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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오똑 섰다.
움직이면 들킨 사람이 벽을 짚고 서서
두 손을 가리고 다시 그 낭랑한 신호를 보냈다.
술래가 너무 빨리 무궁화꽃을 말하는 바람에
좀은 신경전도 펴지만
서로서로의 우스꽝스런 자세를 보고는
폭소를 터뜨리고 만다.
유치원 아이들이
둥글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하고
외치면 모두 굳은 모습으로 서있는다.
또 요새 애들이 시체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바로 이 무궁화꽃이의 변형된 놀이가 아닌가 싶다.
정지와 움직임의 교차속에서 우리는
그때부터 삶의 한 단면을 배우고 있던 것일까.
생은 그냥 내닫기만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 채로 정지할 수도 없는 과정임을
아마 그때부터 은연중에 배우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집 책장에는 우리나라의 핵물리학자
이휘소에 관한 책이 꽂혀 있다.
10여년도 더 전에 나와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한번 읽어보라고 선물받은 것이다.
나는 당시의 대단한 베스트셀러였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란 여러권의 소설을 읽었다.
그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다.
그러다가 이휘소에 관해서 읽고 나는 비로소
허구의 묘한 울림을 실제와 비교해보게 된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의 그 놀이의 신호가
핵과 관련된 암호로 사용되었음은
어찌보면 아이러니하다.
어린 우리들의 놀이에 무궁화꽃이 들어있는 것도
때때로 궁금한 일이거니와
이휘소 박사의 미스테리 죽음으로
영원히 멈추고만 그 무궁화꽃의 암호가
마치 우리의 유년이 멈춘듯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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