 이루어 질 수는 없는 노릇인게 당연하다는 생각과 함께 책의 부피가 주는 사족적인 의미까지도 관대하게 받아들이며 읽어 나갔다.
       중요한 것은, 책의 거의 말미에서 나오는 두 전문가의 공통점 찾기가, 다분히 상식적이라는 데에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서 이루어낸 합의점이 한국 사회의 획일화와 미국의 독주를 비판하고, 생명계의 종 다양성이 주는 장점들을 인용하면서 결국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끝맺음하는데, 이는 인문학자과 자연과학자가 만나서 이루어 낸 결론 이라기 보다는, 아무 지성인이나 만나서 도출해 낼 수 있는 상식적인 결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담이 진행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가는 두 전문가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대화를 통한 지루하지만 체계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책의 도입부에 대해 언급하면서, 도정일 선생의 다양한 해석이 주는 아이러니한 허무감을 이야기하였는데, 과학쟁이인 필자가 과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는 것이 어찌 보면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생각을 책의 말미에 가지게 된 것은, 이 책의 인문쟁이 도정일 선생이 가져다 준 참으로 큰 선물일 것이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 이는 새로운 현상에 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 주고, 그런 해석이 뉴튼을, 갈릴레오를, 다윈을, 아인슈타인을, 보어를 만들어 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길러야 겠다는 당연한 결론을, 나이 40이 넘어서 얻어낸 책인데, 웬지 책이 주는 무게는 의외로 가볍게 느껴진다.


j*****k 2010.01.06. 신고 공감 2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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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디오 북''으로 나와야 마땅했다.
"이 책은 ''오디오 북''으로 나와야 마땅했다." 내용보기
작년 세밑보다도 훨씬 전 이 책을 사 놓고, 책의 두꺼움에 지레 겁먹고 곧바로 책꽂이에 꽂아 둔채 꺼내보지도 않았다. 연말 모 방송 프로에서 이 책을 2005년의 책 10권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을 보고, 읽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보통 책 2권 분량이며 전문적인 용어도 더러 섞여 있어 열흘 남짓 투자하여 읽었다. 실제 ''대담''의 주인공 도정일 교수와 최재천 교
"이 책은 ''오디오 북''으로 나와야 마땅했다." 내용보기
작년 세밑보다도 훨씬 전 이 책을 사 놓고, 책의 두꺼움에 지레 겁먹고 곧바로 책꽂이에 꽂아 둔채 꺼내보지도 않았다. 연말 모 방송 프로에서 이 책을 2005년의 책 10권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을 보고, 읽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보통 책 2권 분량이며 전문적인 용어도 더러 섞여 있어 열흘 남짓 투자하여 읽었다. 실제 ''대담''의 주인공 도정일 교수와 최재천 교수는 박사이다. 흔히 박사는 혼자서는 병원진료 접수도 못한다고 할 정도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상당히 깊이 알 지언정, 사회를 넓게 보지는 못한다고 들 알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자인 도교수는 자연과학에, 최교수는 인문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음을 대담을 통해 증명해 주었다. 두 교수가 대담을 통해 쏟아 놓은 과거에 대한 지식과 그 해석,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은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하다. 상대의 학문과 관련된 연구 결과에 대한 오해에 대한 공방, 이해, 동정, 타협 등을 통해 수 많은 감정이 이 책에 녹아 들어 있을 것이다. 책 사이사이의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차와 담배와 노트와 펜과 이야기를 독자로서 활자로만 접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실로 ''대담''은 활자화 됨과 아울러 오디오 북으로 나와 두 대담자의 억양을 우리가 직접 느껴야 했을 듯싶다.

[인상깊은구절]
대담을 이끌어 간 진행자의 말 中, 요새 그런 말이 있잖아요. 느리게 살기를 예찬한 그 작가가 느리게 살기의 미학을 강연하러 다니느라 바빠 죽겠다고 한다고요. (하하하)
YES마니아 : 로얄 p****2 2006.02.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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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생물학, 두 이산가족의 상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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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생물학, 두 이산가족의 상봉의 시작 도정일 선생과 최재천 선생은 인문학자와 과학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들이다. ‘큰 장사꾼은 큰 장사를 한다’는 옛 문헌의 금언을 학문적으로 실천한다면 가장 큰 동그라미를 매일같이 그려나가는 학자들이 두 사람이다. 특히 최재천 선생은 유명한 개미 연구가로 수년 동안 논문 한두 편도 나올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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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생물학, 두 이산가족의 상봉의 시작 도정일 선생과 최재천 선생은 인문학자와 과학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들이다. ‘큰 장사꾼은 큰 장사를 한다’는 옛 문헌의 금언을 학문적으로 실천한다면 가장 큰 동그라미를 매일같이 그려나가는 학자들이 두 사람이다. 특히 최재천 선생은 유명한 개미 연구가로 수년 동안 논문 한두 편도 나올 수 없는 ‘느리고 큰’ 분야를 맡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빛을 보기 힘들다. 그가 얼마나 큰 학문의 원을 그려내든 우리들의 척도로 보면 ‘원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불만과 ‘간극’이 그의 인문학적 출발점이라고 하면 너무나 거창할까? 도정일 선생은 어떠한가. ‘생물학자와 인문학자의 대화’라는 기획은 그 특성상 생물학자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지만 그는 단순 명쾌한 비유와, 평소에 왕성하게 섭렵한 과학적 지식을 인문학적으로 요리하여 최재천 선생의 과학적 견해를 구수하게 풀어낸다. 이 대담에서 생물학과 인문학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도정일 선생 덕분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살아있다’는 말과 같이 사유와 생명은 한 몸과 같았다. 불행히 신의 벌을 받고 둘로 가라진 남자와 여자의 존재와 같이 세분화된 지식의 험로에서 두 분야는 단절되고 만다. 둘은 항상 만나야 하는 사명을 타고 났으며, 그것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이유이다. ‘죽은 사유’와 ‘무미건조한 과학’의 토양 위에 서서 서로를 향해 가녀린 손짓을 보낸다. 그것이 ‘대담’이 있게 된 연유이다. 과학은 답을 추구하고 인문학은 질문을 추구합니다.<도정일> 사실 과학과 인문학의 출발점은 다르다. 생물학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다. 생물학이 캐낸 진실 역시 ‘진정한 의미의 진실’이 되기는 힘들다. 그 한계가 분명할수록 발견은 더욱 빛난다. ‘객관적 실재 세계를 구성하는 최소 부분들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불가능하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이론이나, ‘수학의 불완전성’을 입증한 괴델의 공리가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엄밀한 관찰을 통해 ‘엄밀한 과학’의 한계성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변수’들을 일깨우는 것은 인문학과 과학이 힘을 모아 해결할 과제이다. 황우석 사건과 이 책의 발간이 묘하게 겹치면서 우리는 생물학과 인문학의 접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우리들이 이 사건을 통해 고수했던 ‘절대성’은 ‘엄밀한 과학’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과학의 부재와 인문학의 부재가 겹친 ‘맹신’의 결과였다. 따라서 황우석 사건에 대해 분명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책을 펼쳐들었다면 주소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이 책은 과학에 관한 아주 분명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야 솔직한 대담이 되기 때문이다. 저도 유구라, 그러니까 유홍준 선생님과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데, 그분은 정말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게 다 구라야"라고 밝히고 계속 구라의 길을 가더군요.(하하하) 그런데도 옆에 있는 분들이 전혀 반감을 안 가져요. 그분의 이야기는 재미있구 유익한 구라니까요. 그런데 제가 구라를 치면, 그게 조금만 틀려도 저는 낙마하고 맙니다. <최재천> - 본문 중에서 모든 것은 생명활동이므로 생물학 안에 있다. 이 책을 일독한 독자라면 읽는 내내 지속적인 긴장감과 빛나는 지성의 합연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읽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서평을 쓰려 했는데, 당혹스럽기만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까닭은 내용을 도식화하지 않고 이야기의 실타래를 잡고 물처럼 흘러가기 때문에 머릿속에서는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한 부분을 읽거나 나중에 관련 분야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된다면 그 이야기가 생각날 것이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으리라. ‘대화’라는 방식은 참으로 놀라운 표현 기법이다. 그 옛날 플라톤 할아버지도 그 효과에 반해 모든 저작을 이 방식으로 쓰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옛날의 대화는 일방적 혹은 산파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대담을 ‘반전 대화’라고 명명하고 싶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분야에 천착해온 두 꾼이 생동감 있고 박력 있게 주고받는(''치고 받는''이라고 해야 더 적절하리라) 이야기에는 불꽃 같이 강렬하게 뇌리를 자극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단어로 심오한 견해를 펼쳐내는 추임새는 감동 그 자체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최재천 선생을 칭찬하고 싶다. 섬들이 천천히 연결되어야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부 하나의 대륙으로 뭉쳐져버린 느낌입니다. - 본문 중에서 최재천 선생의 말투가 대개 위와 같은데, 위의 말은 거대 경제 권력이 세계의 다양성을 무참히 짓밟는 비생물학적 경제 현상을 빗댄 표현이다. 이보다 더 향 깊은 부분도 있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거의 1년 내내 저녁 뉴스 시간을 달군 ‘아버지 논쟁’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젊었을 때는 돈도 없고 장래도 불투명해 낳은 아이를 입양시켰으나 나중에 여유가 되어 아이를 다시 찾겠다고 법정까지 간 그 사건은 결국 ‘생물학적 아버지’인 ‘친부’의 승리로 귀결되었다고 한다. 최재천 선생은 그 아버지에게 ‘생물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기른 아버지도 충분히 ‘생물학적’이라는 것이다. 낳은 아버지는 ‘유전학적’이라고 해야 옳다는 것이다. 즉 ‘생물학’이라는 것은 ‘유전’ 못지 않게 ‘환경’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사회’나 ‘문화’가 될 수 있다. 만약 책의 내용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며, 너무 쉽게 다가가려는 사람(이런 사람은 없겠지만)이 있다면 쉬운 말 속에 함유하는 뜻 역시 쉬운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셍떽쥐베리의 말은 분명 옳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과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인문학과 생물학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들의 학문은 여기저기에 귀를 기울이며 고유한 분야의 향기를 자꾸 퍼뜨리고 색깔을 자꾸 겹쳐야 천의 향기와 아름다운 그림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저도 유구라, 그러니까 유홍준 선생님과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데, 그분은 정말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게 다 구라야"라고 밝히고 계속 구라의 길을 가더군요.(하하하) 그런데도 옆에 있는 분들이 전혀 반감을 안 가져요. 그분의 이야기는 재미있구 유익한 구라니까요. 그런데 제가 구라를 치면, 그게 조금만 틀려도 저는 낙마하고 맙니다. <최재천>
d*****7 2006.02.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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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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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 그다지 공통된 관심사도 없어 보이고, 또 어찌 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존재. 이 둘이 만나면 어떤 이야기들을 할까?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의 운명''을 큰 줄기로 한 13개의 테마로 이루어진 이 대담에서 중간중간 끼어들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나른한 오후 티타임의 수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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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 그다지 공통된 관심사도 없어 보이고, 또 어찌 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존재. 이 둘이 만나면 어떤 이야기들을 할까?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의 운명''을 큰 줄기로 한 13개의 테마로 이루어진 이 대담에서 중간중간 끼어들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나른한 오후 티타임의 수다처럼 유쾌하고 경쾌하기도 했지만 한참을 웃고 떠든 후에 찾아오는 기분처럼 공허하기도 했다. 대학때 부터, (아니 그 이전 고등학교때 부터 ) 이미 자연계와 인문계로 나뉜 학생들은 자신의 전문분야 이외에 다른 것들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와 여유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박식한 사람이 되어 있을 지 모르나 그 이외의 것들에는 무지하게 되고 결국 서로에 대한 무지는 상대에 대한 비난과 폄하를 서슴지 않게도 한다. 자연과학자들은 인문학자들을 알맹이 없는 그럴싸한 말만 같다 붙이는 소위 ''썰''에 강한 족속들이라 하고 인문학자들은 자연과학자들을 무식하기 짝이 없는, 기계적이고 인간미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제정신이 아닌 집단쯤으로 매도 하기도 한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와 그리하여 그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분야에서의 더욱 많은 연구거리와 아이디어를 뽑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이 대담의 의의를 둔다면 그것은 정녕 맛있는 수다일 수 있을 것 같다.
s*****7 2006.04.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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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에 대한 인문학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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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시간 동안 읽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만나야 하는가? 에서 시작된 두 저자의 대담은 여러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50여권의 책들이 소개되고 더 많은 이론들이 거론되면서 지식의 풀코스가 펼쳐진다.   흥미로운 주제도 있고 그렇지 못한 주제도 있었다.두 저자의 대화는 때로는 내가 옳다, 아니다 의 토론식이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도 있고 이런
"자연과학에 대한 인문학의 충고" 내용보기

꽤 긴 시간 동안 읽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만나야 하는가? 에서 시작된 두 저자의 대담은 여러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50여권의 책들이 소개되고 더 많은 이론들이 거론되면서 지식의 풀코스가 펼쳐진다.

 

흥미로운 주제도 있고 그렇지 못한 주제도 있었다.두 저자의 대화는 때로는 내가 옳다, 아니다 의 토론식이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도 있고 이런 이야기도 있더라 식의 설명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서건, 신화와 인문학적 이야기로 인간에 대해 설명하는 도정일과 유전자와 생태학으로 인간을 설명하는 최재천의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저자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겠지만, 고등학생이 논술대비를 위해 이 책과, 이책의 배경지식을 익혀 나가도 좋겠다. 시간이 있다면.

 

이야기의 시작을 행복으로 시작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한다. 저자는 여기서, 무엇이 행복인가? 라고 묻는다. 이 주제 하나만 해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책에서는 대표적인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을 예로 들면서 행복 알약이 나오는 미래의 행복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우울증 치료제가 바로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만큼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알약으로 기분좋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인가라는 지적 자체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당연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과정만크은 당연하지 않다. 

 

과학은 답을 추구하고 인문학은 질문을 추구한다는 지적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과학을 하다보면, 질문하는 법을 잊기 쉽구나. 문제를 푸는데 익숙해져서 문제가 나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보면 문제와 질문을 혼동하게 될 수도 있구나. 여기서 또 하나의 지적은, '신화는 답이 아니라 질문' 이라는 것이다. 신화의 비논리는 효과적인 질문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아직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여서, 유전자 연구의 장미빛 미래를 온 사회가 기대하던 때라는 것이 느껴진다.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한다는 절박감도 느껴진다. 특히 유전자 연구와 그 실용화에서의 위험성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지적한 여러가지 (우생학과 연결지어질 수 있고, 유전자 풀인 단일해질 수 있으며, 그 결과 취약한 인간종이 될 수 있다.) 를 알게 된 것도 매우 즐거웠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조작을 해주어야 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도 놀라웠다.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이 이렇게 구체적이고 세련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대화를 편집한 특성상 기승전결이 뚜렷한 글은 아니어서 때때로 비논리적이라 여겨지고 이야기가 흐지부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불편한 점이 하나! 계속해서 두 저자의 사진이 나온다. 진지한 분위기를 접해보라는 뜻인듯 한데, 음... 글만 있었으면 더 집중이 끊기지 않았을 듯 하다.

j***a 2010.12.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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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렇게 절절하게 행복한 ‘대담’을 나눌 벗 두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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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 read this book like ….   책을 다 읽고 나면 처음 살 때보다 약간 두꺼워진다. 행간을 읽으라는 말이 있다면, 나는 종이 사이에 공기를 집어 넣어주는 것이 독서의 맛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문학 서적은 독서 ‘진행 중’이다. 그래서 아직은 잘 모르기도 하고, 그래서 책 한 권에서 받는 감동도 크다. 장정일의 『공부』를 읽던 중에 한 친구(외국에서 오래 산)가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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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 read this book like ….

 

책을 읽고 나면 처음 때보다 약간 두꺼워진다. 행간을 읽으라는 말이 있다면, 나는 종이 사이에 공기를 집어 넣어주는 것이 독서의 맛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문학 서적은 독서진행 이다. 그래서 아직은 모르기도 하고, 그래서 권에서 받는 감동도 크다. 장정일의 『공부』를 읽던 중에 친구(외국에서 오래 ) 물었다.

- ‘인문학이 뭐야?’ - ‘?’

책의 부제로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고 적혀 있던 것이다. 인문학이 뭘까? Liberal arts? Humanities? 당시에는 영어 단어도 생각나지 않았고, ‘철학, 문학, 종교 이런 순수 학문들을 묶어 놓은 거야라고 얼버무리면서 지나쳤다. 친구가 순수 학문이란 의미조차 이해했는지도 모르면서. 인문학이 뭘까? 그리고 자연 과학은 무엇인가? 역시나 단어의 이미지란기피하는 학과, 수능 점수 낮은 과들, 취업하기 어려운 이런 것들이었다. (요즘 자주 느끼지만 나는 이렇게 솔직한 나의 무지를 드러낼 때마다 심히 부끄럽다. 누군가가 내가 리뷰를 읽고 싶은 마음이 뚝뚝 떨어지게끔 만들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이미지들을 계속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쓰고 있는지.)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자연 과학, 특히 생물학자, 최재천씨에게 배운 바는 인문학과 똑같이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 시작점, 방향은 다르다. 그러나 둘은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기에 접점이 있고 연결 고리가 있다. 과학까지 해박한 도정일씨와 인문학적 소양을 과학자의 필수 요소로 강조하는 최재천씨는 이렇게 만나야만 했다. 인문학이 말만 멋들어지게 만들어 내는 필요 없는 학문이라는 편견을 엎기 위해, 과학자는 교양도 없고 본인 연구만 파는 외골수라는 내제되어 있는 선입견을 깨트리기 위해.

 

13개의 꼭지로 되어 있다. 처음 만났으니 약간의 기싸움을 해주고 유전자를 시작으로 인간을 놓고 젓가락과 포크로 해부하기 시작한다. 어느 부위는 젓가락으로 먹을 편하다. 또는 포크가 효과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둘은 어찌나 포크와 젓가락을 다들 사용하는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상대 영역을 알고 있다. 너무 알아서 서로의 영역을 이야기해주곤 한다. 그러나 뿌리를 지키며 각자가 대변하고 있는 학문의 입장을 이야기한다. 각각의 꼭지가 끝날 때마다 결과가 수렴되는 기대는 접는 편이 낫다. 무지와 편견을 녹여주는 학계의 진실을 들을 수는 있지만 아직 정확히 검증되지 않은 과학 영역이나 세대를 걸치며 계속하여 답을 찾고 있는 인문 분야가 등장할 선까지만 가고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 부분은 저희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아직 연구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정확한 선까지만 집고 넘어가니 아쉬울 때도 있어도 나름의 정확성이 보증되기에 만족스럽다. (다만 생명 복제에 대해 나눌 책이 나오기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황우석 박사의 거짓 이야기는 언급되지 못하고 그렇게 끝났다.)

책의 구성을 조금 보자면, 뒷부분의 색인이 정말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작품이 아니었기에 가능하였을 텐데, 색인이 문장형이다. 묶어서 13개의 꼭지로 대담을 하였지만 안에서 그들이 넘나드는 영역은 어마어마했다.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대담하고 있는 사진을 보아도 종이가 책상 위에 가득 올려져 있다. 그래서 그들이 나누었던 주제들을 추려서 문장형 색인을 만들어 놓았기에 600쪽을 읽은 , 머리에 구겨 넣은 작은 지식이 사라질 염려를 덜어준다.

 

나는 『대담』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책에서 원래 행복을 충전 받지만) 인문학을 하는 사람은 해박의 정도를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고민하였고, 그러나 결국 해박이란 자기 만족, 보여주기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다시 새겼다. “나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기에 있는가?” 그리고 과학으로도 현대 인간들이 직면하고 있는가치적 문제 푸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잡식인(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 프로그램을 폄하하는 ) 아니라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 바에 가서 한잔 시키고 심각한 표정 짓기가 아니라다른 관점을 배우고 이해하기 필요하다는 , 그것을 배울 있었기에 나는 크게 행복했다.

 

 

작가 이야기와 초서는.. 스크롤의 압박으로 뺐다는...   

궁금하시다면(혹시라도?) 이 주소로~

http://blog.naver.com/metheusyun/90035225030

m********n 2009.04.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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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무겁지만 재미있는 인문학과 생물학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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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질문이다. 인문편집자가 되기로 결심하여 퇴사를 하였다.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며 지냈지만 생각보다 길어진 준비기간에 지쳐가고 있을 때 도정일 교수님의 말은 내 정체성에 대해, 내 꿈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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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질문이다. 인문편집자가 되기로 결심하여 퇴사를 하였다.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며 지냈지만 생각보다 길어진 준비기간에 지쳐가고 있을 때 도정일 교수님의 말은 내 정체성에 대해, 내 꿈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대담’에는 두 인물이 있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시종일관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는 도 교수님과 조선시대 선비를 떠올리게 하는 최 교수님. 다윈예찬론자인 최 교수님과 그런 최 교수님를 몰아세우는 듯한 도 교수님.하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는 최 교수님!(이 책에서 나는 인문학과 생물학의 자존심을 보았다.) 개성강한 캐릭터의 리듬에 가볍지 않은 주제에 두텁기까지 한 책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최장시간이 15분이라는 것,

유전자의 기본 구조는 어느 생물이든 비슷하고 이것이 지구상의 생물들이 하나의 유전자 구조에서 나왔다는 증거라는 것 등등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될 때마다 머리 속 허기가 채워지는 느낌에 흐뭇해졌다.

 

특히 인간은 ‘목표를 세우는 동물, 계획하는 동물’이다. 라는 말이 가슴에 확! 와 닿았다. 유한한 삶을 살기에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그에 닿으려 계획하는 슬픈동물. 하지만 그렇기에 작은 일에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는게 아닐까

 

팽팽한 인문학자와 생물학자의 의견에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교육의 가치관과 방법이 그것이다. 무엇을 연구하고 공부할지 스스로 그 문제를 찾아 연구할 수 있게 하는 것~!

 

 

재미있는 표현이 많았는데, 인간이 하느님을 향한 짝사랑을 한다는 표현도 그 중 하나이다. 하느님은 딱정벌레를 예뻐했는데 말이다! 그 외에 프로이트에 대해 논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잘못된 오해를 심어준 프로이트를 싫어하는 최 교수님과 어느 정도는 그의 가치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며 은근히 그를 감싸던 도 교수님.

특히 도 교수님께서 존경한다는 누렁호박을 잊을 수가 없다. 일차원 세계의 모범생이자 도 선생님의 스승인 누렁호박을 삶아 먹어버리는 도 선생님의 부인. 올해엔 꼭, 집안에 호박 선생님을 모시는데 성공하시길... 바로 어제 집에 있던 늙은 호박을 잡던 내 손이 부끄러워 붉게 물들었다.

 

마지막으로,  

남 녀는 뇌구조가 다르다는데 맞는 말인지, 그에 따라 남자가 절대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여자가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데 그게 유전적인 요인인지, 환경적인 영향인지, 생물학적 구조 때문인지 이 부분에 대해 두 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다.

 



d*****4 2009.02.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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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하면서도 ''대담''한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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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이란 논증이나 추론이 하나의 경험 세계로부터 다른 경험 세계로 전달될 경우에 일어나는 실수들 중에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란스럽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낸 정보와 지식을 무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단편화 되고 있는 지식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들의 범람은 오히려 몰이해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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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이란 논증이나 추론이 하나의 경험 세계로부터 다른 경험 세계로 전달될 경우에 일어나는 실수들 중에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다” <프란시스 베이컨>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란스럽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낸 정보와 지식을 무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단편화 되고 있는 지식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들의 범람은 오히려 몰이해와 편견을 낳는다. 자신의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무지를 드러내고야 만다. 인간과 자연, 현상과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입체적이고 총체적 접근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한 맹신과 자기기만 뿐이다.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애써 만들어 놓은 학문의 경계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 학문의 구획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그때그때 편의대로 만든 것일 뿐이다. 진리는 때로 직선으로 또 때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학문의 경계를 관통하거나 넘나드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앉아 진리의 한 부분만을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다.” <’통섭’의 서문 중에서> 여기 도정일, 최재천 두 교수의 대담은 몽매한 전문가 의식을 벗어나려는 ‘대담(bold)한 대담(conversation)’을 시도하고 있다. 지식의 대통합, ‘통섭’은 아닐지라도 소통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점이 무척이나 대단하고 소중한 일임을 잘 알 수 있었다. 인문학자와 생물학자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식의 확장, 내 안의 울타리를 걷어들여야 한다는 당위적 책임감이 든다. 어쩌면 일종의 의무 일수도 있다. 그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경계가 굳건할수록 우리는 그 구속력에 노예가 되어 혼란과 치열한 경쟁으로 서로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도정일 교수가 말하는 인문학적 소양,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우리는 선택 조건이 아닌, 필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두터운 세계는 바로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여 다양성, 다수성, 다원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로가 존중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같은 맥락이면서 합일점이라고 볼 수 있는 최재천 교수의 공생하는 인간, 공존하는 세계에 대한 생물학적 성찰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번식하면서 진화의 최고점에 서 있다라고 착각을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을 것이다. 서로는 서로에 대한 책임을 갖는 자라는 책임 윤리가 아쉬운 요즘에 ‘대담’은 우리의 현실에 꼭 필요한 담론이 될 것이다. 2005년을 현란하게 장식했던 생명 복제와 비양심적인 학자가 만들어낸 사회적 논란으로 얻은 것은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보다 근본적이고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시의 적절하게 출판된 이 책은 인문학적 상상과 열린 감각, 과학적 접근 방식과 보편성, 이 둘의 절묘한 만남으로 1+1 = ? 이란 공식을 남기기에 충분한 질문과 해답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k*******0 2006.05.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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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동물과 동물인간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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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은 오래도록 벼르던 책 중의 하나다. 명성도 명성이겠거니와, 서로 다른 지점이 교차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화합의 현장에서 벌어질 일들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최재천과 도정일의 조화라면 더욱 근사하지 않겠는가. 기대는 종종 무산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난감한 점들이라면, 간혹 내용이 어렵고, 간혹 두께가 너무 두텁게 느껴졌다는 정도.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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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은 오래도록 벼르던 책 중의 하나다. 명성도 명성이겠거니와, 서로 다른 지점이 교차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화합의 현장에서 벌어질 일들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최재천과 도정일의 조화라면 더욱 근사하지 않겠는가. 기대는 종종 무산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난감한 점들이라면, 간혹 내용이 어렵고, 간혹 두께가 너무 두텁게 느껴졌다는 정도.

 

처음엔 눈을 녹이듯 조심스럽게 열렸던 대담은 회를 거듭할수록 진해지고 깊어진다.  대담의 첫 장은 도정일이, 막장은 최재천이 맡았으며 첫장에 이어 두 인문학자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안면을 익히는 시간도

준비되어 있다. 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라고 말하던 최재천, 상승이 추락이라며 신화적 상상력을 시종 강조하던 도정일, 두 지성의 개성과 내공을 여실히 엿볼 수 있는 장이다.

 

수유 너머의 학자들이 대담의 의제를 던지고 물꼬를 틀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현장을 엿볼 수 있는 흑백사진은 진지하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는 모습을 짐작케 한다. 과학과 인문학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진화와 창조에 대해, 성과 혼에 대해, 주제는 때로는 분방하고 때로는 다소 도발적이다 싶다. 위험하다 싶을 발언도 서슴지 않는 면모에서 이것이 진정한 학자의 태도일까도 싶었다. 혹은 어떤 학자의 어떤 입장이기도 할 것이다.

 

마음에 와 닿았던 대목은 인문학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헤아리는 일,

서로 다른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은 과학과 인문학, 아니 세상이 추구해야 할 거대한 명분으로도 여겨진다. 최재천이 갈파했던 공생의 세계, 도정일이 지향하는 두터운 세계로의 한 걸음은 이렇듯 서로 다른 학문을 조화롭게 공존시키려는 노력으로도 내딛어지지 않는가 싶었고. 나는 곧 최재천의 책을 펼쳐들 예정이다. 언제가 될지.

s******s 2012.01.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