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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 아닐까. 그래서 더 아리게 아프고 두렵기도 하다. 노인 우울증에 대해 하루를 탐험했다. 사실 아직 모르겠다. 그냥 잠시 혼자의 시간도 필요한 것 아닐까. 한 시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모르겠다. 어렵다. 왠지 모를 뭉클함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특히 사람들은 엄마를 잃어봐야 한다.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아야 한다. 그게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라는 말은 왜이렇게 울리는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 책인데. 좋다. 이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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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준으로 올해의 단편집으로 꼽고 싶을만큼 좋았다 읽는내내 주인공들의 우울과 진한 감정이 고스란히 내것인 마냥 느껴져 힘들었지만 그 힘듦 마저도 좋았다. 은천을 읽을 때는 영서였다가 일러두기에선 미용이 되었다가 검은개 흰말에선 양지가 되었다가 그들과 절차에선 종소가 되었다. 단편들의 주인공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여러번 나오는 경우가 많아 연작소설의 느낌을 받았다. 단편은 짧아서 아쉬울때가 많았는데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런 아쉬움이 없었다. 책 제목을 소설 속 문장으로 표현해 준 점도 인상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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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에서」 “... 우리는 대화하는 방법을 모르는 모녀였다. 서로 눈을 마주보며 침착하게 말하고 듣고 의견을 제시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공감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채로 오십 년 가까이 살아온 모녀였다. 우리는 둘 다 갈 데가 없고 갈 데를 몰라, 그런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여기까지 온, 단지 같이 사는 서툰 여자들이었다.” (p.30) 소설입에 실런 여러 편의 소설에 어머니가 등장한다.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아들이 등장하는 데 대부분이 그 관계에 서툴다. 길어진 공동의 시간만큼 서먹해지는 관계라는 것도 있다. 「그녀들」 “검은색이라면 가릴 수 있는 얼룩을 흰색은 가리지 못한다. 아주 작은 얼룩도. 누구와의 관계가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넘어가는 그 단계 어디쯤의 찰나에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감정이 생겨나 어떤 것은 우정으로, 신뢰로 혹은 안쓰러움으로 각인되곤 했다...” (p.61)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서 또 자주 다루어지는 것은 가르치는 이들이다. 대부분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지식인들이고 그 삶은 신산하기 그지 없다. 그 신산한 삶을 파고드는 관계라는 것이 치열한데, 추레하여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맥이 빠져 있는 홍상수 영화 속의 지식인이랄까. 「일러두기」 202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이혼을 하였고 아버지의 복삿집을 이어 받아 일하고 있는 마흔 일곱 살의 재서 그리고 재서의 복삿집에 USB를 맡겼던 반찬가게의 미용 사이를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굉장히 정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은 어수선함으로 가득해 보인다. 소설을 읽다 오래전 기억의 한 토막이 떠올랐다. 당시의 여자 친구가 독서실의 총무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자리를 뺀 어느 학생의 락커에서 두툼한 노트를 발견한 것이다. 그 노트에는 소설이랄지 아니면 자서전이랄지 알 수 없는 내용이 가득했고, 우리 둘은 그 노트 혹은 그 노트의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잠시 골몰하였다. 당시의 그 노트의 미스터리한 주인공을 미용이 닮아 있다. 「검은 개 흰말」 “검은 개와 흰말... 그것은 우리의 암호 같은 것이었다. 때로는 위로도 때로는 가벼운 농담으로. 불안은 언제나 발밑이나 허공,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삶의 파편들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오며 그래서 타인의 이해를 받기도 구하기도 어려운 데가 있다. 실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두려움을 완화시켜주거나 다른 대상을 떠올릴 만한 치환置換적인 행동 같은 것. 검은 개를 보는 감정을 돌려 세우는 일. 그리고 나는 실에게 말했다. 목줄이 풀린 크고 검은 개를 보면 그게 흰 말이라고 생각하자. 갈기도 희고 늠름하며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도 해주는, 눈부신 흰 말.” (p.161) 불안증과 관련이 있다. 이모와 조카인 실(조경란 작가의 작명법이 독특하다)의 관계 또한 독특하다. 불안을 매개로 하는 안심의 관계라고나 할까... 「그들」 2024년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이다. 살아가는 일은 드물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은 살아가고 있기는 한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용조용 머물러 있다. 거기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작가는 삶이 조용조용 머물러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종소와 영주, 그들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이 작가다. 「빗방울 하나 마른잎을 두드리네」 “세 사람은 누구의 집도 아닌 집의 식탁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양지는 전골을 국자로 퍼 어머니에게 건네고 어머니는 그 그릇을 종소 앞에 놓고 다시 양지가 한 그릇을 어머니에게; 건넨 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몫을 담았다. 내 집이 아닌 곳에서 누군가의 가족과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정말이지 이런 적은 없었다.” (p.229) 비어 있는 현선배의 집을 봐주고 있는 양지를 찾아온 후배 종소 그리고 종소의 어머니는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빗속에서 실종된 여인, 그 여인을 매개로 삼아 찾아온 종소, 그런 종소의 유언을 훔쳐보고 따라나선 종소의 어머니가 그렇게 어긋난 듯 맞물려 하나의 집에 모이게 되었다. 「절차」 〈빗방울 하나 마른잎을 두드리네〉의 종소를 따로 뚝 떼어내었다. 자살한 아들이 살아 관계를 이루었던 이들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가 있고, 종소는 그런 아버지가 부담스럽다. 자신이 가르쳤던 이들 중 한 명일 뿐인 그를 종소는 기억할 수 있을까, 아니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문제는 종소가 이루어내려는 삶에 어떤 식으로 가닿게 될까. 조경란 / 반대편 사람 주의 / 문학동네 / 330쪽 /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