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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전영수 교수의 ‘전업자녀’를 재미있게 읽었다. 현재 한국사회를 정확히 분석하면서 ‘전업자녀’의 선택을 평생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축적했으나 다가오는 노년이 불안한 부모, 그리고 경쟁이 격화되고 추정소득도 불확실한 시기에 분명한 용돈과 주거 보호막을 받고 대신 부모 봉양이란 의미있는 의무를 선택하는 자녀란 매우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트레이드 오프로 ‘전업자녀’란 현상이 이미 존재하며, 앞으로 중요한 보통의 트랜드가 될 것이라 예견한다. 과거의 한국은 인구증가-노동집약-교육특화-우수인재-도시집중-집적효과-고도성장 , 서울중심자원집중, 학력특화성공, 고비용형가족결성, 성차별적육아환경 의 구조였다. 현재는 생존전략이 확장이 아닌 위험회피로 변화하고 있다. 기존모델로 얻을 부가가치 자체가 줄어들었다. 거센경쟁에 비해서 얻어낼 성과가 적다. 결국 결혼과 출산이란 가족분화는 고위험, 저수익의 선택이 되었기에 포기하는 청년이 늘었다. 과거 정규직, 대기업, 복지, 연공서열, 종신고용은 가족분화의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췄지만 지금 이 약속과 희망이 깨졌기에, 가족을 만드는 것은 도박이자 위험이 되었다. 이제 전업자녀는 낙오된 사람이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자 나이든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이익의 트레이드 오프가 되었다. 독립적 분화보다 동거합체가 유리한 사회다. 자녀는 상대적으로 풍족한 부모와 살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훗날을 도모하고, 부모는 자녀의 불완전한 독립보다 안전을 확보하고 가사와 돌봄을 대신 제공받는 교환을 하며, 외부로 자본소비를 하지 않는 내부소비를 완성한다.
이제 ‘가사와 용돈의 맞교환’이 일어난다. 가사를 미안해하면서 부탁하지 않고, 당당히 용돈을 받고 가사를 담당한다. 어른이 되고 교육이 끝난 후 집에 남아있는 열등한 자식이 아니라 부모, 자식 모두 생존이 힘들어진 이 세상에서 유용한 생존전략이 ‘전업자녀’가 되었다. 한국 특유의 내리사랑과 가족내 상호작용이 이런 현상을 가속화한다. 90년대생 부모의 탄생은 이를 가속화한다. 밖에서 위험하기보다 안에서 행복하길 먼저 제안한다. 사회의 저성장화는 본인만족형 전업자녀란 형태를 서로 선택하게 한다. 중국과 일본에서 모두 관찰되는데, 일본에서는 ‘아이방’이라고 부른다. 독립하지 않은 중년자녀가 학창시절 지내던 방에서 계속 생활하는 경우다. 히키코모리와 다른게 직업이 있고 일상생활은 정상적이다. 한국의 전업자녀 출현배경은 취업난, 비정규직의 양산, 주거비용의 급증, 비혼, 내리사랑, 과잉보호, 자아정체감 형성지연, 자율성 부족과 같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것들의 복합으로 저자는 일종의 불가피한 트렌드로 본다. 처음에는 저성장속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내리사랑 부모의 의지로 ‘과보호’가 더해지면서 독립을 포기하고 서로의 동의로 전업자녀를 선택한다. 앞으로를 조망한다. 일본이 8050 문제를 넘어서서 9060으로 넘어가고 있다. 50대 자녀의 무직빈곤과 자택고립, 80대 부모의 연금소득에 의지, 유병생활의 노년의 부모에 대한 간병으로 더 이상의 의미있는 50대의 사회생활 어려움. 이어져서 이제 50대 자녀도 자기 돌봄이 힘들어지는 9060으로 넘어간다. 우리에게도 멀지 않은 미래다. 현재 세대는 그래도 ‘전업자녀’의 등장으로 부모가 축적한 재산을 서로 쉐어하면서 외부에 간병과 돌봄을 의지하지 않고 부모의 돈을 자녀가 용돈과 생활비로 함께 쓰면서 ‘지나친 저축’으로 인한 사회적 돈잠김도 줄어드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대가족형 가족복지 사회에서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를 고용하는 1인복지에서 그 비용은 자녀에게 지출하는 내부소비형의 새로운 신가족복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시장비용보다 저렴하고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이 대세가 되면 이 선택은 이상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선택은 불행하지 않다. 삶의 기대치를 낮추면 충분히 만족도는 유지된다. 회사에서 적은 돈을 받고 구속당해 사느니 집에서 자유롭게 나를 의지하고 고마워하는 부모와 나답게 살겠다는 선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전업자녀가 나이들었을 때다. 이들은 비혼, 직업없을 가능성 높음, 자산축적이 부족함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전업자녀의 부모가 사망하고 이들이 노인이 되면 그들을 돌볼 사람은 누가 될까? 그게 30년정도 후의 불안이다. 지속적 세대순환이 전업자녀 형식의 두 세대 동거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부모를 모시는 것을 전업으로 하는 마지막 세대이지만 자신은 자녀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서른 넘어 자기 방에서 코골고 자다가 게임하다가 차려주는 밥먹고 가끔 알바하면서 용돈벌이하는 자식이 실은 나중에 내가 노쇠해졌을 때 병원 같이 가고, 집안일 같이 하고, 외로움을 덜어줄 그럴 귀한 자식이 될 수 있다. 내가 젊을 때 마련해 놓은 이 집에서 어릴 때부터 쓰던 방에서 지내면서, 내 연금과 저축으로 함께 생활하면서. 그게 자식과 부모 모두, 인생실패가 아니라 현재 사회에서 매우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가능한 선택,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이 ‘전업자녀’에서 말하는 부분이다. 안심이 되는 것인가 서늘한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