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엘 그레꼬]를 먼저 읽었었다. 저자의 저술 방법에 매료되어 그의 모든 책을 읽어보자고 덤볐다. 비교적 저자의 초기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매우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그만큼 나도 푹 빠져서 읽었다.
카라바조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잘 모르던 인물이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책 속의 그림들을 보고는 아하! 하고 알아볼 수 있는 그림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림에는 문외한인 내가 그의 미술사적 위치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르네상스 말기 매너리즘 화풍이 막 내려지고 있을 때 바로크 양식의 창시자쯤이라고 하면 얼추 들어맞는가보다. 테네브리즘이라고 명명지어지는, 20세기에나 들어서서 발명된 사진기의 플래쉬 효과, 바로 그것이다. 성스러움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짙은 어둠을 배경으로 한줄기 빛이 비춰진 듯 주인공에 밝게 비춰진 빛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다. 그래도 이름자나 들어본 렘브란트나 벨라스케스 등에게, 17세기 유럽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화가라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짚어보면 이 화가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싶다. 시대의 흐름에 따르느라 자신을 죽이고 주문자의 요구에 맞추느라 원하는 그림만 그렸다면 그렇게 되지않았을지도 모른다. 행동도 너무 자유로왔던 나머지 너무 과해서 폭행과 뒷골목의 문화에 젖어있고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르고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으나 그의 붓을 잡은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물론 엄청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피신을 환영하듯 받아들였던 그 시대의 여러 지방 사람들, 물론 그의 그림이 탐이 났던 사람들, 파격적인 그림을 거부하지않고 수용했던 열린 사람들때문에 명작들이 많이 탄생했다. 책은 불명확한 출생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시대 순으로 이어진다. 불쌍하게도 사면을 요청하러 로마로 가는 도중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아직 그의 묘지도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이다.
그런데 그 뒤로도 한참 더 있다. 작가의 각주 다는 방식이 참 마음에 안들었다. 번호를 붙이던가 해서 명확하게 해주었으면 좋겠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페이지 하단에 알아보기 쉽게 해주었으면 했으나 별표로 표시하는 방식과 좁은 면에 세로로 길어지는 각주는 읽기에 불편했다. 간혹 잘못된 것들도 눈에 띄고. 그런데 그걸 한방에 날려주는 멋진 기획이 있었으니 그동안 참고했던, 책으로 제본되어있지않은 참고문헌들을 통째로 번역해서 실어주었다. 게다가 참고도서 목록과 도판 목록, 작가 연보와 색인목록까지. 완벽하다.
제목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한다. 책을 읽기 전부터 도무지 저 <이중성의 살인미학>이란 뜻이 무엇인가 궁금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몇차례에 걸쳐서 변화되었다. 초기에 정물화를 그리던 시기를 벗어나 초상화들을 그리고 종교 제단화를 그리던 시대의 로마는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종교화를 주문했던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낸 성자들의 모습, 죽음을 맞이하는 순교자의 희생 장면 들을 주로 표현되어졌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그림들이 많이 그려지는데 이걸 '살인'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살인이든, 화가처럼 일상 생활에서 행해진 다른 이유의 살인이든 똑같이 살인이라는 주제하에 그의 그림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미학이라는 단어가 붙여졌다. 죽음에 집착한 것으로 보이는 카라바조를 저자는, 가톨릭의 반종교개혁 정신을 담기도 했지만 또한 이중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인간의 내면세계를 조망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보는 것이다. 그림 속에 들어있는 성자의 표정에 의기양양한 승리자의 모습이나 거룩함대신 슬픈 표정과 고통에 찬 모습들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카라바조의 그림에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적 정신과 개신교의 개인적인 구원관이 동시에 그려져 들어있다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성(聖)과 땅에 있는 속(俗)의 관계를 일치시키려했다는 점이다. 성자의 모델로 택해진 뒷골목의 부랑아들같은 모습, 성녀의 모델에 창녀를 택한 점 등. 그가 추구한 거룩함이란, 일상적인 삶안에 내재되어있는 고통과 즐거움이 숭고한 성스러움과 함께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걸 그렇게 분석해냈다. 매우 긍정적인 견해로 여겨진다. 내가 이중성이라는 단어에서 저자의 뜻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 책의 몫은 다 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신분이 개신교 목회자(? 신학을 공부했으며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로 보여서 내심 걱정을 했었다. 가톨릭 신자인 내가 읽으면서 불편한 구석이 있을까하는. 그런데 그건 정말 기우였다. 물론 조금 잘못 기재하고 있는 내용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따로 지적하지않기로 했다. 충분히 시간이 지나고 다시 개정판을 내게된다면 수정되어질 것이라고 여겨진다. 반면 나는 책을 읽으면서 조금 주눅이 들었고, 심하게 반성을 좀 했다. 개신교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구나하는 자각이었다. 이제부터 난 개신교에 대한 공부를 좀 해볼까한다. 책 뒤편에 실린 한태동 교수의 의견처럼 가톨릭과 개신교의 시각이 결코 평면위에 대칭적으로 대립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악마와 미스 프랭』에 재미난 일화가 나온다. ‘최후의 만찬’을 그리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림의 완성을 앞두고 예수와 그의 13번째 제자 유다의 모델을 구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을 때의 얘기. 우연히 교회 성가대의 지휘자를 본 순간, 그 온화한 표정에 넋이 나간 다 빈치는 곧바로 그에게 예수상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이제 남은 건 유다의 모델. 3년여를 헤맨 끝에 길거리거지에게서 악마의 형상을 발견하고 모델이 되어줄 것을 제의를 한다. 그런데 제의를 받은 거지는 대답 대신 껄껄 웃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 ''3년 전 내게 예수의 모델이 돼달라고 했던 그 화가로군요. 그 뒤로 내 인생이 이렇게 변했소.'' 출발 직전 방주에 올라탄 ‘선(善)’에게 노아가 짝을 구해오라고 하자 선은 ‘악(惡)’을데려와 자신의 짝이라고 했다. 이 역시 앞선 일화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얘긴즉, 선과 악은 떼어놓으려 해도 뗄 수 없는 존재이며, 결국 한 몸이라는 것. 서두부터 너무 유명한, 그래서 식상할 법한 얘기를 인용해 분위기를 썰렁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굳이 위의 일화들을 인용한 데는 이유가 있다. 오늘 소개할 책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김상근 저/ 평단문화사 간/2005년 12월)을 읽다 문득 떠오른 게 있었던 것.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은 ‘속俗과 성聖’, ‘선과 악’, ‘죽음과 죽임’, ‘희열과 공포’가 종래 이중적 이미지가 아니며 궁극적으로 하나의 형상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삶과 작품을 통해 증명해 보인 카라바조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카라바조의 삶. 르네상스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바로크시대를 연 이탈리아의 천재화가 카라바조는 괴팍하고 광기어린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폭행, 결투, 도피, 살인, 투옥 등으로 점철된 속(俗)된 삶의 행로를 이어왔던 그였지만, 그의 예술은 언제나 속俗의 세계에 숨겨져 있는 성聖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었다. 유럽과 미국 학계에서 카라바조는, 고흐(Vincent von Gogh, 1853-1890)를 능가하는 격정의 삶을 살았던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국민의 문화적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그의 그림이 이탈리아의 10만 리라 지폐 앞면을 장식할 정도로 그의 인기는 매우 높다. 카라바조 작품의 특성. 13세에 화가의 길을 선택하고, 20세 경에 어둠의 방식인 ‘테네브리즘’을 창시한 카라바조. 늘 음습한 로마의 뒷골목을 배회하며 싸움을 벌이다가, 사소한 시비 끝에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이후 나폴리, 팔레르모 등으로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머무는 각 지역에 명작을 남긴 그가 “저기,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의 스승”이란 말을 던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카라바조는 잔인한 살인미학이 넘치는 종교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이삭의 제사="">, <목 잘린="" 세례="" 요한="">,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세례 요한의="" 목을="" 쟁반에="" 들고="" 있는="" 살로메=""> 등의 작품들을 통해 “신의 이름 하에 저질러지고 있는 살인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하고,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지며 심각한 종교적 고찰을 요하고 있다. 저자는 “카라바조 예술의 위대한 점은 속俗에서 진정한 성聖을 발견하고 성聖을 저 높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우리가 사는 세속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렸다는 데 있다. 카라바조의 공헌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모색되어야 할 신학적 고찰의 제목이기도 하고, 우리 인간들의 근본적인 구원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게 하는 도전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카라바조 작품의 경향을 설명하는 말들은 무수하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여성의 누드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미루어 볼 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드러냄과 숨김 사이의 경계선의 미적 표현, ‘죽음’에 대해 사색케 하는 ‘살인미학’, 동성애를 의심케 하는 작품들,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은 자아성찰의 표시인 ‘자의식의 표현’ 등이 카라바조의 작품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볼 수 있다. 카라바조가 르네상스기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무언의 경쟁을 해왔다는 것 역시 유명한 얘기다. 카라바조의 위상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저자의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는 가톨릭교회를 위한 예술가였지만, 카라바조는 16세기의 종교적 분열을 작품 속에서 통합시켰던 위대한 화가였던 것이다.”세례>골리앗의>목>이삭의>유디트와> |
|
카라바조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그의 그림에 대하여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읽으면서 너무 너무 기뻐할 만한 책. 읽으면서 책을 출판해준 출판사에까지 감사하는 마음이... 작품에 대한 접근법이 상당히 맘에 들었습니다. 작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 그리고 시대상황에 대한 통찰 이후에 보게되는 작품은 보다 많은 부분에서 애정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
|
카라바조가 낯선 이름인 것은 아니었다. <이윤기의 그리스 신화>의 도판에 자주 이름을 올린 화가 중 한 명이었으니까. 정적이면서도 어딘가 역동적인 느낌이 꿈틀대는 듯하고,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동시에 주는 묘한 분위기가 꽤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카라바조라는 이름을 듣고 맨 처음 떠올린 그림은 다름아닌 <나르키소스>였다. 그리스 신화의 인물인데 부푼 반소매 윗도리 위에 조끼를 입고 있던 그 그림을 처음 봤을 때의 황당한 느낌은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왜 그리스 신화 인물을 그리면서 17세기 즈음의 옷을 입힌 거지?" 구도와 색감이 정말 인상적이었지만, 고증을 어지간히 따지던 내게는 그런 부분만 보였던 것이다. 내가 이전까지 카라바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이란, 그 그림을 보고 느낀 점과 사실상 동의어였다.
이 책을 보게 된 것도 다름이 아니라 꽤 묵직한 미술책의 저자에 한국인 이름이 들어있는 것에 흥미가 동해서였다. '당연히' 알파벳으로 표기될 법한 이름이 있을 줄 알았는데, 무려 한국인이라니? 덩달아 카라바조에 대해서도 약간의 관심이 생기게 되었고, 결국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카라바조를 그저 그리스 신화 인물을 그리면서 근대 복식을 입힌 화가로만 알고 있던 내 인식이 얼마나 좁았는지 절절하게 알게 되었다. 한참 읽어나가는 도중에 어딘가 울컥한 기분이 들었더랬다. 카라바조 그림을 그리스 신화 서적에서 맨 처음 접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이미지가 그토록 확고하게 박히지는 않았을 텐데, 난 왜 그런 이유로 여태껏 이런 화가에게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단 말인가!
카라바조는 현실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사람들이 외면하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화폭 한가운데로 끌어내었다. 성스러운 성화 한복판에 초라하고 떄로는 불결하기까지 한 현실이 보란 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카라바조가 교회나 주교의 의뢰를 받고 그린 그림 가운데에는 의뢰자가 인수를 거부한 경우도 있었다는데, 거부당한 그림들을 보면 그 조처에 동조하지는 못해도 수긍은 하게 된다. 때에 찌든 필부필부를 성화에 버젓이 그린 것만으로도 센세이션이 일어난 것이 당시 사회였다는데,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을 주름살 찌푸린 노인'네'로 그렸으니 용납될 리가 있나....
그것뿐이었다면, 카라바조의 화풍은 '파격'이라는 말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카라바조에게 붙는 수식어는 그저 파격적이라는 말뿐만이 아니다. 카라바조는 바로크 양식의 선구자로 불린다. 혁신, 선구자, 나아가 회화계의 혁명-그것이 바로 카라바조를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카라바조의 성화에 그려진 사람들에게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긴다. 바로 옆에 있을 것 같고, 손을 뻗으면 그 사람들과 닿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덩달아 그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성모, 성자, 성녀도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화려한 장식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보다 소박한 옷을 입고 느지막이 서 있는 것이 더 기품있고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대체 무슨 조화런가.
카라바조가 빛을 그림에서 어떻게 그려냈는지만 파헤쳐도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수 있을 성싶다. 특히 빛 자체의 묘사보다는 빛의 구도를 표현한 방식과 발상이 놀랍기 그지없다. <성 바울의 회심>을 큰 도판으로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서양화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그림의 반열에 들어가는 작품인 이유를 조금이나마 실감했다. 분명 텅 빈 공간을 그렸건만 보다 보면 무언가가 꽉 찬 느낌을 받게 된다. 곧이어 무언가가 조금씩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가슴에서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조금 큰 인쇄본으로 보아도 이런데, 실제로 본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문득, 카라바조가 과거의 인물을 그리면서 당대 인물의 복식을 채용한 것도 의도적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시대물 연극이나 오페라에서 당대 의상이 아니라 현대 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지금 옆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면 현대의 옷을 입고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 아니, 그 쪽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다른 작품들을 보면, 적어도 카라바조가 과거 복식에 무지했던 것 같지는 않았기에 시대착오적 의상은 화가의 의도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일이 언제나 그렇듯이, 꿈보다 해몽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라파엘로의 <의자의 성모>가 완성되었을 때,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성모의 모습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난 별 감흥이 없었다. 작은 도판으로 본 까닭도 있겠고, 자연스러움으로 따지면 더 윗길인 후대 작품을 많이 본 탓도 있겠고, 내가 부드럽고 포근한 라파엘로의 화풍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내가 그 작품을 무덤덤하게 감상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사실적이고 우아하지만, 그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더없이 사실적인 묘사에서 장엄하게 연출한 장면보다도 더욱 숙연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비루한 옷을 입고 있는 인물에게서 말 그대로 빛이 난다. 인물들에게서 흡사 빛을 내뿜는 듯한 아우라가 풍긴다. 빛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은 이 효과를 강화시켜주었을지언정, 아우라 자체의 원인은 아니다. 정말 놀랍고 대단한 그림이며, 회화사에 길이길이 남을 화가라 아니할 수 없다. |
| 천재예술가들의 삶은 의례 그렇듯 광기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신의 예술 혼을 발산하기 위해 빠져들 수밖에 없을 고통에 찌든 삶은 이제 신비화 될 것도 없을 하나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5,16세기 르네상스 문화의 종식을 알리고 바로크의 시대가 도래되면서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미술가 카라바조가 등장한다. 바로크의 창시자, 혹은 시대를 앞서간 불우한 화가쯤으로 인식 되고 있던 카라바조의 내면세계는 훨씬 더 격정적이고도 위태로운 삶으로 범벅 되어 있었다. 종교와 정치, 그리고 미술은 역시나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풍요롭지 못했던 16세기 로마는 굶어 죽어가는 거지들과 부랑자들, 창녀들로 몹시 어지러운 정세였다. 거기다 가톨릭의 반종교 개혁정신까지 포함하여 카라바조에게는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전적으로 후원자의 취향에 맞는, 그리고 종교적으로 결코 위배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며 자존심 강한 카라바조가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자신만의 미학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둠과 빛을 강렬하게 대비한 ‘테네브리즘’과 성聖과 속俗의 적절한 배합, 지나칠 정도로 사실주의적인 화풍 속에서 실감나게 읽혀지는 그림의 해석이다. 신성화 되고 신비감으로 절묘하게 포장해야 할 종교화에 타나난 지극히 개인적인 고집은 오히려 그림이 줄 수 있는 리얼한 실체의 모습까지 그대로 눈 속에 담을 수가 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보다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겸손은 방탕한 삶을 살다 짧게 생을 마감한 카라바조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결코 아닌 듯하지만,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한 모델들의 종적을 파헤쳐 본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창녀였던 여자의 익사한 시체를 모델로 그린 <성처녀의 죽음="" 혹은="" 영면=""> 과 <성 마태와="" 천사="">은 신성모독이란 죄를 뒤집어 쓴 채 수모를 겪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남루함 비천함으로 비쳐지는 마리아와 마태를 보면서 어떻게 종교계에서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창녀와 거리의 부랑자 같은 16세기 이탈리아 서민들을 표면적인 모델로 삼으면서까지 그는 과연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던 걸까. 성聖과 속俗은 결코 이분법적으로 해석할 수 없음을 시대를 앞서갔던 한 젊은 청년은 벌써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이중성의 살인미학이란 그런 것이다. 죽음과 삶은 언제나 동일한 각도로 움직이며, 성서에 등장했던 그 많은 일화의 주인공들까지도 화려함과 우아함으로 포장하지 않은 채 지극히 인간적인 단편의 모습에서 더욱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 폭력과 살인과 피가 난무하는 종교화에서 불연 듯 더욱 경건해지는 마음이 느껴짐은 속俗의 짙은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구원을 얻고자 했던 카라바조 본인의 자화상까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카라바조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강렬한 어둠과 빛의 대비로 중심에 있는 주인공의 묘사가 더욱 돋보이며 행위가 주는 거대한 선동에 가슴을 자극된다. 그림을 읽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다. 더불어 현재까지 학계의 다양한 해석을 주도하면서, 거장의 깊이를 후세에 가장 강하게 전하고 있는 카라바조의 일대기를 읽는 기분은 바로크가 손 안에 잡히는 듯 가깝게 느껴진다. <성 바울의="" 회심="">과 <십자가에 못="" 박힌="" 성="" 베드로="">를 보고 반해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을 펼쳐내게 되었다는 저자 ‘김상근’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무척이나 아늑하다. 카라바조의 명작 <승리자 큐피드=""> 와 <다윗과 골리앗="">을 감상 하던 본인의 심정과 저자의 심정이 비슷했을까.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문외한이라는 겸손으로 시작해서 세세하게 시대별로 잘 정된 한 채 이어지는 ‘카라바조 바로알기’는 매우 안정되면서도 흥미로웠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며, 모든 예술 역시 로마를 거쳐 가는 지극히 평범한 그 진리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 행을 결정하고 싶을 만큼. 역사상 가장 에로틱한 모습의 큐피드의 그림을 보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카라바조의 성 정체성이 어찌 되었든, 카라바조의 사생활이 얼마나 문란하고 폭력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든,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보고 있는 순간 모든 마음을 뺏겨버리는 큐피드의 애교 있는 눈빛처럼 카라바조의 작품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는 작품이 없다는 점, 예술가의 타오르는 열정으로 완성 된 대작 하나 하나의 쏟아 부은 사랑을 지금까지 후세인들이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할 뿐. 그리고 성 제롬의 메멘토 모리처럼 강렬하게 정신을 지배해 오는 한 마디, ‘살아 있는 자들이여, 죽음을 기억하라!’ 는 평생의 슬로건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다윗과>승리자>십자가에>성>성>성처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