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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업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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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연구가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번역 작업을 수행하여 많은 성과를 이룩하고 있는 한학자 노승석이 ‘난중일기’필사본 9책(국보 제76호)의 초서를 완전히 해독하고 8500여자를 새롭게 번역했으며 150여자의 오류를 수정하여 펴낸 완역본 난중일기를 최근에 읽어 보았다. 이런 책들을 보면 한편으로 제대로 된 완본판을 이제 볼 수 있다는 반가움과 함께 한한자이며 초서연구가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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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연구가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번역 작업을 수행하여 많은 성과를 이룩하고 있는 한학자 노승석이 ‘난중일기’필사본 9책(국보 제76호)의 초서를 완전히 해독하고 8500여자를 새롭게 번역했으며 150여자의 오류를 수정하여 펴낸 완역본 난중일기를 최근에 읽어 보았다. 이런 책들을 보면 한편으로 제대로 된 완본판을 이제 볼 수 있다는 반가움과 함께 한한자이며 초서연구가로서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2% 이상 부족한 아쉬움을 함께 느끼게 된다. 내 개인적으로는 사실 2%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화가 날 만큼 이 책에 대해 불만이 많다. 첫째, 독자가 이해 하기 쉽게 각 Chapter 혹은 일기의 중요한 부분 부분에 간단한 그림으로 전투 상황도 같은거 그려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번역은 단순하게 어려운 초서를 힘겹게 해석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게 아니라 독자가 그 결과물을 가지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촛점이 맞추어야 하고 결국 그러한 고객의 관점을 놓침으로서 불쌍한 독자들은 그 당시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그저 몇월 몇일에 누구 목을 베고, 활을 얼마나 쏘았는지, 단순히 유지(임금으로부터 받은 명령서)를 받았다는 사실만 읽게 된다. 이게 얼마나 큰 효율성과 전달성의 상실인지 역자가 알고나 있는지 참 궁금하다. 둘째, 왜놈 이름은 그나라 말로 표현해 주는게 맞다. 요즘의 표기법은 현지 발음을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아니라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로 표기해야 하고, 풍신수길(豊臣秀吉)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로 표현해야 한다. 셋째, 좀 더 세부적이고 심도있는 주석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야여문(也汝文)같은 항복한 왜군 장수를 이순신이 많이 활용을 했는데 이에 대한 행적이나 영향등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 주면 임진왜란 당시의 문화적인 충돌 상황들에 대해 좀더 이해가 될 수있을 듯하다. 이 책에서는 단순하게 그 당시의 지명이 오늘날 어디인가에 많은 춧점을 두고 있다. 이외에도 사실 불만이 엄청 많지만, 역자후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난중일기 완역본"이라는 제목을 쓴 이유 자체가 앞으로 더 보완해서 완벽하게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하니 한번 지켜볼 따름이다. 이런 많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다보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난중일기(난중일기란 정조때 편찬한 충무공전서 편찬자가 지어낸 말이고 원래는 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무술일기이다)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난중일기를 읽고 이순신 개인에 대해 새롭게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1. 정유년 4월 1일(원균의 모함을 받고 28일간 옥고를 치른후 나온 날) 이후에 난중일기의 내용이 많이 달라졌는데, 일기의 분량이 많아 졌고 인간적인 고뇌와 한탄에 대한 부분이 훤씬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여러모로 이 사건을 통해 그가 느낀게 많았음을 알 수있는 부분이다. 정유년 5월 5일 일기를 보면 ",,,오늘은 단오절인데, 천리밖에 멀리와서 종군하여 어머임 장례도 못 모시고 곡하고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니 무슨죄로 이런 앙가픔을 당하는가. 나와 같은 사정은 고금을 통하여도 짝이 없을 것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라고 그의 심정을 토로 하고 있다. 2. 이순신은 부패했던 그 시기를 나름대로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라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을미년 7월 1일자 일기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재목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 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종묘사직이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하루내내 뒤척거렸다." 3. 항상 겸손한 모습이다. 을미년 5월 29일자 일기 ",,,사직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커서 분에 넘쳤다. 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티끌만한 공로도 바치지 못했으니, 입으로는 교서를 외고 있으나, 얼굴에는 군사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4. 조선 수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인다. 정유년 7월 16일자 일기 ",,,우리나라에서 오직 믿는 바는 오직 수군에 있었는데, 수군이 이와 같으니 다시 더 바라볼 것이 없다. 거듭 생각할 수록 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5.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많이 받았었다. 정유년 8월 6일자 일기 "아침 식사 후에 길을 떠나 옥과 경계에 이르니 순천과 낙안의 피난민들이 길에 쓰러져 가득하여 남녀가 서로 부축하여 갔다. 그 개탄스런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울부짖으면서 말하기를 "사또가 다시 오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살았다" 하였다" 6. 별걸 다 일기에 적어 놓았다. 병신년 12일~15일 ",,,여진(女眞)과 잤다" 7. 원균에 대해선 시종 일관 비판적이었는데 왜 사전에 그를 제거하지 않았을까는 의문이 든다. 정유년 이전 그에 대한 평가는 가소롭다, 음흉하다, 흉악하다, 믿을 수 없다, 이상한 말을 한다 등등이 었는데 정유년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원이 온갖 계략을 꾸며 나를 모함하려 하니 이 또한 운수로다" 8. 몸이 아픈적이 많았다. 제대로 된 약이 없어서일까. 한 나라의 장수이며 허구헌 날 활을 쏘는 무신으로선 너무 자주 몸이 아팠던 것 같다. 9. 꿈자리를 미루어 미래를 예측하거나, 길흉에 대한 괘를 점쳐 보는 일이 허다하다. 아마도 그 시기 일상적인 관행이 아니었나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당사에 고뇌하는 한 무장의 심경, 그 시대 공무원의 업무처리 현황 등을 간접체험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임에 틀림없고, 이를 이제 보통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지만, 틀림없이 좀 더 잘 만들 수 있었던 작업이어서 아쉽지만 역자의 말대로 완역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YES마니아 : 골드 s****h 2006.05.26. 신고 공감 2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