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상, 현상이나 운동에 대해 '안티'가 생기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바람직한 흐름은 이것에 대한 토론문화가 성숙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면에서 제목 자체로서도 충분이 '불경스러운' 이 책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은 매우 편하지 않은 일이다. 아마도 전국민의 반수정도 되는 - 물론 나름의 성향은 차이가 있겠지만 - 기독교인들에 대한 쓴소리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후에 하이데거, 융, 바타이유,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대표적 위인이다. 그가 쓴 책들은 회의적이고 거만하며, 도발적이다. 어쩌면 이런 스타일의 글들이 열린 사람들에게는 좀 더 잘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머릿글에 이미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어쩌면 소수의 사람들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라고 예측하는 저자는 이후 심하다 싶을 정도의 수식어들로 크리스트교와 교회, 성직자들과 성경에 영향을 미친 철학자들까지 모두 한데 모아서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크리스트교는 '원죄-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지은 죄'를 만들어서 나약한 인간을 옹호하고 진정한 '선'에 대해 부정하는 오류를 범했고, 자연과학에 대한 왜곡과 배척이 문제이며, '회개','최후의 심판'과 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들여 심리학을 왜곡했다. 불교는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고통에 맞서 싸우자"주장하지만 크리스트교는 '도덕'을 앞세우며 "죄와 맞서 싸우자"라는 말을 한다. 예수에 대해서는, 예수 이후의 사람들에 의해 예수가 오해되거나 왜곡되었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인것이 <신약성경>이다. 제자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예수를 억지로 이해 가능한 범위에 밀어넣은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예수가 된 것이다. 모순적인 예로 " 산 위나 호수, 초원에서 조용히 가르침을 전하는 이미지와 마치 미친 사람처럼 공격적으로 유대교의 신학자와 성직자를 적대시하는 이미지"는 온화와 과격을 극단적으로 오간다. 이를 이용해 "크리스트 교단은 자신들에게 편리한 '신'을 고안하여 '재림'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예수의 가르침과 전혀 관계없는 말"들을 쓰게 되었다.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은, "자기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에게 말로든 마음으로든 결코 맞서지 말라. 외국인과 자국인을 차별하지 말라.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구별하지 말라.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 말라. 그 누구도 경멸하지 말라. 법정에 고소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으리 변호도 맡지 말라. 무슨 일이 있어도, 가령 아내가 바람을 피워도 이혼하지 말라. "이다. 적어도 예수는 이를 실행할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 가르침을 실행해야 신에게 인도되는 것이다.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열정적인 목회자들이 이야기 하는 '죄', '죄의 용서','신앙', '신앙에 의한 구원'같은 당시 유대교의 가르침을 부정했다. 크리스트교에 대한 최종 판결문에서 "그들은 눈앞에 있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저세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십자가는 일찍이 존재했던 것 중에서 가장 지하적인 반란의 상징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모든 부분에 저자와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일부의 이야기들은 오늘날의 크리스트교가 지닌 폐쇠성과 자애와 사랑과 벗어나는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선의의 긍정성을 갖게 만든다.신약성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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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 이 책 참 재미있다. 이 재미있는 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작품속의 니체의 말을 한구절 빌려와야 할 것 같다.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신중히 해석해 참을성 있게 내용을 파악하는..." p122 그렇다. 크리스찬으로서 광분하며 볼 책도 아니고, 안티 크리스찬으로서 앗따, 통쾌한 거, 라면서 볼 필요도 없는 책이다. 니체, 그가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라지만 어차피 그도 한 인간이고, 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러니 그저, 한 사상가의 주장 정도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니체의 입장에서 보자면 세상이 미쳐돌아가니까 자신이 미치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보다. 그래서 결국 정신 착란 증세를 겪게 되는데, 솔직히 그가 진짜 정신착란이었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일.
나는, 종교적으로 봤을때 좀 특이한 집안에서 자라났다. 워낙 대가족이다보니 그럴수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가톨릭 교인이셨고, 큰누나는 기독교이었다. 작은 누나는 크리스챤이라면 이를 갈았고, 셋째누나는 불교 신자였다. 넷째누나는 다신교, 그러니까 신은 믿되 자기가 필요할 때 생각나는 신을 부르짖는 타입이었다. 이를테면 어느날은 하나님을 찾고, 어떤때는 부처님을 찾으며, 심지어 알라신을 부를때도 있었다. 형은 엄마를 따라 가톨릭 신자였지만 성경은 고사하고 성당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비몽사몽간에 미사를 보고 비몽사몽간에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세례명이 요셉인 걸로 알고 있는데 누가 요셉이라고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 그 증거였다. 자신이 요셉인 걸 알때 보다 모르는 때가 더 많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완전무결한 무관심론자. 즉, 신이 있거나 말거나 주의셨다. 주로 나만 괴롭히지마, 라고 주장하는 분이셨는데 그 때문에 큰누나와 가장 트러블이 많았다. 물론, 한집안의 최고 권력자에게 끊임없이 대항했다는 이유로 많은 불이익을 당한 것도 사실이었다. 용돈이라든가, 장녀로서의 행동을 과도하게 빌미삼아 징계를 내린다든가 하는 것이 그랬다. 이를테면 셋째가 잘못해도 첫째를 같이 불러 혼내는 등의 복수가 그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게 다 무리한 전도의 대가였는데 큰누나는 정말 그게 장녀라서 그렇다고 믿는 눈치였다. 아버지처럼 부당한 어른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믿는 자체가 장녀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나로말할 것 같으면 나는 박쥐였다. 큰누나의 지원사격이 필요했던 어떤 일에 대가로 교회에 처음 발을 내딛었고, 그렇게 나간 교회에 어찌나 이쁜 여자애들이 많았는지 그렇게 해서 중학 3년, 고등학교 3년동안 교회를 다녔다. 그런데 왜 박쥐인가, 엄마와의 협의에 따라 성당도 같이 다녔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엄마에게 뭔가를 얻을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는 했지만 성당은 4개월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교리를 공부해야 하는 예비신자의 과정이 있었는데 난 일단 뭐든 공부는 딱 질색이었다. 내 보기엔 신부님도 나와 같은 생각이신 것 같았고 그래서 그런 나의 안좋은 상태를 엄마에게 좀 말씀드려달라고 부탁하고는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교회 6년을 다니는 동안 새벽기도회, 부흥회, QT, 성경통독, 중창단, 문학의 밤등 다각적인 활동을 통해 뭔가의 열정의 불살랐는데 왜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되었는가. 그것은 니체와 비슷한 이유였다. 그러나 내가 니체와 다른 점은 나는 안티 크리스트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찌보면 아버지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쪽이 더 가깝다고 볼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간혹 지인중에 교인이 나를 전도하려 할때면 내가 잘하는 말이 있다. "전도하기 가장 힘든 부류가 나같은 부류야, 크리스트교를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이유만 뒤집으면 전도가 가능하지만 나같이 좋아 좋아, 그러면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놈이 젤 무서운거야..."
솔직히 나는 좋아하는 교인과 그렇지 않는 교인 두 부류가 있다. 좋아하는 교인은 이런 부류들이다. 이야, 힘들텐데 어떻게 버텨냈어? 라고 내가 물었을 때 "모두 하나님의 힘이다." 그렇게 말하는 부류이다. 싫어하는 부류는 이야, 힘들텐데 어떻게 버텨냈어? 라고 물었는데 "모두 하나님의 힘이니까 너도 하나님을 믿어야 해, 니가 하나님을 안믿으니까 그 모양 그 꼴인거고, 니가 아무리 잘나봐야 하나님을 안 믿으면 다 쓸모없는 짓이다." 라고 말하는 부류이다. 즉, 자신의 삶의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믿음이자 선택으로 갖는 종교는 좋다고 보지만, 맹목적으로 모든 삶을 종교의 논리로 의지하려는 자세는 지양하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피켓을 들고 고래 고래 소리지르고 다닌 사람을 종종 본다. 사람들을 그를 가리켜 광적인 크리스챤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안티 크리스트"라고 보는 바이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설교를 퍼묻는 아줌마들도 역시 안티 크리스트 일지 모른다.
아무튼 니체의 결벽증에 가까운 크리스트 혐오의 발언들이 근거없는 논리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또 반대로 필요이상 악화시킨부분도 있다. 작품중에 크리스챤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단지 그 종교 속성자체에만 비난을 가하는 것이라 생각했을텐데 불행히도 어떤 대목에서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까지 모두 폄하하는 대목이 있었던 것은 아쉬운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무조건 종교에 휘둘리기만 한다고 보는 생각일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 역시 기독교의 공격적 성향은 매우 싫어하는 바, 우리와 생각이 같으면 아군, 다르면 모두 적이라는 태도를 지닌 크리스챤은 매우 싫어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 친구 몇몇을 보면 그렇지 않은 크리스챤도 많다. 그야말로 봉사가 무엇인지 실천으로 보여주는 친구들인데 그런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울컥, 나 역시 교회를 다닐 생각도 해보지만 근본이 그렇지 않은 놈은 교회 아니라 교회 할아버지를 다녀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봤다. 다소 과격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행간의 의미를 골똘하게 생각해보면 독자 스스로 유화시켜 볼수 있음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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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신론자이다. 세상에는 어떠한 신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떠한 ‘절대적’ 윤리도 부정하고 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창조주의 존재를 믿고, 성경의 한구절한구절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크리스트교에 반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반감은 크리스트교의 교리에 대한 논리적 이성적 반감보다는, 지하철등에서 사람들을 귀찮게 할 정도로 크리스트교의 포교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적 상황속에서, 감정적 반감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크리스트교에 대해서, ‘신은 죽었다’며 부르짓으며 실존주의 철학을 개척했던 니체가 오로지 크리스트교를 비판하는 책을 썼다니 읽어 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두께도 상당히 얇았다.
그러나 이 책은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마치 김용옥교수님의 책을 보는듯,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크리스트교를 비판을 가하고 있었다. 소개를 한다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크리스트교, 제자가 왜곡한 예수상, 진리와 ‘진리일 것이라는 믿음등 각종 소제목들만 보아도 크리스트교의 주요한 문제점은 다루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원했던 것은, 좀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 비판이지 이런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비판은 아니었다.
하기사 우리가 알고 있는 각종 철학의 요체들이 그 주창자들의 책을 보아서는 일반인들은 도무지 알 수 없고, 학자들의 연구에 의한 재해석에 의해서 쉽게 이해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놓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선’이란 권력의 감정과 권력에 대한 의지 그리고 권력자체를 인간에게 오도록 증대시키는 모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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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물론, 완전히 100%적인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성도생활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다 종교서적에 관심을 갖게되어서 한달에 한번은 나름대로 기독교 서적을 읽고있다.
우연찮게 이 책의 제목을 보았고 지금 내 신앙생활의 본질적인 것에 가까이 가고 싶다는 생각에 구입하고 읽게 되었는데...
정말로, 니체란 사람!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 표지의 제목에 섬뜩했고 그 외에 책의 내용을 가늠케하는 문구들을 보고 과연 읽어도 될까했는데..
난 밤을 세워가면서 단 한번에 책을 읽었다.
결론을 과연 어떻게 지을까하는 궁금함을 달래면서 말이다.
지금 종교생활로서 힘을 얻고 사는 분이라면 절대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않다.
(아예 읽지도 보지도 생각하지도 마시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종교의 정확성을 알지 못할텐데.. 기준점이란게 없는 상황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 누구든지 종교생활을 바로 집어 치우질 않을까?
믿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직 초보신자분이시거나 믿음에 대해 정확하게 주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절대로 읽지 말아야 할 책인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난 내 나름대로 믿음을 가지고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모든 진리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하늘과 땅이 있듯이 나쁜것도 있으면 착한것도 있고 .. 남편이 있으면 아내가 있고,
공부 잘하는 애가 있으면 공부 못하는 애도 있는거고.....
우린 삶의 양면성 속에서 항상 왔다갔다 하면서 사는게 아닐까?
그 중에서 종교는 오직 한쪽에서만의 자리매김을 하는것이라 양면성을 추구하지는 않지만은 말이다.
난 진리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니체는 오랜 시간동안 연구하고 분석하고 얻어지는게 진리라고 한다.
근데 우스운건, 진리 자체를 인간이 나중에.. 결국에 진리라고 판단하고 마침표를 찍는다
모든것이 우리 인간이 정하는 것이지 그 어떤것에 의해서 진리라고 판단짓지는 않는다.
근데 그런것이 진리일까?
인간이 얼마나 대단하고 엄청난 존재이길래 그렇게 진리라는걸 판단할수 있을까?
그냥 무지한 인간들이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말하고 있는 진리를 진리라고 믿고 있는게 아닐까??
우리네 인간들은 결국 진정한 진리에 다가가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정말로 최상의 최고의 진리점에는 절대 도달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진정한 인간성을 가지자는 실존주의 철학..그중에서도 이 책이 그 중에서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이 책을 쓰고나서 정신이상자가 되었으니..
그는 천재 아니면 정말 말도 안되는 엄청난 바보임에 틀림이 없다.
다른 어떤 긴밀함을 주는 소설도 아닌데.. 난 읽으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경험을 했다.
지금 이 시대에서도 엄청난 파동을 주는데, 그 당시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여하튼 그의 말은 하나도 틀린말이 없다. 모든것이 다 맞다..
철학이란 자체도 종교적인 자체도 향해가는 최종적인 목표점은 똑같을테니까..
난 실존주의라는걸 학교 다닐때 그냥 교양과목으로만 생각했고 읽었다.
그때는 당연히 종교생활을 하지 않을때고 그냥 그렇구나.. 했지만...
지금 몇년이 지난후에 사회에 찌들대로 찌들은 나로서 다시금 그의 실존철학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엄청난 매력을 지닌 녀석(?)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지금 이 살아 숨쉬는 동안이 최고로 중요할것이다.
철학이란 학문이 엄청난 다양성을 부각시키는 학문이기에 이 책만을 읽고서는 판단할수 있진 못하겠지만 우리는 살아가는 이 시간이 정말로 소중하고 중요하다는건 그가 깨닫게 해주는것 같다.
복잡하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미로속으로 빠져들어가는것 같아 그냥 이 정도만 해주는게 나을듯한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느낀점이라면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생각이다.. 지금 내가 살아있던지, 아님 죽어서 저 세상에서 있던지 간에 어디에 있던지 간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지금의 생활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 결과는 좋을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만큼은 최고의 행복과 선을 향해 나아갈수 있을테니까............
인간은 인간일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인상깊은구절] 정신력이 강한 사람, 기질과 체력이 강한 사람, 평범한 사람.. (난 어떤 사람일까?) |