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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을 읽고싶으세요?
"모택동을 읽고싶으세요?" 내용보기
모택동비록.........감추어져있던 문혁10년간의 비사가 그 내용인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50주년에 맞춰 문서상당수가 비밀해제되었다는군요. 그래서 산케이신문이 특파원까지 보내서 수백권의 저작을 참고로 문화혁명의 순간을 재현해낸거죠. 내용은 이렇습니다. 뭐 건국후에 대약진운동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유래없는 대참사를 가져왔고. 소련은 정권이 흐루시초프로 넘어가면서 수
"모택동을 읽고싶으세요?" 내용보기
모택동비록.........감추어져있던 문혁10년간의 비사가 그 내용인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50주년에 맞춰 문서상당수가 비밀해제되었다는군요. 그래서 산케이신문이 특파원까지 보내서 수백권의 저작을 참고로 문화혁명의 순간을 재현해낸거죠. 내용은 이렇습니다. 뭐 건국후에 대약진운동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유래없는 대참사를 가져왔고. 소련은 정권이 흐루시초프로 넘어가면서 수정주의의 대두로 중공과 대립. 사사건건 충돌하고, 결국은 핵기술자마저 철수시키고(나중에자력으로개발하지만). 솔직하게 과오를 인정하고 정책을 수정했으면 됐는데, 모택동이 소련에 충격을 먹었던것이 흐루시초프의 (비공식)스탈린 비판이었거든요. 이것때문에 전세계의 공산주의 국가에 일대 파란이 일어나고 뭐 유고대통령 티토의 독자노선이나, 동유럽 공산주의국가에서의 유혈사태등이 다 이 흐루시초프의 수정주의때문이었으니까요. 스탈린비판. 그때까지는 '지도자의 무오류성'이 강조되었는데. 이게 마르크스의 사상에 있나요? 저 이사람에 관해서는 안읽어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그래서 모택동이 소련과 흐루시초프를 미워했었습니다. 나중에 흐루시초프는 당정과의 대립으로 브레즈네프에게 권력을 빼앗기게 되고, 수정주의때문에 약해진 철의장막의 결속을 다지려던 소련은 68년에 체코의 프라하에 무력침공하게되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하려던 체코. 알렉산드르 두브체크와 그를 따르는 인민들. 처참한 유혈사태. 그리고 다시 철의장막을 달구던 열기는 차갑게 식어버렸고. 이 시도가 성공했더라면 결국에는 소련도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그리고 세계가 변했을지도 모르죠. 지금처럼 세계화 운운하는 말은 애시당초 나오지 않았을지도.(혹시 저도 얼렁뚱땅 못태어나는거 아니었을까여? -_-;) 모택동은 그래서 인정할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자신을 부정한다는것은 결국 중국의 좌경사회주의를 부정하는거고 수정주의에 우경이 되어버리니까요. 자기자신을 스스로 숭배하고 있는데 거기에 오류가 있다면요? 마치 기독교에서 성서에 오류가 있다고 확인되는거나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저는그문제에중립적입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2000만 인민의 아사. 거세지는 주위의 압력. 어쩔수 없었죠. 형식적으로 주석직을 유소기에게 승계시키고는 뒤에서 혁명을 준비합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어린 학생들을 홍위병이라는 이름으로 동원해서 사회의 우경화를 뿌리뽑으려 한거죠. 홍위병들에게는 수도를 구경시켜준다....뭐 이런식으로 장거리 교통편도 무료로 해주고. 농촌의 일손들이 생업을 팽개치고 문혁에만 집착하게 되고. 중국사회에는 우리식으로 노인을 공경하는 풍습이 없다고 들었는데(젊음을숭배한다고), 급격한 발전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문화혁명 때문인듯 싶고. 유럽에서도 68혁명뒤에 존댓말이 사라졌다던데요. 여하튼 처음엔 모택동의 세번째 아내였던 강청과 장춘교등 후의 '사인방'을 이용. '해서파관을 평한다'라는 첫 일격을 가합니다. 황제에게 민심의 이반을 진언했다가 관직을 잃게된 해서라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 해서가 수정주의에 우경이고 이시대의 해서는 누구다! 하는식으로. 저자인 왕흥?을 노린건데, 이사람이 북경시장 팽진의 사람이고 다시 또 팽진은 유소기-등소평의 사람이니까. 모택동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수정주의자라는 의심이 드는 인물들을 하나둘씩 숙청해나갑니다. 얼마안가 모택동 자신이 '사령부를 포격하라'라는 대자보를 발표함으로써.(사령부는 유소기와 등소평입니다)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아래 벌어지는 일련의 숙청과 사태들이 모택동의 뜻이란걸 인민모두가 알게되고. 겉잡을수 없이 불붙는 홍위병. 수많은 건국의 인물들이 자리를 잃고 수모를 당하죠. 목숨도 잃고.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공공연히 얘기한 한국전 총사령관이었던 팽덕회, 인민의바다 전술을 버리고 군을 현대화하자던 나서경. 비참한 최후를 맞은 유소기등등 끝없는 숙청. 누구든 이용하지만 누구도 힘을 독점하게 놔두지 않는 모택동의 치밀함(혹은 변덕스러움). 그리고 임표의 대두. 한국전참전, 4야전군사령관이었던가요. 모택동의 신격화로 모택동의 눈에들어 2인자자리까지 오르게 되는데, 책에 수도없이 등장하는 모택동의 균형책으로 결국 4인방에게 밀리고 모택동의 눈에 나버려서, 쿠테타를 시도하려다 실패하고 소련으로 도망치다가 몽골에 추락해 사망하게되죠. 문화혁명도 나중엔 홍위병끼리 투쟁하고 인민군을 약탈하는등 사태가 겉잡을수 없게되자 그제서야 모택동은 '나는 이제 안한다'고 손을 놔버리는데요. 하지만 강청등의 4인방이 권력을 얻기위해, 탈권투쟁의 일환으로 문혁을 이용해 정적들을 계속해서 숙청해나가고. 모택동의 죽음. 이후 4인방의 상해민병과 인민군간에 내전까지 갈뻔했는데 군원로인 섭검영이 주석직인 화국봉과 치밀하게 준비해왔던 4인방체포작전을 거행하고, 4인방은 허망하게 잡혀 문혁의 끝과 모택동의 죽음으로 한 시대는 끝나게 되는거죠. 예전에 섭검영에게 누군가 4인방을 이대로 놔둘거냐고 물었는데,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향했다고 하죠. 모택동이 죽은 다음이다! 라는뜻. 보면서 모택동은 한고조 유방이, 등소평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생각나던데요. 결국 살아남는것이 이기는것이다. 마치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처럼 등소평의 속내는 일절 묘사되어있지 않아 더욱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그렇겠지? 정도 상상만 할뿐. 유소기도 죽었고 실무가로서의 재능으로 주은래를 따를사람은 등소평밖에 없다는 평가에 주은래 와병중에 등소평은 다시 권력의 최일선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천안문사태(주은래의죽음을애도하던군중들이'반문혁반4인방'을외친사태) 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한번 실각하게되죠(정말그랬는지등소평만이알테고). 그리고는 모택동사후 다시 화려하게 등장. 그 작은 체구에 전혀 속을 알수없는. 화국봉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새로이 권력을 잡게되고요. 모택동의 문혁은 분명 잘못이었다고, 하지만 업적이 첫번째. 과오는 두번째였다고. 공식적인 평가를 남기고 현대중국을 만드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게됩니다. 보다보면 상당히 짜증이 날수도 있습니다. 끝날듯 끝날듯 이어지는 문혁. 모택동의 병적인 변덕. 상상하긴 싫지만 모택동이 여자로 태어났으면 그야말로 경국지색 아니었을까요? 여하튼 재미있는 책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건설 이후의 중국의 사회문화는 이 두권으로 상당히 파악이 되니까요. 문혁이 워낙에 베일에 가려져있어서 그렇기도 하거니와요.
t******y 2002.0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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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 현실중심... 그 사이에서 죽어나는 인민들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념과 현실중심... 그 사이에서 죽어나는 인민들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내용보기
이책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각인되는 건... 아마도 권력을 둘러싼 암투의 비정함과 그 권력 암투에 이용되고 치이는 인민들의 처지일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정치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정치의 진정한 목표인지를 알게 만드는 책이 바로 모택동 비록이다. 진보와 보수를 이야기할 때, 자주 회자되는 문장이 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에 망한다" 이말
"이념과 현실중심... 그 사이에서 죽어나는 인민들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내용보기
이책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각인되는 건... 아마도 권력을 둘러싼 암투의 비정함과 그 권력 암투에 이용되고 치이는 인민들의 처지일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정치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정치의 진정한 목표인지를 알게 만드는 책이 바로 모택동 비록이다. 진보와 보수를 이야기할 때, 자주 회자되는 문장이 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에 망한다" 이말을 잠시 인용해 보면, 공산주의는 너무나 관념화 이론화된 이념에 망하고 자본주의는 이상을 잃고 너무나 현실중심적인 잿밥에 망한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본주의는 지나친 돈 중심의 사고로 인해서 인간성 망각 등 물질 만능의 부조리를 양산해 냈다면, 공산주의는 지나친 이념중심으로 또한 자율적 인간성을 억제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극과 극의 통한다고... 극좌와 극우는 이런 면에서 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관념적인 인민대중은 이미 황제의 천한 백성들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모택동은 과연 인민대중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인상깊은구절]
조반유리 : 항거에는 이유가 있다.. - 이렇게 섬듯한 말인지 몰랐다. 정말 조심해서 사용해야 겠따 ㅋㅋ
p********a 2003.05.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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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는 질서의 원천이다
"무질서는 질서의 원천이다" 내용보기
개인적인 고백으로 시작해야 하겠다. 지금부터 7-8년전, 외시 과목에 문화사(내용상 세계사)가 있던 시절이었다. 중국 현대사는 고시용 교과서에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노트 형식의 인쇄물로 대신 공부했었다. 다소 허술한 인쇄체긴 했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었는데, 난 두가지 이유에서 그 인쇄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첫째, 한자로 씌어진 중국 인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예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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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고백으로 시작해야 하겠다. 지금부터 7-8년전, 외시 과목에 문화사(내용상 세계사)가 있던 시절이었다. 중국 현대사는 고시용 교과서에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노트 형식의 인쇄물로 대신 공부했었다. 다소 허술한 인쇄체긴 했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었는데, 난 두가지 이유에서 그 인쇄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첫째, 한자로 씌어진 중국 인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예컨대 이런 이름들이다. 임표(林彪), 섭검영(葉劍英), 요문원(姚文元). 고맙게도 모택동(毛澤東), 주은래(周恩來), 등소평(鄧小平) 같은 주연들은 그나마 읽기 쉬운 한자라는게 외려 고마웠다. 둘째, 기본적으로 중국 현대사에 대한 상식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요약이란 내용을 한번쯤 본 자에게나 의미가 있는 법이다. 내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종이뭉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문화대혁명이라는 말만 나오면 왠지 어딘가로 숨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대학 4학년때 때마침 문혁을 소재로 리포트를 쓸 기회가 있어서 책 한권을 1시간만에 훑어낸 적이 있긴 했지만, 장님 코끼리 더듬기이긴 마찬가지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알지 못해도 기자가 되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물론 외시 문제에도 문화 대혁명에 대한 문제는 나오지 않았으니 그 때문에 외시에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숨겨져 있던 지적 호기심에 다시 불이 당겨진 건 기자 생활을 하면서였다. 정치부 기자 생활도 어느덧 햇수로 2년째를 맞고 있던 2000년 2월. 총선을 목전에 두고 "바꿔"가 선거판 최고의 인기곡이자 슬로건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사상 최초로 시민단체가 낙선운동을 전개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 공동정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는 총리직을 사임하고 DJ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당시의 정국에 대해 JP가 공항에서 던진 한마디. "<모택동 비록="">을 보라"였다. 무조건적인 바꿔 열풍과 낙선운동을 문화대혁명 당시의 조반유리(造反有理) 구호에 빗댄 말이었다. 그래. 조반유리(造反有理)부터 풀어가면 되겠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반대를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뜻인데, 모택동은 바로 이 조반유리라는 논리로 홍위병들의 폭동에 가까운 소동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했다. 유소기 비판의 시작도 '공작조를 보내 홍위병들의 소동을 진압하려 했다'는 명목에서 비롯됐다. (**나 정도 수준의 중국 현대사 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잠깐 유소기(劉少奇)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 유소기는 49년 중국 건국 당시 부주석으로 있다가 모택동이 추진한 급진적인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모택동을 대신해서 국가주석의 자리에 올랐다. 대약진운동의 폐해를 고치는 과정에서 경제정책에 수정을 가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모택동의 불신을 샀다) 물론 홍위병들의 폭동은 유소기로 대표되는 "질서"를 향한 것이었다. 당시 당료와 관료는 모두 유소기를 필두로 하는 실무파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택동은 기존 질서 전체, 곧 유소기파 당료와 관료 모두를 상대로 한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문화대혁명이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모택동이 재기를 위해 꾸민 일"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얘기니까 생략하기로 하자. 다만 문제는 그 방법론. JP도 그 방법론에 주목하고 "모택동 비록을 보라"고 언급했다. 모택동이 권력투쟁을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면 그 목표는 당연히 유소기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유소기가 실각한 것은 문화대혁명이 시작하고도 2년 이상 흐른 뒤였다. 모택동은 힘없는 당료들을 먼저 제거하면서 유소기의 팔다리를 하나씩 잘라 나가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유소기가 공식적으로 실각할 당시에는 이미 그에게 권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바로 대중선동을 통한 외곽때리기. JP가 이해한 낙천 낙선운동의 본질이었다. 말하자면 JP 자신은 유소기에, 그리고 DJ는 모택동에 대입시킨 독해였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JP가 대입될 자리는 오히려 한평생 모택동의 눈치만 살피며 2인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은 주은래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2000년 총선이 끝난 뒤, DJP 공조는 곧바로 복원됐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DJP 공조가 깨진 것과 관련해서 일부에서 '위장이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사람들은 JP가 주은래에 대입되는 편이 더 적절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관심은 다시 등소평이다. 실제로 독자들의 손이 쉽게 이끌리는 것도 <모택동비록>보다는 <내 아버지="" 등소평="">이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 한 시대가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시대는 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은 등소평이 무대 한켠에서 모택동과 주은래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누가 등소평일지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 등소평이 할 일이다. 지난 시대의 청산과 새 시대의 개막이라는....
k****9 2001.1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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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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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형식으로 상당히 현실적인 측면으로 다가간 모택동 이야기. 문화혁명과 대약진 운동에 대한 일말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충분히 만족되는 내용이다. 물론 모택동의 혁명적인 측면이 아닌 혁명의 가해자적 입장에서 서술되었다고 하는 편이 어울리지만.. 그의 지도력과 카리스마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높이 평가하고 사실대로 말해 그같은 지도자는 한세기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 한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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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형식으로 상당히 현실적인 측면으로 다가간 모택동 이야기. 문화혁명과 대약진 운동에 대한 일말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충분히 만족되는 내용이다. 물론 모택동의 혁명적인 측면이 아닌 혁명의 가해자적 입장에서 서술되었다고 하는 편이 어울리지만.. 그의 지도력과 카리스마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높이 평가하고 사실대로 말해 그같은 지도자는 한세기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 한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철권통치는 많은 인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었으며, 어찌보면 중국의 가능성을 후퇴시키기도 했다. 특히 문화 혁명의 경우는 설익은 젊은이들을 광기로 휘어잡아 마구잡이로 행해진 뒤틀린 혁명이었던 것같다. 그들 자신의 전통문화를 경시하고 그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한낯 쓰레기 취급하며 규격화 공장화한 그 혁명이 오늘날 중국에 남겨준게 과연 무엇인가? 중국 문화의 자존심에 생채기만 남긴 혁명을 오늘날 역사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면 충분히 알수 있을 것이다. 책 자체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괜찮은듯 하다.
a******i 2003.05.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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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 그 넓고 깊은 권모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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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비평들은 이 책을 새로운 삼국지를 대하듯 하지만 나는 사뭇 다른 견해를 가진다. 내가 읽었던 삼국지는 어쩌면 동화같고 어쩌면 환타지 소설같았지만 그 삼국지에 담겨있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로 내가 처한 어느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교훈집같다고나 할까 하는 것이었다. 모택동비록을 읽으면서 내가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러고도 중국이 망하지 않을까 하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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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비평들은 이 책을 새로운 삼국지를 대하듯 하지만 나는 사뭇 다른 견해를 가진다. 내가 읽었던 삼국지는 어쩌면 동화같고 어쩌면 환타지 소설같았지만 그 삼국지에 담겨있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로 내가 처한 어느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교훈집같다고나 할까 하는 것이었다. 모택동비록을 읽으면서 내가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러고도 중국이 망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었고 두번째 든 생각은 역시 일본넘들이 쓴 중국이야기구나 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중국을 비열하고 중상모략을 일삼는, 음흉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시각이 이 책의 행간이 담겨있는 듯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 느꼈던 궁금함중의 하나인 문혁이 도대체 무었이고 왜 일어났던가? 하는 의문을 조금이나마 달랠수 있어서 며칠을 두고 야금야금읽은 보람이 있었다.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의 잇달은 실패로 실각할 위위협에 처해졌던 역전의 용사 마오가 비장의 무기로 내세운 문화 대혁명.. 그리고 그걸 이용하는 사인방. 모든게 정치적이다. 권력의 암투다. 진정 인민이 원하는 것이 아닌, 사상적인 혈투로 서로가 맞다고 우기는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보는 듯하다. 단지 우리의 경우는 그렇게 격렬히 일어나지 않았을 따름인것 같다. 새마을 운동과 비견하는 것은 무리일까? 사상적 혁명으로 과거와 단절하고 자 하였던 중국의 문혁, 전통과 경제적후진성을 탈피하고자 하였던 새마을 운동은 겉모습은 다를지 모르지만 위정자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자 과거와는 단절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목적을 위해서는 국민의 의견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인권을 무시하고 오로지 앞만을 바라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무자비하게 철로를 짓밟는 것은 어느하나 다른게 없지 않은가? 권력하나를 탈취하고자 정략, 모략, 합종연횡을 하는 위정자들... 김종필이 이 책을 언급하였다하니 그도 그속에 들어 있는 인물이 아닐까? 이책의 어떤 인물에 자신을 대입하고 있을까? 최고의 지존 모택동? 아니면 주은래? 등소평? 아니면 강청등 4인방? 자못 궁금해진다.
g******r 2004.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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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공산국가 내부에서의 권력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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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비록'은 문화대혁명의 시작부터 끝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대약진 운동의 실패 후,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던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면서 당 중앙에 있던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정치적 위치를 확립시키기 위한 운동으로 이 책에서는 규정하고 있다. 이 책에서 두드러지게 묘사하고 있는 것은 모택동이 이상을 꿈꾸는 젊은 층을 이용해서 어떻게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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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비록'은 문화대혁명의 시작부터 끝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대약진 운동의 실패 후,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던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면서 당 중앙에 있던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정치적 위치를 확립시키기 위한 운동으로 이 책에서는 규정하고 있다. 이 책에서 두드러지게 묘사하고 있는 것은 모택동이 이상을 꿈꾸는 젊은 층을 이용해서 어떻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신격화하는 장면들이다. 이 책에서 모택동은 상당히 술수가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학생을 동요시키는 과정이라던가, 당 중앙에 있던 유소기와 등소평을 제거하는 과정이거나, 주변의 정치가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가 잘드러나 있고, 그들의 심리묘사도 잘 되어 있다. 하지만, 너무 이런 쪽으로만 살피다 보니(특히 저자가 일본의 보수 신문인 산케이 신문이라서 더욱 그러하기도 했지만..), 개인의 권력욕으로만 묘사한 것 같다. 물론 문화대혁명은 모택동이 소련의 수정주의에 두려움을 갖게 되면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 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문화대혁명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왜 열정적으로 참여했을까. 단순히 모택동의 획책에 빠져서였을까. 그들이 배격하고자 했던 것은 정말로 무엇이었을까하는 물음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진행되었던 60년대 후반은 전세계적으로 저항의 시대였다. 유럽의 68운동, 미국의 히피 운동 및 흑인 인권운동이 이 때였고, 남미에서 체 게바라가 혁명을 이끌었던 것도 이 때였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반대로 체제강화적인 성격을 가진 문화대혁명이 있었던 것을 보면, 단순히 모택동이 학생을 선동해서 일어났다고만 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연초에 이 책을 어떤 정치인이 권했다고 하는데, 권모술수로 민중을 현혹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권했는지 궁금하다.

[인상깊은구절]
모택동의 접견은 이때 이미 7회째를 헤아리고, 모두 1천만명에 가까운 홍위병에게서 환희와 찬양의 소리를 계속 들어왔다. 모택동의 경호관이었던 두 사람이 쓴, '모택동 최후의 10년-경호대장의 회상'에 의하면 필자 중 한사람인 진장강은 이 때, "주석님, 접견할 때 반드시 서 있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하고 모택동을 걱정했다. 모택동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네들처럼 앉고 싶을 때 앉을 자유가 나에겐 없네. 앉으면 머리가 낮아져서 내가 보이지 않게 되지. 고단해도 서서 그들을 대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하지 않으며, 병아리들은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것 아닌가." 중국 공산당 조직의 중추를 장악하고 있는 국가 주석인 유소기나, 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인 등소평 등을 제거하기 위해, 모택동 자신이 젊은이들의 열정에 불을 붙이고, '조반유리(造反有理-항거에는 이치가 있다.)'를 열심히 고무하여 생겨난 홍위병도 지금은 '병아리'라고 불리고 있었다.
YES마니아 : 골드 y*****j 2001.03.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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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에 관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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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케이신문 특별취재반의 은 문화대혁명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다룬다. 내면의 찐득찐득한 상처보다 발빠른 다큐멘터리적 구성이 돋보이는 것은 1999년을 전후로 쏟아진 문화대혁명기의 전기와 회고록에 힘입은 바 크다. 이를 통해 풍문으로만 떠돌던 몇몇 장면들을 모자이크처럼 짜맞추는 것이 가능해졌다. 모택동이 22년 만에 두 번째 부인 하자진과 여산에서 재회하여 회포를 푸는 장면
"모택동에 관한 이야기들" 내용보기
산케이신문 특별취재반의 <모택동비록>은 문화대혁명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다룬다. 내면의 찐득찐득한 상처보다 발빠른 다큐멘터리적 구성이 돋보이는 것은 1999년을 전후로 쏟아진 문화대혁명기의 전기와 회고록에 힘입은 바 크다. 이를 통해 풍문으로만 떠돌던 몇몇 장면들을 모자이크처럼 짜맞추는 것이 가능해졌다. 모택동이 22년 만에 두 번째 부인 하자진과 여산에서 재회하여 회포를 푸는 장면이나 세 번째 부인 강청이 실크잠옷 차림으로 수입비디오를 보다가 체포되는 장면은 잘 다듬어진 단편소설 같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모택동이 있다. 모택동과 임표, 모택동과 주은래, 모택동과 등소평, 모택동과 4인방, 이런 식으로 파트너를 달리 하며 시소를 타는 형국이다. 파트너가 바뀔 때마다 모택동의 새로운 면이 부각되며, 그것들이 쌓여 모택동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눈에 선한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모택동의 죽음과 <역사적 문제에="" 관한="" 당의="" 결의="">라는 문건을 접하게 된다. 1981년 채택된 이 결의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모택동의 과오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공산당의 지도자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무오류성의 신화도 깨어졌다.

[인상깊은구절]
천하대란의 시절을 직접 체험한 홍위병 세대가 문화예술의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문화대혁명은 광기와 부도덕 그 자체로 전락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진개가(陳凱歌)와 장예모(張藝謨)의 영화들, <사람아 아,="" 사람아!=""> 같은 소설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린 자의 고통을 살갗을 벗겨내듯 생생하게 형상화했다. <낙타 상자="">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 노사(老舍)가 손자뻘인 홍위병들에게 학대당한 후 "나는 우리들의 나라를 사랑했다. 그러나 누가 나를 사랑해주었던가?"라고 슬퍼하며 강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그 시절의 참담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z******8 2001.04.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