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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역사를 놓고 볼 때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과 정치를 잡으려고 하는 사람간에는 늘 대립과 반목,갈등과 회유,척결과 희생이 뒤따랐다.정치라는 것은 말그대로 국민을 위하고 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힘과 권력,명예,부의 세습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여겼다고 생각한다.그만큼 정치권력을 쥔 자와 아웃사이더 간은 팽팽한 긴장감과 갈등이 도사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이다.
그러한 비근한 예가 해방이후에 등장하는데 이승만 정권하에서의 정치 거목 조봉암선생 처형,박정희 시대 장준하선생의 의문사 등은 법과 체제를 떠나 지식인의 일반인의 분노를 사게 만들었으며 아직도 이제 대한 쿨한 사과도 없이 빠져 나갈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역사의 진보를 기대할 수가 없는 점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것은 권력 주위에 포진되어 있는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힌 부류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과학과 기술 문명은 나날이 발전되어 가지만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생각과 이념,파벌은 아직도 구태의연하기만 하다.
조선 후기 외세의 개화 압력이 거세지고 개화 세력들이 늘어나면서 봉건적이고 수구적인 왕권사상을 벗어나 선진문물을 받아 들여 조선의 개혁개방을 진보적으로 이끌어 가려던 인물이 김옥균이었다.그는 당숙 김병기의 양자로 들어와 어린 시절부터 총명함을 보여 주는데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고 홍문관교리로 임명되면서 정치적 결사 및 개화당 형성에 진력을 하게 된다.그리고 이동인을 일본에 파견하여 일본의 근대화 실태를 조사케 한 뒤 그도 일본 근대화 시찰을 통해 이것을 조선에 밴치마킹하려 김옥균을 위시하여 홍영식,서광범,박영효 등과 우정국에서 갑신정변을 일으켜 체제 개혁의 요강을 발표하지만 청군과 민비수국세력에 의해 실패하게 된다.
김옥균은 정변 주도자들과 일본인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은신을 하면서 뜻있는 자들로부터 생활자금 등을 제공받게 되지만 그의 입지는 좁아지기만 한다.도쿄에서 홋카이도,오가사하라 섬 등으로 망명의 설움을 달래다 다시 일본 도쿄로 돌아오면서 그를 죽인 자객 홍종우라는 인물과 접촉하게 된다.자객 홍종우는 민비수구세력이 보낸 이일직의 (댓가성 있는)제의를 받고 김옥균과 동지로 가장하면서 당시 조계지(租界地)였던 일본 소유의 동화양행 호텔에서 외롭고 처절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홍종우는 조선인 중에서 프랑스 유학 1호자로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할 만큼의 능력을 갖은 자였고 김옥균을 살해한 댓가로 그는 홍문관 교리직을 제수받고 사택까지 하사 받은 자이다.청국의 방해로 김옥균은 자신의 개혁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집어 삼키려는 철저한 계획을 이토히로부미에 의해 착착 진행되고,조선에 대한 일본의 간섭이 심화되면서 홍종우는 제주목사로 좌천된다.그곳에서 탐관오리로 부정부패를 일삼던 홍종우의 말년은 자업자득의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김옥균과 홍종우가 만일 살아 있다면 두 분이 국내외 정치 문제를 어떻게 펼쳐 나갈것인지를 가상 대담으로 실어 놓은 점이 매우 인상적이고 독특하다.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과 증거에 의해 조재곤저자의 유연성과 개연성 있는 상상과 추리로 대담을 실은 점은 당대의 상황을 한층 이해하기 쉬워 역사적 학습과 그들의 심리적,이념적 문제까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주고 있다.
유교적이고 왕권 중심으로 돌아가던 조선 후기는 풍전등화의 형국이었다.시대의 흐름과 나라의 문명발전을 일찍이 간파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려 했던 김옥균은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현대 위정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그리고 김옥균이 죽지 않았더라면 과연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진행되어 갔을지도 의문이다.왕권,신권,사색당파,민란,세도정치로 이어지면서 김옥균과 같은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선지자들의 뜻이 빛을 발할 수 없었던 점은 역사의 후퇴,국치로 이어지는 불운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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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절판이란.. 추리소설처럼 재밋게 읽었다. 홍종우의 살인동기를 유추하는 재미... 한마디로 종우씨는 기회주의자일 뿐이다. 고종의 복수의지에 영합하여 일신의 영달을 추구했을 뿐 그가 추구했다던 나름 애국애족 정신은 그냥 미화한 것으로만 들린다. 김옥균과 다른 노선으로 조선의 개화를 추구했다? 그런 증거는 없다. 단지 황권주의자일뿐 고리타분한 성리학 명분에 충실하여 왕에게 충성하고자한거 말고는 없다. 유학생이라고는 하지만 대학이나 어디에 적을 두고 공부한 적은 없다는게 팩트다. 저자는 홍종우에게 중립을 넘어서서 약간의 긍정적인 노선을 타고 있다. 그점이 약간 유감이지만 재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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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홍정우, 그 解寃相生의 길 -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 -
이 책은 조선의 운명을 바꾼 김옥균 암살사건을 재조명 했다.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자 춘향전을 프랑스에 전파한 홍종우. 그가 중국 상하이에서 갑신정변의 중심인물이자 개화파의 주역인 김옥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저자 조재곤은 김옥균과 홍종우가 왜 정적이 되어야만 했는지, 홍종우는 무엇 때문에 김옥균에게 총을 겨누어야만 했는지 김옥균 암살사건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그의 상상력이 가미된 ‘가상대담’까지 집어넣으면서 말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역사학자들에게도 생소한 암살자 홍종우를 재조명하며, 당시 조선ㆍ일본ㆍ중국ㆍ러시아의 역학 관계 속에서 김옥균 암살사건이 어떻게 이용되고, 그것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고 있다. 또한 세계주의로 표상되는 김옥균의 사상과 국제주의로 대표되는 홍종우의 사상이 만났을 때, 그 역사적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깊이 있게 모색하고 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김옥균을 개화파로, 김옥균 암살자인 홍종우를 수구파로 보는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두 인물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김옥균과 홍종우는 개화 대 수구로 대립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나 국내 현안 문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접근해, 이데올로기로 이용당한 역사인식의 개혁을 조심스레 시도한 책이라 하겠다.
홍종우는 어떤 사람인가?
김옥균을 죽이게 된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 홍종우의 정치활동에 대해서 자세하게 보도한다. 김옥균은 잘 알려져 있으나, 홍종우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보통 독자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추적과정이었다. 저자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책을 읽는 중에 문득 홍종우라는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특히, 첫 프랑스 유학파라는 점과 문학작품을 번역한 것. 프랑스에서도 한복을 입고 다니는 뚝심이 그것이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개화파 인사들과 대비되는 홍종우의 모습에는 고춧가루 뿌려진 김치의 맛이 느껴진다. 책 전반에는 연신 세계화를 잘못 파악하고, 일본을 신뢰한 김옥균과는 달리 대한제국을 바로잡아 외세들과 평등한 역량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었던 홍종우가 보도된다. 홍종우가 추구한 목표는 조선의 전통과 서양문화를 조화, 절충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대중을 계몽하는 데 있었다고 한다. 그가 김옥균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긴 것은, 김옥균이라는 개인을 향했다기보다는 조선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의 진술에 비추어보면 말이다. 식민지 시기 저명한 국어학자인 김윤경(1894-1969)은 “홍(종우)은 식견이 있고 담략이 있는 유용한 청년이었으나 다 권리와 구복(口腹)에 끌리게 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김옥균 암살 이후, 조선과 홍정우
국제정세는 ‘조선을 위해서 방아쇠를 당겼다’는 홍정우의 뜻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평소에는 김옥균에 대해서 관심도 없던 일본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 사건을 청일전쟁의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이어 합방의 명분과 단서를 그의 활동에서 찾았고, 식민지 시대 말기에는 ‘대동아공영권’을 통한 세계 지배와 조선 민중에 대한 전방위적 통제의 명분을 김옥균의 삼화주의에서 찾았다. 당시 친일 세력들도 김옥균을 과대포장하면서 그로부터 자기 합리화의 단서를 모색하게 된다. 한편 이런 흐름속에서 홍정우는 김옥균을 암살한 것을 기회로, 출세가도를 달린다. 한말 변혁기에 가난하고 문벌도 변변치 못한 가문에서 성장한 홍정우는,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면 고종을 측근에서 보좌하면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친다. 그의 일차적인 관심과 과제는 갑신정변, 갑오개혁, 아관파천을 겪으면서 실추된 국왕의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홍정우는 ‘군제(軍制)는 사람 몸의 손톱과 어금니’라고 비유하면서, 이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남에게 부림만 당하면, 자신을 보호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군사권의 확립과 무비 강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게만 된다면이야 얼마나 좋을까? 상황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국제정세도 그랬지만, 당시의 지식인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홍종우의 의견에 딴죽을 걸었다.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대표적인 단체는 독립신문이다.
홍종우와 독립신문
앞서 살핀 군제에 관한 부분에서의 의견 차이는 다음과 같다. 홍종우는 ‘외국 군대 주둔은 우리 자주권의 침해’라하여, 모두 본국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독립신문은 우리 군사와 순검은 내란을 능히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외국군 주둔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많은 담론들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개화’라는 비슷한 이미지의 홍종우와 독립신문도 입체적으로 보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저자는 홍종우의 편을 들어주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광무 연호 화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에서 홍종우의 의견이 ‘비교적’ 옳았음을 증명해내고 있다.
홍종우와 독립협회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라는 책에 드러난 홍종우만으로 그를 보는 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박제된 죽은 역사를 살피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과 비슷한 느낌으로 서술해나가는 또 다른 입장에서의 책,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이황직 지음)>에서는 홍종우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홍종우 :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자비 유학)이면서 동시에 김옥균의 암살자로 유명하다. 자주적 개혁이라는 높은 이상을 가졌으나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라면 무엇이든 정당화했다.
고종은 독립협회를 대신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친위 조직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1898년 6월 30일 조직된 황국협회가 그것. 황국협회는 이기동, 고영근, 길영수 등 황실 측근 세력이 주도했지만, 사실상 홍종우가 협회의 이념과 정책 방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황국협회의 행동대원은 황실의 지원을 받은 상무사의 보부상들이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권력욕으로 만민공동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데 앞장서기까지 한다. 모두가 나라를 위한 행동이었지만, 어떤 ‘나라’인지의 개념 차이가 국난을 극복하는 데에 갈등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네 생활사도 똑같다. 나라를 위한다면서 갈등을 일으킨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 창조적인 긴장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모적이다. 김옥균, 홍정우, 독립협회도 마찬가지였다. 홍정우의 입장이 절대적이지 않은 바에야, 그가 김옥균을 죽여야 했을 마땅한 명분이 될까? 천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대의명분 앞에 동탁을 섬멸하고자 나섰던 18군연합이 실패했던 이유는, 사사로운 욕심이 큰 명분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어쩌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살리는 큰 명분에 사사로운 감정을 적절히 배합하여, 자신을 합리화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자기들도 ‘동탁처럼’되기 위해서면서 말이다. 한국교회사에서도 두 거장 한경직과 김재준의 경우가 그렇다. 이 둘은 실제로 절친한 사이였음에도, 그들을 연구하는 후배들이 교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사람은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사람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홍종우를 비롯한 많은 역사속의 인물들이 이처럼 정치꾼들과 연루된 오염된 역사연구 때문에 온당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금기를 깨뜨리며, 바로 오늘의 역사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김옥균 : 그럽시다. 자 이제는 나도 당신에 대한 오해와 원한을 조금이나마 풀수 있게 되었고. 어떻게 보면 우리가 서로 힘을 합쳐 난국을 타개할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좋은 미래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을 아쉽습니다.
홍종우 : 그러게 말입니다. 나 역시 항상 선생에게 죄를 지은 점이 마음 깊이 상처로 남아 있지만, 우리들이 계속 이에 연연할 수만은 없지 않겠소. 우리 이제 해원상생(解寃相生)의 길로 갑시다.
이념과 사익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역사의 굽이굽이를 해원상생의 길로 극복해 나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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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김옥균을 죽였다. 그래서 내가 범죄자인가, 살인자인가? 개화를 염원했던 사람을 죽였으니 내가 시대를 거스르며 조선의 문을 열지 못하겠다 무조건 우기기만 하는 사람인가?" 도대체, 당신들은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김옥균은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홍종우에게 살해당했다. 김옥균은 개화를 염원했고, 홍종우는 그런 그를 죽였다. 그렇다면 홍종우는 개화를 반대하던 수구파인가? 이 책은 이런 질문의 대답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정말, 우리는 홍종우에 관해 얼마나 알까. 왜 그저 홍종우가 재물이나 권력때문에 김옥균을 죽였을거라 단정할까. 왜 늘 선이 아니면 악을 말할까. 이런 책이 정말 좋다.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상황 하나 하나를 주목하면서 충분히 이해할만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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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젊은 그들으이 모험 - 을 읽을때 이 책 제목을 보았다.
친중 역사학자인 성공회대 한홍구교수의 책을 읽다 우연히 이 책의 제목이 보여
찾아보니 절판이 되었다 아차 싶어 중고책을 얼른 고른다.
김옥균이 거사를 치르기는 했지만 그의 준비성 부족과 거사를 치르면서 상처를
남긴 역사적 과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상처받은 국가와 사람들의 면명을 처음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홍종우의 사상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군주권을 중심으로 조선은 주체적으로
근대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P81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 - 읽어보세요
중국과 한국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야마토는 고령가야를 가리키는 말이며 고령가야의 시조는 이지아키로 일본을 만든 이자나기의
원형입니다.
P74중국인들이 슬피운 이야기는 조선이 중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복식이 중국식...
P83 사기에 은나라는 오랑캐의 나라란 말이 있습니다.
공부 좀 하십시오
P90 볼테르의 조선은 중국의 속국(식민지)였다는 지적이 정확하다 베트남도(베트남사)
조선인인 홍종우의 생각보다 더 사실에 가깝다.
일본은 김옥균의 죽음을 청일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다.
등장인물 모두 자신만의 논리가 있고 행동에 롷고 그름이 있지만
500년전 무학과 정도전이 도읍을 잡을때 정도전식으로 대권터(경복궁)을 잡으면
3대째 정란이 200년후엔 국난이 500년후에 나라가 망한다는 풍수논리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정도전식으로 잡으면 500년후에 망한다는 예언을 무학대사가 하였으나
자신을 보필하며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한 참모였기에 정도전의 손을 들어준다.
동묘가 있고 숭례문과 흥인지문이 그걸 성명해주고 있다.
500년전에 잘못판단된 풍수라는 막차가 떠난후 태어난 것이 그들의 공통된 잘못이었다.
(김두규교수의 풍수강의)
P143 후쿠자와 유키치는 홍콩에 갔을때(후쿠자와 유키치) 서양사람에게 매를 맞는
중국어부를 보며 부국강병을 절실히 꺠달아 나라의 부국강병을 도모했는데
홍종우는 승승장구에만 열을 올렸지 군사력 강화엔 전혀 신경안쓰며 이렇게 옳은 말만 늘어놓는다.
실천이 없는 지식인.
김옥균의 거사가 군사력에 기반을 두지 못해서 실패한 것을 보았으면서 그걸 고대로
따라가고 있다.
김옥균의 이름이 거창하여 그의 이름을 빌려 이 책을 빛내고자하는 의도로 제목에
그의 이름을 빌려썼나보다 김옥균의 이야기는 전반부에만 일부 중반부에;일부 후반부는
홍종우에 관한 이야기로만 장식되어 있다.
검사말만 들으면 무죄고 검사말만 들으면 피고는 유죄다.
양족말 다 듣고 싶어 이 책을 샀는데
중화사대주의 사상을 가기고 있는 주인공과 지은이의 필체만 보았다 괜히샀다.
관자/소나무 흉노제국이야기 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대쥬신을 찾아서 압록강은 흐른다 욕망하는 지도 만주족의 청제국 돈가스의 탄생 거란 잊혀진 유목제국이야기
제목 : 만약 권율장군이 역모의 수괴였다면?
학교에서 배운다. 소중화주의 한국은 작은 중국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여진,조선,일본을 오랑캐라 말하며 한국은 여진,일본을 오랑캐라 부른다.
권율장군은 충신이고 영웅이다. 소설을 한 번 써보자.
권율장군이 어디 권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원권씨라고 가정해본다.
도요토미는 임진왜란전 조선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시비를 건다.
연산군때까지 일본에 공녀를 바쳤던 조선은 중종때 자주개혁을 선언하며 이를 단절시키나
다시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은 이를 요구한다.
10만양병설은 후대에 꾸며낸 허구이나 만일 실미도처럼 잘 훈련된 군대를 권율에게
맡기고 총지휘권을 주어 정벌하라 명했는데 낙동강쯤가다 지금은 농번기라 안되고
비가 많이와 활이 느슨해지니 안되고 북쪽에 있는 나라가 남쪽에 있는 나라를 치는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쿠데타를 일으켜 개혁을 하고 있는 조선왕조를 쓰러뜨리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국명을 권율의 고향인 철원으로 하오리까 가야라 하오리까 여쭌다.
이에 고무된 도요토미는 가야란 이름이 아름다우니 (일본고대사서중 하나엔 가야가
임라일본부 즉 일본의 식민지였다란 허구적이야기가 있다) 국명을 가야라하거라.
그후 가야의 태조 권율은 자신의 역모를 감추기 위해 소왜국주의사상을 내세워
조선은 작은 일본이라 칭하며 일본은 아버지의 나라라하여 큰나라에 빌붙어사는 사상인 사대주의로 일관한다 동국여지승람의 동국도 중국의 동쪽에 붙어있는 중국의 속국이란 뜻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칠 수는 없다. 그럼 권율(이성계)이 낙동강(위화도)에서 쿠데타를
일으킨게 정당화된다.
그리고 다시 공녀제도를 만들어 매번 공녀를 뽑아 왜국에 상납하고 그 반작용으로
조혼제도가 가야시절 내내 자리를 잡는다.
이게 오랫동안 정착되어 1909년 민적법에 의해 성씨가 없는 노비나 백정,망나니,재주꾼들은
기왕이면 왕족의 성씨를 갖자며 철원권씨나 김해김씨를 가져가고 이들의 후손중
성공한 사람들은 진짜족보를 사서 종친회에 나온다.
한술 더떠 어떤 이들은 진짜임을 강조하고자 권씨가 아니라 궐씨라고 고쳐부르기도 한다.
몽고는 세계를 휘두른 국가다 원도 몽고족이 세웠고 러시아인도 한꺼풀 벗겨내면 속은
몽고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인도 무굴왕조,타타르까지 전세계를 휩쓸었다 황인종을 몽골리안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고려도 세계속에 그것도 몽고 바로 옆에 있다 모든 나라가 복속해야했듯 고려도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고 앞에 충성충자를 왕에게 붙였으며 공녀를 바쳐야했다 이건 고려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일이었다.
명은 원을 물리치고 중원만 통일한다 그리고 고려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건다.
물론 여기엔 공녀도 포함된다. 고려 공녀는 공민왕이 등극함과 동시에 없앤제도다.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까지 영토를 넓힌 고려는 전군의 총지휘권을 이성계에게
맡기고 명을 치라 명한다.
고려는 문무를 겸비한 국가로 무인기질이 강했고 여러 전란을 거듭하면서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전권을 갖게된 이성계장군은 위화도에서 우기가 오길 기다리다 지금은 비가 많이와
활이 느슨해져 안되고 농번기라 안되고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치는건 예의가 아니라며
창끝이 겨눈 방향을 반대로 돌린후 고려를 무너뜨리고 고려에 싸움을 건 적국의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새로 생긴 왕조의 국명을 이성계의 고향인 화양이라고 하오리까
조선이라고 하오리까 묻고 명태조 주원장은 조선이라는 이름이 아름다우니 (고대 조선은
중국이 지배했다고 중국은 아직까지 우기고 있다) 조선이라고 하거라라고 명한다.
이 때 고려의 대신 이인임이 이성계의 선조라고 자기네 사서에 기록해 후손들이 조선에
대한 외교적 히든카드로 써먹도록 조치하고 이를 임진왜란 직전 오키나와 상인들에게
전운이 감돈다는 정보를 입수한 명의 관리들이 이 히든카드를 써먹는다.
홍역관과 병부상서 석성의 이야기는 얼굴마담일뿐이다.
공녀를 보자 이성계는 즉위하자마자 공녀제도를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조혼의 풍습이 조선내내 이어지지만 지금의 교과서엔 조선의 공녀이야기나
조선시대 조혼이야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온통 고려공녀 충성충자 고려임금 이야기뿐이다.
우리 조상들도 항상 그랬으니까 조선이 중국을 부모의 나라로 떠받들고 사대로 일관하는건
당연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래야 자기들의 죄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민왕이 개척한 갈라전(동북3성과 함경도일대)도 윤관의 동북9성도 흥남부두일대로 왜곡되어있거나 함경도로 국한되고 교과서엔 온통 세종대왕의 4군6진이야기뿐이다.
태종 이방원은 고려군관 출신이고 세종의 대마도 정벌도 사실은 태종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고려의 무인기풍이 세종때까지는 남아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군권은 모두 임금에게 집중시키는 체제를 만들고 공맹사상만을 강조하는
문치시스템에만 역점을두어 결국엔 임진왜란과 36년국치를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몽골제국시절 세계가 몽고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녀를 바쳤지만 명나라시절 세계에서
명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녀를 바친건 조선뿐이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전주이씨임을 자랑하기 위해 자신은 이씨가 아니고
리씨라고 주민등록증에 달고다닌다.
악인열전을 보자 히틀러가 있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독가스로 살해한 인물 독가스를
누가 나치에게 팔았는가 유대인재벌 로스차일드가문 그 후손들중 일부와 관계자들은
AP,UPI,로이터,워싱턴포스트,헐리우드 ,뉴욕타임스,뉴욕포스트등등 모두 그들 것이다.
위인전을 보자 이성계.나폴레온 모두 역모의 수괴인데 그 잔당들이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너무 작아도 안보이지만 너무 커도 안보인다.
나폴레옹은 남의 나라 사람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역모의 수괴인 이성계 이제 그만
이완용 같은 반열인 악인열전에 올릴때도 되지 않았을까
참고책 대쥬신을 찾아서 팍스 몽골리카와 고려 조선시대 궁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전통생태와 풍수지리 욕망하는 지도 노컨,조선왕조실록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 한국사상식 바로잡기 풍수화
제목 : 동해 일본해 & 성폭력범죄자의 특징
요즘엔 전자발찌를 차거나 화학적거세를 한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처벌수위는 비슷하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5분내지10분의 쾌락을 위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짖밟아버리는 범죄.
5~10분의 자신의 쾌락 떄문에 , 이게 성폭력을 즐기는 이유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페탱원수의 비시정부이다.(먼나라 이웃나라)
페탱원수는 1차대전의 영웅이었고 대통령까지 되었다가 2차대전떄 프랑스 온천도시 .
비시에 나치가 조종하는 비시정부의 수반이 되어 프랑스 국토의 1/3을 다스리다 전쟁이
끝난후 처벌받는다.
독일이 프랑스를 지배한건 3~4년이고 프랑스가 독일에게 문화적 혜택을 받은건 없어도
빼앗기거나 당한건 많다.
이성계를 보자 한족 부흥운동인 백련교도의 난으로 홍건적이 쳐들어왔을때 무찌르고
60년간의 일본남북조시대에 남조의 패잔병들이 남원쪽으로 진군했을때 황산에서
대파시켜 전쟁영웅이 된다.
여러대째 다루가치집안이었던 그는 (몽골은 왜 고려를 멸망시키지 않았나) 명나라 토벌을
명받고 위화도까지 갔다 쿠데타를 일으켜 자주국인 고려를 멸망시키고 만주와 요동이
우리땅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들을 모두 죽이거나 귀향보내고(오백년 도읍지를~) 명나라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나라이름을 지어달라고 애원한다.
조선은 500년내내 임금의 권한을 수행하려면 중국황제의 허락을 받아야했고 세자를
지명하려해도 그 지명이 유효하려면 중국사신의 허락이 있어야 그 지명이 유효한
중국의 유일한 식민지였다.(대장금)
500년동안 중국만 바라보며 사대주의 쇄국을 하던 조선은 근대 서양문물을 1543년부터
받아들인 일본에 의해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의 이권을 먹으려면 먼저
식민지관계를 청산해야되는걸 알기에 강화도조약 1조에 '조선은 독립국'이란걸 명시해
조선을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시킨다.
우리는 36년이라 배웠고 지금은 35년이라 가르치지만 사실 50년이 맞고 이건
이토 히로부미의 계략이었다.
3국간섭을 보자 중국땅을 점령했지만 서양세력이 간섭해 할양받을 땅을 포기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비스마르크를 보자 나폴레옹3세와 전쟁후 파리를 함락시키고 배상금을 요구하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을 대신 가지라고 했을때 그는 다른 나라들이 간섭할 걸
우려해 돈으로 달라고 한다. (비스마르크평전)
만일 2차대전후 미국이 전쟁배상금을 일본정부에 요구했다고치자 그리고 대신
조선을 가지라고 했다면 우린 기분이 어떨까 그런데도 우리는 프랑스를 찬양하면서
우리와 같은 역사를 안고 있는 월남은 무시한다.(호치민평전)
일본이 조선과 전쟁을 안한 두번째 이유는 군사력도 얼마안되고 아직도 활이
주력인 나라 학교도 지어주고 철길과 도로도 놔주어 조선사람들은 좋아하나 나중엔
조선을 삼키기 위한 포석인걸 안중근의사등 몇몇분만 빼놓곤 모른다. (시일야방석대곡)
그래서 1909년에 하얼삔에서 그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토의 자제 요청으로 조선을 삼키지 못한 일본은 바로 다음해 조선을 병합한다.
500년동안의 식민지배체제,쇄국정책을 이성계가 만들었고 그를 주도한 인물이 그의 군사(참모)
정도전인데 지금 이들은 자신들의 계략에 세뇌된 국민들에 의해 영웅이 되어 있고
너도나도 전주이씨라 자랑한다.
세계의 노예제도가 없어진건 1860~1870년 사이이고 일본도 1872년에 노예제도를 없앴지만
워낙 강고한 중국은 1903년에야 없애고 우리는 일본의 강압에 의해 제일 늦은 1909년에야
없앨 수가 있었다. (노컷조선왕조실록,청사)
누가 그런다 프랑스는 반민족 처벌했는데 우린 못했다고 그들은 3~4년 동안 우리는
50년 가까이 지배를 받았는데 상황이 같은가 앞이 안보이는 상황인데 같은가 해방후
빨치산들이(권오석) 남한을 전복하려고 총파업,도로,철도 운행중단시키는데 이걸 막으려면
남로당같은 공산당을 색출할 능력이 있는 집단은 친일경찰뿐인데(한국보수세력연구) 상황이 같은가 우리의 근대문물은 거의 100% 일본이라는 필터를 거쳐 들어왔다.(돈가스의 탄생) 교육,문화,법률,의료,과학 혈액형별성격테스트도 한국과 일본뿐이다.(헌혈,사랑을 만나다)
김구선생님꼐서 해방후 말씀하신다.
마지막까지 내곁을 지킨 사람은 넷뿐이었다고.....
지금은 보는 사람마다 자기가 거기에 속한단다.
이완용은 독립협회 회장이었고 갖은 수난을 당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지만
노후생활의 안락함을 위해 변절한다.(한국분,한국인,한국놈)
유신반대 독재반대를 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철은 노후생활의 안락함을 위해 KTX승무원을
등친후 먹튀한다.(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KTX여승무원문집)
그리고 우린 어떤 범죄자에겐 감투를 어떤 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운다.
다시 말해 조선은 중국이라는 다국적기업의 현지인 사장체제였고 36년식민지는
일본이라는 다국적기업의 본사파견제 사장체제였다는 이야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보자 개막식때 천장철도가 잠시 나온다. 이건 티벳에 대한 식민지배
말뚝박기인데 우린 그런가보다한다.(중국의 거대한 기차)
폐막식때 보자 동해를 일본해라 표기하고 있다.
중국이 일본에 감정이 더 많을까 한국에 감정이 더 많을까
이건 이이제이,원외근공의 오랑캐토벌 수법이다.
한족은 강대국 요나라를 물리치기 위해 멀리 있는 오랑캐인 금나라를 이용해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여진이 세운 금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후일 원나라를 세운
몽골을 이용해 금나라를 멸망시킨다.
멀리 있는 오랑캐를 시켜 가까이 있는 오랑캐를 멸망시키는 원외근공전략 폐막식때
일본해가 바로 그래서 나온 것이다.
지금 양국에게 가장 급한건 서로때리기 서로방어하기가 아니라 전권을 위임받은 양국의
대표학자 몇몇이 모여 양국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동해,일본해의 새로운 대안명칭을 찾는 것이다.
지금 양국은 명칭문제로 막대한 국력을 외교전으로 소모하고 있고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중국은 어부지리한다.
몽고,거란,여진,한국,일본,오끼나와까지 모두 알타이어족인 흉노유목민의 후손들이다.
(대쥬신을 찾아서1,2,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성서의 뿌리 p63,254)
오랑캐끼리 싸움붙이는 중국의 이이제이전법에 이젠 그만 놀아나자 가장 좋은예가 임진왜란이다.(풍수화/김용운)
중국은 지금 칭기즈칸과 을지문덕을 중국인이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동북공정 고구려사)
만주와 요동이 한국땅이란걸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우리는 중국을 어버이로
섬겨야한다는 소중화주의를 자신들의 6년간의 치부를 위해 자손들에게 심어주고
우리는 오랑캐가 아니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몇몇 동이족 반역자들의 논리에
이제는 그만 놀아나자
성폭력범이 5~10분의 쾌락을 위해 한 사람의 일생을 망친것과 이성계와 정도전 일파가
6년간의 왕노릇을 해보는 쾌락을 만끽하기 위해 나라를 500년간 중국의 식민지배체제로
만든 역사의 과오에서 이제는 벗어나야한다.
시간나시면 단양 도담삼봉에 한 번 가보세요 Re-born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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