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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태 작가의 이 수필을 읽다보니 옛날 기억과 겹치는 무늬가 많다. 연배차이도 상당한데 그때 우리집은 우리고향은 참 가난했구나싶다. 아랫도리는 입지 않고 다니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연방 코를 훌쩍이며 소매끝이 맨질한 아이들은 얼마나 또 많았는지, 대문없는 집은 또 왜 그렇게 많고.... 그런 아이들이 동네 이 곳 저 곳을 쏘다니며 뭘 그렇게들 놀꺼리들이 많았는지... 이 수필집 가운데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이 이끌렸던 대목은 나의 어린시절 한도막을 그대로 잘라 이어붙인 스틸사진같은 작가의 어린시절의 한 대목 젯밥에 눈멀다와 불로장생약. "성태, 망태, 부리붕태, 내리영태" 그 영감님이 모를 리 없지만 그 마음이 기특했겠고, 그나마 순진한 마음에 잠 못든 그 순박한 시간이 기억나고 애틋해서 너무나 공감이 가서 슬며시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젯밥 얻어먹는 재미에 빠져 제사있는 집만 찾아다녔다던 작가의 추억에서 알록달록한 옥춘 하나 먹어보겠다고 진설하는 거 목놓아 구경하다 한 개쯤 얻어먹었던 추억이.. 나까지 3대째 크리스찬인 우리집에서는 제사상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고, 당숙할아버지집에 놀러갔다 우연히 보게 된 제사상 위에 올려진 옥춘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워보였던지 물론 옥춘은 보기보다 맛이 없다. 서걱거리지 않는 각설탕맛이다. 옥춘 맛을 경험한 후 남의 집 제사에 다녀본 기억은 없지만.. 작가의 어린시절 추억담인지 영웅담인지 회고담인지 무엇인지 모를 그 이야기에서 나의 어린시절이 자꾸 겹겹으로 싸여 기억의 결을 만든다. 진솔한 꾸밈없는 지금은 꿈에서만 보이는 대문은 없고, 부엌은 남루했고, 항상 추웠던 그러나 어릴 적 기억과 함께한 추억은 있지만, 다시는 돌아가고싶지 않은, 아니 돌아갈 수 없어서 다행인 그 시절 우리들의 집처럼 그 어린 시절처럼, 작가의 회고 속에는 담담하고 덤덤해서 더 날카롭게 그 시절이 드러나있다. 수필의 아름다움을 한 번 더 느끼게 한 산문집이었다. 세상의 큰형들이라고 큰형에게 고마움을 전했던 작가도 이제 큰형 소리쯤 들을 충분한 때가 아닌가싶다. 책은 우연히 골라야 읽는 맛이 더 좋다. 우연히 골랐는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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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갈수록 지나왔던 일들에 대한 기억은 바래지지만, 어떠한 흔적으로 남아 아름답게 간직되기도 한다. 그 기억을 잡아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남기려고 하고, 어느 시기를 함께 보낸 사람들과 모여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기억을 붙잡고 자신의 생각을 함께 적은 글만큼 선연하고 정확한 수단은 드물 것이다.
더욱이 그 사람이 글을 오랜 시간 써온 작가라면 그 글에는 작가가 삶의 족적을 남기면서 만들어간 어떠한 향취마저 배어 있게 된다. 나는 전성태 작가의 산문집 『세상의 큰형들』을 읽으면서 이 글들이 거쳐가는 시간과 장소를 누비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오랜 친구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김민정 시인의 도움으로 기존의 원고들을 모아 새로 펴내게 되었다는 이 책은 그만큼의 무게와 깊이를 담고 있었다. 전성태 작가의 유년 시절은 오래전 어느 시골의 정경을 담고 있다. 시간상으로도 공간상으로도 나는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새롭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러나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것들이었음에도 그 시절들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느끼게 되는 것이 아주 묘했다. "사람이 항상 발복하는 건 아녀. 성할 띠도 있고 쇠할 띠도 있거덩. 사람도 천지가 다 간직하고 있으니게. 인간이 너무 성했어. 시상을 너무 마이 차지했다 이거여. 앞으로 잘살라믄 잘해야 써. 남 신경쓰고 살 것까장은 없제만 내 맘은 잘 다스려야 쓰는 거여. 참 고약한 세상이야." p.266 맛깔나게 구수한 방언은 정감있고 따스하다. 더욱이 글을 통해 그려지는 풍광들은 분주했던 삶을 떠나 여행을 온 것처럼 낯설면서도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함이 더하여 아름다웠고 편안했다. 요사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글들은 아주 빈틈 없이 날이 서 있거나 바짝 곤두서있는 문장들이 많다. 가볍게 의견을 나누다가도 문득 기분이 상하면 자신의 불쾌함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공격성을 과시하는 일들도 잦다. 또는 더 빠르게 살아갈 것을 종용하면서 나 자신의 나태함을 돌아보게 하지만 때로 죄책감과 불편함마저 심어주는 내용들도 있다. 그런데 이 산문집의 글귀들은 문장들의 죔쇠를 느슨하게 풀어두고 넉넉함을 가득 품고 있었다. 날카로웠던 신경들이 잠시나마 이완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이 출간된 출판사명이 난다인 것도 흥미로웠다. 문학동네 임프린트인 난다 출판사에서는 시인이나 작가들의 산문집을 주로 펴내는 듯하다. 나는 난다에서 출간된 서효인 시인의 산문『잘 왔어 우리 딸』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 또한 지나가는 일상들에 대한 소중함을 되새기고 풍성한 사랑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후 이 책을 또 읽게 되니 이제 난다에서 출간하는 에세이의 방향성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마침 내 서가에는 『밤이 선생이다』도 꽂혀 있는데 그것도 언제고 꼭 읽어보고 싶었다.
문장들이 콱 막힌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평범한 삶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가도 끝무렵 찾아드는 반전처럼 전환된 분위기에서 남아있는 작가의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는 것 같았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언제고 나도 이만한 문장들을 뽑아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한없이 아득해지기도 했다.
연한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 삽화처럼 아스라한 분위기 가운데 일상적인 편안함 속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처럼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오랜만이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힘들었을 정도였다. 필요할 때면 다시 만나고 싶은 내용들은 접힌 귀퉁이를 통해 찾아드는 일이 한동안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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