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십대 소녀가 얼어붙은 황량한 벌판이 전부인 자연속에 놓여져 늑대와 함께 그들의 언어와 몸짓을 익히고 따라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줄리가 물론 에스키모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과연 북쪽 툰드라 평원에서의 삶이 가능한 것일까하는 의문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버지의 실종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홀로 이끌어가야만 했던 줄리의 입장에서는 사전에 미리 정해진 사람과의 결혼을 해야하는 관습에 따라 좀 모자란 대니얼을 남편으로 맞이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밝게 받아 들이며 생활해 간다. 그러나 남편의 폭력을 피해 펜팔 친구 에이미에게 가기로 결심하고 나서게 되는 순간이 아슬하다. 앞으로의 힘겨운 날들이 느껴지는 것처럼......
그녀에게는 도전과 개척의 정신이 드높아서인지 두려움이 별로 안느껴진다. 그러나 의지만으로는 여러가지 현실이 안좋았기에 그녀는 살아가기 위해 늑대들을 관찰하고 여러번의 시도 끝에 아마록의 허락을 받게 된다. 늑대처럼 뒹굴며 먹고 한다는게 경험이 없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짓일 거다. 아니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줄리처럼 행동했을지도 모르고.....
늑대들의 우정과 도움으로 드디어 마을을 찾게 되었을때 그곳에는 실종되어 돌아가신줄 알았던 줄리의 아빠가 계셨다. 그러나 이제는 백인아내를 맞이하고 백인들처럼 생활하는 그 이전의 에스키모인 카푸젠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서 혼란스럽다. 더구나 아마록을 죽인 이가 다름아닌 아버지라는 사실에 더욱 배신감을 더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 까지가 고달픈 줄리에게 엇갈리는 사랑이 느껴진다. 자연과 하나될 수 밖에 없었던 에스키모인의 삶에 또하나의 이기적이고 상업적인 삶의 모습이 어쩌면 또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를 잃어가게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안타까워서 그랬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되면서 점차 병들어가는 사회의 그늘진 면의 한켠을 보여 주는 듯하다. 줄리의 노력처럼 늑대도 우리들도 서로 나누며 역할을 지켜 나갔으면....., 자연은 우리의 것만이 아닌 모두의 것이며, 그것을 이용해 잠시 쓰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자연을 우리가 정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해 줄리부녀를 감동케했던 되돌아오는 순록떼들의 장관을 볼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