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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한 사전>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바로 이 장면입니다. 12년이라는 세월을 껑충 뛰어넘어, 부부가 된 마지메와 가구야 두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장면.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화하는 계절과 나날의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는 것을 자연스레, 스며들듯이 알게 하는 이 장면이 저는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아아, 연애하고 싶어! 결혼하고 싶어!를 외치고 있는 이즈음, 마음으로 곱씹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죠. 연애하고 싶어! 결혼하고 싶어!를 외치는 스물일곱, ‘그렇다면 결혼이란 무엇인가’ 하는 거대한(?) 철학적(?) 고민도 나날이 깊어만 갑니다. 주말 부부는 삼대가 나라를 구해야 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나, 집에 있어 봐야 아내 얼굴이나 보고 있어야 하니 차라리 회사 부하 직원을 데리고 등산을 가는 편이 낫다는 한 직장 상사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먼저 결혼한 언니들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혼, 웬만하면 하지 마. (왜죠?) 최대한 늦게 하면 할수록 좋지. (얼마나 더 늦게?) 여자 쪽은 확실히 더 손해인 것 같기도 해. (아,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 가운데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내가 보고 있는 이것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인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신령스러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광경들도 분명, 이따금 등장하기는 합니다. 션과 정혜영 커플이 그렇고(너무 멀죠), 저는 한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별로 무겁지도 않은 아내분의 가방을 한 손에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아내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느 할아버지의 훈훈한 뒷모습을 목격한 적도 있어요. 아, 예고편만 보고도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있네요. 무엇보다,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L선생님 같은 남편도 이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D까지 왔다갔다 하시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 하고 누군가 물었을 때, '아내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좋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사람 말이죠. (이 시점에서 이야기를 듣던 여직원들 일동은 꺅-꺅- 거리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기차역의 초밥집에서 손수 초밥을 먹여 주던 사랑에 넘치는 손길과, 손을 꼭 잡고 기차를 타러 가는 발걸음 속 설렘이 기억에 진하게 남았더랬습니다. 아아, 도대체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요. 저는 그게 정말 궁금했습니다. 서로 얼굴도, 목소리도 그저 지긋지긋해져 버린 관계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이따금 모두가 눈치챌 정도로 은근한 애정이 넘쳐 흐르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러한,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흔히 할 법한 고민의 바다를 헤엄치다가, 저는 <아내를 닮은 도시>를 만났던 것입니다. 서론이 좀 많이 길었죠.
이 책의 짜증나게 귀여운 점은, 여기에 실린 글 거의 전부가 기-승-전-아내로 귀결된다는 것이죠. 한 작가가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으로 낸다고 하면 예쁜 사진도 있을 것이고, 직접 찍은 것이면 더 좋을 것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그곳에서의 나날들을 풍부하게 묘사해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되는데, 책을 딱 펴서 작가의 머리말을 읽자마자 나오는 것이 전형적인 사랑꾼의 염장질이라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숫자 중에서 2가 제일 좋다. 아내는 그냥 좋아서 숫자 5를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류블랴나에 있는) 우리집 앞에는 25번 버스가 지나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숫자와 아내가 좋아하는 숫자의 조합 25. 아침저녁으로 25를 보다가 어느 점심에 (또 다시!) 아내를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류블랴나가 아내를 닮았구나. 아내가 류블랴나를 닮았구나. 류블랴나의 거리를 걸으면 아내 생각이 절로 난다. 그래서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아내에 대해, 류블랴나에 대해, 또 우리에 대해 쓴다. 류블랴나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 뭐라도 쓸 수 있어 행복하다. 무엇보다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 (18) 아, 아직 짜증내기엔 이릅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요. 이 책은 기-승-전-아내의 구성을 자랑하는, 한 사랑꾼 남편의 팔불출 같은 에세이입니다. 여름 밤이 유달리 길게만 느껴지네요. 이 책을 읽다 보면 또, 이런 부분도 있어요. 남편 3원칙 1. 남편은 아내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아내를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2. 원칙1에 위배되지 않는 한, 남편은 아내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원칙1, 2에 위배되지 않는 한, 남편은 자신을 지켜야 한다. (59) 이쯤되면 이 책이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에 대한 이야기인지, 한 부부의 사랑 이야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작가가 직접 찍은 아름다운 류블랴나의 풍경들도 잔뜩 담겨 있기는 합니다. '녹용군'이라는 귀여운 공룡이 사진마다 강력한 존재감으로 고개를 내밀기도 하구요. 언제 어디서나 눈을 마주치면 '예의상' 인사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문화를 간직한 사람들이며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류블랴나의 상징인 용 조각상, 딸이 다니게 된 슬로베니아 초등학교의 따스함이며 딸을 통해 친구가 된 슬로베니아 가족 등 소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슬로베니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게 됩니다. 블레드 성의 적막한 아름다움을, 그곳을 걸으며 온몸으로 느껴 보고 싶어집니다. 아내분이 발견했다는 정말 맛있는 도넛도 맛보고 싶고, 작가분이 자주 들른다는 재즈 음반 가게에도 가보고 싶어져요. 티볼리 공원 숲길의 좋은 향도 맡아 보고 싶고 잘레 공동묘지에도 가보고 싶어진다구요. 하지만 거기에서 잠시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아, 뭔가 결정적인 것이 빠졌어. 류블랴나에 가고 싶은 이유 중에서 뭔가 결정적인 것이 하나, 빠져 있어. "아내"
그래. 아내가 빠져 있어. '아내'가 그곳에 없잖아. 누군가가 묻는다. 도시 류블랴나Ljubljana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이렇게 대답해본다. 그럼요! 슬로베니아어로 'ljubiti(류비티)'가 '사랑하다'라는 동사이고, 'ljubezen(류베젠)'이 '사랑'이라는 명사니까 당연히 이 도시의 어원도 '사랑'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류블랴나는 '사랑의 도시'라는 뜻이 아닐까요? 낭만적이잖아요. 사랑의 도시. 아님 말고요. 누군가가 묻는다. 당신은 도시 류블랴나를 다른 어떤 것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 있나요? 요렇게 대답해본다. 그럼요! 류블랴나는 아내를 닮은 도시 같아요. 작지만 아름답고 깨끗하고 친절한 느낌이거든요. 어때요? 제 아내와 비슷한가요? (...) 난 그렇게 믿고 산다. 류블랴나는 사랑의 도시라고. 아내는 작지만 아름답고 깨끗하고 친절하다고. (93-95) '류블랴나'를 '류블랴나'이게 하는 것, 저는 그게 궁금했습니다. 류블랴나로 하여금 이 도시를 '사랑의 도시'라고 호명하게 만드는 것. 그저, 유럽의 여느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가 아니라 단 하나의 고유한 장소로 만드는 것. 해서, 한쪽은 얼굴이나 목소리만으로 이미 지긋지긋한 반면 다른 한쪽은 손길 하나, 발걸음 하나에서 은근한 애정이 넘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어쩌면 그에 대한 대답을 찾을 것도 같았습니다. 성안에는 우리 일행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그 적막함은 아름다움을 배가시켰고 난 잠시 성 위에 서서 호수를 감상했다. 입은 다물 수 없었지만, 다물지 못한 입 밖으로 말은 나오지 않았다. 가족들이 생각났다. 아내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가장 오래 남아 있었다. 언제부턴가 힘들 때도 아름다움 앞에서도 떠오르는 사람은 항상 아내였다. (...) 그래,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사랑하는 아내에게 꼭 이 아름다움을 선물하자! 류블랴나로 돌아오는 길, 아내에게 블레드 호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아내와 함께 블레드 호수를 보면, 블레드 성에 오르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그리고 호수 주변을, 성 주변을 거닐고 싶었다. 아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함께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 역시 아름다움 앞에서 생각나는 남편이고 싶었다. (84-86) 이 작가님식 표현에서 찾은 제 나름의 해답은 '아름다움 앞에서 생각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가 있다니 아내에게 보여 주고 싶다, 좀 더 맛있는 도넛을 먹여 주고 싶다, 기쁘게 해주고 싶다, 이미 주었던 상처를 지울 수는 없겠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잘해주고만 싶다, 다시 결혼하고 싶다, 등등등. 요는, 그 '마음'이겠지요. 그러니까, 혼자만을 위한 아름다움은 그저 그것으로 족하고, 그것으로 완결된 것이겠지만,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아름다움은 계속 이어지니까요. 누군가와 함께 본 영화, 같이 걸었던 길, 같이 먹고 싶은 도넛, 같이 듣고 싶은 음악, 그러한 것들 말이죠. 아름다움 앞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기에, 류블랴나는 류블랴나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류블랴나의 아름다움은, 그 아름다움을 건네주고 싶은 사람을 위한 아름다움,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혼자만의 장소가 아니기에, 더더욱 특별해지는 곳. 대개는 '사랑하니까' 잘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마련이잖아요. '사랑하니까' 좋은 곳에 데려가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고 싶다거나, '사랑하니까' 더 맛있는 도넛을 먹여 주고 싶다거나,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로 이어지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더 맛있는 도넛을 먹여 주고 싶다', 고 생각해서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고 싶어서',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러니까, 아름다움 앞에서 한 사람을 생각하는 일, 이 사랑에 물을 조르륵 조르륵 부어 주는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여름은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 저도 저만의 '류블랴나'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류블랴나'를 만들기 위한 준비물은, '아름다움 앞에서 생각나는 사람'이겠죠. 결혼을 하게 된다면, 매일 매순간, 아름다움을 마주했을 때, '남편'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을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의 도시를 발견한다면, '남편을 닮은 도시'라고 불러 주고 싶어요. 와, 이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꿈은 크게 꾸는 편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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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아마도...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사상 때문에 쉽게 오갈 수 없는 북한 정도 아닐까? 물론 이건 내 생각이지만. 한때 공산주의였지만 지금은 아닌 나라가 제법 있다. 그 중 하나가 슬로베니아 아닐까? 나는 슬로베니아라는 나라보다는 그게 왠지 슬로바키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슬로베니아보다는 슬로바키아란 단어가 내가 학교 다닐 때 더 자주 들었고 외웠던 나라였으니까. 그래서 검색해 보았다. 슬로베니아가 어떤 나라인지. 슬로베니아는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에 위치한 동유럽 국가로, 공식 국명은 슬로베니아 공화국(Republic of Slovenia). 수도는 류블리아나, 공용어는 슬로베니아어다. 슬로베니아는 원래 1945년 요시프 티토가 사회주의 이념하에 만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속해 있던 국가였으나, 1980년 티토가 사망하고 80년대 말 사회주의의 종말로 유고연방이 해체되기 시작하자, 1991년 크로아티아와 함께 각각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에 유고연방의 맹주 역할을 했던 세르비아의 공격이 시작되고 이때부터 유고를 구성하던 6개 연방국가 사이에 치열한 내전이 전개됐다. 3년 5개월간 지속된 이 내전은 결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무력 개입과 미국의 중재안인 데이튼 협정이 1993년 맺어지면서 일단은 종료됐다. 이렇게 찾아보니 슬로베니아가 오스트리아 밑에 헝가리 옆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내가 슬로베니아란 나라에 대해 알고 싶었던 이유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아내를 닮은 도시를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니.. 내 남편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면서도 남편에게 이런 걸 강요하지는 말아야지 했다.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마누라가 어떤 도시와 닮았는지 물어보는 것조차 남편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서.. ^^ 어찌 되었건 슬로베니아의 수도를 닮았다고 말하는 남자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 책은 여느 여행 책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든다. 이건 아마도 작가 자신이 슬로베니아에 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행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기억만 남겨서 추억으로 가슴에 새기지만 삶은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에서는 미쳐보지 못했던 거리나 음식 그리고 지역의 관광지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녹색 공룡 인형을 모든 사진에 함께 넣어 인형이 바라보는 슬로베니아를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책을 보면 외국에서 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우리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게 과연 좋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음식이나 환경에 유연한 스타일은 아니니.. 이렇게 책으로 나마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양한 외국의 도시를 가 본적 없고, 여행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문득 생각해 본다. 나를 닮은 도시는 어떤 곳일까 하는... 도시가 아니어도 좋다. 순박한 시골의 읍면도 좋지만... 아무래도 읍면보다는 도시 쪽에 더 가까울 수 있겠다. 내가 태어난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도시를 사랑하고 그곳에서 사는 것. 분명 용기가 필요할 텐데.. 슬로베니아란 나라에서 그곳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 아마 그 자체로 행복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아는 나라가 아니라.. 읽는 내내 흥미로웠지만.. 책이 너무 얇은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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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닮은 도시>는 난다의 걸어본다 네번째 이야기로 슬로베니아의 수도 '루블랴나’를 테마로 한 에세이이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소설가 강병융은 <아내를 닮은 도시>라는 책제목처럼, 사랑하는 아내와의 추억과 흔적이 담긴 도시 루블랴나를 소개한다. 슬로베니아어로 A부터 Z에 이르기까지 해당 알파벳마다 단어 하나씩을 선택하여 이를 테마로 그가 사는 류블랴나의 곳곳을 소개하고 있다. "류블랴나가 아내를 닮았구나. 나애가 류블랴나를 닮았구나. 류블랴나의 거리를 걸으면 아내 생각이 절로 난다. 그래서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아내에 대해, 류블랴나에 대해, 또 우리에 대해 쓴다. 류블랴나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 뭐라고 쓸 수 있어 행복하다. 무엇보다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 강병융은 루블랴나 성에 도시면 도시가 한눈에 보이며, 도시의 아름다움, 도시의 소박함, 도시에서의 추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절로 생각난다고 말한다. '성의 역사는 결혼과 닮아 있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더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 아내와 결혼을 다시 하고 싶다는 소설가 강병융은 진정한 '로맨티스트'가 아닐까? "성의 역사는 결혼과 닮아 있다. 오랜 시간 남으로 살다가 같은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하고, 행복해하며 서로 의지하다가, 전쟁을 겪기도 하고, 서로 상처받기 싫어 딱딱한 마음의 갑옷을 입기도 하고, 그 시절이 지나면 서로 위로하고 치료도 해주고, 때론 감옥처럼 답답하게 여기다가, 결국은 아름답게 끝맺고 싶어하는 것. 종국에는 평화롭고 사랑스러움으로 귀결되었으면 하는 것. 그런 게 결혼 아닐까?"
아내와 함께 류블랴나에 오기 전, 강병융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음을 토로한다. 하지만 류블랴나 호수를 다시금 보면서, 이 아름다운 곳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름다움 앞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까? "2013년 2월 1일 금요일 오전, 난 블레드 호숫가를 걸었다. 호수는 아름다웠지만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호수 바람은 적당히 쌀쌀했다. 나는 밖을 볼 여력이 없었다. 내 안을 보기에도 시작이 부족했다. 서울에서 고민거리들을 잔뜩 싸들고 슬로베니아로 피신했던 터였다. 다행스럽게 류블랴나 대학에서 내게 꽤 그럴듯한 핑곗거리를 만들어줬다. 류블랴나로 도망 온 꼴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전문가 초청 특강이라는 명목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을 잠시나마 떠나고 싶었던 시간에 딱 맞춰 나를 불러준 셈이었다." "성에서 다시 내려가는 길, 호수가 점점 작게 보였지만 괜찮았다. 다시 호주 주변을 조금 거닐었는데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바람은 꽤 시원했다. 거짓말처럼 서울에서 힘들었던 일들이 블레드 호수 위로 펼쳐졌다. 난 그것들을 호수 위에 그대로 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어깨가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신파적인 결심을 했다. 그래,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사랑하는 아내에게 꼭 아름다움을 선물하자! 류블랴나로 돌아오는 길, 아내에게 블레드 호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아내와 함께 블레드 호수를 보면, 블레드 성에 오르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강병융은 도시 류블랴나를 사랑의 도시라고 말한다. 그리고 류블랴나는 아내를 닮은 도시라고 이야기한다. 작지만 아름답고 깨끗하고 친절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도 아내도 천국도 멀리서 찾기 보다 옆에 두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행복을 느낀다. "누군가가 묻는다. 도시 류블랴나(Ljubljana)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이렇게 대답해본다. 그럼요! 슬로베니아어로 'ljubiti(류비티)'가 '사랑하다'라는 동사이고, 'ljubezen(류베젠)'이 '사랑'이라는 명사니까 당연히 이 도시의 어원도 '사랑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류블랴나는 '사랑의 도시'라는 뜻이 아닐까요? 낭만적이잖아요. 사랑의 도시." "사랑도 아내도 천국도 멀리서 찾고 싶지 않다. 옆에 두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님 말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님 말고'는 체념이 아닌 가벼움이다. 삶도 사랑도 너무 무겁게 생각하면 버거워지는 법이니. 깃털처럼 가볍게, 그렇게 가볍게 하늘을 날 수 있을 만큼 행복하게 살 테다."
이 책에서 강병융이 류블랴나에 있는 잘레라는 공동묘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공동묘지를 산책하며 길지 않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들. 공동묘지의 십자가는 저승에 있는 그들보다 이승에 있는 우리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보다 힘든 것이 같이 죽는 것, 함께 묻히는 것! 그것은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꼭 잘레가 아니더라도 정말 어딘가에 두 사람이 함께 묻혔으면 참 좋겠다. 같은 시간이 아닐지라도 같은 장소에서 죽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죽음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바라건대 딸도 나처럼 공동묘지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일상적인 모습으로 죽은 나와 아내를 만나러 왔으면 좋겠다. 좀더 과한 욕심을 부리자면 먼 훗날 딸도 같은 장소에서 잠들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딸은 함께 잠들고 싶은 '다른'이를 만나겠지만."
류블랴나 대학 인문학부가 있는 림스카 커리의 가장 핫한 곳은 주마우츠이며, 옆엔 '핫'하지 않은 바라북이라는 북카페가 있다고 한다. 강병융은 자신의 단골 카페인 바라북에 앉아 작가가 되었으며, 교수가 되었고,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 딸이 있는 자신의 삶을 생각한다. 거기에 더하여 스탠리 조던의 <어텀 리브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이 아름답다. " - 당신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혹시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생각이었다. - 스탠리 조던의 <어텀 리브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첫 음부터 당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람. 경쾌함으로 당신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 수 있는 사람. 함께 연주하는 사람도 빛이 나게 하는 사람. 클래식을 이해하는 사람. 오래, 많이, 자주 들어도 질리지 않는 사람. 무엇보다도,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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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곳곳에 빨간 장미가 보인다. 5월이 지나고 6월이 되니 초록의 여신이 아파트를 보호하는 듯한 풍경이다. 저절로 기분도 맑아지고 좋아진다. 바라만 봐도 좋은데 그 향기를 맡으며 산책하는 건 더욱 신나는 일이다. 곁에 좋은 사람과 함께 걷는다면 정말 즐거울 것이다. 강병융의 『아내를 닮은 도시』가 그렇다. 말 그대로 걷는 즐거움, 산책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처음 접하는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발음도 어려워서 몇 번을 읽는다)로의 초대는 매혹적이다. 『아내를 닮은 도시』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류블랴나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남자, 아내를 지독히 사랑하는 남자가 들려주는 도시 안내는 달콤하다. 아, 갈 수 없는 도시의 유혹이라니. 류블랴나의 지리적 위치나 관광하기 좋은 곳은 어디며 어떤 나라인지도 중요하지만 그곳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곳을 궁금하게 만든다.
‘길을 걷고 싶게 만드는 건 멋진 포장이 아니다. 화려한 조명도 아니다. 때론 그저 소소한 이름만으로도 그 길이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단순하더라도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면 말이다.’(42쪽)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을 위한 다정하고 세심한 그곳 사람들의 배려나 자신을 믿고 타국 생활을 결정한 아내와 딸에 대한 애정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리고 하나 더, 강병융의 유머와 재치가 가득한 글이다. 친한 친구에게 우리 동네에 놀러 오라는 편지를 받은 기분이랄까. 이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삭막해지는 시대, 류블랴나의 작은 아파트 리프트가 궁금하다. 나도 그 안에 ‘안녕’이란 메모를 남기고 싶다.
‘리프트 안에 그들이 두고 간 ‘안녕’들이 남아 있다. 리프트 안에 그들이 뿌려둔 ‘예의’들의 향기가 난다. 그래서인지 리트프를 탈 때마다 진짜 몸과 마음이 안녕한 느낌이 든다. 그(들의) 작은 예의가 저녁 산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때로는 나의 출근길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사람의 인연이 그 ‘예의상’에서 싹트는 것은 아닐까?’ (54~55쪽) 검색창에 류블랴나를 써넣는다. 처음에는 생경했던 이름이 이제는 익숙하다. 올여름에는 류블랴나 강과 류블랴나 성을 상상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 길고 크지 않은 강에 놓인 다리와 여름밤 영화를 상영하는 성이라니. 혼자서 다리는 건너도 좋겠고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며 투명한 밤을 보내도 황홀하겠지. 류블랴나는 작고 아담하다. 크고 화려한 건물 대신 삶이 있는 묘지도 인상적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란히 누워 있는 먼 훗날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이야기하는 작가의 마음이라니.
매일 걷는 길을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 바닥만 보고 걷는 길이 아닌 길을 걸었던 적이 언제였나 떠올려본다. 목적을 위한 걷기가 아닌 누군가와 헤어지기 싫어 반복해서 같은 길을 걸었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걷기 좋은 계절이 사라지기 전에 산책의 즐거움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류블랴나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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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많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동유럽 국가 중 하나인 슬로베니아. 개인적으로는 슬로베니아하면 블레드 호수에 가장 관심이 있었고 딱히 수도를 기억하지도 못했는데 몇 해 전 모 드라마에서 피란이라는 도시가 소개되면서 블레드 호수보다는 오히려 이 피란이란 도시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과 머물러 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하지만 피란이 슬로베니아의 작은 해변 도시이다보니 단독으로 소개하고 있는 책은 없었고 슬로베니아 자체도 다른 나라와 함께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만나 본 『아내를 닮은 도시』는 난다의 걸어본다 그 네번째 이야기로 무려 2015년에 출간된 도서이다.
거의 10여 년 전의 도서라 이 책의 출간 당시 저자분인 강병융 작가가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소설가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떠실까 궁금해서 작가를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2013년부터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에서 살고 있고 여전히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시라고 한다.
이책은 그런 작가님이 살고 계시는 류블랴나의 소개,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여러 곳을 함께 담아내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슬로베니아어로 A에서 시작되는 단어들을 테마로 선택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뭔가 발음이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의 알파벳 순서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행서라는 느낌보다는 작가님의 개인적 사색과도 같은, 마치 그곳들을 산책하듯 즐기며 바라보고 또 느끼고 그렇게 그속에서 느끼는 바들을 담아낸 책이라고 봐도 좋을 분위기가 느껴지는게 이 책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그래서 만약 아름다운 슬로베니아의 풍경을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지에 대한 정보라든가 그와 유사한 여행 에세이 정도로 기대하고 이 책을 접했다면 그 기대와는 어긋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라 이런 부분에서는 호불호가 가릴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작가적 감성이 묻어나는 책이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책에 담아낸 지역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담긴 그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울어져 읽기의 묘미를 더하는 책이다. 덧붙여 이 책의 커버를 벗기면 커버가 한 차례 접혀있는데 이것을 펼치면 류블랴나 산책 코스를 담은 지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류블랴나를 여행할 계획이 있고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이 지도 한 장을 들고 여유로운 산책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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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번째 매력은 아기자기함이다. 아기와 자기가 있는 작가님이 쓰신 책이어서일까? 책의 표지와 사진, 구성과 디자인 그리고 글까지 ‘아기자기’하다. 그래서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 일단 각 챕터의 구성을 보면 슬로바이아 단어를 소개하고 짧은 글이 나온다. 이 단어는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이 나오고, 마지막에 Walking Soundtrack이란 부분이 있어 내용과 관련한 음악이 소개된다.
음악을 하나씩 찾아듣다 보니 쉽게 읽히는 글임에도 천천히 읽게 되고 거의 일주일~열흘에 걸쳐 책을 읽게 됐다. 그것이 이 책의 묘미 아닐까? 이 책은 산책에 관한 글인데 산책을 그렇게 후다닥 한다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설렁설렁 걸으며 하는 것, 음악도 듣고, 풍경도 보고, 생각도 하고. 이 책을 그렇게 읽으니 더 맛이 나고, 나도 산책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참! 나는 일일이 찾아들었는데 유튜브에서 ‘아내를 닮은 도시’라고 검색하면 사운드트랙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정보가 책 뒤에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읽다보니 지역이 궁금했고 지도를 펼쳐봤는데! 여기에 또 숨겨진 재미가 있었다 지도에는 25와 A~Z라고 쓰여진 것이 있는데 알파벳 순서로 배열된 각 챕터에서 녹용군이 사진을 찍은 곳이고, 그 내용에 나오는 산책장소이다. 그래서 또 천천히 읽게 됨~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류블랴나를 찾아가면 작가님과 수다도 떨고, 녹용군과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바라북에서 에스프레소도 마실 수 있는 쿠폰이 있다. 정말 가고 싶다!!! 두 번째 매력은 가볍지만 분명한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흔히 가벼운 책은 내용도 가볍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난 것은 ‘ㅋㅋㅋ’이다. 읽는 동안 내 표정과 생각이 바로 이랬다. 그런데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단순히 가벼운 것이 아니라 즐겁고 넓은 시선이 있다. 크고 따뜻한 류블랴나가 작고 개성 있는 메텔코바를 감싸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텔코바가 류블랴나 안에 존재하는 이유는 어쩌면 류블랴나의 아량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p25 이런 포용력과 개성을 모두 지닌 작가의 글이어서인지 가벼운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뭔가 깊이를 원하는 사람도 좋아할 만한 책이라는 점이다. 마지막 매력은 소소함과 진솔한 사랑이다. 하지만 기억하고 있다. 아름다움 앞에서 떠오르는 사람이야말로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잊지 않고 있다.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야말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p83 블레드 호수와 성을 보며 아내를 생각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 역시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것을 마주쳤을 때는 혼자 보는 것이 미안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 때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 그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아끼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이런 블레드 호수처럼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의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강병융 작가는 슬로베니아 류블레냐의 길을 걸을 때,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아내를 생각한다. 요즘 나는 사람들에게 기승전성시경이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하곤 하는데, 이 책이야말로 기승전아내로 끝나는 아주 배가 아픈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레냐라는 독특하고 생소한 발음 때문에 뭔가 특별할 것 같지만(나 역시 이 책을 읽고 슬로베니아라는 곳에 가고 싶은 것을 넘어 살고 싶어졌기는 하다.) 아마 책을 읽어보고 나면 느낄 것이다. 작가가 걷고 있는 그 시간과 장소는 특별한 곳이 아니라 삶이고 생활이고 인생이라는 것을. 길을 걷고 싶게 하는 건 멋진 포장이 아니다. 화려한 조명도 아니다. 때론 그저 소소한 이름만으로도 그 길이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단순하더라도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면 말이다. p42 ‘아름다움’, ‘걷는다’고 하면 요즘은 올레길, 둘레길, 산티아고의 길을 생각하며 뭔가 거창한 기분이 드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매일 걷고 있다. 집 앞 슈퍼에 갈 때조차 자동차를 타는 사람이라도 어딘가를 걷는다. 그 길을 걸을 때, 또는 올레길이나 둘레길 등을 걸을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느낄까?
‘그저 소소한 이름만으로도’ 매력적일 수 있는. 나는 이 책을 ‘소소함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거나 과장하지 않고 가장 잘 표현한 책’이라고 칭하고 싶을 정도다. 기승전아내이기 때문에 작가의 아내분이 대단한 미인이라거나(그럴지도 모른다) 정말 대단한 내조가라거나(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다) 능력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책에도 그렇게 쓰여졌으리라 예상하겠지만 아내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나 칭찬이나 찬양 등의 미사어구는 없다(아…마…도…). 하지만 소박하고 장난스러운 글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짙게 묻어난다.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부부는 ‘소소함 속에서 아름다움과 감사함을 찾을 줄 아는’ 시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그저 그런 유럽 소도시의 흔한 골목들일지 몰라도 그 길을 걸으며 난 또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간다는 생각에 행복해진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어찌 그 길이 그 걸음이 좋지 않을 수 있을까? 이 골목의 평범함까지 완전 좋다. 이제는 내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이제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차례예요. 나 역시 가끔 아내에게 존댓말을 하곤 한다. 언젠가 아내도 평범한 아침 골목을 걸으며 내가 느낀 바로 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것이 꼭 류블랴나일 필요는 없고, 물론 아름다운 류블랴나의 골목이라면 더 좋고. P139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일상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기를 원하는 것. 이것은 흔히 우리 부모님이 가장 어려운 꿈인 ‘평범한 가정’이라는 것의 모범답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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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이 생길 때가 있다. 이미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무뎌질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행에 대한 설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해가 갈수록 여행에 대한 생각이 참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아니, 여행이 아니라 그냥 '이 나라를 뜨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이름도 생소한 도시 류블랴나에서 닭살스럽게도 아내를 닮은 도시라며 곳곳을 알려주는 강병융의 책 <아내를 닮은 도시>를 읽으면서 직접 걸어보지 못한 길과 풍경에 대한 동경을 시작한다. 더군다나 아내를 닮은 도시라지 않은가? 류블랴나의 첫인상은 작가가 가장 당혹스러웠던 곳의 추억을 되새기며 시작된다. 술에 취해 들어선 낯선 동네, 외계인과 나체의 남성과 부서진 건물의 담벼락 등, 그곳에서 환영처럼 아내를 쫓다 귀가하고 나중에 알게 된 이름 '메텔코바'를 통해 원래의 류블랴나가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유럽의 중심부에 한국사람이 채 30명도 살지 않는 그곳에서 작가는 류블랴나가 '아내를 닮은 곳'이라고 했고 이물질처럼 들어선 메텔코바를 '자신'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감싸주는 혹은 든든히 뒤에 서주는 아내를 닮은 류블랴나가 그래서 특별히 느껴지는 듯 했다. 그 때문일지 산책했던 장소마다 새겨진 아내에 대한 마음들이 가끔 손가락 오그라들게 와닿기도 한다.
- 아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내가 아는대로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따뜻하게. 정말,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번 해주고 싶었다. 함께 걸으면서. 손을 잡고서. 물론, 바다를 보면서. 그리고 다행스럽게 얼마 전에 정말로 '그렇게' 했다! p.37
특별한 곳에서 일상처럼 행복을 운운하는 상태이니만큼 지금까지의 서운함과 모자람을 없애고 싶은 건 당연할 것이다. 이미 아이까지 있는 상태에서도 굳이 '결혼을 다시 하고 싶다'고 내뱉을만큼 현재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이전'보다 더 좋을 것을 예상하니까 말이다.
- 사람들은 지금부터 잘해도 늦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나 역시 이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처음부터 온전히 잘하고 싶다. 크고 작은 잘못들과 상처들을 우선 다 지워버리고 싶다. 지워주고 싶다. p.64
그렇게 지워진 시간들을 채워줄 수 있을만큼 푸근한 인상이 류블랴나일 것이다. 행복한 시간은 사람으로 인해 더 풍성히 채워지는 법!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깜짝 놀랄만큼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면 진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초등학생인 딸의 류블랴나 여름학교에서의 인연과 그 부모들과의 에피소드는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준다. 아빠들끼리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아이들끼리, 엄마들끼리도 서로를 축복처럼 여겼다. 그렇게 만난 인연들이 점점 더 시간을 지탱하고 인연을 쌓아가게 했다.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 정말 고마운 사람. 그리고 그것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 정말 소중한 사람. 바로 친구! p.72
책의 곳곳에서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 아내에 대한 마음,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애정을 그는 '사랑'이라고 망설임없이 단정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족들이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는 것을 스스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누가봐도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설득당하게 만든다. 낯선도시 류블랴나를 낯설지 않게 소개하는 것, 가족이 살아가기에 부족함없이 포근하게 품어주는 곳이라고 작가는 그곳을 말한다. 그러니 당신도 와서 한번 걸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이다.
이곳저곳 갖가지 에피소드와 풍광, 맛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니 평면의 지도를 보면서도 입체적으로 장소가 드러나 보인다. 내게 필요한 건 한 웅큼의 시간. 그곳에 갈 여유와 시간만 있다면 지도에서 보여지는 전부가 아니어도 좋다. 단 몇 군데만이라도 걸어보고 싶다.
그곳에서 나도 아내가 아닌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는지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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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류블랴나' 라는 곳에 대해 잘 모른다.그러니 책 한권으로 그곳에 대해 어느 만큼 알게 될 것인지 확신도 할 수 가 없다.게다가 제목은 '아내를 닮은 도시'란다. 선뜻 손이 가질 않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다행(?)이라면 난다에서 출간 하고 있는 '걸아본다'시리즈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하나가 그 도시로 나를 이끌었다.
류블랴나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도시의 여행은 시작된다.간결한 설명이어서 오히려 분명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자연스럽게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은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나를 이끌어 주는 듯했다.그럼에도 어쩔수 없이 나는 자꾸만 '아내를 닮은 도시'라는 제목이 궁금했던 모양이다.작가의 글을 따라 읽으면서 문득,아내를 닮은 도시라는 제목을 단 이유는 아름다운 곳을 보여 주고 싶은 곳에 대한 함축적인의미가 담겨 있다고 결론(?)내버렸다.물론 책 중간에서 궁금증을 해결되었지만 조금은 올드한 제목이라 생각했었는데,또 그만큼 진실된 제목이구나 싶기도 했다.류블랴나 라는 곳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책속에 소개된 사진들로는 도저히 그곳의 아름다움을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사랑하는 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사랑하는 이를 닮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상상해 보고도 남을 만 하지 않겠는가.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 취향적인 곳이라 해도 걷기에 좋은 곳이라면 나 역시 살기 좋은 곳이라 믿어 의심지 않는다.분명 아름답고 멋진 도시일거라 마음대로 단정을 지어버릴 만큼 류블랴나 가 궁금해졌다.마음만 먹으면 해외 여행은 갈 수 있겠지만,또 그 마음 먹기가 어렵기도 하고,유명한 곳 위주로만 책들이 출간되어 있다보니,슬로베니아 같은 곳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품어 보지 못했을 텐데...그곳을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인지,책을 덮을 즈음엔 가보고 싶은 도시 목록에 올려 놓았다.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그런데 솔직히 이런 마음이 들게 한 건 작가의 달콤한 유혹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탓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듯 치명적인 유혹을 날리는 작가의 약속...
지극히 주관적인 작가의 걷기 이야기라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수는 없었지만.그곳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아쉬운 점이라면 그곳을 느낄수 있는 사진이 조금더 많이 실렸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그건 어쩌면 직접 그곳을 볼때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작가의 마지막 약속 덕분에..나는 여행을 함께 하고픈 친구에게 슬쩍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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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가 그곳에 있는지를 몰랐다. 이탈리아의 북쪽과 맞닿아 있고, 오스트리아의 남쪽에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슬로베니아를 저기 어디 옛 소련의 드넓은 지역, 그 변방 즈음이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로부터 아드리아 해를 건너면 그리스가 있는 줄 알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탓이려나...) 그러나 이탈리아로부터 아드리아 해를 건너면 유고 연방이 있었고, 슬로베니아는 과거 유고 연방에 속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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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닮은 도시 – 강병융 여행에세이 책을 좋아하고 이미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장소 –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에 대해 책을 내 준 저자에게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한 권의 책으로 아쉬움도 많았다. 숫자에 대한 단상, 현실과 상상이 혼합된 어느 밤의 거리, 몇 몇 부분이 눈에 띄지만 에세이 설정과 재료가 다소 한정적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한 건 조금 더 많이 깊이 그 도시의 특별함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 책을 덮고 나서는 도시에 대한 느낌이 마음에 와 닿기 보다는 아내에 대한 간접적인 편지를 훑어본 기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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