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작가는 10년도 넘게 신문기자로 일한, 베테랑 '논픽션 글쟁이'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그녀가 소설을 쓴다면, 써봐야 얼마나 픽션적이겠냐'며 얕잡아 본 내 선입견을 완전히 뒤엎어준 결과물이었다. 10년동안 논픽션만 써온 사람에게서 뿜어져나오는 환타지와 모험.. 거기엔 오히려 10년동안 소설만 써온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도 있는 것처럼 흥미진진했고, SF적이기도 했으며, 만화적이기까지 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스탠포드 대학에서 1년 동안,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그때 소설 쓰는 법을 공부했다고.. 그리고 담당교수에게 소설쓰기 과제를 낸 적이 있는데, 그때 다른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다시 써보라는 또다른 과제가 나와서 이 책이 탄생하게 됐다는 사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 과정이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날짜별로 엄마의 관점에서, 그리고 아들의 관점에서, 번갈아가며 서술되고 있다. 마치 하나의 영화를 두 개의 카메라로 보는 것 같은.. 특별한 재미가 숨어있는 책.. 소설쓰기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교과서가 될만한 책이다.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기.. 마치 스탠포드 대학에서 공부라도 하고 온 느낌이다. 이 책을 읽고.. '생각과 느낌' 출판사에서 나온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시리즈'를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바램이 생겼다. ㅋㅋ 양장본이라 소장가치도 더하고.. 맘에 쏙 든다. 신뢰도 팍팍!! '생각과 느낌' 출판사 이름까지 맘에 든다.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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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약아져버린 탓인지, ‘엄마가 사라졌다’는 제목, 엄마가 12살로 돌아갔다는 상황, 이 두가지만 가지고도 대충 어떤 내용이겠거니, 어떤 식으로 전개되겠거니-하고 넘겨짚게 되었다. 12살로 돌아간 엄마가 그 나이 또래의 아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내용이거나, 혹은 그 반대겠지라고.
하지만 생각만큼 엄마가 자식을 이해하거나, 반대로 자식이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것, 혹은 이미 돌아가신 엄마에게 미처 다하지 못했던 말들, 후회스런 일들에 대해 그 후회를 털어버리는 것, 그런 과정들에 집중적으로 포인트를 맞추진 않는다.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인위적으로 구겨넣거나 설교하지 않고, 단지 떨어져있으면서 엄마가 느끼는 아이들에 대한 가슴저린 그리운 사랑이나, 아이들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엄마의 존재, 그것을 아주 사소한 모습들을 통해 은근슬쩍 느끼게 해준다. 버나뎃이 아들들을 먼발치서 지켜본다거나, 막내 닐과 우연을 가장해서 만나 말 한마디를 건네는 모습에선, 왠지 안쓰럽고 마음이 찡하다.
엄마가 12살로 돌아가버리는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긴 하지만, 사실 전체적인 흐름은 꽤나 잔잔한 편이다. 크게 웃기거나 울리는 건 아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에 은근히 마음이 따뜻해지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시점이 교차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자칫 산만해지고 몰입이 안될 우려도 있는데, 이 책의 경우 아들인 패트릭과 엄마 버나뎃의 시점을 교차해가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이 어색하지 않고 아주 매끄럽게 진행되면서,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같다.
또 한가지, 아일랜드 전통미신이 결합되면서, 이 모든 사건이 허무맹랑한 마법으로만 느껴지지 않고, 어느 정도는 가능성 있는, 정말 어떤 곳에선, 어떤 순간엔, 누군가에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같은 일말의 현실감이 느껴진다는 것. 사실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미신이나 민간요법으로 믿어지는 것들이 많이 행해지고 있기도 하고, 어릴 때도 빠진 이빨 지붕에 던지기같은, 일종의 미신행위로 보이는 행위를 다들 한둘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패트릭은 엄마를 구하는데 앰프사려던 비상금을 아낌없이 써버리고, 엄마는 나중에 패트릭을 위해 앰프를 사줘야지 맘먹는 부분에서 마음이 흐뭇하다. 엄마가 사라진 동안 엄마역할을 해야했던 패트릭. 엄마가 돌아오면 이제 진짜 제 나이 열 두살의 역할로 돌아갈 수 있겠지. 적어도 3대에 걸쳐서, 각기 다른 인상과 감동, 재미를 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어머니, 사랑해요.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죽음이 딸과 엄마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을 것 같니? 네가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속에 내가 있는 거다." |
| 이 책도 지난 번 '생각과 느낌'의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의 시리이즈의 한 편인 [모래 폭풍이 지날 때] 리뷰 덕에 혹은 탓에 또 다시 맡게된 근간 청소년 소설이다. 책의 내용은 자신의 마흔 생일날, 돌아가신 어머니의 흔적으로 가득한 처녀 시절의 집에서 신문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잠시 머물려고 한 된 버나뎃이 그 옛날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음료수를 먹고 12살 소녀로 돌아간 시점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인근에 있는 자신의 집에도 식구들에게 적당하게 자신에게 찾아온 기이한 변화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찾아갈 수 조차 없다. 신문사에서는 그녀가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보도하고, 그녀의 세 아들들과 산부인과 의사인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없는 집에서 그녀의 부재를 느끼며 하루 하루를 버텨낸다. 나이도 성격도 다른 3형제의 좌충우돌은 12살이지만 의젓하고 책임감이 강한 패트릭이란 소년의 시각에서 일기 형식을 빌어 다루어진다. 장남인 패트릭은 데타 다우니란 이상한 이름을 가진 소녀와 함께 컴푸터 수업을 받게 된다. 그러나, 패트릭의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데타 다우니가 사실은 자신의 엄마라는 사실은 감쪽같이 모른 채로. 패트릭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엄마가 살아있을 것이라 믿고 체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학교 생활에서도 전과 다름없이 열심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엄마의 부재로 엉망이 되어가는 집안의 잡일도 도맡아 해결하려 애를 쓰지만, 힘겹기만 하다. 패트릭과는 달리 게으르고 TV에만 빠져 사는 동생 케빈과 이제 겨우 단어를 배우기 시작한 어리기만 한 닐도 돌봐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12살로 바뀐 모습으로 나란히 공부를 할 수 있다면...."이라는 엄마들의 바램을 실현시켜준다. 또한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한 여인이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다시 당시의 어머니와 재회하고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감사를 전하는 화해의 장면도 담고 있다. 아일랜드의 주술적 믿음과 민간 요법을 신봉하는 버나뎃의 어머니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전체를 아우르는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인터넷으로 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현재가 주가 되어지고, 12살 소녀로 돌아온 버나뎃의 일기와 엄마를 잃은 그녀의 아들 12살 소년 패트릭의 일기가 교차되면서 이야기는 직조된다. 요정의 마법을 풀기 위해서는 만성절 전까지 세가지 것이 필요하다. 이 세가지는 만성절에 세걔의 케잌을 만들기 위한 특별한 재료인데, 물냉이 줄기 세 개, 구스베리 열매 열 알과 덤불에 난 가시 열개, 그리고 아일랜드 식으로 4월 30일에 지핀 불에서 나온 불씨가 그것들이다. 그러나, 이 재료는 패트릭이 구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비밀에 부친 채로.... 패트릭의 보낸 인터넷 메일들을 열어 본 엄마는 답장을 보내려고 노력하지만, 담장 안에서는 요정의 주술에 의해 시간은 그녀가 12살이던 그 해로 돌아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패트릭을 어떤 식으로도 놀래켜서도 안된다. 그렇지만 어떤 식이로든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패트릭으로 하여금 이 세가지 재료를 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노력 끝에 패트릭에게 답장을 보낼 수 있는 엄마 버나뎃은 패트릭에게 특명을 내린다. 과연 패트릭이 자신의 답글로 보내진 황당한 글을 읽고 그것이 엄마의 글이라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혈육간의 믿음은 끈끈하고, 엄마를 찾고자 한 패트릭의 몸부림은 그 어떤 고난이라도 기꺼이 감래할 자세이다. 이야기는 성배를 찾아나선 중세의 기사를 떠올리게 하면서 흥미진진해진다. 혹시라도 어렵사리 구해온 불씨가 꺼질까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면서, 무사히 그 불씨로 케잌을 익힐 불을 피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 책을 읽는 청소년 독자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날 12살 소녀로 돌아가서 딸 아이의, 혹은 아들의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있다면?" 어느 엄마라도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또한 "내가 만일 집을 며칠간 비운다면 우리 집 식구들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면서 돌아온 순간 지저분하고 꼬질꼬질한 식구들을 쳐다보기 아찔한 마음에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집을 비울 수 없는 엄마들의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을 대리 만족시켜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른들의 시점에서도 재미나게 읽힐 수 있다는 대단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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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라졌다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05 수 코벳 지음 생각과느낌 평소와 다름 없던 어느 날,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엄마 버나뎃은 패트릭이 중학교 2학년이 되기 하루 전날에 사라지고, 삼형제 패트릭과 케빈, 닐, 그리고 아빠 제러드는 지쳐간다. 하지만 엄마는 열두 살 여자아이로 변해버려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 이유는 외할머니 댁의 식품저장실 선반에 있던 포리오 게러흐 치료제를 마시며 어너미가 자신의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어서 그랬던 것이다. 엄마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패트릭에게 자신을 되돌릴 수 있는 영혼케이크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엄마가 자신이 열두 살이 된 이유를 찾는 동안 가족들은 또 엄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패트릭은 결국 물냉이 줄기 세 개, 구스베리 열매 열 알, 구스베리 덤불 가시 열 개, 5월 1일 전야의 불씨를 찾아낸다. 그리고 열두 살이 된, 물론 패트릭은 엄마의 친척으로 아는 열두 살의 엄마에게 모은 준비물을 전해준다. 엄마는 그 준비물로 영혼케이크를 만들어 사흘 동안 한 번씩 먹고 되돌아온다. 제일 좋았던 점은 아일랜드 전통과 전설들이 흥미롭게 이야기와 함께 녹아들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엄마 버나뎃의 이야기와 아들 페트릭의 이야기로 각자의 시점들이 모두 나와 있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다 알수 있게 된 점이 좋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마지막 결말이 다소 어정쩡 하게 끝났다는 것이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소설의 소재도 색다르고 내용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2012.7.28.(토) 이지우(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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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라졌다’는 청소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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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동안 읽어버렸다. 너무 재미있다. 앝은 재미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작가는 잔잔하게 진실되게 이야기를 끌어 나갔다. 과장없이.... 그러므로 내가 말한 재미있다는 무척 감동적이었다는 이야기이고 나와 매우 밀접한 느낌의 이야기 였다고 할 수 있다 패트릭이 동생들과 집을 건사하는 이야기도 너무 힘들다 희생이다 라는 느낌없이 아 엄마가 없으면 이렇게 고생하겠구나 정도의 무겁지않은 느낌이 였고, 엄마의 안타까움도 다시 시작한 어린시절의 즐거움과 더불어 마냥 고통스럽게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런 진한 감정의 움직임도 없는데 이 책이 이렇게 나를 울리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돌아온 할머니, 엄마의 엄마.....돌아가셔서도 딸을 위해 돌아오신 분, 내가 내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싶다. |
| 가끔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난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 삶이 자꾸 삐거덕거리는 것 같고,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면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그러면 언제가 좋을까, 역시 대학 1학년인 스물 살 때가 제일 좋을 거야. 성년이 되었으니까... 적어도 지독하게(?) 공부했던 고3은 겪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는 대학 1학년... 그 때부터 새롭게 내 인생을 시작하는 거야. 그 때는 세상이 주는 상처도 받지 않았을 때이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나이이기에..." 그러나 정말, 정말 다시 과거로의 회귀가 가능해서,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 자체만으로도 삶은 버거운 것인데, 그 버거운 시간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다시 시작해도 내 삶은 그리 변할 것 같지 않다. 지금의 난 그 세월이 만들어 준 것이기에,... 역시 똑같은(또는 비슷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거역할 수 없는 자기만의 운명과 길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기에... 이 책의 주인공 버나뎃도 삶이 무겁고 버거워지자, 도피처로 몇 개월 전에 돌아가신 엄마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식품 저장실에 있는 알코올 음료를 마시며 ‘좀더 젊어졌으면... 엄마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라고 중얼거리다가 잠이 들었고, 아침에 깨어났을 때는 마흔 살의 여자는 사라지고, 대신 열두 살짜리 소녀가 나타난다. 마흔 살의 여자는 요정의 마법으로 열두 살의 소녀로 되돌아간 것이다.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이했지만, 무관심한 남편은 아내의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직장에서는 언제나 일에 쫓기고, 자식 셋은 늘 자기의 관심만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잠시 휴식을 갖고자 엄마 집으로 갔는데 그만, 열두 살로 되돌아 왔다. 그 다음부터는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대로다. 엄마가 사라졌으니 집안은 난리가 났고, 버나뎃은 육체는 열두 살이지만 의식과 정신 세계는 그대로 마흔 살이니 혼란스럽다. 버나뎃과 큰아들 패트릭이 교차하면서 이야기는 서술된다. 패트릭 이야기가 전개될 땐, 엄마 없는 집안이 어떤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버나뎃의 이야기가 나올 땐 가족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절절히 묻어난다. 버나뎃은 학교에 가서도 늘 큰아들, 패트릭 주변만을 맴돌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처럼 가정에서 주부의 역할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의 민속과 주술적인 요정의 마법은 약방의 감초처럼 달콤하다. 하지만, 나를 울린 것은 돌아가신 엄마가 다시 살아나서 12살이 된 딸 버나뎃과 생활할 때이다. 엄마는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딸과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가슴에 한이 맺힌 딸과 함께 생활하고 드디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랑한다고...(이 때 눈물 찔끔 났다^^) 정말 생에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과, 단 일분만이라도 작별할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때만큼은 나도 딱 한번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 버나뎃은 다시 마흔 살로 돌아가고 싶지만, 만일 그렇다면 엄마는 다시 죽음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에 버나뎃의 갈등이 있다. 엄마와 생활하는 것은 행복하지만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 언제까지 가족과 떨어져 살 수만은 없다. 그러나 엄마도 요정의 마법으로 자신이 이 곳에 온 것을 알고 딸에게 말한다. “죽음이 딸과 엄마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을 것 같니? 네가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 속에 내가 있는 거다.”(p341) 그게 엄마인가 보다.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겠지. 아들의 도움으로 마법에서 풀린 버나뎃은 다시 슈퍼우먼처럼 힘들게 살아가야 하지만, 이젠 가족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가족들 역시 엄마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은 엄마와 패트릭이 들떠서 각자 재회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끝을 맺는다. 더 읽지 않아도 그 가족의 재회가 어떨지 눈에 선하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굉장히 무거운 청소년 소설을 읽어서 마음이 어두웠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콧등이 짠해 오면서도 기분은 아주 상쾌했다. 그러면서도 한번만, 딱 한번만 나에게도 아일랜드의 주술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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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또는 아내로서의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두 아이의 엄마로서 현모(賢母)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앞에서 끌어주고 한 남편의 아내로서 양처(良妻)라는 이름으로 남편을 뒤에서 바라지하는 하루하루의 반복적인 생활에서 본래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엄마’, ‘아내’의 모습만이 남아 있곤 한다. 현실로부터 떠나고 싶어하는 공간의 탈출 그리고 꿈 많은 소녀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시간의 탈출은 가끔씩 나를 실현 불가능한 몽상에 빠지게 하곤 한다.
패트릭의 엄마, 버나뎃의 경우에는 이러한 공간의 탈출과 시간의 탈출이 몽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남편과 아이들이 챙겨주지 않은 버나뎃의 생일에 무심코 생각했던 순간의 소원이 그를 12살 때 과거로 돌아가게 하였다. 12살 때 살았던 집 안의 공간과 버나뎃의 엄마와 만남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돌아오기 이전의 현재 그대로인 지금.
여기에서 겪게 되는 버나뎃의 혼란과 버나뎃이 사라진 집의 혼란,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현실과 이어진 끈을 놓지않고 흔적을 찾아가는 노력, 그 노력 끝에 원래의 현실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 등은 추리소설 형식과 판타지여행 형식을 적절히 갖추면서 엄마를 다시 찾고 싶어하는 패트릭의 마음 만큼이나 이 책의 결말을 볼 때 까지 책을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전체 줄거리에서 벌어지는 동일한 사건/현장을 특정 인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시각에서 바라본 모습과 패트릭의 시각에서 바라본 모습을 각각 대칭 하여 글로 써 간 독특한 이야기 형식은 더더욱 흥미롭게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당연히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고 항상 지금의 모습으로 가질 수 있다는 자만과 교만으로 그것이 가지는 진정한 존재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무심코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사라졌을 때서야 소중함을 느끼는 후회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과 같이 함께 있을 때 소중함을 함께 느끼는 작은 감동을 얻은 것 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큰 의미를 남겨준다.
내 아이, 내 남편, 내 가족, 내 식구들을 더욱 더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버나뎃은 그동안 앞으로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을 다짐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간다면 가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지. 함부로 소원을 빌지 말아야지. 윗몸일으키기를 계속해야지. 그런데 이제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야 했다. 앞으로 패트릭에게 훨씬 더 많은 자유를 줘야지. 그건 패트릭의 수고에 대한 정당한 보답이야. p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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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네 가족이 패트릭의 엄마 '버나뎃 맥브라이드'를 화나게 만들어 버나뎃은 집을 나갔다. 버나뎃은 자신의 엄마(패트릭의 할머니) 집을 찾아가 혼자 젊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 보니 버나뎃은 어려져 있고 할머니는 다시 젊어진데다 살아계셨다. 그래서 버나뎃도 패트릭과 같은 학교에 다니며 다시 돌아가려고 애쓴다. 난 젊어진 할머니와 버나뎃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알고보니 요정이 장난을 친 거였고 무사히 돌아가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패트릭네 가족들은 아주 슬펐을 것이다. 또 버나뎃이 돌아갈 때 할머니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때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패트릭네 가족들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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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최나미/청년사)과 더불어 <엄마가 사라졌다>(수 코벳/생각과 느낌)를 추천합니다. 여러분은 40번째 생일에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아이들을 위한 성장동화지만 40대 엄마들도 읽으면 좋은 그런 책입니다. 하나는 국내, 하나는 외국 작가의 작품이면서 여러모로 대조가 됩니다. 하나는 사실주의 동화고 하나는 판타지기법을 사용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엄마를 단순히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아닐까요? '너도 하늘말나리아' '유진과 유진' 도 그런 맥락속에서 읽을 수 있겠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